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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난민에 대한 부실한 통역서비스는 '바벨탑의 저주'





 

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가 국가와 민족, 인종에 따라 달라진 이유는 인간의 오만 때문이라고 한다.

 

대홍수 이후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은 바빌로니아에 정착했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수가 불어나면서, 노아의 후손들은 또다시 대홍수가 찾아올 경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자신들의 힘을 하늘에 과시할 겸 탑을 쌓기 시작했다. 목표는 바로 하늘, 저 높은 하늘 끝에 탑의 꼭대기를 닿게 해보자는 의도였다. 그것이 바로 바벨탑이다.

 

신은 이를 불쾌하게 여겼다. 자신과 맞상대해보겠다는 그들의 속뜻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다시는 물을 이용한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저 어리석은 인간들의 불신이 더욱 불쾌했다. 신은 그리하여 대홍수에 이어 또 하나의 벌을 내렸다. 현장을 지휘하는 감독과 일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도록 언어에 혼란을 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은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하지만, 이후 인간은 인종과 지역 등에 따라 다른 언어를 쓰게 되었다.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된 이유는 인간이 모두 뭉쳐 하늘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 한 신의 의지 때문이라는 내용을 강조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통역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선대 인간의 오만이 후손들에게도 큰 고통을 주는 것일까? 난민은 출입국관리사무소와의 면담과정에서 본연의 고통에 이어 또다른 고통을 맛본다. '언어의 차이'를 존중받지 못함으로써, 자신이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그 절박한 사정을 이야기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난민지위신청자들의 사용언어와 통역예산 집행 내역                     


                                                                               *단위 : 천원(심사중인 신청자의 수) 

        

 언어

 08집행액(심사중)

 09집행액(심사중)

 10집행액(심사중)

 11집행액(심사중)

 가나어

 (86)

 195(6)

 (2)

 

 네팔어

 7,170(295)

 5,880(2)

 345(2)

 1,400(16)

 러시아어

 

 210(6)

 210(2)

 (4)

 미얀마어

 450(122)

 1,665(35)

 945(46)

 5,050(74)

 방글라데시어

 840(53)

 4,305(40)

 900(37)

 1,400(34)

 벵갈어

   

 3,015

 

 프랑스어

 

 2,415

 1,635

 

 스리랑카어

 1,530(142)

 345(8)

 (5)

 1,400(102)

 아랍어

   

 240

 

 에티오피아어

 360(21)

 690(2)

 (5)

 (9)

 영어

 

 1,170

 180

 

 우간다어

 540(100)

 90(9)

 (15)

 1,300(78)

 우르드어

   

 5,340

 

 우즈베키스탄

 

 100(1)

 1,440(2)

 2,320(2)

 이라크어

 240(4)

 (3)

 (1)

 (4)

 이란어

 1,590(14)

 2,730(12)

 870(4)

 (2)

 이집트어

 330(3)

 525(4)

 (1)

 (5)

 인도어

 

 2400

 

 (18)

 임하라어

 

 

 185

 

 줌머어

 

 

 705

 

 중국어

 270(100)

 1,530(21)

 630(15)

 (12)

 친족어·버마어

 

 

 1,740

 

 코트디부아르어

 1,260(15)

 (11)

 (4)

 (8)

 콩고어

 1,290(36)

 60(14)

 (12)

 (14)

 키르키스탄어

 

 

 150

 (15)

 타밀어

 

 

 75

 

 파쉬툰어

 

 

 765

 

 파쉬툰 하라자어

 

 

 810

 

 파키스탄어

 (48)

 1,590(71)

 (134)

 11,605(437)

 팔레스타인어

 60

 

 

 

 필리핀어

 

 90

 

 

 나이지리아어

 (123)

 (14)

 (9)

 (36)

 라이베리아어

 (39)

 (9)

 (10)

 (20)

 케냐어

 (11)

 (5)

 (5)

 (8)

 카메룬어

 (7)

 (10)

 (13)

 (17)

 남아공어

 (8)

 (6)

 (1)

 (2)

 아프가니스탄어

 (1)

 (9)

 (16)

 (25)

 르완다어

 

 (1)

 

 

 브룬디어

 

 (1)

 

 

 수단어

 

 

 (6)

 (9)

 기니어

 

 

 

(10)

국민(국적취득결혼이민자)

 

 

 9650

 기타

 (24)

 (21)

 (77)

 (21)

총집행액(심사중)

 15,930(1,288)

 25,990(321)

 20,180(424)

 34,125(1,022)

                                                                   

                                                                    -출처 : 출입국관리사무소 정보공개청구 결과



통계는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심사중) 속의 인원은 출입국관리사무소 면담관과의 면접을 겪은 난민지위신청자와 겪지 않은 난민지위신청자가 섞여 있고, 해당 연도 신규신청자와 이전 연도에 신청하고 아직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신청자 역시 섞여 있다는 자료상의 한계다.


난민지위신청 심사과정에서 법무부가 통역인에게 제공하는 통역비는 2010년까지는 1시간당 3만원이었다가, 2011년부터 5만원으로 인상됐다. 면담이 진행되는 시간은 보통 대략 4~5시간 정도다. 제대로 할 경우 1명의 난민지위 신청자와의 면담에서 대략 20~25만원의 통역비용이 필요한 것이다.


통계를 보면 알겠지만, 소수언어에는 통역비 지출내역이 없다. 나이지리아-라이베리아-케냐-카메룬-남아공 등 영어 혹은 프랑스어와 자국어가 공용어인 대체로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를 국적으로 둔 난민일 경우 일체의 통역 예산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영어와 프랑스에 대한 서비스는 제대로 제공되고 있을까?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 각각 2009년과 2010년에 100~200만원 대의 예산만 집행됐다. 소수언어에 대한 통역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영어와 프랑스어에 대한 통역 수요가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왜 그런 것일까?


영어와 프랑스어에는 통역이 제공되지도 않으며, 예산도 거의 편성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에 오래 거주한 난민지위 신청자는 서툰 한국어를 통해 면담관과 대화하거나, 한국에 갓 도착했거나 한국어가 서투른 난민지위 신청자는 영어로 면담관과 대화하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렇듯 난민에게는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제한되고 있다. 


이렇듯 면담관이나 난민지위 신청자 모두에게 제1언어가 아닌 제2언어로 진행된 면담에서 과연 심도있는 면담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특히나 박해에 관한 민감한 대화가 주를 이루는 난민지위신청 심사과정에서의 면담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계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2011년 말 기준으로 1,022명이 난민지위 심사중이고, 총 3,412만 5천원의 예산이 사용됐다. 거칠게 나누어보면 1인당 3만원의 통역비용이 사용됐을 뿐이다. 통역인 1인에 대한 1시간당 인건비로 5만원이 제공된다는 주지의 사실과 같이 분석해볼 경우, 40분 안팎의 통역서비스만 제공됐다는 평균치가 나온다. 통역서비스가 전반적으로 얼마나 부실한지 그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방향으로 분석해도 마찬가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면담이 보통 4~5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1회의 면담에서 지불되는 통역비용은 20만원 안팎이다. 그렇다면 전체 1천명 가량의 신청자 중 200명도 채 안되는 사람들만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세부적으로 파악하면 보다 더욱 불편한 진실이 보인다.


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러 개의 언어가 활용되지만, 파쉬툰어와 다리어가 제일 많이 활용되며 공용어로 인정받고 있다. 2010년과 2011년, 2년에 걸친 신청자 수를 합산하면 81명이다. 통역을 위해 집행된 예산 총액은 157만 5천원이다. 


② 파키스탄은 영어와 우르드어가 공용어로 인정되고 있다. 2010년과 2011년, 2년에 걸친 신청자 수 합산 수는 총 571명이며 집행된 통역예산은 1,853만 5천원이다. 앞서 언급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와 같은 문제가 엿보인다. 


면담을 하지 못한 신청자 수 등 일부 중복된 명단이 있을 수 있다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적은 액수다. 더 큰 문제는 파슈툰어와 하라자어 통역 서비스를 받지 못한 난민신청자는 면담관과 직접 한국어나 영어로 소통했을 거란 점이다.


이번에는 다른 관점에서 확인해보자. 심사중인 신청자 수를 잘 보면 이듬해에 숫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데이터가 눈에 보인다. 난민지위 인정이 됐든, 불허가 됐든 결과가 나온 사람의 수가 그만큼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③ 스리랑카어의 경우 2007년에서 2008년까지 심사중인 신청자의 수가 137명이 줄었다. 2년간 사용예산내역은 187만 5천원이다. 2011년에는 신청자 수가 102명으로 급증했음에도 통역을 위한 예산은 140만원만 활용됐다.


④ 네팔어는 2007년에서 2008년까지 심사중인 신청자의 수가 293명이 줄었다. 2년간 사용된 통역을 위한 예산은 1,305만원이다. 


⑤ 중국어는 2007년에서 2008년까지 심사중인 신청자의 수가 79명이 줄었다. 2년간 사용된 통역을 위한 예산은 180만원이다.


⑥ 콩고어는 2007년에서 2008년까지 심사중인 신청자의 수가 22명이 줄었다. 2년간 사용된 통역을 위한 예산은 135만원이다.


정확한 면담을 위해 난민신청자 1인당 필요한 통역 비용은 2010년까지는 대략 12~15만원(시간당 30,000원 * 4-5시간). 2011년부터는 20~25만원(50,000원 * 4-5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위의 결과들을 돌아보면 난민지위신청자의 면담과정에서 동원되는 통역서비스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2011년에는 난민지위 신청자 수가 처음으로 1천명이 넘었다. 2012년에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면담이 이루어질 예정이며, 그만큼 통역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2012년 법무부가 책정한 통역예산은 3,606만원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150~180명만이 제대로 된 통역을 받을 수 있는 돈이다. 나머지 800여 명은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일까? 또다시 부정확한 면담으로 '난민지위신청 불허'만을 남발할 것이란걸까? 이야기는 명확하게 들어주고 나서, 인정을 하든 불허를 하든 해야 할 것 아닌가?


바벨탑을 넘어


원활한 의사소통의 전제는 누가 뭐래고 해도 언어다. 난민지위 신청자는 특히나 민감한 사정을 이야기해야 하는만큼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많은 나라들이 각각의 문화와 역사, 그에 따른 독특한 현실에 처해 있다. 난민은 그 현실적 환경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난민지위 신청자와의 대화, 혹은 면담은 기본적으로 인문학적 배경까지 요구한다.


하지만 인문학적 배경은 고사하고, 기본적 의사소통에 대해서도 인색한 우리의 현실을 보며 바벨탑의 저주가 난민에게 또다른 시련을 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소수언어에 대한 배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서로 모국어가 아닌 영어 아니면 한국어로 면담관과 난민신청자가 의사소통의 장벽이 세워진 채 맞대면한다는 것이다. 


바벨탑은 그렇듯 오만의 상징에서 고통의 상징으로 변했다. 난민은 큰 용기를 내 한국에 도착해 난민지위 신청을 하면서 또다른 고통을 맛본다. 신은 인간이 자신을 믿지 않는 것에 분노해 벌을 내렸지만, 한국 정부는 난민이 믿음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불신을 만들어나가며 바벨탑의 저주를 내렸다. 


언어는 원활한 의사소통의 기본이다. 난민에게 있어 통역은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한국 정부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