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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안녕! 난민(暖民), 그 네 번째 이야기: 강은숙, 김한나 활동가



 안녕하세요! 난민인권센터 가족 여러분! 


  그동안 난센은 어떻게 하면 여러분과 더 소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의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해 왔답니다. SNS, 홈페이지, 뉴스레터 등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여러분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였지만 아직도 부족한게 많은 난센! 

  그.래.서!  난민분들 뿐만 아니라 난민인권센터를 후원하고 응원하고 도와주시고 만들어가는 다양한 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싣게 되었답니다! 


 난민인권센터를 함께 만들어가는 暖(따뜻할 난)民들의 이야기, 

 "안녕, 난()Hello, Mr/Ms. kind!"   




> "안녕! 난(民)" 그 네 번째 이야기. 강은숙, 김한나 활동가를 소개합니다!!
   Hello, Ms. kinds!


 1. 강은숙 활동가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어른이 되고 나서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와 공존하기’, ‘공부와 삶을 연결하기’를 고민하며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진지하고 심각한 성격까지 더해진 탓에 계속 이어지는 공부와 활동들은 다소 무겁고, 슬프고, 어려운 분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대학교 때에는 사회적 차별을 받는 사람들의 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원에서는 국가폭력 피해자의 생애사와 심리적 고통에 대한 공부를 했어요. 이러한 고민들이 난센활동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관심분야에서의 생각들을 가능하면 즐거움과 희망이라는 단어로 바꾸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게 쉽지는 않습니다.^^


난센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난센 활동가들의 기본 업무인 난민 지원 활동을 하였고, 특히 사례관리/사회복지/심리지원 등의 업무를 맡아서 진행해 왔습니다. 법률지원을 넘어서는 사례관리 시스템에 대한 나름의 관심으로, 난민들의 삶의 다양한 영역을 지원하고 케어하는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이에 대해 실험적인 가능성과 동시에 한계지점을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난센에 있던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 난민과의 만남이 기억에 남습니다. 시위에 참가하다가 감옥에 끌려가 6개월간 고문을 당한 뒤 한국에 온 한 분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해지거나 심한 불안감을 표현하였지만, 박해사실에 대한 엄격한 출입국의 심사과정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차례 인터뷰를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어요. 낱낱의 고문 사실들을 물어보아야 했고, 그 분이 사실의 조각조각들을 산만하게 늘어놓으면, 저는 그것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일이 수차례 반복되었습니다. 고통스런 경험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그것을 말하라고 요구하는 과정이 폭력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해야만 했고, 또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이해하는데 있어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분은 자신이 겪었던 6개월 간의 상세한 경험들을 장문의 글로 써서 오셨습니다. 저의 노력을 이해해주었던 탓일까요. 그 때 그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북받쳐 올랐는데, 그 눈물은 제 자신에 대한 서러움의 눈물이었던 것 같아요. 
한 사회가, 역사가 한 인간의 삶을 망가뜨렸을 때, 그 사람을 돌보고 함께 하는 것은 당연히 그 사회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배웠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사람의 고통스런 경험과 감정을 함께 나누고, 또 한 인간으로서 대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난센 이곳에서 많은 난민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법을 알게 되고, 감당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난센 활동이 개인에게 가져온 변화가 있다면?
저는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고, 외국인들과 함께 지내 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난센에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저는 세계 여행자가 경험하는 인식의 지평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변화는 저의 세계관의 변화이지요. 국내에 머물며 한국인들의 생활방식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시야를 다양한 사회의 곳곳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 문화적 차이, 국적과 시민권의 문제, 독특한 생활양식들을 이곳 난센에서 경험하고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난센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나요?
함께 하는 활동가들과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 맺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권단체로서 무엇보다 서로간의 인권을 배려하는 것, 일상의 민주주의가 과제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고, 함께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작은 식사준비의 문제에서부터, 단체의 활동방향을 토론하는 일까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는 말을 참 많이 하는데, 정작 우리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 간에 공존하고 배려하고 또 함께 하는 방식들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때론 저 자신이 가진 관점을 사람들한테 강요하기도 했던 것도 같고요. 삶의 경험, 나이, 관심사, 배운 정도를 떠나서 서로가 동등한 관계맺기와 열린 마음. 어느 단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앞으로 난센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곧 영국에 가게 됩니다. 난센에서 얻은 새로운 아이디어들, 풀지 못했던 고민들을 그곳에서 채우고 배우려고 해요. 언제나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시야 속에서 성장을 가져다주고, 자기중심적인 관점들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자극이 되잖아요. 새로운 땅에서 난민지원 활동의 가능성, 시민사회의 역할, 이민자들의 정착을 위한 대안적 논의들, 커뮤니티와 사회운동 등에 대해 배우고 찾아다니며 인권활동가로서의 더 많은 경험들을 쌓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곳에서 그러한 경험들을 나눌 수 있기를 꿈꿔봅니다.


난센, 그리고 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나눠 주세요.
너무나 소중한 경험들, 힘든 경험들, 행복한 경험들을 함께 한 난센. 저에게 배움을 준 이곳에서 만난 모든 활동가들에게 고맙고, 아름다웠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헤어지는 건 언제나 슬픈 것 같아요.ㅜㅜ 난센이 무럭무럭 자라서 미래에는 이 사회에 더욱 소중하고 의미있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소중한 친구들, 난민들. 이 땅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당신들은 아름다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주변의 어렵고 때론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말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길 항상 기도할게요! Please be strong!!! 





2. 김한나 활동가




신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2012년 9월부터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로 함께 한 김한나입니다. 난센에서는 일명 앤(Anne)이라고도 불리는데요, 다른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혼자 생각을 한다든지 할 때 종종 턱을 괴곤 하는 모습이 초록지붕 집 창가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빨강머리 앤을 연상시킨다고, 이번 상반기에 함께 활동한 (안젤리나) 졸리(Jolie) 씨^^가 붙여 준 별명이에요. 개인적으로 앤 셜리의 열렬한 팬이기도 해서, 쑥스럽지만 기분 좋게 받았답니다.



난센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난센 활동가라면 공통적으로 맡는 업무가 난민 케이스 관리이지요. 난민 한 사람의 필요를 전반적으로 살피고 지원하는 기본 틀에 근거해 제가 맡은 개별 난민들을 적절한 선을 유지하며 밀착(!) 지원하는 일, 언제나 생각하고 또 생각할 고민들을 안겨 준 이 일이 가장 중심되는 활동 영역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통번역 자원활동가를 비롯한 자원봉사 인력 관, 난민 이슈 관련 해외자료 조사를 추가로 전담하고 있고요, 첫 상반기 동안은 국장님과 함께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계시는 난민 분들 면담을 다니기도 했어요. 보호소 방문을 마치고 의정부 방면에 있는 집까지 가는 길이 워낙 멀어서 여행 가는 기분으로 창 밖 풍경을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난센에 있던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난 2월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난민 분과 보낸 시간들이 그런 것 같아요. 병문안 중 그 분의 요청으로 손을 잡고 병동 복도 한 바퀴를 돌았던 때는 특히나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이 사람이 난민이냐 난민이 아니냐라는 판단은 그 순간엔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았어요. 죽음을 앞둔 한 사람, 타지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한 사람의 내딛는 걸음을 함께 걸으면서, 채 10분도 되지 않았던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에밀리 디킨슨의 시 ‘If I can’이 한동안 뇌리를 맴돌아 제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난센 활동이 개인에게 가져 온 변화가 있다면?

사람과의 관계맺음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난민 지원 활동가라는 위치에서 만나는 인간 군상이 일면 제한적인 듯하면서도 이전과는 또 다른 다양한 만남 속 경험을 제공해 주었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제 스스로가 좀 더 까칠해진 것도 같아요.^^;



난센 활동을 마무리 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나요?

안팎으로 보다 폭넓게 활약(!)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쉽네요. 난센 내부의 체계를 정비하는 부분에 생각보다 기여를 하지 못한 점도 그렇고, 난민 이슈와 관련된 대외적인 논의의 장에 참여하는 것 역시도 처음 마음 먹었던 바에 미치지 못할 만큼 활발하게 추진되지 못한 것 같고요. 일에 치인다는 핑계로 치열하게 공부하지 못한 점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네요.



앞으로의 계획은?

난민이 발생하는 현장을 돌아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헌데 일단은, 장거리 통근하며 소진^^;;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작업이 먼저 진행되어야 할 것 같아요.



난센, 그리고 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나눠 주세요.

몇 개의 이정표, 그리고 길모퉁이. 곧은 길 하나로만 이어지지 않는 삶의 여정에서, 갈 길을 선택하고, 또 어디로 이어질지 알지 못한 채로 길모퉁이를 돌아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만화 속 빨강머리 앤, 앤 셜리는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라는 바로 그 지점에 대해 희망과 꿈을 안고 결단을 내린다는 말을 합니다. 길모퉁이에 서 있는 난센과 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음 걸음이 그렇게 밝은 용기로 내디뎌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