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상반기에는 난센 자원활동가들로 구성된 리서치팀에서 난민인권과 관련된 중요한 4개의 주제를 가지고 그룹활동을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난센 활동가들이 활동하면서 절실히 필요했고 궁금했지만 바빠서 찾아볼 수 없었던 주제들을 정하여 자원활동가님들께 조사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결과물을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다만 고민스러웠던 이슈들을 함께 배우면서, 이후에 누군가가 탐구를 이어갈 수 있는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리서치에 참여해주신 자원활동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들은 주제별로 일주일에 한번씩 참여 코너에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 이 글의 내용은 난민인권센터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
첫번째 주제로는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다섯 가지 오해와 편견들>입니다. 작년의 예맨 난민 입국 이후 무분별하게 증폭된 난민 혐오는 무슬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와 무슬림에 대한 왜곡되고 근거 없는 컨텐츠들은 무분별하게 쌓여가는데, 정작 그것들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할 정보와 자료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누구나 들어보았을 무슬림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들 5가지를 추려서 조사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세번째 주제를 소개합니다.
∨ "이슬람 문화권과 아랍 지역은 동일한가? 대부분의 무슬림은 아랍인인가?"
∨ "이슬람은 교리적으로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종교인가?"
∨ "이슬람은 여성차별적인 종교인가?"
∨ "무슬림 인구가 현저히 낮은 국가가 자유롭고 안전하다?"
∨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는? 그들 간의 분쟁에 대하여"
[기고]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다섯 가지 오해와 편견들 2편
글 : 자원활동가 이상아, 김규리
3. 이슬람은 여성차별적인 종교인가?
오늘날 무슬림이든 비무슬림이든 그 어떤 사회에서도 여성들은 남성과 완전히 동등한 기회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불평등한 지위는 남녀 간 인류 발전에 기여하고 그 이득을 공유하는 정도에 있어서 상당한 격차를 낳는다. 전세계적으로 권리 측면에서 남녀평등은 여성들의 선택에 크고 작은 제한을 준다. 그러나 유독 무슬림 사회에서 나타나는 남녀불평등을 바탕으로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여성 차별적인 종교라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예를 들어, ‘무슬림 남성은 여러 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 ‘여성들은 외부활동을 위해 남성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결혼하여 말 안 듣는 여성에게 구타를 가하도록 되어있다‘,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착용하는 것은 성차별이다’, ‘무슬림 여성은 비무슬림 여성에 비해 낙후되고 덜 현대적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에서는 2018년 예멘 난민이 제주에 입국했을 때, 대다수의 난민이 남성이었던 사실이 지적받아 이슬람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많은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들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슬림 사회가 여성 차별적이기 때문에 이슬람 자체가 여성차별적이라는 것은 편견이다. 이와 같은 일반화를 도출하기에는 이슬람 세계는 매우 광활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슬림 사회는 고유의 문화 및 신념체계를 보유하고 있어 똑같은 무슬림 사회는 없다. 무슬림 사회에서 목격되는 남녀 불평등의 문제는 각 사회의 고유한 문화 및 전통에 근거한다. 즉, 한 사회의 사회적 맥락은 종교적 신앙과 실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1].
정확하게 말하자면, 많은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이슬람 교리에 따른 권리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2].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이슬람에 대한 오해는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비무슬림 혹은 이슬람 혐오주의자들뿐만 아니라 표면적 무슬림 지도자들에 의해서 조성되기도 한다. 전체 맥락의 이해가 요구되는 쿠란과 하디스에는 남녀평등이 상당히 보장되어 있지만 안타깝게도 남성이 주류인 많은 무슬림 사회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슬람 교리를 잘못 해석하여 여성차별적인 법체계를 성립해온 것이다. 즉, 이슬람 교리는 여성과 남성의 권리와 의무를 동등하게 보장하지만 사회적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문화적 규범 및 관행으로 인해 그 교리는 늘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녀평등을 보장하는 쿠란
이슬람에서는 남녀평등의 개념에 있어 어느 성별도 그 우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쿠란에서 여성의 권리를 다루는 장(4장 ‘여성’)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된다. “사람들이여 주님을 공경하라 한 몸에서 너희를 창조하사 그로부터 배우자를 두어 그로 하여금 남녀가 풍성히 번성토록 하였노라 너희가 너희 권리를 요구하매 하나님을 공경하고 또 너희를 낳아 줄 태아를 공경하라 실로 하나님은 너희를 지켜보시고 계시니라 (쿠란 4:1)” 이 구절은 남녀 간 그 어느 성별도 다른 성별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쿠란4:124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슬람은 남성과 여성은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동등함을 보장한다. “믿음을 갖고 선을 행하는 남녀가 천국에 들어가나니 그들이 받을 보상은 조금도 부정함이 없노라.”
쿠란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이슬람은 남녀 간의 생물학적인 다름(예를 들어, 여성만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것, 남성이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힘이 세다는 것, 등)을 인정하고 그 자연스러운 다름에 걸맞게 남성에게 혹은 여성에게만 부여되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은 한 성별을 다른 성별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녀평등을 남녀동일함으로 혼동하지 않는 것이며 그 결과 본질적으로 다른 두 성별에 한하여 각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신앙을 실천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에게 제한되지만 남성에게는 허락되는 것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성은 여성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쿠란 4:34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이 구절은 여성의 보호자로서 남성은 여성을 그 하위 존재로 여기고 여성의 권리를 도외시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성은 무력하니 남성이 여성을 돌보고 여성이 필요한 모든 것을 대신하여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여성에 대한 보호는 남성과 여성이 충분히 의논하여 존중과 친절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도모할 뿐이다.
이슬람이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슬람은 남성이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는 이슬람에서 필수 조건도 고무되는 조건도 아닌 단순히 매우 특정한 상황에서 허락되는 조건일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쿠란4:3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정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좋은 여성과 결혼하라 두번 또는 세번 또는 네번도 좋으니라 그러나 그녀들에게 공평을 베풀어 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오직 한 여성과 결혼하라 그것이 너희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여 보다 적합한 것이라.” 이 구절의 배경은 무슬림 사회에 고아와 과부가 유독 많았던 우후드(Uhud) 전쟁이다. 따라서 쿠란은 도움이 필요한 고아 및 과부 등 취약 계층들을 돕는 조건 하에 일부다처제를 허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부인으로 두는 모든 여성을 동등하게 대할 것과 한 남성이 최대 네 명의 부인을 둘 수 있는 조건을 두면서 일부다처제를 지극히 특정한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취약 계층을 돕는 조건, 모든 부인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조건, 그리고 네 명의 부인까지 허락되는 조건을 따르지 못할 것을 아는 남성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제도다.
반면 남성에게 허용되지 않는 여성 전용의 권리도 있다. 여성은 가족지출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로서, 여성은 이슬람에서 최고의 존중을 받는다. 부모공경 (특히 어머니 공경)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명령하여 부모를 존경하라 했거늘 그의 어머니는 태아를 가짐과 이 년간 젓을 먹이므로 말미암아 허약하여지니라 내게 감사하고 그리고 네 부모에게 감사하라 내게로 옴이 최후이니라 (31:14).”
표현의 자유는 남성에게만 주어지는 배타적인 권리가 아닌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누리는 권리이다. 쿠란에는 무함마드의 시대에 여성은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선지자와 진지한 토론에 참여하여 여성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던 일화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그녀의 남편에 관하여 그대에게 변론하고 하나님께 호소한 그녀의 진술을 수락하사 너희 쌍방간의 진술을 듣고 계시나니 실로 하나님은 들으심과 지켜보심으로 충만하심이라 (쿠란 58:1).” 무슬림 여성들은 입법과 관련된 사안에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때로는 지도자들에게 반대 의견도 내놓기도 했다. 지도자에게 도전한 한 여성의 의견이 공적으로 받아진 일화도 있다. 어느 날 모스크 앞에서 오마르 이브날카탑 (Omar Ibn al-Khattab) 칼리프가 설교단 위에 법령을 선포하던 중 한 여성이 그가 선포하는 바에 반대 주장을 내세웠으며 결국 칼리프는 “여성이 옳고 오마르는 틀렸다[3]”고 인정하게 된 일화다. 이처럼 이슬람 역사 속에서는 여성은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가 보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적 자리에 참여하고 공직에도 출마할 수 있었다.
샤리아를 둘러싼 남녀평등 투쟁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죽음 이후, 몇 세기 간 종합적으로 샤리아(이슬람의 법체계)라고 불리는 법규들이 발전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샤리아는 이슬람의 핵심 가르침을 일상생활을 규율하는 실용적인 법규로 추론한 것이다. 무함마드가 살아생전에 사회적 혹은 정치적 문제들을 대처하는 지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쿠란과 하디스를 해석하여 샤리아를 탄생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샤리아의 내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초안 작성자들은 쿠란과 하디스를 참조했고 ‘독립적 해석 (ijtihad)’과 ‘법학자들의 합의 (ijma)’에 의존했다[4]. 또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샤리아법을 알맞게 개정했다. 즉 샤리아의 발전 역사는 점진주의로 시작되었다. 한 여성이 오마르 칼리프가 선포한 법규에 반대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쳐 법규를 수정할 수 있었던 것처럼 샤리아 역시 얼마든지 이슬람 교리와 일치한 해석을 내포하고 사회적 발전에 따라 개선될 수 있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취지에 반하여 샤리아가 사회와 생활방식을 마비시키는 법규가 된 것은 12세기부터의 일이다. 12세기에 수니파 학자들은 샤리아가 최종 형태에 도달했으므로 그날로부터 “ijtihad의 문”이 영원히 닫혔다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따라서 샤리아는 세기가 변하면서 사회적 현실들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면서 융통성이 결여된 법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것은 무슬림 공동체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결과물이며 그 이후 진행된 개혁 또한 권력유지에 유리한 해석만이 샤리아에 적용된 것이다. 오늘날 샤리아는 무슬림 국가마다 그 내용이 상이하다. 그 이유는 각 국가에서 권력자들이 선별한 쿠란의 해석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무슬림 국가에 목격되는 남녀불평등도 이슬람 교리가 아닌 권리 유지에 적합한 법규를 샤리아에 포함한 권력자들로부터 생겨난 문제이다.
무슬림 사회에 발생하는 여성차별이 이슬람 교리에 기인한다는 편견이 위 샤리아 발전 역사를 살핌으로써 해소된다고 해도 또 다른 편견이 남는다. 바로 무슬림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차별의 깊은 역사 때문에 무슬림 여성은 불평등에 도전하지 않고 가부장제에 순응하여 결과적으로 권리 측면에서 낙후되었다는 평가이다. 즉, 무슬림 여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성립할 줄 모르는 여성으로 간주되는데 이것은 무슬림 여성에 대한 심각한 편견이다. 무슬림 여성인 수잔 칼랜드(Susan Carland) 더 가디언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나는 연구 기간 동안 많은 비무슬림들과 언쟁을 벌였다. 내가 아주 흔하게 경험하는 것은 무슬림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확고한 의견들과 성차별에 대항하는 여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완전한 불신감이다. 사실은 성차별에 도전하는 여성은 많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력을 지지하는 무슬림 남성도 많은 데 말이다. 불신자들은 페미니즘과 이슬람이 본질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캐나다 학자 자스민 진(Jasmin Zine)은 무슬림 여성의 정체성이 경쟁 구도에 있는 두 개의 담화로 형성된다고 한다. 한 편에는 우리 사회에 익숙해진 편협하고 성별을 반영하는 기준들에 무슬림 여성을 국한하려는 가부장적인 너레이티브와 극단주의자들의 담화가 있다. 다른 편에는 다소 신식민지주의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즉, 낙후되고 억압되어 해방의 희망이 없고 서구식 여성상을 모방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여성들)하려는 서구 페미니즘들의 담화가 있다. 양쪽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두 담화 모두 이슬람의 방대한 가능성 속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무슬림 여성에 대해서 무슬림 남성 학자 및 권력자들과 비무슬림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미리 정해진 대본을 건네주며 우리에게 그대로 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제 그 대본을 새롭게 작성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즉 성차별에 대항하는 무슬림 여성들의 몫이다.[5]”
여성 인권 투쟁: 말레이시아의 사례[6]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여성이 성차별적 제도에 대항하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나라에서는 민사 소송은 샤리아 법원에서, 형사 소송은 세속 법원에서 다뤄지는데 세속 법원보다 샤리아 법원은 큰 자율성을 누린다. 말레이시아 샤리아법 하에는 남성은 이혼을 자동적으로 할 권리를 누리는 반면, 여성은 이혼을 원할 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성차별에 대항하여 화제가 되었던 여성은 이혼 소송을 제기한 여성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샤리아법이 여성을 차별하는 잘못된 해석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오로지 법에 의존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이슬람이 여성의 억압을 옹호하는 종교인지 확인하기 위해 쿠란을 다시 세밀히 검토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이슬람은 좋은 종교이며 문제는 샤리아 법원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쿠란을 공부하면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이슬람도 쿠란의 구절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성에 대한 지배와 남성의 우월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가부장적 사회에 사는 남성들이 거행한 잘못된 해석이 범인이다. ‘독립적 해석(ijtihad)’의 과정은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으나 750여 년 전 수니파 세력들에 의해 멈추게 되어 당시 정해진 법규가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지게 되었다. 당시 만들어진 해석들은 인간의 이해와 수고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성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 처럼 받들어져 왔다. 12세기의 사회적 맥락이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데에 영향을 준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변화하는 상황도 현시대에서 우리가 말씀을 해석하는 데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그러나 그의 소송은 오랜 기간 해결되지 못했다. 샤리아 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여성을 편을 들지 않아 첫 재판은 일단락이 되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샤리아 법원의 판사인 아부 바카르 다우드(Abu Bakar Daud)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샤리아법은 모든 세기에 적합한 법이다. 그것은 12세기 당시 이슬람 학자들이 그들의 상황에 맞게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사회도 그 학자들이 살았던 사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샤리아법에 대한 권력자들의 융통성 없는 접근이 많은 무슬림들이 쿠란을 공부하여 대항하게 되는 이유이다. 소송을 제기한 여성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계속 던지며 대항하면서 오랜 결투를 거쳐 결국 소송에서 이기게 되었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왜 네번 결혼하라는 쿠란의 구절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반면 ‘공평을 베풀 수 없다면 오직 한 여성과 결혼하라’는 그 이후의 구절은 잊혀졌는가? 쿠란에는 정확하게 ‘좋은 여성과 결혼하라 두번 또는 세번 또는 네번도 좋으니라 그러나 공평을 베풀 수 없다면 오직 한 여성과 결혼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무슬림 사회에는 종교를 잘못 해석하여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과 그러한 불공평함에 대항하는 자들 간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무슬림 국가들 사이에서도 샤리아법의 해석은 상이하다. 따라서 무슬림 사회에 발생하는 성차별만을 보고 무슬림 사회를 획일적인 공동체로 간주하여 그 불평등을 종교에 기인하는 오류는 피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이유로 착용 되는 히잡
샤리아법에 대한 일반화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히잡 착용에 대한 일반화 및 편견도 있다. 즉, 무슬림 여성의 히잡을 ‘억압‘의 상징으로 비판하는 의견이다. 그러나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다양한 이유로 착용할 뿐만 아니라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이유로 히잡착용에 대하여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어 그 상징적 의미들을 다르게 제시해왔다. 히잡 착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무슬림의 ‘종교적 의무‘, 민주사회에서의 ‘종교적 자유’, ‘정숙한 여성의 표상‘, ‘가족 가치의 보수’, ‘남성으로부터의 보호‘, ‘개인적 선택’, ‘문화적 정체성‘ 등의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반면에 착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히잡을 남성의 ‘억압’, 사회의 ‘성차별‘, 이슬람의 ‘극단주의’, 여성공동체의 ‘분열‘ 등으로 설명한다[7]. 이와 같이 히잡은 다양한 상징으로 그 착용이 옹호되거나 비판되어 모순되는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다.
히잡 착용을 지지하여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은 히잡 착용 시 자유, 무슬림 여성으로서의 자부심, 편안함을 느낀다고 진술한다. 반면 히잡 착용을 반대하여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여성 중 상당수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나는 이슬람 의상을 입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쿠란)에서 이해한 바로는 정숙함이 요구되는 것이므로 히잡을 착용하는 것은 옷을 입는 방식이라기보다는 행동의 방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8]” 이처럼 히잡은 무슬림 여성의 다양한 삶 전체를 반영한다. 최근에는 무슬림 사회인 카이로, 테헤란, 이스탄불 대신에 비무슬림 도시, 즉 파리, 런던, 뉴욕에서 히잡 착용이 논쟁의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 주도의 히잡 착용 강요 혹은 금지보다 개별적인 신앙적 결단에 따라서 무슬림 여성들이 보다 다양한 의미로 히잡을 착용할 수 있도록 도모하고 있다. 결국 히잡 착용은 자유와 억압의 상징을 모두 내포하는 모순된 의미가 있으며 무슬림 여성은 자신의 의지대로 히잡을 착용하거나 착용하기를 거부할 수 있다.
결론
이슬람이 여성차별적인 종교라는 것은 심각한 편견이다. 오늘날 많은 무슬림 사회에서 발생하는 남녀불평등은 이슬람 교리를 잘못 해석하여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시도에 기인한다. 무슬림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무슬림 사회에 내재된 불평등에 대항하고 있으며 이들이 마주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이슬람 극단주의 혹은 권력자들에 의한 여성 억압적인 담화와 무슬림 여성들을 무능하고 낙후된 존재로 인식하는 비무슬림들의 담화이다. 이와 같은 편견은 무슬림 여성들이 스스로 이슬람의 방대한 가능성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을 방해한다.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혹은 그들의 종교 정체성을 바탕으로 그들을 낙후되고 억압된 존재로 인식하는 오류는 피해야 할 것이다.
[1] Fatma Osman Ibnouf (2015), The Gender Equality and Women’s Human Rights in Islamic Texts (Quran and Hadith).
[2] Ibid.
[3] Ibid.
[4] Dina Mansour (2014), Women’s Rights in Islamic Sharia: Between Interpretation, Culture and Politics, 11 MUSLIM WORLD J. HUM. RTS. 1, 24, 13쪽.
[5] If you want to know about Muslim women’s right, ask Muslim women,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7/may/07/if-you-want-to-know-about-muslim-womens-rights-ask-muslim-women (2019년8월4일)
[6] The Muslims. Graham Judd, The Frontline, 2002. Youtube, https://youtu.be/j9o-fS5dtu4.
[7] 안신 (2009), 무슬림 여성의 히잡착용에 대한 종교현상학적 해석, 아시아여성연구, 48(2).
[8]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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