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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4기 인턴들의 자유분방한 태국 방문 감상문 ♬ - 4번 타자, 고병주

놀라 까무라칠 소식

메솟에서의 스케줄을 마치고 심야 버스를 이용해 방콕에 닿은 1123, 수쿰빗 28번 가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짧지만 꿀같은 오전 휴식을 마친 난센은 또다시 단체 방문을 위해 이동하였습니다. 5일간 촌 생활을 하다가 대도시인 방콕에 도착하여 매우 들뜨게 된 난센! 업된 기분에 방문할 단체 근처의 대형마트에서 옷 구경도 하고 깔끔하고 현대적인 푸드코트에서 50바트짜리 식사에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고는 TCR(Thai Committee for Refugees)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서 마중 나올 현지 직원을 잠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대기시간 동안에도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지 않고 있던 가람가람 인턴이 차분한 목소리로 아주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연평도가 포격당했대요. 민간인도 죽고.”


. 나도 이제 난민?

참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소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연평도는 제가 해양경찰에서 전경으로 복무하던 2005년 가을, 2개월 반동안 지냈던 근무지였습니다. 잠시 머물렀던 섬에서 포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 소식이 들려오니 마음은 착 가라앉았습니다. 출항 허가를 받기 위해 해양경찰 출장소를 찾던 어부들, 종종 출장소에 들러 저녁거리나 하라며 그 날 잡은 게나 물고기를 몇 마리씩 던져주고 가던 그 어부들의 모습과, 부식을 사러 갈 때마다 만났던 장춘상회 아주머니, 장춘상회에서 산 부식을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돌아오곤 하던 골목길, 산 위에 올라가 바라보던 손에 잡힐듯 가까웠던 해주 땅과 밤시간에 종종 들려와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해병대의 사격훈련 소리가 차례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이따금씩 일어나는 해군 함정 사이의 교전과는 달리 섬에 대한 포격은 고정된 좌표에 대한 공격이므로 실수나 우발적인 사고일 가능성보다 계획된 공격일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민간인 사상자가 났다는 점과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그에 따른 대한민국의 보복이 행해질 것이고 국지적인 전투로 끝나지 않고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각이 이쯤에 미치니 한국에 있는 부모님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문 걱정은 ‘혹시 한국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부모님도 못 보게 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 태국에서 UNHCR에 인도적체류허가라도 신청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별안간 벌어진 남북한 사이의 포격은 해외에 체류중이던 제가 ‘난민’이 되는 것까지 생각하게 만들고 한국에 있는 부모님을 걱정하게 하고 앞날을 막막하게 만들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일상과 무감각함

이렇게 충격적인 폭력을, 그러나 삶의 한 부분처럼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메솟에서 FDB(Forum for Democracy in Burma)를 방문했던 1119일 오후, 방문을 마치고 사무실을 떠나려는 난센에게 FDB 관계자가 역시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곳에서 멀지 않은 버마-태국 국경에서 방금 로켓포 공격이 일어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문제의 직접적인 발단은 117일 버마에서 행해진 총선에 있었습니다. 버마 군사정부인 SPDC(the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는 버마 국경지대의 카렌족에게 다른 정당이 아닌 USDP(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에게 투표할 것을 강요했고 카렌족 무장단체는 그 부당한 강요에 대항하게 된 것입니다. 두 단체가 무력투쟁을 벌이는 사이 엉뚱하게도 민간인들이 위험에 놓이게 되었고 수 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위험을 피해 국경 너머 태국으로 건너와 임시로 난민 캠프를 꾸린 것입니다. 그리고 열흘이 넘도록 봉합되지 않은 그 무력충돌의 여파로 로켓포가 임시 난민 캠프를 덮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난센은 예정에 없던 국경방문을 감행하였습니다. 임시 난민 캠프가 국경 다리에서 불과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정보가 있었으므로 국경 다리를 방문하면 그 날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고 생생한 소식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습니다. 하지만 국경 다리에 도착했을 때 난센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국경 다리 근처 무역 시장에서는 상인들이 평소와 다름없는듯 한 모습으로 장사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근처에서 일어난 로켓포 공격에 대해 관심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로켓포 공격이고 사람의 생명이고 간에 그곳의 보통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 한 일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  

강의 왼쪽은 버마, 오른쪽은 태국입니다. 오른쪽 구조물은 임시 폐쇄된 국경 다리의 교각을 보수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로켓포 공격이 일어난 19일 오후, 국경 다리는 폐쇄되었지만 사람들은 공공연하고 유유하게 타이어 튜브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난민의 고통을 함께하기

버마 난민들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태국에 가서 그들을 만나면서도 제 인식은 그들을 지면과 활자를 통해 이해하는 수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근처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생활에 빠져있는 국경 시장의 사람들처럼요. 총선과 관련된 정부의 투표 압력과 그로 인한 무력 충돌의 발생이 가져오는 버마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머리로는 받아들이고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그 고통을 깊이 통감하지는 못했다고 할까요? 하지만 4000km나 떨어진 모국의 연평도 피격 뉴스를 접하면서 버마 난민들의 불안한 삶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자신이 난민이 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하자 버마 난민들이 느끼고 있을 절절한 두려움과 고통이 제 가슴에서도 느껴지게 된 것이죠.

난민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것, 중요합니다. 아직 한국에는 난민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떠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인지 조차 모르고 난민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저 자신도 그러하지 않았나 다시 한 번 돌아봅니다. 동시에, 언제나 바람직한 출발선은 오만하고 간사한 머리가 아닌 뜨거운 가슴이라는 점을 확인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머리로만 난민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그들을 이해한다 말할 때, 우리는 직접 난민에게 다가가 그들을 끌어 안고 체온과 심장의 떨림을 함께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난민의 현장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눌 때 난민과 함께 웃는 세상^ㅇ^이 실현되지 않을까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