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참여

[기고]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

 

이 글은 2019년 12월 21일 연세대에서 열린 난민x현장 티치인에서 발표한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의 발표문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난민인권센터에서는 난민과 관련한 시민분들의 다양한 경험과 목소리를 담고자 기고글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refucenter@gmail.com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

전쟁없는세상 무기감시캠페인팀 쭈야

 

8,043km를 건너온 사람들, 예멘 난민

 

20186, 500여 명의 예멘인들이 난민의 이름으로 제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주도 난민 수용 거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고, 4일 만에 서명 18만 명을 돌파했다. 또 다른 난민신청허가 폐지 및 난민법 개헌 청원은 70만 명이 넘는 찬성을 받았다. 이들이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애 낳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이슬람교도이며, 잠재적 테러리스트이고, 난민으로 위장해 들어온 사람들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뺏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이질적이고 위험한 가짜 난민을 돕는데 우리의 세금을 쓸 수 없다는 이유였.

 

반대로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난민협약국인 한국이 인권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있음을 이야기했다.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지난 2012년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이다. 유엔난민기구에서는 한국의 난민법 제정이 아시아의 중요한 초석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2018년 법무부가 밝힌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20183.7%(3,879명 중 144)에 불과하다. 세계 평균 난민 인정률은 29.8%이고 한국도 가입되어있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은 24.8%*1 이다. 지난해 들어온 예멘 난민들 역시 단 2명만 난민으로 인정되었고, 나머지는 대부분은 인도적 체류 허가라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한국에 살고 있다.


 

 

예멘에서 발견된 한국산 무기들

 

예멘 난민 인정에 대한 찬반 논쟁 이전에, 살펴볼 사실이 있다. 바로 예멘에서 발견되어온 한국산 무기들이.

제주로 들어온 예멘 난민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로 연일 떠들썩하던 20186, 한 평화 활동가가 인터넷에서 발견한 캡처 사진을 보내왔다. 출처는 트위터 내 @YemaniObserv 라는 계정에 올라온 동영상 캡처 사진이었고, 동영상 내용은 예멘의 후티 반군이 정부군 차량을 습격하여 획득한 무기들을 늘어놓고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그중 수류탄에 영상이 집중되는데, 클로즈업된 이미지에 선명히 보이는 것은 세열수류탄라고 쓰여진 선명한 한글이었다. 이 수류탄은 인터넷에서 발견한 다른 사진에도 등장한다. 사우디와 UAE군이 자랑하듯 수류탄에 입을 맞추고 있다. 이들이 입 맞추는 수류탄은 사우디와 UAE 등에 수출되어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와 UAE군이 사용했다.

 

 

이 무기는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을 담당하고, LIG넥스원이 미사일, 한화가 발사대 생산을 맡아 탄생한 현궁이라는 무기이다. 1대당 1, 무게가 13키로로 다른 유도미사일보다 가볍고 성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한화의 수류탄처럼 현궁도 사우디와 UAE로 수출되어 예멘에서 사용된 것이며, 이 현궁은 민간인이 살고 있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사용됐다.

 

예멘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무기뿐만이 아니다. UAE(아랍에미레이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연합군으로 결성되어 예멘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특히 예멘 내전에 참전하는 UAE 지상군 중 상당수가 특수전 부대원인데, 한국의 아크부대가 UAE특수전 부대에 대한 교육 훈련을 맡고 있다. 한국은 UAE에 아크부대를 파견하고, 방산 수출을 확대하면서 사실상 예멘 내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UAE는 군사기지 옆 아바리아 반도에 최초의 원자로를 건설 중인데 이곳은 광대한 근대화와 군대활동이 발생하는 곳이다. 이 원자로 건설에 한국이 참여하고 있다. 파병을 통해 지역 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UAE군대를 훈련시키고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한국, 원자로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은 중동 지역의 평화를 만드는 일원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UAE파병은 헌법에 명시된 국제평화 유지 원칙에 반하는 것이며, 지역 패권을 둘러싼 갈등에 연루되어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예맨 내전, 인도주의적 재앙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약 2,870만 예멘 국민 중에 국내 피란민이 365, 예멘을 떠난 난민이 27만에 이른다. 전쟁 사망자만 10만 명에 가깝게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멘 전쟁 자료를 수집 분석하는 예멘 데이터 프로젝트 (YEMEN DATA PROJECT)에 따르면 2019년 말 현재 20,330회의 공습이 있었고 그 중 군사시설이 아닌 곳으로 향한 공습13,327건에 달한다. 이는 공습의 반 이상이 군사시설이 아닌 민간인들에게 향했음을 의미한다. 20181011,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예멘에서 민간인을 노린 공습을 중단하고 어린이 희생자를 낸 공격의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전시 어린이 인권 문제와 관련된 사우디아라비아 심의 보고서에서 따르면 2015년 이후 36개월 동안 최소 1248명의 어린이가 숨졌다.*2  2019년 말 현재, 예멘 전쟁의 민간인 사망자는 8,635명이며 부상자는 9,715명에 달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일상도 파괴되었다. 2017727,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WHO)는 공동성명을 통해 예멘의 콜레라 환자 수가 40만에 육박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지만, 2018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Weekly epidemiological record, 20191129일자)에 따르면 2018년 예멘의 콜레라 감염자는 37만 명, 사망자는 512명에 달한다. 2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필요한 보건 시설과 상수 시설이 모두 파괴된 결과이다.

 

유엔 어린이기금(UNICEF)2019925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20199월 기준으로, 36만 명에 달하는 5세 이하 예멘 어린이가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1,230만 명의 어린이들에게는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하다. 교육시스템의 파괴와 함께 어린이들의 미래도 파괴되었다. 20153월 이후 분쟁이 고조된 후로 학교를 중퇴한 어린이는 50만 명이며, 이들을 포함해 약 2백 만 명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다. 학교를 그만둔 어린이들은 노동 착취, 강제 군 입대, 조기결혼 등 성장의 기회가 박탈된 폭력과 빈곤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예멘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더 이상 집에서 앉아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폭격이 일어날지 몰라 어디에도 나갈 수 없었다. 음식, 전기, 가스, 일자리, 학업,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호흡마저도 빼앗아 가버린 시간을 보내며 삶을 살고 있다고 차마 생각하기 어려웠다. 내가 가진 권리들을 되찾고 싶었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은 너무나도 많은 권리들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영문도 모른 채 겨우 살아남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 (예멘난민 야스민)*3

 

 

한국으로 온 예멘인들은 위협이나 이익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삶의 위협으로부터, 강대국에 의해 장기전이 되어버린 전쟁이 만들어낸 일터와 삶터의 파괴로부터, 인간성이 말살된 일상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한 사람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한국산 무기

 

한국산 무기는 예멘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다. 한국이 무기를 수출한 나라들로는 분쟁으로 몸살을 앓는 이라크, 불안정한 인도네시아, 분쟁과 진압이 계속되는 터키 등이 있다. 또 한국에서 사용하지 않는 최루탄들이 국경 밖 권위주의와 독재 정권 국가들로 수출됐다. 1991년 인도네시아로 수출된 최루탄은 민주화 열기를 탄압하고 동티모르 독립운동을 유혈 진압하는데 쓰였다. 150발의 한국산 최루탄이 바레인에 수출되었고, 2010년 아랍의 봄 이후 반독재 민주화를 외치는 바레인 시위대를 향해 사용되어 어린이와 노인, 청소년 등 최소 39명에서 최대 200명이 사망했다.*4 터키에서는 한 소년이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사고도 일어났다.*5

 

 

수출된 무기는 최루탄뿐만이 아니다. 2018, 200여 명의 사망자를 낳은 터키 아프린주 공습에 한국산 전차가 사용된 영상이 발견되었고, 2017년에는 시리아와 이라크가 한국산 제조 탄약을 소유한 해외 보고서가 발견되었다.*6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KIA 차량의 군사기술이 사용된 것이 발견되었다.*7 나이지리아 정부는 1983년부터 2006년까지 33천개 이상의 한국 소총을 구입했고, 나이지리아 내 비무장 그룹이 대우의 K2 자체 탑재 소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8

 

 

확산탄(Cluster Bomb, 집속탄)은 하나의 커다란 폭탄 안에 수십에서 수백 개의 이르는 작은 폭탄을 설치해 흩뿌리는, 광범위한 지역에 무차별적인 피해를 입히는 산탄형 폭탄으로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불발탄을 남겨 대인지뢰처럼 심겨져 있다가 접촉하는 민간인에게 주는 피해가 극심해 대표적인 비인도무기로 손꼽힌다. 이와 같은 확산탄의 비인도적 특성 때문에 확산탄금지연합을 중심으로 확산탄 금지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고 2008년에 확산탄의 생산, 사용, 이전 및 비축, 또 이에 대한 일체의 재정적 지원을 금지하는 확산탄금지협약(CCM : 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이 채택되었으며, 현재는 유럽 22개국을 포함한 119개국이 협약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확산탄 생산과 사용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국제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특수한 안보 상황을 이유로 협약 가입을 미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3년에는 한국 최대 공적 기금인 국민연금이 안정적인 연금지급을 위해 국내외 주식투자를 하며 기금을 운용한다는 명분하에, 세계 8대 확산탄 생산기업으로 비난받고 있는 한화와 풍산에 비윤리적 투자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9 

 

 

평화의 기대감으로 시작한 21세기, 그러나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8년 전 세계 군비 지출은 14,410억 달러에 달했으나, 탈냉전 시기로 접어들며 계속 감소하여 1998년에는 최하(745억 달러)로 떨어졌다. 2,000년에는 55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2번의 전쟁과 냉전구도를 종식시킨 독일 통일에 이은, 탈냉전과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21세기의 출발점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함께 21세기 직전 글로벌 위기와 함께 급락세를 유지했던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2000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다. 2000년에는 99년 대비 3.1% 오른 7980억 달러로 증가했고, 2004년에는 1조 달러로 오른 데 이어 2008년에는 146백억 달러로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8년 전 세계 군비 지출을 넘어섰다. 2017년도 전 세계 군사비 지출액은 17390억 달러에 이른다. 1인당 지출 비용으로 환산하면, 전 세계 인구가 국방비에 230 달러(247500 )를 쓰고 있는 셈이다. 국방비 지출이 늘었다는 것은, 더 많은 무기가 사고 팔리고 쓰였다는 것을,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40년째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갈등을 조사 연구해온 웁살라 갈등 데이터 프로그램'(Uppsala Conflict Data Program)은 한 지역에서 유혈 분쟁으로 사망한 사람이 1000명을 넘기면 전쟁으로 규정하는데, 조사 결과 21세기 들어와 해마다 10개 안팎, 120개의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이 가져온 참혹한 숫자들

 

20019·11 테러가 발생하자 부시 대통령은 북한, 이라크, 이란을 지목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라 규정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테러와의 전쟁’,‘세계 평화를 명분으로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그 후로, 17년이 흘렀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미국 브라운대학교의 왓슨 연구소는 2011년부터 35명의 학자, 법률가, 인권운동가가 전쟁 비용 프로젝트'(Costs Of War Project)‘의 이름으로 모여 9/11 이후로 발생한 전쟁 비용과 피해 등을 조사해오고 있다. 2018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파키스탄에서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폭격 등으로 죽은 사람은 약 50만 명(48~507천명)에 이른다.

 

 

9/11 이후 전쟁 사상자 현황(COSTS OF WAR PROJECT, 2019년 11월 13일자 보고)*10

-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2001년 10월~2019년 10월), 이라크(2003년 3월~2019년 10월),

시리아(2014년 9월~2019년 10월), 예멘(2002년 10월~2019년 10월)

Neta C. Crawford and Catherine Lutz2 / 2019년 11월

 

* 이 표는 데스크탑 모드에서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구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라크 시리아*11 예멘*12 기타 총계

미군*13

(US Military)

2,298*14 -*15 4,572*16 7 1 136 7,014

국방부 민간인

(US DOD Civilian Casualties)

6 - 15 1 - - 22

미국 계약업체

(US Contractors)

3,814 90 3,588 17 2 439 7,950

자국군/경찰

(National Military and Police)

64,124 91,29

48,337-

52,337*17

51,483*18 - -

173,073-

177,073

기타 연합군

(Other Allied Troops)

1,145 - 323 11,000*19 - - 12,468

민간인

(Civillians)

43,074*20 23,924*21

184,382-

207,156*22

49,591*23 12,000*24  

312,971-

335,745

반군

(Oppositions Fighters)

42,100*25 32,737*26

34,806-

39,881*27

67,065*28 78,000  

254,708-

259,783

기자/언론인

(Journalists/Media Workers)

67 86 277 75 31   536

인권/NGO활동가

(Humanitarian/NGO workers)

424 97 63 185 38   807
157,052 66,064

276,363-

308,212

179,424 90,072 575

769,549-

801,398

천 단위 반올림 157,000 66,000

276,000-

308,000

179,000 90,000 600

770,000-

801,000

*구체적인 이름 사상자 수 등이 명기된 일부 각주는 번역하지 않음

 

 

2011년 미국이 개입해 8년째 끝나지 않고 있는 시리아 내전. 영국의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2014년에는 사망자가 15만을 넘어섰고 지난 315일부로는 37만 명을 넘어섰다. 행방불명된 18만여 명을 고려하면 사실상 50만 명이 시리아 내전으로 죽었다.*29 유엔 서아시아 경제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으로 파괴된 물적 자본의 피해 규모만 3880억 달러(한화 4345천억 원)에 이른다. 유엔세계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시리아 국민을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2,100만 명의 전쟁 난민이 존재한다.*30  테러와의 전쟁 선포 후 19, 세계 평화는 오지 않았다.

 

 

매년 최고치 갱신, 지금 세계는 열띤 무기 거래 경쟁중

 

군비 지출은 방산 기업들의 호황으로 이어졌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매년 발표하는 연감에 따르면 2000588억 달러(67조원)이던 세계 상위 100대 방산기업의 무기판매액은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이 1조 달러를 넘어선 20042,360억 달러(270)4년 동안 4배 증가했다. 2017년 무기판매액은 3,982억 달러(449조원)에 달한다. 2000년 이후 감소한 적이 없다. 전 세계적인 글로벌 위기 속에서도 그야말로 승승장구 초고속 성장이다.

 

무기거래는 수억에서 수천 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액수로 정부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특수한 분야이기 때문에 기업뿐만 아니라 정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작동된다. 자연스럽게 국방, 외교,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국민들에게는국가 안보라는 명분 속에 군사 기밀로 포장되어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들에 의해 계약이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부패와 은폐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조건이다. 그런데 무기거래와 관련된 부패자, 전쟁범죄자, 국제인권법 위반자 중에 재판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다. 부패와 은폐 속에서 국가 간 분쟁과 국민에 대한 탄압은 강화되고, 민주주의는 파괴되며 사회경제적 발전은 후퇴한다. 예멘을 비롯해 무기가 사용된 곳에는 반드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뒤따른다. 그렇다. 무기거래는 수십억 달러의 이윤과 수많은 사상자를 낳는 죽음의 사업인 것입니다.

 

 

뇌물이면 나라도 국민도 마음대로 주무른다

 

무기거래 종사자들이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 중 하나가 회전문 인사이다. 회전문 인사란 정부, 정치권, , 정보기관, 방위산업체의 주요 직책을 같은 사람이 돌아가며 맡는 현상을 말한다. 민간업계 유명 인사들이 정부로 입성하고, 소수의 엘리트층을 견고히 형성하여 부를 독식하고 돈과 권력으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다.

 

전 남아공 국회의원이자 국제 부패감시단체 코럽션워치(Corruption Watch) 앤드류 파인스타인(Andrew Feinstein)은 여러 종군기자, 정치인, 무기거래상 등을 인터뷰하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쟁의 비밀과 미국의 실상을 다룬 책 <섀도월드>(Shadow World)를 출간했다. 앤드류의 설명에 따르면, 9.11테러로 미국 정부는 해양경찰의 약점을 보완한다며 록히드마틴과 110억 달러어치 계약을 했다. 그런데 10년 동안 록히드마틴이 한 일은 단 1척의 함정을 만든 게 전부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 많은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밝히기는커녕 또다시 록히드마틴과의 190억 달러 계약을 새롭게 체결했다. 미국 정부와 록히드 마틴은 회전문 인사로 부를 축적해 온 것이다. 실제로 2010년 은퇴한 미국 정부 고위급 관료의 84퍼센트가 자신이 재직하면서 계약을 맺었던 업체들의 고위급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전문은 전 세계로 확대됐다. 록히드 마틴과 미국 정부는 문어발처럼 세계 곳곳에 촉수를 연결하여 무기를 판매해 왔다. 합법적인 뇌물공여 체계는 끝없는 전쟁과 쿠데타를 유발하고 수입국의 국가기구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 예산의 엄청난 낭비라는 피해를 낳는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2013년 참여연대가 발표한 퇴직 후 취업제한제도 운영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 출신 44명 중 19명이 퇴직 전 근무 부처와 관련이 있는 업체에 취업했다.

 

한국에서는 최근 강한 의혹이 제기된 무기 거래가 있다. 2015년 한국 정부는 30조원이 넘는 초대형 전투기 선정 사업 과정에서, 2년 전에 선정한 전투기 대신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를 최종 선정했다. 전문가와 설계자들이 한목소리로 F-35 전투기는 터무니없이 가격이 비싼 반면 성능은 가장 최악이라고 평가했고, 실제로 한국으로 인도된 F-35 전투기들이 치명적인 설계 결함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구매를 취소하거나 계약을 철회하지 않았다. 국민 세금의 과도한 출혈과 비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F-35 전투기는 이미 40대가 구매됐다.

 

F-35 전투기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록히드마틴사의 무기 구입비(123298억원, 108억 달러)10년 전의 100, 이전 정부의 13배에 이른다. 앞으로 30~40년 가동될 부품비와 관리비를 계산하면 록히드마틴은 박근혜 정부와 계약한 건만으로도’ 100조원이 넘는 돈을 버는 셈이다. 록히드 마틴이라는 한 기업이 정부를 이용하여 한국 무기시장을 독점한 것이다.*31

 

이것은 한국만의, 록히드마틴이라는 특정 기업 하나의 부패 사례가 아니다. 흑백인종 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고 민주주의 시대를 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ANC(African National Congress, 아프리카민족회의) 당은 안보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 예산에서 100억 달러를 무기 구입에 사용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HIV감염인 600만 명에 대한 긴급 의료 지원에 대해서는 국가가 빈곤하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3억 달러의 뇌물을 받은 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급 관료들이 있었다. 유럽도 다르지 않다. 독일의 무기 업체 페로스탈(Ferrostaal)16개국에 총 11억 유로 이상의 뇌물을 뿌렸다.

 

 

여기서 전쟁이 시작된다, 무기전시회

 

2017년 한 해에만 950억 달러(한화 약 112조 원)어치의 무기가 거래되었다.*32  전 세계가 한 해 동안 무기를 사는 데 쓴 이 어마어마한 금액은 분쟁 예방이나 환경,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쓸 수 있었던 돈이다. 2017년에만 약 59만 명이 무장 폭력, 분쟁 등에서 무기 사용으로 인해 사망했으며 소형화기 등 재래식 무기로 인한 사망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무기 거래를 통제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입니다.

 

무기전시회가 그 시작이며 허브이다. 이곳에 모인 군수업체와 로비스트들은 자사의 무기가 얼마나 싼지, 얼마나 빠르고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홍보한다. 최첨단 무기 운운하지만 이곳의 실상은 효과적인 인명 살상과 파괴를 위한 무기들이 거래되는 곳이다전시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될수록 더 많은 무기가 거래되어 더 많은 무기가 쓰이며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전쟁 장사 시장, 아덱스

 

한국도 2년마다 국내 최대 규모 무기전시회가 열려왔다. <2017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Seoul ADEX(이하 아덱스)> 는 회가 거듭될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업체가 참가하고 있다. 2019년에도 1015일부터 20일까지 아덱스가 열렸고, 34개국 430개 업체가 참가하여 역대 최대 규모를 갱신했다.

 

정부는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KF-X) 실물 모형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F-35A 등을 전시한다며 아덱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을 뿐만 아니라 1018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하여 청소년들에게 각종 무기 체험을 제공하는 행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전시되고 거래되는 무기들이 어디서 사용되고 누구를 겨냥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첨단 기술에 대한 환호 속에 이 무기들이 상대를 제압하고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은 감춘 것이다. 화려한 에어쇼와 첨단 무기, 어린이를 포함한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전투 시뮬레이션 등 각종 체험 행사로 축제처럼 열리는 아덱스의 실제 이름은, 전쟁 장사를 위한 죽음의 시장이다.

 

20199,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칼이 쟁기로 바뀌는 기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길 기대한다라며 평화를 역설했지만, 방산 수출을 진흥하고 무기전시회가 수출을 위한 실질적인 비즈니스의 장이자, ‘국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고 홍보했다. 정부는 아덱스에서 사고 팔린 무기들이 어느 지역의 분쟁에 사용되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무기 거래의 이면을 감춘 채 방위 산업 육성과 경제적 파급 효과만을 내세우고 있다.

 

방위산업이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인식되고, 정부가 나서서 전쟁 산업을 키우고 무기를 확산하는 일에 앞장서며, 사람들이 안보를 명분으로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무기에 환호하는 세계에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전쟁을 기회로 여기는 산업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저항하는 사람들, 아덱스 저항행동

 

2013년 결성된 아덱스 저항행동은, 무기거래의 실상을 알리고, 전쟁을 부추기는 전쟁장사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모인 평화활동가들, 평화운동단체들의 네트워크이다. ADEX에 참가하는 전쟁기업과 각국 군, 정부 관계자들이 모두 모이는 환영만찬장을 찾아 피 묻은 달러를 뿌리고, ‘STOP ADEX’,‘전쟁장사 멈춰라를 외치는 비폭력 직접행동을 펼쳤다. 각종 무기 전시와 행사, 실제로 무기가 거래되는 비즈니스 미팅이 이뤄지는 행사장을 찾아 퍼포먼스와 피케팅을 하고, 살인전시회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공군에 공문을 보내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첨단기술을 체험하고 교육할 수 있는 학생의 날운영에 문제를 제기하고, 아덱스가 열리는 성남시에 아덱스 지원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 아덱스가 열리는 기간에는, 무기거래의 본질과 문제를 드러내는 기사를 연재했다. 올해는 제주로 온 예멘 난민을 초대하여, 난민과 무기거래를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도 가졌다. 또 올해 국제 행사로는 처음 열리는 일본의 무기견본시 반대 캠페인에도 연대했다.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베르톨트 브레히트 (1936년)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첫 번째 전쟁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이 일어났었다

지난번 전쟁이 끝났을 때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었다

패전국에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승전국에서도 역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방위 산업이 친숙해지고 전쟁이 정당화될수록 평화는 멀어진다. 우리는 강대국의 개입으로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의 결과 속에 살아가고 있다. 브레히트의 시처럼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승리와 패배와는 상관없이 수많은 죽음과 파괴된 일상을 마주하며 생존의 고통 속에서 살아나가야 했다. 끔찍한 전쟁의 역사를 경험한 우리가, 그 결과가 남긴 공포와 불안의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또 다른 전쟁을 만들고 부추기는 일에 동참하는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모두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

 

 

*1 <법무부 난민과> 2019 6 20일자 보도자료

*2 연합뉴스 2018 10 11일자 <유엔아동권리위, 사우디에 예멘 민간인 공습 중단 촉구>

*3전쟁없는세상 2018 7 8일자 블로그 글 <내 이름은 야스민>

*4 바레인 인권단체 ‘Physicians for Human Rights’ 의 조사

*5 KBS 2014 3 12일자 <터키, 최루탄 맞은 소년 사망에 규탄 시위>

*6 Conflict Armament Research, <WEAPONS OF THEISLAMIC STATE> 189

*7 해외 활동가가 증거 사진을 보내줌

*8 REX, 2016 6 11일자 <South Korean Daewoo K2 Rifle in Nigeria>

*9 경향신문201347일자 <국민연급, 확산탄 생산기업인 풍산 한화에 투자 철회해야>

*10 이 표는 전쟁의 직접적인 사망자 통계이며 식량, 수자원, 인프라 부족, 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자는 제외되었다. 각 수치는 여러 원본과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근사치이며, 201910월말 기준으로 업데이트되지 않은 것도 있다. 일부 원본 자료는 완벽하지 않거나 일관성이 없고 자료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11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공습은 2014923일에 시작되었다.

*12 미국은 2002년 예멘에서 드론 공격을 시작했지만,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개입 이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13 출처: 2019114일 국방부 사상자 보고서

*14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된 항구적자유(Enduring Freedom and Freedom’s Sentinel) 중 사망자

*15 아프가니스탄 사망자 수치에 포함되어 있다.

*16 이라크의 자유 작전(Operations Iraqi Freedom), 새로운 여명(New Dawn), 내재적 결의(Inherent Resolve) 사망자 수

*17 이 추정치는 이라크군 사망자에 대한 국방대안프로젝트 추정치제 근거한 것이며 2003년 전쟁 이후 사망한 이라크 군과 경찰에 관한 자료는 부정확한다. 이라크 유엔 지원 임무는 201612, 군사 사상자에 대한 자체보고를 중단하였다.

*18 출처: 시리아 인권 관측소 보고서(Syrian Observatory for Human Rights) 

*19 이 전쟁에는 약 20여 개국 군대가 참여했다.

*20 폭격의 직접 사망자 수이며, 추가적인 폭격과 인프라의 이동, 파괴 등으로 인한 간접 사망은 포함되지 않았다.

출처는 파키스탄 연계 보안 보고서(PIPS,Pak Institute for Peace Studies, ~20196)이며, 정확한 사망자 수는 조사관의 전쟁 지역 접근이 어려우며, 민간인 수를 과장하거나 최소화한 경우도 있다.

*21 출처는 파키스탄 연계 보안 보고서(PIPS,Pak Institute for Peace Studies, ~20196)이며, 정확한 사망자 수는 조사관의 전쟁 지역 접근이 어려우며, 민간인 수를 과장하거나 최소화한 경우도 있다.

*22 이라크전 이후 중동 국가의 민간인 사망자를 조사한 단체 IBC(Iraq Body Count)의 분석이며, 데이터 전체 분석이 완료되면 1만명 이상 사망자가 추가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3 시리아 인권 관측소(Syrian Observatory for Human Rights)에서 조사됐으며, 20188월 미국은 20148월 미국 개입 이후 1,114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한편 이라크는 폭격으로 발생한 수천 명의 잠재적 사망자가 존재하며, 이 수치는 기록되지 않을 수 있다.

*24 예멘데이터프로젝터(ADLED)2019115일 기준 조사기록

*25 미국과 NATO 어느 쪽도 정확한 사망자 수를 발표하지 않은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10,259명의 무장 세력과 반군은 살해했다고 보고했으며, 전쟁비용프로젝트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2001~2004년 전쟁 관련 사망, 부상보고서를 참고했다.

*26 출처: 파키스탄 평화 연구 연례보고서

*27 2003년 이후 미국 침략과 점령에 저항한 이라크군과 무장 세력을 의미한다.

*28 시리아 인권 관측소 보고서에 따르면, 이중 11,000명의 쿠르드족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9 《연합신문2019315일자 <오늘 시리아내전 만 8...“사망자 37만명 넘어섰다

*30 《허프포스트코리아2017620일자 <‘세계 난민의 날잊힌 사람들 / 티에리 코펜스(국경없는의사회 사무총장)

*31《시사IN2017322일자 <사드 배치에도 최순실 입김?>

*32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연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