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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jazeera] 코트디부아르 난민, 라이베리아 떠나기 서두르지 않아

 

코트디부아르 난민, 라이베리아 떠나기 서두르지 않아

 

 

 

점점 더 많은 난민이 자국의 폭력 사태로 인해 돌아가길 꺼리며 이웃 나라 라이베리아에 정착하고 있다.

 

 

 

 

 

 

 

 

 

8월, 코트디부아르의 한 마을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을 때 제웨 로흐 궤이에는 그녀의 갓난 딸을 씻기고 있었다. 누가 왜 총을 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모두들 그저 달아나기만 했을 뿐이다.

 

그녀는 한 살배기 딸과 다른 두 어린 자녀를 데리고 도망쳤는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그녀의 남편은 다른 방향으로 내달렸다.

 

궤이에는 코트디부아르를 빠져 나와 국경을 넘어 라이베리아 동부에 이르렀으며, 1년도 더 전에 코트디부아르 정부에서 선포한 바 있는 분쟁으로부터 도망쳐 온 난민이 되었다.

 

두오지(Duogee) 난민캠프에서 궤이에는 자신이 겪은 시련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망쳐 나온 이후 닷새 동안 우거진 숲을 지나고 물과 뿌리식물의 일종인 카사바를 캐 먹는 것에 의지해 생존한 이야기가 통역인을 통해 전달되었다. 8월 18일, 두오지에 닿아 다른 가족과 친척들을 만났지만 남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후 국제연합 난민기구(UNHCR)에 등록하는 것이 늦어지면서는 그녀와 세 자녀가 한 달 식량을 배급받는 것에 차질이 빚어졌다. 궤이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구걸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궤이에는 농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집안일도 모두 혼자 해냈었다”고 통역인은 전했다. “그녀는 이러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다행인 사실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2010년 11월,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져 상대 후보 알라산 와타라가 승리를 거머쥔 것으로 국제 사회가 인정한 해당 선거에서 자신이 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다섯 달 동안 이어진 내전에서 1,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그바그보는 2011년 4월에서야 마침내 체포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는데, 그바그보의 지지자들 일부는 변함이 없었다.

 

두 차례의 사건이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2012년 6월 8일, 라이베리아에서 발발한 것으로 알려진 국경을 오간 충돌에서 국제연합(UN) 평화유지군 7명이 목숨을 잃었다. 8월 6일에는 코트디부아르의 수도인 아비장에서 세 시간에 걸친 전투가 벌어져 8명이 사망했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폭력 사태가 의미하는 바는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이 안전을 위해 라이베리아의 국경을 계속해서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UNHCR에 따르면, 9월 말 라이베리아 및 여러 수용국들에 있는 여섯 곳의 난민캠프에서 살고 있는 코트디부아르의 난민은 64,000명이 넘는다. 2011년 6월에 224,000명이 캠프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확연히 적어진 숫자이지만, 본국 귀환은 현재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5월에는 10,300명의 코트디부아르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그 숫자는 다음 달에 가까스로 1,000명을 채우는 것으로 뚝 떨어졌고 7월에는 239명, 8월에는 147명으로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이곳에 머물 터

 

 

정부 관리들은 현재로서는 라이베리아에 머물고 있는 코트디부아르 난민 대다수가 당분간 그곳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토마스 엠타이시는 라이베리아 국제연합 평화유지임무단(UNMIL)의 그랜드 게데 지부장을 맡고 있다. 그랜드 게데는 코트디부아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이베리아의 네 주 중 한 곳으로 라이베리아에 있는 코트디부아르 난민의 절반 가량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그는 코트디부아르가 위기 상황에 이르기 전에 그랜드 게데에는 126,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했다. 무력 충돌이 있고 난 후 그 숫자는 201,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엠타이시는 9월 중순까지로 해서 대략 30,000명 정도의 난민이 이 지역에 남아 있다고 추산했다.

 

“이것은 상당 수의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갔거나 UNHCR과 협력단체들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여러 곳의 난민캠프가 반영구적인 콘크리트 구조물이 설치되고 보건소나 학교와 같은 새로운 사회 시설들이 들어서는 등 모습을 갖춰 가고 있다. 농업 활동과 더불어 인근에 위치한 라이베리아 마을들과 상거래를 하는 것은 물론 UNHCR이 제공한 기본 형태의 임시숙소를 개조하는 분위기도 주름잡고 있다.

 

아쉴 귀로 모농은 2011년 4월 난민캠프가 처음 조성되었을 때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두오지에 왔다. 그는 그랜드 게데를 가족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을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로랑 그바그보가 이끌던 전 정부에서 일을 했다”고 모농은 말했다. “따라서 나는 지금은 돌아갈 수 없다고 본다. 이곳 라이베리아에 남아 있고 싶다.”

 

 

 

 

 

 

UNHCR의 당월 식량 배급 마지막 날, 취재진이 두오지를 방문했다. 한 직원은 식량 배급은 언제나 “매우 민감한 일”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배급품을 받기 위한 여러 단계들을 거쳐 가며 이 줄 저 줄을 부산스럽게 옮겨 다니고 있었다. 오후 시간이 무르익어 갈수록 한 달 치 식량을 받지 못했다 말하는 캠프 주민의 수가 늘어 갔다.

 

인터뷰한 모든 난민이 캠프 생활에 불만을 나타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긍정적인 편이었다.

 

모농은 두오지의 거주 환경이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코트디부아르에서 폭력 사태를 피해 넘어온 많은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두오지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코트디부아르 난민이 국경 지대에서 왔기에 그랜드 게데의 라이베리아 사람들과 민족적인 유대 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서로를 이해한다.”며,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에너지 소모는 정리하는 것이

 

 

주도인 즈웨드루에 위치한 사무소에서 그랜드 게데 UNHCR 활동을 총괄하는 요른 바스티아 요르겐젠은 두오지 난민캠프가 2013년 1월 기한으로 해체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난민캠프를 통합하겠다는 라이베리아 정부와 함께 내린 결정이다. 캠프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관리하기는 더 어렵고 비용은 더 많이 들며 시너지 효과도 덜하다”고 설명했다.

 

요르겐젠은 그랜드 게데에 있는 코트디부아르 난민들이 즈웨드루 외곽에 위치한 난민캠프 두 곳 중 한 곳으로 옮기게끔 할 것이라며, 이 두 난민캠프는 "UNHCR 사무소가 위치한 곳과 더 가깝기 때문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주민이 수만의 이주자들에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랜드 게데의 경찰서장인 피터 솔로는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이 해결에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갈등으로 인해 라이베리아가 그 비용을 떠안고 있는 형국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와타라)가 자신들 사이의 화해를 위한 진실된 노력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솔로는 코트디부아르 난민들이 당도한 이후로 범죄 증가율이 5퍼센트까지 추산되고 있으며 물건 값이 급등하는 한편, 국경 근처에 사는 라이베리아 국민들이 코트디부아르인 간의 충돌에 휘말릴 위험 역시 높아지고 있다는 불평을 제기했다.

 

“난민캠프가 위치함으로써 이곳 주민들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캠프가 국경에 너무 근접해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언덕 위에 올라 9,000명 가량의 코트디부아르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UNHCR 텐트가 널려 있는 전경을 바라보며, 캠프 감독관인 레기 아날드 바료가는 캠프 거주 인구가 25,000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어 놓았다. 그는 이곳을 “영구적”이라고 표현했다.

 

캠프의 중앙 장터에는 열댓 명의 아낙네가 열을 지어 있는 파라솔 아래 앉아 오후의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며 야채를 팔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잘 지내요” 그 중 한 여인이 말했다. “저는 자유의 몸이고 안전해요.”

 

 

트래비스 루픽

 




원문출처: http://www.aljazeera.com/indepth/features/2012/10/20121098463737778.html


 

번역: 최유진(난민인권센터 통번역자원봉사자)

감수: 김한나(난민인권센터 상근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