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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러시아전쟁과 징집을 거부하는 사람

‘적이야기

 

황량한 들판에 멀찍이 떨어져 깊이 파진 두 개의 참호에서 긴장된 밤을 보내고 오늘도 살아있음에 안도하며 다른 쪽 참호를 향해 사격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두 병사가 있습니다. 곧 이어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둘은 상대방 참호를 향해 매일 총을 쏘아대고 아무 것이나 던지는 ‘’을 상상해봅니다 한 번도 본적은 없지만 ‘’은 .영화 ‘프레데터’에 나오는 괴물처럼 누구든 날카로운 날개로 죽이는 잔혹한 야수임에 틀림없습니다. 군대에 들어와서 총과 군복과 함께 받은 ‘전투지침서’에 그에 대해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별이 총총 떠있던 어느 밤, 길어진 대치상황에 지친 나는 ‘’을 빨리 없애 버리고 전쟁을 끝내기로 결심 합니다. 낮은 포폭으로 소리나지 않게 ‘’의 참호로 잠입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엔 ‘’이 없었고 놀랍게도 벽에는 내 가족과 친구처럼 웃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전투 지침서’와 닮은 빨간 색 표지의 책이 바닥에 보입니다. 그 속에는 ‘’이 아닌 내가 잔혹한 야수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의 참호에서 나와 다시 내 참호로 돌아와 나는 손수건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병에 넣어 힘껏 ‘’의 참호로 던졌습니다. 제발 ‘’이 내 편지를 읽기 바랍니다.

그 날 밤, 내 참호에도 어디선가 손수건이 들어있는 병이 날아들었습니다.


...

‘적, (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역, 문학동네)이라는 그림책 내용이었습니다.

 

결말을 상상하실 수 있을까요^^?

 

이 책의 결말은 책 뒷 표지 안쪽에 나와 있습니다. 전장으로 가기 전 줄을 맞춰 선 병사들이 마지막 두 페이지에 귀여운

장난감병정처럼 빼곡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좀 잘 보면 두 군데에 비어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 두 곳은 서로의 편지를 읽은 병사들이 서야했던 자리였을 거예요.

'적'의 마지막 페이지 사진입니다.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시 삭제하겠습니다.

 

‘적’ 맨 앞장에는 빨간 피로 물든 훈장을 덕지덕지 단 장군이 나옵니다. 자신은 전쟁터가 아닌 쾌적하고 안전한 지역에 머무르며 시가를 물고 최고급 와인을 마시며 최고 권력가들과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동원령과 난민신청

 

최근 징집을 피해 한국을 찾으시는 분들의 연락이 갑자기 늘었습니다. 푸틴이 내린 부분동원령으로 징집명령을 받았거나 언제 받을지 모를 사람들이 러시아를 탈출하는 행렬이 국경을 넘으려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나오고 있습니다. 난센에도 2주 전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러시아 분이 불회부처분을 받은 뒤,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였습니다. 러시아 부랴티아 공화국 출신인 신청인은 부분동원령 대상 조건에 해당되어 전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난민지위를 신청하였으나, 공항 출입국은 오히려 부분동원령 대상에 해당되므로 징집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난민신청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난센의 개입으로 다행히 불회부처분이 철회되었습니다.

 

부랴티아(Buryatia) 시민들의 상황에 개입하며, 난센이 알게 된 사실들

 

언제 강제 송환이 이루어질지 모르기에 최대한 빨리 러시아 부랴티아(Buryatia)에 부분동원령이 어떻게 수행되고 있는지 조사를 시작하며 알게 된 사실은 최근 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사망한 러시아군 전사자중 슬라브족이 아닌 소수민족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BBC러시아는, 9월 초 까지 6000 명 넘는 러시아군 전사자를 조사한 가운데 부랴티아(Buryatia), 다게스탄(Dagestan), 크라스노다(Krasnodar) 출신이 각 각 200명 이상이었으나. 러시아 전체 인구 10분의 1을 차지하는 모스크바 출신 전사자 수는 15명에 불과하다고 보고합니다.

 

러시아 인구의 72.8%가 도시에 거주(2018년 통계)하며, 인구 밀집도 상위를 차지하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대도시는 대부분이 주류인 슬라브족이며, 전체 인구가 백 만이 못되는 부랴티아 공화국은 소수민족인 몽골계가 1/3을 차지합니다. 어떻게 인구가 훨씬 많은 지역 출신의 전사자수가 그 반대되는 지역 출신 전사자수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까요.

 

인구분포에 비례하지 않는 출신 지역별 전사자 수는 크레믈린이 다수를 차지하는 슬라브족이 거주하는 모스크바와 샹트페테르부르크의 반전 여론을 의식하여 힘없는 소수민족을 총알받이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이런 수치는 왜 러시아 내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뷰랴티아, 다게스탄, 크라스노다 같은 지역에서 징집을 피해 탈출을 선택하는 난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새 정부 수장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고 발표를 한 지 5개월이 지나는 동안 대한민국 법무부는 우크라이나 난민의 특별 체류 허가를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피해자는 우크라이나에만 있지 않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적’으로 보길 거부하고 ‘적’이 되길 거부하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피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이 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임을 정부는 기억하고 보호할 방법을 모색해야합니다.

 

무기를 지원하는 것 보다 사람을 지원하십시오.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더 많은 사람이 쓸 수 있다면 전쟁 없는 세상에 조금 다가가지 않을까요.

 

글: 이권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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