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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난민인권강좌 4차] 국제사회와 난민, 난민의 안보화


시선

"시선"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경험과 가치관, 그리고 이익으로 인해 형성됩니다.


보통 우리는 "색안경"이라는 단어를 "편견"의 동의어로 생각하지만,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누구나 자신만의 색안경을 끼고  어떠한 대상을 바라보지 않을까요?


네번째 난민인권강좌에서는 

서울대학교 통일 평화연구원hk 연구교수 송영훈 교수님께서

"국제사회와 난민"이라는 주제로 강의 해주셨습니다.



과연 "국제사회"라는 특수성을 지닌 주체는 

난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요?



먼저, 국제사회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간략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국가들을 통제하고 그 위에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할만한 주체가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를 "무정부 상태"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각 국가들은 각자의 주권을 놓고 갈등하는 경우가 생기며

주권에 대한 갈등은 안보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국가 간의 관계에 따라 

국제사회가 "난민"을 바라보고 정의하는 방식이 달라지며

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방식 또한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난민의 정의는 어떻게 될까요?

난민협약에 따르면 "난민"은:


"...인종,종교,민족,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난민"을 어떻게 정의했을까요?

Arthur Helton은 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투명한 존재임과 동시에 이야기꾼들이다. 

난민들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동시에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인간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행위의 목격자들이며, 

단순히 그들의 존재로 인하여 이야기꾼들이 된다. 

난민들은 절망과 고통을 형상화하며, 

그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끔찍한 혼돈과 악을 직면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는 난민이 한편으로는 "인간이 인간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선한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각각의 시선들은 축적되어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난민"하면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리시나요?


기아로 인해 굶주려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떠올리시나요?               아니면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활동가의 모습?


                              


국제사회에서는 시대적인 흐름과 국가 간의 관계에 따라 

난민들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 이미지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냉전기와 그 후를 기점으로 목격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먼저 냉전기에 난민은

체제 경쟁 가운데 각 체제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승리의 트로피" 또는

국익실현을 위한 "전략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더욱이 난민은 "이동성"이라는 특징을 지녔기 때문에 

냉전기 가운데 국제관계에서 정치적인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어져버린 탈냉전기난민은

"국제 안보 위협의 확산 근원"으로 전락하고

"경제적 부담, 짐"으로 느껴지며

때로는 "무장단체 활동의 지원자 또는 활동가"로 여겨졌답니다.





"난민은 범죄자, 테러리스트다"?


   


2013년 9월,

케냐 나이로비의 웨스트게이트 쇼핑몰에서

4일간의 잔혹한 테러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곧 소말리아의 "알샤바브"라는 무장단체가 

그 테러사건의 주체가 본인들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케냐 정부가 소말리아를 침공한 것에대한 알샤바브의 보복이었으며,

 이를 위해 그들이 지부를 케냐 다다브 난민캠프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소말리아의 무장단체가 케냐의 난민캠프에 있다는 소문

난민 수용에대해 호의적이었던 케냐정부가

난민 이슈를 안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보화란?

어떠한 이슈가 실제로 안보에 위협을 가져와서 주목을 받기보다는

언론과 여론, 또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말에 의해

안보의 문제로 이슈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웨스트게이트 쇼핑몰 테러사건 이후,

케냐 부통령 William Ruto는 케냐에서 비호를 얻은 난민들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케냐에 있는 난민들은 아직도 케냐의 우리에게 안보의 위협을 가져다주므로, 

우리는 본국 송환을 통해 이 위협을 없애길 희망하고 있다."



이러한 난민 문제의 안보화로 인해

케냐 내에서 난민을 테러리스트로 동일시하는 이미지가 확산되었고


정부는 케냐에 거주하고 있는 100만명의 소말리아 난민들을

3년 안에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선언 했습니다.



하지만 케냐 정부가 인식하는 것만큼

난민의 유입이 범죄와 같은 부정적인 결과들만 야기했을까요?


사실 엄청난 규모의 다다브 난민 캠프로 인해

난민 캠프 내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직업이 창출되어 실업문제가 해결되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지역경제를 개발하는 긍정적인 영향도 분명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해야합니다.




자, 그러면 우리나라의 난민들의 이야기로 돌아와볼까요?


대한민국은 난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작년 7월, 난민법이 재정되고, 난민지원센터가 생기며

재정착 난민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등

분명히 법률재정에 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 정부의 움직임 내면에는

난민에 대한 어떤 시선이 담겨져 있을까요?



난민지원센터라는 난민들에게 거주지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있지만,

각자 문화도 다르고 트라우마도 다른 사람들을 

한 공간 안에 수용한다는 것이 

과연 난민을 이해하고 내린 결정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민을 우리 사회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해준 공간 안에서 격리시키고 통제해야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번 "국제사회와 난민" 강좌는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에 대한 이야기보다

국제사회에서 대규모로 이동하는 난민들의 이야기였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에대해 알아보면서


우리나라는 법률 재정, 제도 개선을 넘어서 

난민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과연 어떤 시선과 어떤 접근을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