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현지 조사. 나에게 모든 해외 경험이 그렇듯 지금도 언제 갔다 왔나 싶은 꿈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크게 두 곳 메솟과 방콕에서의 일정으로 나뉘어지고 이 두 곳에서의 여정은 나에게도 뚜렷이 구분되는 것 같다. 메솟에서는 처음보고, 충격 받은 적이 여러 번이다. 버스터미널의 물을 퍼 내리는 화장실, 문이 없는 그래서 학교 내 수업 내용이 여기저기서 다 들리는 사무터학교의 열악한 환경(더 놀라운 것은 이 학교가 그나마 형편이 나은 것이라는 점), 메솟 빈민가 주변의 피부병에 걸린 길에 널린 개들과 또 함께 노는 아이들(아이들의 열악한 놀이 환경을 보며 왜 부모들은 제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곧 위생 개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쓰레기 산과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잡고 쓰레기를 뒤지며 페트병을 찾는 사람들, 더 놀라운 건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태국 도심으로의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외곽 지역의 난민촌 웅피엠 캠프. 버마식의 특이한 이층집 같은 가옥들이 빼곡이 산자락에 들어섰다. 그렇게 갇혀서 사는 사람들, 부족한 교육이나마 받는 학생들을 제외하면(이들도 크게 다르진 않은 듯 하나) 꿈도 희망도 감히 품을 줄 모르는 듯 하다.
[매솟에서 방문하였던 단체 중 하나인 AAPP에서 체험한 실제 감옥 모형.
사진 너머로 보이는 저 작은 공간이 곧 감옥이었다.]
참 인상적이면서 의문스러운 것은 행복에 관한 것이다. 쓰레기 산에서도, 빈민가에서도 행복한 미소로 응대해주는 모습을 볼 때, 혹은 웃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그들을 볼 때 솔직히 말해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들 도무지 웃을 상황이 아닌데, 왜 웃는 거지? 바깥 세상을 몰라서 그런걸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당연!) 잘사는 순도 아닌 가보다. 사실 그건 정말 맞는 얘기이지만 이런 생활속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의 여유가 놀라웠고 나에겐 새로운 것이었다.
또 하나, 태국인들의 국왕과 왕비 사랑, 아주 지극하다. 특히 국왕을 신으로(신처럼의 정도가 아니라) 모신다. 짱팀의 말처럼 이 국가가 역사상 중립을 지키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국왕을 중심으로 내적으로 집중되는 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게 너무 극성스러워서 학교에도, 상점에도, 호텔에도 어디에나 국왕 사진이 걸려있다. 북한 어디에나 김일성의 사진이 붙어있듯 말이다. 우리가 있었을 때 큰 불교 공휴일이 있었는데 이때 부처님을 향한, 그리고 국왕을 향한 태국인들의 다소 맹목적인 열정과 애정을 보면서 종교에 대한 이해가 조금 넓어진 것 같다.
메솟에서의 다채로운 경험을 뒤로하고 방콕으로 이동! 아, 일단 긴장의 수위는 확 내려갔다. 업무면에서, 화장실 사용에서의 부담감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APRRN3 일정 전까지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방콕의 단체방문을 계속 진행했고 APRRN 시작 직전부터는 주최측이 제공한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인상 깊었던 것이 또 있다. 방콕에서 이탈리아 수녀원에서 지원하는 UN Implementing Partner인 BRC(Bangkok Refugee Center)의 학교에 갔을 때이다. 매주 수요일, 새로 온 난민과 난민 신청자 자녀들이 학교로 온다. 아침 조회시간, 그 아이들은 언제 배웠을지 모르는 태국 국가를 부르고 배정된 담임선생님을 졸졸 따라 교실로 이동한다. 일단 이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놓인 것은 학교 시설이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을 만한 여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일단 학교 울타리 내에는 위험한 요소가 없고 또한 상담 선생님이 잘 가꾸어 놓은 작은 정원과 정리된 게시판을, 정비된 작은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칸막이 쳐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나, 내가 배워온 환경과 비슷해 감정적으로 더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어느 교실 문에는 Refugees, 또 어느 교실 문에는 Humanitarian Status가 붙어있다. 큰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니 선생님과 보조 선생님이 아이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한 명 한 명 보충 설명을 해준다. 눈물이 핑 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자 하는 선생님의 사랑이 느껴져서. 학교 운영자들과 선생님들은 그야말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멋지다!
APCRR3의 시작은 나에게 멍때림(!)의 시작과 같았다. 아태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인, 일본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각국의 액센트가 섞인 영국/호주 식 발음을 사용했다. 그래서 분명 흥미 있는 주제들인데, 흥미롭게 끝까지 들은 경우는 별로 없는 편이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다지게 되는 영어 공부의 의지! 돌아가면 영어공부 하리라 하리라... APRRN은 그야말로 Asia Pacific Refugee Right Network이다. 각 국의 난민을 위해 뛰는 사람들의 현황, 작년 이후부터의 진행상황 보고가 있다. 이들은 여기에 모여 아태지역의 난민 네트워크 형성과 정보공유, 개발할 점 모색 등을 한다. 국제회의를 돕는 자로 아르바이트 해봤었지만 직접 참여는 처음이었는데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단순히 해봤다는 것 보다는 정말 난민의 권익 향상을 위해 뛰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보았다는 것과 나도 인턴이지만 돌아가 난민을 더 잘 이해하고픈 마음으로 그 시간에 임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연속된 수강(?)으로 골골거리던 나와 다른 인턴들이었지만 저녁식사때의 수다와 서로의 방에 찾아가서 평소에 못하던 얘기를 하던 것들, 주최측이 제공한 예쁜 방갈로 형식의 호텔방과 주변 정원들, 동천에서 온 난센 2기 인턴 옌양, 최팀이 사비로 쏜 태국 정통 마사지, 짱팀의 인류학적 관점의 태국이야기(ㅋㅋ), 방콕의 러시아워의 꽉 막힌 도로 등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아, 손님 없던 호텔 식당에서 차 한잔 마시고 전세 낸 것처럼 신나게 놀던 시간을 보낸 것도. 많이 보고 많이 들었다. 단순히 경험이 많아졌기 보다는 이것들이 내 속에 내 생각과 조화롭게 잘 소화되어 넓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느꼈던 점을 부담 없이 쓰라는 말에 조사의 대상이었던 버마 난민에 대해서 보다는 정말 순전한 개인적 감상만을 늘어놓게 되었다. 그래도, 태국에서 느꼈던 그것들이 난민을 더 이해하는데 분명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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