난민심사의 기본을 만들기 위한 10년의 노력
-난민면접 영상녹화 의무화를 위한 운동의 전개-
난민면접 영상녹화의 요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
2011년 3월, 버마(미얀마) 출신의 바하(37, 가명)는 환호했다. 2005년 10월 난민신청을 하였으나 출입국에서 불인정하겠다는 결정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제기한 소송에서 드디어 승소판결을 받은 것이었다. 바하는 고국에서 군부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조직에게 10만 kayats(약 1700만원)을 주었다는 이유로 군인들로부터 살해의 위협을 받았고, 결국 고국을 탈출하여 2005년 천신만고 끝에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사실 그의 난민지위 인정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난민지위를 신청할 당시 버마(미얀마)의 정치상황이 혼란했던 데다 본국에서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입국과 제1심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0만 kayats를 준 시기와 체포된 시기에 대한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소송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이는 바하에 대한 면접관의 질문이 한국어에서 영어로, 다시 영어를 소수어인 친어로 통역하는 이중의 통역과정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하의 답변은 ‘면담기록부(현재의 면접조서)’에 한국어로 기재되었기 때문에 바하는 자신의 답변이 정확히 기재되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난민신청 4년 지나 ‘불허’ 통지… 알고 보니 엉터리 통역 때문", 경향신문, 2011년 6월 15일)
난민법이 제정되기 이전 (구)출입국관리법에 의해 난민심사가 규율되던 시절에는 난민면접을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것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출입국은 난민심사의 정확성 및 절차적 보장을 담보할 아무런 장치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난민면접이 당사자에게 충분히 진술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예/아니오 식의 답변만을 요구하는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되거나, 난민면접 중 담당 공무원이나 통역인의 욕설·폭언이 있는 등 인권침해적인 심사관행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다.
또한 박해를 피해 피난 온 사람은 최소의 필수품만을 가지고, 대개 신분증조차 없이 도착한다(유엔난민기구 발간 난민 지위의 인정기준 및 절차편람과 지침 제196항). 이와 같은 난민의 특성에 비추어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주장사실을 증명하도록 요구할 수 없기 때문에 당사자 본인의 진술이 주된 증거방법이 된다. 따라서 난민신청자에 대한 면접과정은 난민지위 여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난민면접의 녹음 또는 녹화 등 심사의 정확성·투명성·공정성을 담보할 장치의 부재는 당사자에게 심각한 권리 침해의 결과들을 초래하였다. 이에 난민인권센터(이하 '난센')는 난민면접 과정의 영상녹화를 의무화 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난민법을 제정하여 법적인 근거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입법 운동부터 시작하였다.
영상녹화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
난센은 (구)출입국관리법에 난민심사에 관한 규정을 두고 난민심사가 진행되던 당시 난민면접과정에서 발생하는 위와 같은 욕설과 폭행 등 부당한 대우, 고압적인 면접관의 태도, 부정확하고 공정하지 않은 심사를 관리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형사피의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조사과정을 참고하게 되었다. 전국 검찰청에 설치 및 운영 중인 영상녹화조사실 현황 및 이용실적을 확인하여 이것을 본격적으로 난민심사의 공정성·투명성·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제시하였다.
또한 난센은 이미 각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영상녹화조사실이 설치되어 있고, 당시 난민심사를 전담하고 있던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현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에도 약 5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설치한 2개의 영상녹화조사실이 있음에도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사실을 확인하여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속하였다. ("난민인정 10%미만… 생계지원 ‘전무’", 서울신문, 2011년 6월 20일)
영상녹화에 관한 규정을 법으로 만들기까지
난센이 창립한 당시부터 이미 독립된 난민법에 관한 시민사회의 요구는 시작된 상황이었다. 2006년부터 난민활동가와 변호사들이 난민지원네트워크 월례모임을 꾸려 난민법 제정안을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난민법 제정운동을 추진하였다. 난센은 이 과정에 난민면접과정의 영상녹화 의무화 등 난민심사과정의 절차적 공정성·투명성·정확성을 담보하고, 난민신청자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근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난민 등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안’이 만들어졌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입법청원을 하였고, 황우여 의원이 대표로 국회에 발의하였다. 그리고 약 3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시민사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실 방문, 전문위원과 발의 의원실 보좌관들과의 면담, 대한변호사협회를 통한 의견개진, 법안 대표 발의자의 의지 등의 노력과 상황으로 2011년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2012년 2월 10일 독립된 인권법으로서의 난민법이 제정되었다.
이와 같이 제정된 난민법 제8조 제3항에서는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면접과정을 녹음 또는 녹화할 수 있다. 다만, 난민신청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는 녹음 또는 녹화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여 난민신청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난민신청자에 대한 면접과정의 녹음 또는 녹화를 의무화 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난민법 시행 이후 영상녹화 실시 현황에 대한 끊임없는 모니터링
난민법 시행 후 일정기간 동안은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각 심사를 담당하는 사무소에 영상녹화 시설 설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잘 이행되지 않았다. 난센은 난민법 시행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난민예산 현황을 모니터링 하여 영상녹화 시설 설비가 갖춰질 것을 계속해서 촉구하였다.
이후 난민심사가 진행되는 각 거점사무소에 위 영상녹화 시설을 설치하였음에도, 난민면접이 영상녹화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난민법에서는 난민신청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면접과정을 녹음 또는 녹화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실에서는 난민신청자에게 녹음 또는 녹화를 요청할 수 있다는 권리를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민면접의 대부분은 영상녹화가 실시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간혹 당사자가 면접을 녹음 또는 녹화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요구가 묵살되는 사례도 발견되었다.
난센은 난민면접의 영상녹화 의무화를 통해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보장 및 난민심사의 공정성·투명성·정확성 확보라는 입법의 취지를 몰각하는 출입국의 실무관행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였다. 매년 난민심사 현황에 관한 자료를 법무부 및 각급 출입국 등 관계부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하여 분석한 후 난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였다.
2014년 6월 30일 “난민법 시행 이후 1년간 난민인터뷰 과정의 녹음 녹화 실시 현황”을 요구한 결과 법무부로부터 공개된 답변 내용은 '2014년 7월 8일 현재 난민심사를 담당하는 사무소에 녹음, 녹화장비를 설치하여 사전점검 중에 있으며, 7월 중순부터 난민신청자 요청 시 녹음, 녹화를 제공할 예정임' 이었다. 6개월 후인 “2015년 1월 2일 2014년 면접과정 중 영상녹화 실시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하자 사무소별 영상녹화 현황은 총 80회로 공개되었다. 그 중 난민신청자가 가장 많은 서울출입국 사무소(2014년의 경우 난민신청자 2,896명 중 2040명, 약 70%)의 영상녹화 건수는 1건이었고, 이에 대해 난센은 심각한 문제임을 제기하였다.
지속적인 문제제기에 2015년 면접과정 중 영상녹화 실시 건수는 총 521건, 2016년은 총 335건, 2017년은 총 818건으로 계속 확대되어 갔다(2018년 면접과정 중 영상녹화 실시 건수 정보공개청구에 대하여는 보유·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되었다).
<관련자료>
난민인권센터, "영상 녹화 실시 현황(2014)", https://nancen.org/1327
난민인권센터, “[통계] 난민인정심사 관련 (2015.12.31.기준)” https://nancen.org/1519
난민인권센터, “[통계] 난민인정심사와 처우 현황 (2016.12.31.기준)”, https://nancen.org/1604
난민인권센터, “[통계] 국내 난민 심사현황 (2017.12.31.기준), https://nancen.org/1689
난민면접조작 사건의 발생과 영상녹화의 의무화 약속 및 시행
2017년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신청을 한 아랍권 난민신청자 다수의 난민면접조서가 심각하게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주로 2015년과 2016년 사이 난민신청을 한 이집트, 수단, 모로코, 리비아 등 아랍어를 사용하는 국가 출신의 난민신청자들의 난민면접조서였고, 이들의 면접조서 하단에는 동일한 통역인의 서명이 있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의 난민면접은 약 20-30분 정도로 졸속으로 진행되었고,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발언할 기회도 제공되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의 진술이 어떻게 면접조서에 기재되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면접조서의 조작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피해자들의 면접조서에는 거의 찍어낸 수준으로 동일하게 다음과 같은 취지로 적혀있었다. “신청인이 난민신청서에 기재한 내용은 신청인이 경험한 사실을 적은 것이 맞나요?” “아니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적은 것입니다.” “신청인이 신청서에 기재한 내용은 사실인가요?”, “아니요 사실이 아닙니다.”, “신청인이 난민신청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에 체류하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신청인이 본국에 돌아가게 되면 어떠한 문제나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이렇게 심각하게 왜곡된 면접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은 “한국에서 돈을 벌 목적으로 난민신청을 하였기 때문에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국어로 적힌 난민불인정결정서를 받았다.
그런데 밝혀진 피해사례들 중 단 한 건도 영상녹화(및 녹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난센은 연대단체인 재단법인 동천과 함께 2018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전수조사·피해회복과 함께 영상녹화 의무화를 포함한 난민심사제도 전반의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의 진정을 제기하였다(현재까지 이 진정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결과를 앞두고 있다).
<관련자료>
난민인권센터, “[난민법 5주년] 악의적 난민심사 중단하고 제대로 심사받을 권리 보장하라”, https://nancen.org/1753
난민인권센터,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를 개최하며] 난민인권센터의 입장문”, https://nancen.org/1946
난민인권센터,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 자료집 Speak Out Against ‘Fabricated Refugee Interviews by the Ministry of Justice’! Booklet”, https://nancen.org/1948
<관련 언론보도>
"[단독] 줄잇는 난민 신청자 엉터리 통역에 눈물… 드러난 난민심사 허점", 국민일보, 2018년 7월 9일
"난민을 불법취업자로 둔갑시키는 통역사들", 한겨레21, 2018년 7월 23일
"[이슈플러스] 돈 벌려고 난민 신청? 거짓 조서로 엉터리 심사", JTBC, 2018년 9월 2일
"누명 씌우고 추방 위협” 궁지 몰린 난민신청자", 한국일보 2018년 9월 6일
"‘면접조서 허위기재’ 추가 피해사례 속속 드러나", 내일신문, 2019년 7월 19일
"난민 면접조서 조작 3명 중징계 요청… 법무부 “심사 전문성-투명성 대폭 강화”, 동아일보, 2019년 7월 24일
법무부는 이 사건이 법원 소송,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 언론보도 등으로 계속 문제제기가 되자 2018. 9. 6. 법무부 설명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유사사례 방지를 위해 제도개선을 약속하였다.
< 9월 6일자 법무부 설명자료 (출처: 법무부 홈페이지) >
17. 10월 이집트인 남성에 대한 난민불인정결정 취소소송에서 절차적 하자로 국가패소한 사건 이후,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비슷한 시기에 면접이 이루어진 사건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여,
총 55건에 대해 직권취소하고 재면접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중으로, 그 중 2건 난민인정, 44건 난민불인정결정 하는 등 현재까지 53건(철회 등 7건 포함)을 처리완료 하였습니다.
또한, 상기 판결 이후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난민면접 시 녹음․녹화 전면실시, UNHCR 한국대표부와 공동으로 난민업무담당자 역량강화교육 확대(연 5~6회), 기존 난민전문통역인 재정비 및 보수교육 의무화 등 제도를 개선해 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인력증원을 포함하여 난민심사 인프라 구축을 적극 추진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후 난민면접시 의무적으로 난민신청자에 대해 난민법 제8조 제3항에 근거하여 “녹음·녹화를 요구할 수 있음”을 고지하고 있고, 고지하였다는 점을 난민면접조서에 남기게 하여 난민면접의 영상녹화를 의무화 하기 시작하였다.
영상녹화기록이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활용될 수 있도록
난민면접에 대한 영상녹화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고, 의무화가 되었다는 점은 의미 있는 변화이다. 난센은 매년 이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할 계획이다. 그리고 여전히 남은 개선과제가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난민 불인정의 이유는 “난민신청자의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심사 당국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 및 소송을 통해 권리를 구제 받는 과정에서 난민면접의 영상녹화 기록은 핵심적인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이 난민면접의 영상녹화 기록에 접근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출입국은 초반에는 난민면접 영상녹화 기록을 일체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다가 최근에는 내부 난민심사업무처리지침(비공개 지침)에 의거해 열람까지는 가능하지만 영상녹화 기록을 파일로는 공유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난민면접 영상녹화 기록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출입국이 지정한 날짜에 출입국 내부의 지정된 장소에 출석하여 열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상녹화 기록을 면밀히 분석하여 권리구제의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통역인, 변호사 등 조력인과 함께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자신의 난민면접 영상녹화 기록 파일을 공개하도록 기존의 실무관행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난센은 이에 대해 계속 문제제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 이 글은 서울시 NPO지원센터가 사회변화를 가져온 시민사회 운동의 사례를 시민들에게 공유하기 위해 진행하는 'NPO가 바꾼 사회변화' 프로젝트에 참여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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