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공
6월 가장 바쁜 달을 정신없이 보내고 다시 평상시 바쁨으로 돌아왔습니다.
늘 새로운 숙제를 받고 쌓여가는 숙제 더미를 어떻게 손을 댈까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과제를 집어들었습니다.
증언대회 바로 그 순간까지도 긴장했던 순간들.
퍼포먼스 도중 공연자만이 속으로 진땀흘렸던 돌발상황까지 무사히 마쳤으나 마쳤으나 ...
증언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국가인권위원회건물 로비의 대리석을 먹물로 오염시켰다는 항의에 공연해주신 분들과 건물 로비 바닥 청소를 열심히 해야했던 기억까지도
오래 오래 생각날 것 같습니다.
혁신파크에서 빌려온 마이크는 작년에도 올해에도 어김없이 결정적인 순간에 먹통이 되었구요. 허허허... 내년에는 다른 곳에서 빌려오자고 다짐하며 웃었는데요.
그 자리에 같이 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역시 다음 해는 가벼워져있길 바랍니다.
대단한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지난 시간들. 조금은 성긴 흐름으로 난센을 만나게 될 8월이 또 기대됩니다^^.
허니
재작년 말 난센을 찾아오신 난민분들이 들고 온 난민면접조서에는 정말 황당한 내용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나는 돈을 벌러왔다" "내가 난민신청서에 적은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나는 고국에 돌아가도 위험하지 않다"는, 복사+붙여넣기 한 듯한 두 장짜리 내용의 조서들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면접이 진행된 시간은 조서에 적힌 것만도 1시간을 넘지 않았고, 조서의 오른쪽 아래 쪽에는 동일한 통역인의 서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 법무법인에서 이분들의 사건을 맡아서 소송을 대리하는 과정에 이 말도 안되는 일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서너명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난센을 찾아오신 분만도 스무명, 이후 재판과정에서 드러나서 졸속심사로 중대한 위법이 있다는 판결이 두건이나 나오고, 선별적으로 출입국이 나서서 취소한 것만도 55명이었습니다.
처음 이 일이 드러났을때 난민인권네트워크에서는 법무부에 이 사건을 규명하고, 해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법무부는 처음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듯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해당 통역인은 동천과 난센에서 진행한 통역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이라는 둥, 해당 공무원이 너무 심리적 압박이 커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둥, 이상한 해명을 늘어놓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2015년 건부터 재조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만 하며 더 이상 소통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작년 예멘 난민의 입국으로 여러 사안에 백방으로 대응하면서 이 사건을 문제제기 하는 것이 자꾸만 미뤄졌습니다. 법무부가 재조사를 하고 있다는 말만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여전히 법무부는 제도를 남용하는 난민 운운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이 사건이 묻히게 될 것이 두려워 작년 이맘인 7월 진정서를 들고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그 때 동료들과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 당시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이런 심각한 피해에 울분을 토하시면서도, 이것에 대해 진정을 제기하고 언론 앞에 서는 것이 또 다시 자신에게 불이익한 결과를 가져올까봐 두려워 하셨던 분, 그 면접 당시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 다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넌덜머리가 난다는 분. 그래서 끝끝내 오시지 못하신 분들.. 정말 많은 생각이 들게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플래시가 터지는 그 앞에 현수막을 들고 섰습니다. 옆에 계신 난민 분의 떨림이 그대로 전해져왔습니다. 그렇게 언론을 통해 사회에 사건이 드러났습니다. 진정 조사과정에서 법무부는 공무원과 통역인 선발, 교육과정을 개선하겠다, 난민면접 녹화요구 권리 고지를 의무화하겠다 약속했고 일부 제도적 개선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1년이 지나도록 당사자 분들의 상황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소송에서 승소하였지만 1년이 넘게 재조사 결과를 불안해 하며 기다리셨어야 했고, 누군가는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가 여전히 2년째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 기자회견에서 용기내어 발언하셨던 분은 난민 혐오세력에 의한 공격을 받고, 법무부의 동향조사라는 감시를 받아야 하기도 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당사자 분들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무기력감과 분노감에 지쳐갔습니다.
2019년 6월 세계난민의 날을 맞이해 계속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다는 마음으로 저희는 다시 피해자 증언대회를 준비하였습니다. 동료들과 정말 온 힘을 다했습니다. 당사자 분들이 또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까지는 많은 용기와 노력들이 더해졌습니다. 노출이 두려웠던 한 분은 수차례의 고민 끝에 증언대회 시작 3분을 앞두고 얼굴을 가리지 않고 이야기 하고 싶다는 결심을 내리시기도 하였습니다. 청중들이 국가인권위 배움터를 가득 메웠고, 여러 카메라 앞에서 발언자 분들은 침착하게 경험과 생각을 전해주셨습니다.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는 그날의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다시 어렵게 다시 사회에 꺼내졌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앞으로 진행될지, 어떻게 함께 해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또 다른 긴 기다림이 있겠고,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바뀌지 않음에 무력감이 찾아오겠지요. 그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이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당사자 분들의 곁에서 부족하지만 계속 힘을 보태려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많은 이들이 그 길에 함께 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번 증언대회가 있기까지 정말 고생한 난센 동료들, 발언자 사브리, 무나(가명), 아담, 라힘(가명)님, 영실 변호사님, 그리고 그 곁이 되어주신 난센 자원활동가님들, 그 자리를 끝까지 함께 지키며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뜨거운 동지애와 고마움을 전해봅니다.
그리고 7월을 마지막으로 노공이 2년의 활동 마무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사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2017년 그 첫 만남부터 언제나 기대고 싶은 편안한 품이 되어주셨던 분. 그 빈자리가 정말 허전할 것 같습니다. 덕분에 난센에서 함께 보내온 시간들이 참 따뜻했고,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정말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나무
박해 경험으로 인한 공포감, 심사와 체류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 등으로 인해, 모욕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난민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본인에게나 난민지원활동가에게나 결정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동안 어쩌면 우리는 난민에 대한 ‘보호’의 원칙을 우선하고, 언론이나 사회에 노출되는 일을 지양해야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출입국의 당국의 눈치를 보며, 현실가능한 기회들을 조심스럽게 타진해야만 했습니다.
4월의 어느날 면접조서 조작사건의 피해자였던 난민 한 분의 이야기를 가지고 영상을 제작하기 위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더 이상 (이곳에서) 노예로 살고 싶지 않다, 올바른 목소리를 내고 문제제기를 하는 행위가 나 자신에게 가져올 불이익이 무엇인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이미 출입국의 동향조사와 지속적인 협박에 시달려 왔기에 그들이 나에게 무슨 일을 할지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대로 이렇게 숨죽이며 비인간적인 대우를 감내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끝이 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날이었습니다.
작년의 단식농성 이후로도 난민들의 몸부림은 계속되었습니다. 몇 달전에는 법무부 앞에서 돗자리 농성이 있었고, 지난주에는 MBC 방송국 앞에서 한 분이 1인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들을 초조히 지켜보면서, 저희는 이분들의 결정과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력해야 할지 활동가로서의 윤리를 많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올 해 세계난민의 날은, 예맨 난민 이슈가 불거진 이후, 난민혐오 여론들이 이어진 지 1년여가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가장 많은 시민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슈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한 시민 분이 메일로 주셨던 의견 하나가 머리 속에 맴돌았습니다. ‘심사과정에서 면접조서가 허위로 조작된 사건은 누가 들어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것을 중요한 이슈로 삼아 시민들에게 알리면 좋지 않겠나.’ 고민 끝에 ‘가짜 난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법무부'라는 메세지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내는 증언대회의 형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 뭔가 두렵고 자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필요한 일인데, 이 일을 치르기에 경험이 없고, 이일로 인해 발생하게 될 여러가지 숙제들을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못했습니다. 저는 밤마다 생각이 바뀌던 어느 날, 영상제작 회의 때 말씀하셨던 분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길고 긴 고독한 싸움을 이어오시면서 당부하셨던 말. 저는 그날 밤 ‘어떻게든 이분을 위해서라도 이것을 해야 한다, 부족함으로 인한 결과는 두 번째 문제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증언대회를 열기로 결정하고, 참여자를 모집하던 중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증언을 하시겠다는 의사를 밝히였습니다. 물론 심사 중에 있는 분들 중에는 발표하고 싶지만 이 일로 발생할 불이익이 걱정되어 포기를 하기도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여러 차례의 고민과 회의 끝에, 어떤 식으로든 난민참여자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발생할 후과를 충분히 인지하고 계시면서 목소리를 내기를 윈하는 분들이 의사를 밝히신다면, 지지하고 이후 벌어지게 될 상황까지도 함께 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증언에 나서겠다고 결심하셨고, 각각의 증언자들을 만나 발표문을 다듬으며 통역인과 사전연습을 하고, 언론노출 문제에 대해 상의하였습니다.
행사 당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자리를 가득 매운 시민과 취재진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환희와 어떨떨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였던 그 분의 의지와 용기 덕분에, 또 불안감 속에서도 목소리를 내겠다고 나서주신 증언자분들 덕분에 수많은 피해자들을 남긴 면접조작 사건이 묻히지 않고 널리 알려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용기를 낸 분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하시게 되지는 않을런지 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그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활동가들도 그런데 이 과정에 참여하신 증언자 분들이 어떤 고민들을 하셨을지 저희로서는 다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 증언대회가 끝나고 마침 심사중이었던 증언자분의 면접이 바로 잡혔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분을 보호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고, 심사 과정을 조력하였고 결과를 앞두고 있습니다. 또 새로운 시작이지만 여전히 어렵고 불안합니다. 그러나 함께 했던 경험 속에서 우리가 이제는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하는지 조금은 더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달간의 시간을 어떻게 말로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것들에 도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도전이 있을지 가슴 떨리는 순간이 있겠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과 용기를 내어 같이 걸어 가고 싶습니다.
'활동 Activities > 활동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시아전쟁과 징집을 거부하는 사람 (0) | 2022.10.25 |
---|---|
2019 봄 난센 활동가 이야기 (0) | 2019.04.18 |
2018년 늦가을 활동가 이야기 (0) | 2018.11.27 |
2018 여름 활동가 이야기 (0) | 2018.08.22 |
늦봄 활동가 이야기 (0) | 2018.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