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민 보호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난민법 일부개정법률안」 폐기하라
난민신청에 대한 각하 사유를 신설하는 「난민법 일부개정법률안」 (김기표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2217617호)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개정안은 거짓 서류 제출이나 거짓 진술, 중대한 사정 변경 없는 재신청, 면접 출석요구에 3회 연속 불응 등을 이유로 난민신청 자체를 각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난민 보호 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헌법 및 국제인권규범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 법안 개정 추진의 전면 중단을 강력히 요구한다.
무엇보다 이 개정안은 난민신청자에게 본안 심사를 받을 기회 자체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개정안은 아무런 절차적 보호장치 없이 법무부장관의 재량으로 난민인정신청을 각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난민협약의 당사국은 비호를 신청한 사람이 협약상 난민에 해당하는지 실질적으로 심사해야 할 국제법상 의무를 부담한다. 유엔난민기구 역시 모든 신청, 심지어 ‘명백히 사기적인’ 신청까지도 접수 단계에서 이를 각하할 수 없음을 명백히 해 왔다. 국제인권기구들은 한국의 ‘출입국항 회부심사 제도’가 이러한 점에서 이미 강제송환금지원칙을 위반할 우려가 있다고 수차례 지적해왔고, 2026년 3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인천공항 환승구역에 장기 구금되었던 콩고 출신 난민신청자의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자유권규약에 따른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처럼 개정안은 이미 국제사회로부터 문제점이 지적되고 위법성이 확인된 출입국항 회부심사와 유사한 배제 방식을 일반적인 난민인정절차 전반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는 난민 보호의 국제 기준에 역행하는 것으로 한국 난민제도의 보호 수준을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개악이다.
우선, '거짓 서류 제출 등 사실 은폐'를 각하 사유로 삼는 조항 - 즉, 거짓 서류 제출 등을 이유로 심사조차 하지 않고 각하하겠다는 조항은 난민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처사다. 난민신청자들은 제3자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자료를 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자료의 진위를 스스로 확인하기 어렵다. 난민의 특성 상 신변 위협 때문에 본국 정부에 확인을 요청할 수도 없다. 결국 난민들은 자신이 '사실을 은폐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도 구조적으로 증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다. 더욱이 이 조항은 난민신청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진술이 구체화되는 과정 자체를 ‘사실 은폐’로 규정하도록 조장할 위험도 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난민은 오랜 기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온 경험과 낙인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해 최초 신청 단계에서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충분히 진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재신청 과정에서 비로소 이를 밝히는 것까지 ‘거짓 진술’이나 ‘사실 은폐’로 평가한다면 가장 세심한 심사가 필요한 취약한 난민신청자를 본안 심사 이전에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개정안은 ‘법원의 판결 등으로 명백히 밝혀진 경우’라는 요건을 내세워 제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으나, 법원에는 서류나 진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 기준이 이렇게 모호하다 보니 결국 이 조항은 모든 난민신청자를 잠재적 의심과 제재의 대상으로 만드는 꼴이 된다. 그 결과 난민신청자들은 자료를 제출하거나 본인의 경험을 털어놓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둘째,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는 이유만으로 난민인정신청을 각하하도록 한 조항 역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출석 요구가 신청자 본인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확인할 시스템이 미비하다. 체류자격이 없는 난민신청자는 신분증이 없어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어렵고, 우편물이 안정적으로 전달되는 주거 환경에 있지 못한 경우도 흔하다. 더욱 큰 문제는 주소나 연락처 변경을 출입국관리기관에 성실히 신고하더라도 그 정보가 난민심사 담당 부서로 자동 연동되지 않는 행정적 한계에 있다. 여기에 잦은 거주지 이동, 불안정한 노동환경, 언어 장벽까지 더해지면 출석요구를 제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개정안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불출석의 책임을 전적으로 신청자에게 전가하고, 질병이나 가족의 긴급한 사정 등 정당한 사유를 고려하는 단서 조항 하나 두지 않은 채 횟수만을 기준으로 신청을 각하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절차적 권리의 침해이다.
셋째, 재신청을 제한하는 각하 조항 역시 한국 난민제도의 현실을 외면한 채 신청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규정이다. 한국 난민제도의 핵심 문제는 반복 신청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만성적인 심사인력 부족과 전문성 결여, 장기간의 심사 지연, 정보 접근과 통·번역, 법률조력의 부족, 체류와 생존권을 제약하는 처우 정책 등 제도 내부의 구조적 결함에 있다. 실제로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약 1~2%로 OECD 국가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난민심사의 공정성을 뒷받침할 절차적 기반이 전무하다 보니 많은 난민신청자가 최초 심사에서 자신의 박해 경험과 보호 필요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고 불인정 이후에도 실효적인 권리구제 수단에 접근하지 못한다. 결국 재신청의 증가는 상당 부분 이러한 제도의 실패에서 비롯된 결과다. 그럼에도 정부는 난민에게 ‘난민신청 남용’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제도의 실패를 난민신청자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왜곡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최초 신청 과정에서 통역과 법률조력 등 기본적인 절차적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사람에게 이후 재신청 요건으로 ‘중대한 사정 변경’까지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심사 당국이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새로운 사정의 유무가 아니라 애초에 그가 적절한 절차적 권리 보장 아래 공정한 심사를 받았는지 여부이다. 법무부 통계에서도 재신청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이 91명, 인도적체류허가를 받은 사람이 222명에 달한다. 이는 재신청이 단순한 제도 남용이 아니라 최초 심사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사례를 바로잡는 실질적인 구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적 한계로 인해 1차 신청 단계에서 보호 필요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책임을 신청자 개인에게만 돌려서는 안된다. 구조적인 한계에 대한 대책 없이,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의 난민인정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재신청마저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결국 보호가 필요한 난민을 배제하고 강제송환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정부와 국회가 바꾸어야 할 것은 재신청 제도가 아니라 난민심사의 구조적 한계이다. 난민인정 심사의 적체와 비효율은 재신청을 제한하거나 각하 사유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전문 심사인력을 확충하고, 통역·번역 지원을 체계적으로 보장하며, 초기 단계부터 충분한 법률조력을 제공하는 등 본안 심사의 질과 절차적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또한 일부 난민신청자를 신속히 걸러내는 ‘네거티브 신속심사’가 아니라 분쟁국이나 박해 위험이 명백한 국가 출신 신청자에게 신속히 지위를 부여하는 ‘포지티브 신속심사’가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출입국항 회부심사나 재신청자 체류자격 제한 지침과 같은 기존 실무에서 드러난 자의적 판단과 재량 남용의 문제부터 바로잡는 것이 먼저다. 난민제도는 행정 효율성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난민신청을 신속히 배제할 근거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심사를 보장하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절차적 권리를 강화하며 본안심사를 충실하고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국회와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난민신청에 대한 각하 사유를 신설하는 「난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
둘, 난민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난민신청자에게 ‘남용’의 낙인을 부과하는 정책기조를 중단하라.
셋, 출입국항 회부심사 및 재신청자 체류자격 제한 심사 등 기존 실무의 자의적 재량 행사 문제를 우선적으로 개선하라.
넷, 전문 심사 인력 증원, 통역·번역 지원 의무화, 법률조력의 보장 등 본안 심사의 절차적 기반을 강화하고, 박해 위험이 명백한 국가 출신 신청자에 대한 ‘포지티브 신속심사’를 진행하라.
우리는 난민 보호의 근간을 흔드는 이번 개정 시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국회는 난민신청권을 위축시키는 이번 개정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정부는 난민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신청자에게 낙인을 찍는 정책기조를 폐기해야 한다. 국제인권규범이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배제가 아니라 공정하고 충실한 심사이다. 우리는 난민신청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고 실질적인 보호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난민제도가 개선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6. 7. 9.
난민법 개악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
가족구성권연구소, 광주민중의집,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노무사사무소 별, 목포5•18부상자회, 목포아트시네마, 사단법인 목포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시네마엠엠/정성우, 이주민과함께, 이주민센터 친구, 이행移行: 이주민 인권을 위한 행정사 모임, 인권교육온다, 장애여성공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전남교육회의, 천주교인권위원회,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시민모임 마중,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노동건강연대·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행동하는간호사회), 난민인권네트워크(TFC(The First Contact for Refugee),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공익사단법인 정,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센터 드림(DREAM),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 글로벌호프, 난민인권센터(NANCEN), 동두천난민공동체, 동두천가톨릭센터, 동작FM,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 비영리단체 겨자풀, 사단법인 두루,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 동두천 베타니아,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 파주 베타니아, 수원글로벌드림센터, 순천이주민지원센터, 아시아의친구들,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이주여성을위한문화경제공동체 에코팜므,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의정부 EXODUS, 이주민센터 친구, 천주교제주교구이주사목센터 나오미, 재단법인 동천, 재단법인 화우공익재단,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참여연대, 파주EXODUS, 한국이주인권센터),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사협)다문화너머서, 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 부천이주노동복지센터, 순천이주민지원센터,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원불교서울외국인센터, 의정부이주노동자센터, 이주민센터동행,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파주이주노동자센터샬롬의집, 포천나눔의집이주민지원센터, (사)한국이주민건강협회위프렌즈,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사)한국알트루사 난민과함께살기, DLG 공익인권센터, 공익법단체 두루,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난민인권센터,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울산이주민센터,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이주노동자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연대회의,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 이주여성인권포럼, 천주교인권위원회, 트랜스보더링랩(Trans-boder-ing Lab),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시민모임 마중), 이주노동자평등연대(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녹색당,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성공회용산-혜화나눔의집, 민변노동위원회, 사회진보연대,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사)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민센터친구,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지구인의정류장, 천주교인권위원회, 필리핀공동체카사마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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