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참여

[기고] SILENCE

※ 난민인권센터에서는 한국사회 난민의 다양한 경험과 목소리를 담고자 참여작가를 모시고 있습니다. 난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refucenter@gmail.com

※ 본 게시물은 한국 거주 난민의 기고글로 난민인권센터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문은 하단의 링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본 게시물은 난민인권센터와 저자의 허가 없이 무단 편집, 사용이 불가합니다. 

아흐메드 살라

 

저는 정치적 사건에서 풀려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정치적 판결로 5년 형을 선고 받은 후, 이집트를 떠나 대한민국으로 왔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이집트에서 살 때 보다 편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자리를 구하거나 친구를 만나기가 쉬웠지요. 그러나 불면증과 우울증의 고통은 나날이 증가했습니다.

 

서른이 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저는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습니다. 특히 제가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계속 살 생각을 했을 때 앞이 막막했지요. 그렇게 된다면 저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일자리, 그리고 새로운 꿈과 함께 앞으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하니까요.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저희는 이집트를 재건하는 일에 실패한 채 지금 한국에 와있습니다. 이집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대신, 저희는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값싼 싸움이지만 저희에게 맞는 것 같습니다.

 

넬슨 만델라나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가의 위대한 미래를 위해서 싸우고 그 값을 지불했지만, 저희 같은 경우에는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저희의 현실입니다.

 

저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짧은 관계와 사회활동에 임하면서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저는 불면증과 우울증을 술로 해결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저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인종차별이나 혐오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집트에서도, 외국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살지 못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이 괴로움은 마치 제 안에 두 사람이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한 명은 모든 것을 잊고 새 삶을 살기를 원하고, 다른 한 명은 고향으로 돌아가 - 혹여 자유를 희생시키고 고난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 투쟁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이와 같은 내적 갈등과 공포심 속에서 보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한국에 남아 있지도 못하는 심경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지(Martin Scorsese)의 “사일런스 (2016)”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를 통해 제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마틴은 신앙을 감추고 강제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자들에 대하여 포용적인 견해를 보였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는, 몇 명의 선교사들이 17세기부터 실종된 스승(페레이라 신부)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굉장히 위험한 여정을 선택하게 된 것인데요. 그 이유는 당시 일본 정부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들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키치지로라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스승을 찾기 시작합니다. 키치지로는 일본인 기독교인입니다. 일본 정부는 그를 박해하고 고문을 통해 그가 종교를 포기하도록 강압했습니다. 키치지로의 가족은 사형을 선택했고, 그들은 키치지로 앞에서 불에 태워져 죽게 됩니다. 키치지로는 살아남게 되지만, 그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고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방인이 됩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 노숙자, 그리고 버림받은 자로 살아가죠.

 

그러다가 스승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온 선교사들을 도와주게 되면서 키치지로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그들은 스승을 찾는 과정에서 박해를 받고, 심지어 대부분은 죽임을 당하거나 신앙을 포기하게 됩니다.

마침내 페레이라 신부를 찾은 제자들은 스승이 신앙을 포기하고 일본 정부와 함께 기독교인에 대한 종교 박해를 가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틴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데요. 바로 용감한 제자 로드리게스가 자신의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의 실망스러운 선택을 질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그와 다른 신도들을 죽이게 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신앙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스승님께서 저의 동지들을 살해한다 해도 그들은 순교자들이며 천국에 갈 운명입니다.”

 

그러나 제자를 향한 페레이라의 대답도 놀랍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요. “어찌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동지들의 외침과 애도를 무시하는 자네가 스스로를 신앙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들은 순교자로 살아가는 것과 천국에 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네. 어찌 자네가 그것을 그들 대신 결정해주겠다는 말인가. 자네는 거짓말을 하고 있네. 저주받을 것이네.”

 

페레이라 신부는 우리가 당면하는 수많은 싸움 중에서도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는 싸움도 있다고 전해줍니다. 다른 많은 것을 우선 고려하고, 특히 다른 이들의 바램과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지요. 무언가를 위해 싸우거나 분투하기 위한 결정은 개인 혼자서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맞서 싸우는 일은 늘 옳기만 한 선택은 아닙니다. 혼자서는 싸울 수가 없습니다. 어떨 때는 인내와 믿음이 우리의 방식이 되어야 하며 이것이 페레이라 신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입니다. 제자들은 마침내 스승을 따라 신앙을 포기합니다. 페레이라 신부는 일본 정부와 함께 기독교인들을 감시하는 일에 참여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본 전통에서는 스승의 죽음 이후 제자들은 스승의 아내와 아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주어집니다. 페레이라 신부는 결국 연배가 차서 사망하고 일본에 매장됩니다. 카메라가 그의 사물함을 확대하여 보여주고 그 안에는 일본 정부가 그를 불교로 생각한 동안 그는 십자가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가 고통을 받는 기간 동안 그는 마음속으로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는 자녀들 (즉, 새로운 세대)에게 그의 신앙을 전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키치지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신앙이 있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결국은 도망친 사람입니다. 비록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신앙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그의 이념을 지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틴은 페레이라 신부를 통해 제가 진실을 깨닫고 싸움을 그만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제 견해로 인해 제가 이집트에서 받게 될 (또한 지금까지 받아 온) 구금과 고통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페레이라의 의무를 다했고 ‘우리가 세운 공은 다음 세대가 완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틴, 당신의 통찰력과 유일무이한 영화 속 우화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번역 : 이상아

감수 : 김연주

 

* 원문보러가기 : https://nancen.org/2000

* 이 글의 저작권은 난민인권센터에 있으며 비영리목적으로 인용시에도 출처와 작성자를 표시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