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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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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한국 거주 난민의 기고글이며, 원문은 하단의 링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본 게시물은 난민인권센터와 저자의 허가 없이 무단 편집, 사용이 불가합니다. 

불멸

 

노터리어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목숨을 잃더라도 명예를 얻고자 한다. 그러지 말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라고 어머니는 아킬레우스를 설득한다. 아들들과 손자들을 통해 그의 이름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 갈 게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아킬레우스가 원한 건 이런 식의 불멸성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목숨을 걸게 하는 불멸성만을 원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킬레우스처럼 명예를 찾아 전진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남을 속이고 좌절과 절망에 주저앉는다. 타락과 공허에 지배당한다. 

 

오랜 투쟁과 고난을 거쳐, 때로는 목숨 같은 무시무시한 대가를 치른 뒤, 어두운 길의 끝에서 명예를 안게 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할 이집트 소녀 사라 헤가지Sarah Hegazy는 그 중 하나다. 그는 196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자 권리를 쟁취하고자 싸웠던 게이 인권 운동가 하비 밀크Harvey Milk의 이집트 판본이다. 

 

이 이집트 소녀는 종교 생활을 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났다.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과 신앙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었다. 그러다 수천 명의 관객들이 있는 한 콘서트 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자기 자신을 드러냈다. 이 사건은 보수적인 이집트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언론에서도 논쟁이 불 붙었다.

 

이집트 당국은 '동성애를 선전했다', '비정상적 행동이다', '사회 통념에 반한다'는 등의 명목으로 그를 체포했다. 수개월 간의 구금 생활 동안 그는 고문당하고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풀려난 다음에는 캐나다로 피신하였으나 거기서도 외로움, 소외감, 우울증, 트라우마 등에 수년간 시달렸다. 그는 지난 유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이집트에서 다시 한번 사회적, 종교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킬레우스와는 달리 사라 헤가지는 명예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명예를 얻었다. 수 세기에 걸쳐 자유와 평등과 정의에 대한 열망을 부수고 파괴해 온 종교와 사회의 관습이라는 벽을 타격함으로써 말이다. 

 

그는 동성애자인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동안엔 그 벽을 타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라 헤가지를 현대사의 특별한 인물로 만드는 건 바로 그가 그 벽에 낸 균열이다. 동성애 의제에 대한 인식이 빛처럼 그 틈으로 새어 나온다. 

 

사라 헤가지는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동성애적 성향을 이유로 차별받거나 낙인찍히지 않고 삶을 영위할 권리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명예를 얻었다. 오늘날 수많은 이집트인들이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믿는다. 

 

사라는 결국 떠난다. 짧은 메시지만을 남기고.

메시지에서 그는 절망과 고통을 고백한다. 하지만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을 겪게 한 자들에 대한 관용도 보여준다.

 

“나의 자매형제들, 나는 구원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나의 친구들, 이 여정은 무자비하고 저항하기에는 내가 너무나 약해요. 용서해주세요.

세상 사람들, 당신들은 끔찍하리만치 잔인했어요. 하지만 나는 용서합니다.”

 

 

나는 내 친구 사라를 애도하고자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로서 고통받아온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경청되고, 혼자가 아니라는 게 무언지를 알려주기 위해 쓴다.

 

 

번역: 화 

편집: 고은지

원문:nancen.tistory.com/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