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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Data on Refugees

[NY TIMES] 이상적인 난민촌을 건설하는 방법 III

이상적인 난민촌을 건설하는 방법 III

 

MAC McCLELLAND. 뉴욕타임즈 2013.02.13.


킬리스의 식품점 외부. 바가지 요금을 막기 위해 캠프 내의 세 가게는 각자 다른 사기업에 의해 운영된다. 뉴욕타임즈의 토비아스 허츨러 (Tobias Hutzler)



“전 세계에 점점 더 많은 난민이 정말 오랜 시간 그곳에 존재했던 캠프들 안에 있습니다.” 메사츄세츠, 클라크 대학교의 국제 개발 및 사회 변화 연구소의 파보스 교수가 말한다. “그것은 난민캠프의 원 모델입니다. 우리의 모델은 ‘영구적인 해결 방안’ 중 하나, 다시 말해 난민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거나 법적인 권리를 얻어 정착하도록 하거나 제3국에 재정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추방된 대부분의 사람들을 수용하던 캠프는 폐쇄되었고 그곳의 거주자들은 1952년까지 재정착했다. 그러나 3년 전, 케냐의 다답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난민 캠프가 20주년을 맞이했다. 그 곳은 9만명의 난민을 위해 건설됐다. 현재 42만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하고 있다.


"난민 캠프는 쉽게 말해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입니다.” 파보스가 말한다. “U.N.과 인도주의 기구들은 재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일 국제 식량 기구는 단독으로 기차, 바지선, 노새, 야크, 낙타, 당나귀 뿐 만 아니라 평균 5천대의 트럭과 50대의 항공기와 30척의 배를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시간보다 좀 더 오랜 시간을 살기 시작했을 때 입니다. U.N.H.C.R.에 전하고 싶은 말은, 만약 그들이 5년 이상을 캠프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들은 P.R.S(장기적 미해결 난민 상황)가 될 것이며 야영난민의 상당 수가 장기적 미해결 난민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국가 제도는 현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들에 점점 더 부응할 수가 없습니다.”


글로벌 기준에 따라 시리아 난민들 중 3년 미만의 캠프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새로 온 사람들에 속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잠시 중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이 곳에서 남성들의 90%는 결혼을 미룹니다.” 21세인 무하마드 딥이 내게 말했다. 그는 작은 텐트 안에 옷가게를 열었고 그 안은 상품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삼촌은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건냈다. 킬리스의 다른 난민 중 캠프 밖에서 일하도록 허가 받지 않은 경우 역시 사업을 시작한다. 카나리아 가게, 팔라펠(중동 음식의 한 종류) 가판대, 자전거 수리점, 찻집이 있다. 의류, 안경, 카펫을 판매하는 텐트 크기의 백화점도 있다. 외투 가게, 청바지 가게, 잡화점, 빨강색과 주황색의 두 가지 색이 돌아가는 두 개의 슬러쉬 기계를 이용한 작은 공동 협업장, 15~16세 청소년이 세 대의 컴퓨터를 놓고 카운터 스트라이크 이용권을 판매하는 작은 게임카페도 있다. 그러나 추가적인 소득이 발생하더라도 이들은 보통 지불하지 못한다. 한 이발소에서 나는 가격표를 요청하기 위해 멈춰 섰는데 주인이 말하길 공짜라고 한다.


딥은 나의 동포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가능한 낮은 가격을 유지하려고 한다. 어린이용 아디아스 운동복은 5달러이다. 그래서 그는 난민지원금을 받긴 하지만 그의 가족에게는 충분하지 않은 금액이다. 그는 키가 크고 마른 체격에 미혼 남성이다. 그에 따르면 시리아에서는 5천명 인구의 마을에서 보통 한 달에 두 건의 결혼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곳 킬리스는 1만 4천명이 머물고 있지만 한 달에 한 커플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우리는 괜찮은 직업도 집도 없어요. 그러니 여자친구도 없죠.” 딥이 말했다. 지금은 괜찮다. 그는 아직까지 혁명은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믿고 있고 이 곳에서 오랜 기간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딥의 친구 밀라드는 27세이고 약혼했지만 결혼식을 미뤘다. 그 또한 혁명이 매우 올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C구역에 위치한 세탁소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에게 질문했을 때, 그녀는 시리아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아마 오늘, 어쩌면 내일” 이라고 대답했다. 세탁소로 뛰어들어오는 여성, 바크리는 뉴스를 통해 시리아의 상황을 봤을 때 오랜 시간 캠프에 머물게 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녀에게 오랜 시간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2년 혹은 3년, 그녀는 대답했다. 연보라빛 아바야를 입고 머리에는 스카프를 두른 20세의 한 교사에게 그녀도 오랜 시간 머물 것이라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어깨를 살짝 올렸다 내리며 “10년?” 이라고 답했다. 그 다음 그녀는 어딘가에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어딘가? 나는 물었다. 그녀는 다시 어깨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어디든요.”


만일 시리아인이 통계적으로 평균 기간에 해당하는 캠프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녀의 추측은 가장 근접했을 것이다. 현재 난민이 난민 캠프에서 사는 연수는 평균 12년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시리아의 분쟁이 수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격단체가 급증하고 종파간 전쟁이 국가를 교전 중인 파벌의 집단으로 변화시키는 순간,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재선에 출마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한 컨테이너 외부에 차려져있는 가게. 많은 주민들이 캠프 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뉴욕타임즈의 토비아스 허츨러 (Tobias Hutzler)

“우리는 그 기간이 한 달 또는 두 달 이길 바랍니다.” 한 가족이 내게 말했다. 우리는 함께 그들의 트레일러에 앉았다. “우리는 일어납니다. 우리는 잠들고 우리는 일어납니다. 다시 잠듭니다. 우리는 식사를 하고 항상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TV를 봅니다. 우리는 모두가 매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 이 모습처럼 삶에 대한 목적이 없죠. 하루 하루가 똑같죠.” 여덟명의 가족은 이들립 지방에서 왔고 북부 지역의 반대파 중심세력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우울해질 수록 그들은 미소를 띄며 밝게 행동했다.


“우리의 친적들이 여기 있어요.” 내가 그들의 마음의 평정에 대해 언급하자 그들 중 한 명이 설명했다. “삶은 계속 되잖아요. 아마도 우리는 하루, 이틀, 일주일 동안 울었을 겁니다. 당신은 때때로 시리아가 생각나겠죠. 그리고 시리아를 위해 울겠죠. 그러나 그 다음에는, 당신은 무엇을 하나요? 삶은 계속 되죠.”


마음의 평안과 청결함 그리고 킬리스 캠프의 인상적인 시설 외에도 유념해야 할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아무도 그 곳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캠프와 터키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던 구역의 리더인 바쉬르 알리토가 말했다. “캠프 안에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이 곳에서의 삶이 일시적이기를 바라며 영구적이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영구적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킬리스는 완벽한 난민캠프라고 말했던 루다 바크리는 그녀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친척들을 방문하고 자원봉사를 하며 바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죠. 그러나 고향 같진 않아요.”


또 다른 킬리스의 주민인 마흐무드 존다흐도 동의했다. “여기는 5성급 호텔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행복하지 않아요.”


U.N.H.C.R.의 배챌러는 캠프가 제공하는 높은 수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인 보호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라는 것을 인정한다. 배챌러는 이어서 말한다. “캠프가 없는 곳에서 만약 사람들이 그들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그들은 건강하고 건전하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게되고 지역집적화를 확고히 하며 그들의 기술을 유지해 나갈 것 입니다." 난민이 오랫동안 캠프에 머물 수록 건강하고 건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 진다. 그러나 캠프는 그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로 남아있다.


“난민 캠프는 사람들을 제어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되었습니다.” 파보스는 말한다. “그들은 비호국의 국민들과 난민들의 교류를 차단했습니다. 난민 캠프가 추방당한 정치활동의 훈련 및 무기를 모으고 공격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장소가 된 사례가 확실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난민 캠프가 생계수단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사례이기도 합니다. 실직적인 필요에 비해 그에 대한 지원은 매우 적었습니다.”


터키의 공무원에 의하면 터키 정부는 시리아인들에게 정치적 의견 표명이 가능하고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일괄적인 시민권 부여를 고려 중이라는 소문이 있다. 시리아인은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지만 특별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 800명 미만이 작년에 시민권을 부여 받았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키리스키는 이 구상을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아무도 100만명의 사람을 귀화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킬리스와 같은 캠프에 있는 난민들에 관해 말하자면, 그들의 비교적 편안한 생활은 그들을 위한 의미있는 해결책을 덜 시급하게 할 지도 모른다. “만일 난민들이 고통 받지 않는다면 그들은 쓸모가 없습니다.” 파보스는 말한다. 난민 캠프 구조를 연구하는 스위스의 마누엘 헤르츠 건축학 교수는 멋진 캠프를 건설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1975년부터 모로코는 웨스턴 사하라라고 불리는 북아프리카 영토의 작은 부분을 점유해오고 있다. 모로코는 사라위족 주민의 절반을 알제리에 있는 캠프로 몰아냈다. 사라위족은 그 곳에 남아있다. 다른 비호국과 다르게 알제리는 그들의 난민에게 자치권을 부여했다. “그 곳, 그 캠프는 고통 받고 굶주리는 곳이 아닙니다.” 헤르츠 교수가 말한다. 그러나 그 이면은 “사람들이 더 이상 죽어가지 않기 때문에 모로코는 물러나라는 압력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한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 놓여져 있는 상품들. 뉴욕타임즈의 토비아스 허츨러 (Tobias Hutzler)


UNHCR은 10월 회의에서 당면한 갈등을 풀어나갈 방안으로 터키, 요르단, 레바논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기, 사회기반시설을 향상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기, 자원과 고용에 대한 지역과 난민 사이의 경쟁을 감소시기와 같은 비호국에 좀 더 많은 지원에 대한 네번째의 영구적 해결방안을 제안했다. 아직까지 이 제안은 캠프 시스템에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마저 열광적인 환영을 받고 있지는 않다. 터키인들 사이에서 정부가 모든 시리아인에게 노동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고려 중 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아직 아무 것도 드러난 것은 없으며 또 다른 소문일 뿐이다. 2013년 중반 터키수상과 외무부장관은 캠프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국제 사회에 요구했고 다른 나라도 난민을 받아드릴 것을 요청했다.


시리아인들이 입국을 기다리며 국경에 운집해 현재 오랜 기간을 그 곳에서 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0월에 터키 공무원은 내게 말하길 도착한 시리아인의 수와 상관없이 그들은 환영받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리는 그들을 쫓아 내지 않을 겁니다.” 그는 말했다. “이는 국제적 책임입니다. 전쟁이 내일 끝난다 해도 그들의 고향에는 기반시설이 없으므로 2~3년 이상 이 곳에서 지내게 될 겁니다. 오랜 기간 그들이 지낼 수 있도록 준비됐습니다.”



작년 말, 캠프에 대한 보고서를 함께 작성했던 키리스키는 터키인들이 시리아인을 쫓아내거나 대우가 소홀해질 것 같지는 않다는데 동의한다. 이스탄불 주지사는 도시의 난민들을 난민캠프로 이동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지어 겨울 추위에도 도시의 난민들은 캠프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캠프로 강제 이주된 후 그들은 거리에서 그들의 자리를 찾아가려고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지내게 된다는 것과 캠프에서 자유스러운 삶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원치 않다는 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는 중 입니다…” 키리스키는 말했다. “그들은 야생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원문출처: http://www.nytimes.com/2014/02/16/magazine/how-to-build-a-perfect-refugee-camp.html

번역: 김애경 (난민인권센터 통번역자원활동가)

감수: 이나경 (난민인권센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