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 쉬러 뛰어오른 것들 메일함에는 매일 문의 메일이 쌓인다. 생계비가 없다는 사연, 병원비를 낼 수 없다는 사연, 아이가 아픈데 방법이 없다는 사연. 처음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에 마음이 쓰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야기들은 조금씩 비슷하게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메일들에는 예외 없이 이 단어가 들어 있다. Help. 이 단어의 어원을 찾아본 적이 있다. help는 오래전 ‘구하다’, ‘치료하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뜻을 알고 나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우리처럼 자원이 넉넉하지 않은 작은 단체가 그 많은 요청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매번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난민인권센터라는 이름 때문인지, 우리를 아주 큰 단체로 기대하고 연락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름만 보고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마음이 느껴질 때면, 웃어야 할지 씁쓸해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당황스러워지곤 한다. 실제로는 몇 명이 되지 않는 인력으로 하루하루를 꾸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이 기금 모금을 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마다 조심스럽게 전해야 한다. 이 부분은 한 단체가 감당할 몫이 아니라, 난민법이 시행되면서 점차 개선되고 보완 되었어야 할 영역인데. 그 속도가 심하게 더디다는 표현도 과분한 상황이다. 특히 재신청자의 경우 대부분 취업허가를 받지 못한다.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심사가 끝날 때까지 체류만 해야 한다는 조건은, 그 자체로 이미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텐데, 법을 만든 이들이 이들의 생계가 끊기기를 바라며 그런 조항을 두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허가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단속에 걸리면 적지 않은 벌금을 물거나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기도 한다. 이들이 채우고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내국인 노동력을 구하기 어려운 업종이다. 실제로는 그 노동력이 필요하면서도, 제도는 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간다. 필요해서 쓰면서도 인정하지는 않는 것, 이 지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얼마 전 한강공원에서 달리다가 물고기 한 마리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눈에 띄는 광경이라 여겼는데, 문득 왜 저렇게 힘겹게 뛰어올랐을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그 물속에서, 산소가 부족해 숨쉬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힘을 다해 물 밖으로 뛰어오른 것이, 어쩌면 숨을 쉬기 위한 마지막 시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장면을 보며 매일 도착하는 이메일들이 떠올랐다. 더 버티기 어려워서, 그 안에서는 숨쉬기가 힘들어서 우리에게 연락해오는 사람들. 나에게는 익숙해서 무뎌진 문장들이, 보내는 사람에게는 어렵게 꺼낸 힘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그 모든 요청에 답할 수는 없지만, 이 물이 왜 이렇게 숨쉬기 어려운 곳이 되었는지는 계속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담담하게 메일함을 연다.

지난 3월, 사고로 6개월 넘게 입원 중이던 한 난민신청자를 주말상담을 통해 만났습니다. 수술 후 혼자 거동하기 어려웠던 데다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장기 입원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이에 긴급생계비 지원을 결정하고 연락을 시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연락이 끊겼습니다. 조력을 중단하기 전 마지막으로 입원한 병원에 연락해 다행히 병실로 연결이 닿았습니다. 알고 보니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다녀오는 길에 요금 연체로 정지된 휴대전화를 택시에 두고 내렸고, 이 때문에 이메일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병원 팩스로 필요한 서류를 받아 긴급생계비를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원금 중 7만 원을 여러 사람의 도움 끝에 연락이 닿은 택시기사에게 사례비로 지급해 휴대전화를 되찾았습니다. 남은 지원금은 출입국 방문 교통비와 퇴원 후 약값, 식비로 사용하며 다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난민신청자들의 상황도 각기 달랐습니다. 숙식을 제공받던 일터에서 해고된 한 네 식구 가족은 당장 지낼 집과 생활물품을 한꺼번에 마련해야 했습니다. 긴급생계비는 새 보금자리의 월세와 가구·생활용품 구입비, 그리고 입주 시 주인에게 지급해야 했던 지하수 연 사용료를 해결하는 데 쓰였습니다. 또 다른 가족은 밀린 월세와 공과금을 납부하며 당장의 주거 불안을 해소했습니다. 이처럼 긴급생계비는 사람마다 전혀 다른 상황과 필요에 맞게 쓰였습니다. 누군가는 약값과 교통비로, 누군가는 월세와 공과금으로,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되찾기 위한 사례비나 최소한의 생활비로 사용했습니다. 현금으로 지급되었기에 각자 가장 절박한 우선순위에 따라 스스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난민신청 후 6개월간 취업이 제한되는 난민신청자에게 지급하는 생계비를 오는 9월부터 현금이 아닌 '카드 포인트' 방식으로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카드 포인트는 현금 인출이 불가능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품 구매 불가 등 제약이 따릅니다. 실제 생활에서는 집주인에게 계좌 이체해야 하는 월세와 관리비, 수도료, 온라인을 통한 생활용품 구매, 갑작스러운 비상금 등 카드 포인트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출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긴급생계비 지원 사례들은 생계비가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한 돈이 아니라,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권'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택시기사에게 사례비를 주어 휴대전화를 찾고, 월세를 내어 거처를 구하고, 약값과 교통비를 마련하는 일은 모두 당사자에게 가장 절박한 필요였습니다. 만약 이 지원이 카드 포인트로만 제한되었다면, 이분들이 과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생계비 지원의 목적은 사용 방식을 제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생계 위기에 놓인 사람이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곳에 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본래의 취지입니다. 당사자들의 실제 생활과 다양한 필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현금 지원을 카드 포인트로 일률 전환하는 것은 지원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최소한의 자율성마저 제한할 우려가 있습니다. 생계비는 국가가 '어디에 쓸지' 정해주는 지원이 아니라,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다시 이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어야 하는 지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난센에서 만나고 난민 심사를 조력하는 분들 중에 한국에서 난민 신청과 심사 과정을 두 번 이상 거치며 오래 생활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외국인등록증 없이 지내시는데 생계를 어떻게 해결 하시는 건지 궁금하다. 하지만 본인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에는 먼저 사정을 여쭤보기도 쉽지 않은데, 어려움을 알게 되더라도 난센에서 지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난센에 연락이 오는 많은 난민 분들은 난민 심사에 관련된 조력보다는 당장 급한 금전적 도움을 바란다. 어린이집 비용을 낼 수 없고, 자녀 학비를 낼 수 없고, 공과금이 밀렸고, 수술을 했는데 수술비가 너무 많이 나왔고, 보호소에서 나왔는데 당장 지낼 곳도 없고 먹을 것을 구입할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 마주하며 늘 막막함을 느낀다. 장학금이나 생활비를 지원하는 외부 사업 공고가 있을 때 추천할 수 있는 경우도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은 도움을 드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올해 생활지원비 사업을 하게 되면서 난센이나 주변의 난민 지원 단체들이 만나고 있는 분들에게 그나마 최소한의 긴급한 생활비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난센에서는 초반에 이 사업을 논의 하면서, 난민이나 미등록 이주민 중에 긴급하게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 그 자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활동해온 주변 동료 단체들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 생활지원비도 얼마 안 되는 금액을 일회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상반기에 지원한 분 중 A님은 외국인 보호소에서 장기간 구금되어 지내셨다.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시민모임 '마중'에서 조력해 오신 분으로 보호소에 있을 때 이미 건강의 문제가 있었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상태가 더 악화 되었다고 한다. 보호해제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생활지원비로 입원 중에 필요한 물품과 음식을 구입하셨다. 난민 신청을 두 번 이상했다고, 1년 이상 체류한 상황에서 체류기간 만료일에 임박해서 난민신청을 했다고 ID카드를 가져가는 상황에서 생계의 막막함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때로는 그런 막막함과 무력함을 함께 느끼는 것 말고 정말 뭐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인데, 사실 난민생활비 지원은 지원 받는 당사자분들에겐 필요한 곳에 조금 쓰고 나면 사라지는 돈이고 조력하는 활동가들에겐 ‘뭐라도 했다’는 순간의 심정적 위로인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와중에 법무부는 난민신청자 대상 생계비 지급 방식을 현금에서 카드 포인트로 변경할 계획이라고 한다. 더 이상 후퇴할 여지가 있나 싶은 상황에서도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가려는 제도 앞에서 분노와 막막함의 덩어리는 커져만 간다.

긴급생계지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저희에게도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난민제도를 운영하는 법무부가 기본적으로 책임져야 할 난민신청자의 기초생계 문제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제도개선 활동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희가 직접 생계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을 대신하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제도는 좀처럼 변하지 않고, 저희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일은 참으로 더딥니다. 최근 법무부는 난민신청자에게 지급하는 생계비를 현금이 아닌 카드포인트 형태로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법무부는 난민신청자의 소비 내역을 관리하고, 계좌 개설이 어려운 출신국 난민신청자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난민신청자의 삶을 실제로 들여다본 결과라기보다, 지원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발상에 가깝습니다. 주거지원이 전혀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생계비는 단순히 식비를 충당하는 돈이 아니라 월세를 내고 노숙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사용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지원이 바뀐다면, 난민신청자들은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선택권마저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지원하는 A는 법무부가 가장 반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A는 돌아갈 수 없는 나라를 떠나 한국에 왔고,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적절한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여러 사건이 발생해 결국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국가기관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장기구금 끝에 법에 따라 보호해제되었지만 출국은 여전히 불가능했고, A는 난민재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A의 출신국은 현재도 내전 상황이 계속되는 국가입니다. A는 과거 인도적체류허가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강제퇴거명령과 함께 구금되면서 그 지위를 상실했습니다. 여전히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던 A에게 난민재신청 외에 다른 선택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보호해제 후 노숙 생활을 하던 A는 법무부가 운영하는 영종도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 난민지원시설 이용을 신청했습니다. 면접까지 진행되었지만, 사정변경이 없는 난민재신청자라는 이유 등으로 결국 이용 불허 결정을 받았습니다. 보호소 문을 나선다고 해서 곧바로 삶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A에게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A는 보호해제 당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들었다며 그 조건을 위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외국인보호소에 가고 싶지 않고, 불법적으로 살고 싶지도 않다는 의사를 반복해서 밝혔습니다. 출입국은 여전히 돌아갈 수 없는 A를 '떠나야 할 사람'으로 전제한 채 대우합니다. 그러나 정작 A에게는 떠날 곳도, 머물 곳도 없습니다. A는 그 모순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만이라도 몸을 누일 작은 공간과 최소한의 식사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는 결코 과도한 요구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런 요구조차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매일같이 절감하고 있습니다. 모든 돈이 바닥나고 사회적 관계망도 없는 A를 돕는 일은 때로 조력자인 저희에게도 위태롭게 느껴집니다. 그런 가운데 재단은 A의 상황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었습니다. 저희는 재단의 지원을 통해 주거비와 긴급생계비 3개월분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 지원으로 A에게 고시원을 구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A는 텐트를 접고 노숙 생활을 마칠 수 있었고, 비로소 안정적으로 몸을 누일 공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A에게 거처가 생기자 조력자인 저희 역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민도 남아 있습니다. 동료들은 A에게 너무 많은 지원이 집중된 것은 아닌지, 다른 난민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오히려 A가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저 역시 그 질문들이 너무나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것 외에는 당장 생존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 A가 필요한 시기에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사람의 처지에 집중해 당장의 생계를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제도가 미처 닿지 못한 공백을 아주 조금이나마 메우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난민신청자의 생계는 개인의 선의나 민간단체의 지원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입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앞으로도 긴급생계비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놓지 않으면서 난민신청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 역시 힘 있게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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