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늦가을 활동가 이야기를 쓸 때가 오니, 올 한해 활동가 이야기에 어떤 이야기를 썼었나 찾아보게 됩니다.
올해는 도무지 활동가 이야기를 쓸 시간이 없었던지, 대부분 이전에 썼던 글을 가지고 왔었네요..
그래서 올해의 마지막이 될 활동가 이야기가 아쉬워 짧게라도 써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추가노동 시간을 정리할 계기가 있었습니다. 추가노동 시간을 보고는 올해 정말 괴물처럼 일했었다는 생각이 세삼 들었습니다.
올해 소통 채팅창만 30여개를 만들었습니다. 난민관련 활동의 연대를 모색했던 흔적입니다.
슬
“(네가 하는 말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난민이 되는지, 한국에 온 난민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그리고 그게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똑같이 겪는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나누고 난 뒤에 가끔 저런 말을 듣습니다. 주로 “왜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덧붙인 말로요.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라면 (말하면서도 조금 치사하게 느껴지지만) 경제적으로 부담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일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얘기해볼 수 있겠고요, 위험하진 않은가 하는 걱정에는 조작된 공포에 대해서 얘기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좀 더 현실적인 얘기로 (설득)해 달라”는 말에는 늘 말문이 막힙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되묻게 됩니다. 무엇이 현실일까? 하고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쫓기듯 자기 삶을 버리고 떠나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 자체로 우리가 사는 현실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일단 한국에 와서 몸은 피했지만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게 현실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딱 한명이라고 할지라도- 그게 우리 현실이 될 수는 없는걸까요?
이 일을 하면서 제가 사는 현실은 많이 넓어졌습니다. 참 괴로운 일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쭉 살아온 저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나 군인이 집에 들이닥쳐 이유없이 나나 내 가족을 잡아가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기에, 그런 이야기는 제 현실도 아니고 그러니 그런 상상을 하거나 그런 영화를 봐도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어딘가에선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그것 때문에 도망쳐 나온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것까지 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아직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고있자니 그것까지 제 현실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안전한’ 한국에 살고 있는게 아니라,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는 이 세상의 한 구석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결코 유쾌하지 않지만 내 안의 좁은 세상이 무너진다는 건 언제나 구원과 같은 일일거라, 저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고 있습니다.
얼마만큼이 나의 현실인가, 내 현실은 얼마만큼 넓고 두터운가.
올해를 잘 보내고 내년을 맞이할 때 제 눈에 ‘현실’로 보이는 것들이 더 많아지기를. 분명히 괴롭겠지만 그또한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이라고 감히 써봅니다.
허니
난센을 찾아오셨던 한 청소년 분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 활동을 하게 되었나요?" 다시 한번 내가 왜 이 활동을 하고 싶었던가. 처음의 그 마음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고 소중해서. 이 이유는 여전하고, 앞으로도 나에게 결정적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마주하게 된 부당한 삶의 이야기들은 다시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다.. 싶습니다. 요 몇 주간 난센을 찾아오셨던 분들이 겪은 일들의 일부를 끄적여 봅니다.
정치활동을 증명할 서류들을 정말 어렵게, 꼼꼼히 준비했는데, 이것을 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출입국이 단 열흘의 시간을 주면서 스스로 번역해서 내지 않으면 받지 않겠다고 사진 한 장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손을 휘저으며 다 돌려보내는 현실, 미성년자로 부모 동반 없이 한국으로 탈출해 와 난민신청을 하러 갔더니 나이가 어리다고 신청서 접수도 받아주지 않고..
5명의 가족이 법원에 비싼 소송비용을 내어 소를 제기하고 어렵게 변호사도 구했는데,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재판은 열렸는지 알 길이 없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변호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도 없이 패소한 판결문을 일반우편으로 받아 항소장을 내러 갔더니 이미 항소제기 기간이 지나버려서 손쓸 방도가 없게 되었던.. 하.. 2019년을 앞둔 대한민국 난민제도 운영이, 행정 시스템이, 사법 서비스가 진짜 이렇게 후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한민국이 출입국 관리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어제도 오늘도 마구 휘두릅니다. 난민이 본국을 탈출해 한국으로 가는 비자를 받으려면 현재 제도가 공식적으로 발급되는 "난민비자"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사실은 "비호를 구하러 오는 것"이지만 "여행비자"이든 무엇이든 그것과는 다른 비자를 쥐고 올 수 밖에 없는 것인데, 그렇게 합법적인 비자를 가지고 무사히 입국하여 난민심사를 받고 있던 어느 날 "너 여행하러 온거 아니라 난민신청하러 온 거였잖아"라며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하였다고 고발하고, 유죄 판결을 선고하고, 출입국은 난민에게 바로 강제추방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난민신청자에게 진짜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체류자격인 G-1 마저도 안주려고 점점 더 옥죄어 옵니다. 왜 안전하게 살고 싶어 한국을 찾아 비호를 구하는 이에게 바로 출국하라는 명령서를 들이미는 것인지, 신분증 없는 삶, 자유를 박탈당한 삶을 우리는 감히 상상이나 해볼 수 있는 것인지. 지금 한국 정부가 휘두르는 공권력이 박해의 위험을 피해 온 이들에게 또 다시 박해를 가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 참 아이러니하고 씁쓸합니다.
올해가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이라고 해서 세계인권선언을 찬찬히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에서 피난처를 구할 권리와 그것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 헉.. 싶었습니다. 그래 권리였지! 권리라고!!!! 70년 전에 만들어진 보편적 인권에 관한 선언이라는 것이 70년이 지나 온 지금에도 왜 이리 여전히 요원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노공
가을이 곧 지나갈 것 같던 10월 중순 토요일, 아시아태평양난민인권네트워크 (Asia Pacific Refugee Rights Network, APRRN) 10 주년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이 번 회의에서 눈에 띄었던 참석자들은 일본과 홍콩에서 난민인정을 받으신 분들과 난민캠프에 거주하시는 친족분이셨습니다. 난민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 공평함으로 포장한 기회의 차단, 내일을 바라보다 지쳐버리는 길고도 불안한 격리 상태. 우연하게도 그 세 분의 연령대가 청년층이었는데, 각 자가 놓여있는 환경에서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을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과 힘을 모아 헤쳐가려 고민하는 분들이셨습니다.
세 분의 용기와 결단에 감탄하면서, 이 번 회의 참석자 중 한 분이 큰 목소리를 내주신 것처럼, 다음 번 회의에는 참가자 절반이 난민 당사자분들이 되길 희망합니다.
한국에서도 같은 고민을 갖고 계시는 당사자분들이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과 여력이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나무
3개월 간의 수습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습기간 후 난센과 멀리 내다보고 함께 할 수 있을지, 어떤 역할과 관계 속에서 활동해야 할지 논의하는 길고, 어려운 자리가 있었습니다. 5년만의 한국생활이 낯설었던 것 만큼, 숨가쁜 호흡의 조직 생활 또한 쉽게 익숙해 지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동료 활동가들 역시도 쉴틈 없는 활동 속에서, 새롭게 주어진 관계가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고심하는 과정 속에서,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거듭 되새겨 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이해는 타인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알 수 없는 세계를 하나의 여백으로 남겨둘 수 있는 것이다"
활동에 있어 뜻과 방향을 묻고 의견을 모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저에게, 그 뜻을 서로가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럴 기회를 지금 당장 찾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자리를 남겨두며 지지하고 믿어 주는 마음이란 것이 새삼 소중한 것임을 많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먼 미래에 그제서야 알게 될, 혹은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지 모르는 타인의 어떤 세계를, 적어도 쉽게 단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것은 매일 만나는 가까운 관계에서도, 앞으로 만나게 될 이국의 손님들에게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른 운동들 속에서도 지켜나가야 할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활동과 일상의 순간순간에 그러한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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