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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기고]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다섯 가지 오해와 편견들 1편

2019년 상반기에는 난센 자원활동가들로 구성된 리서치팀에서 난민인권과 관련된 중요한 4개의 주제를 가지고 그룹활동을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난센 활동가들이 활동하면서 절실히 필요했고 궁금했지만 바빠서 찾아볼 수 없었던 주제들을 정하여 자원활동가님들께 조사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결과물을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다만 고민스러웠던 이슈들을 함께 배우면서, 이후에 누군가가 탐구를 이어갈 수 있는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리서치에 참여해주신 자원활동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들은 주제별로 일주일에 한번씩 참여 코너에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 이 글의 내용은 난민인권센터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첫번째 주제로는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다섯 가지 오해와 편견들>입니다. 작년의 예맨 난민 입국 이후 무분별하게 증폭된 난민 혐오는 무슬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와 무슬림에 대한 왜곡되고 근거 없는 컨텐츠들은 무분별하게 쌓여가는데, 정작 그것들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할 정보와 자료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누구나 들어보았을 무슬림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들 5가지를 추려서 조사해 보았습니다. 이중 첫번째와 두번째 주제를 먼저 소개합니다.

 

     ∨  "이슬람 문화권과 아랍 지역은 동일한가? 대부분의 무슬림은 아랍인인가?"

       ∨  "이슬람은 교리적으로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종교인가?"

       ∨  "이슬람은 여성차별적인 종교인가?" 

       ∨ "무슬림 인구가 현저히 낮은 국가가 자유롭고 안전하다?"

        ∨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는그들 간의 분쟁에 대하여" 

 

 

[기고]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다섯 가지 오해와 편견들 1편

 

글 : 자원활동가 이상아, 김규리

 

들어가며

 

법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 11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무슬림은 한국인 교도 3 5,000 명을 제외하고 14 3,5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전체 외국인 (175 6,000) 10 1명꼴이다. 기독교, 불교에 비해서는 적은 숫자지만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가 조직된 1965 3,700명에서 50년간 54 이상 늘어난 수치이다. 무슬림이 증가하면서 이슬람 문화는 우리 사회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서울 이태원에는 이슬람 사원이 있고, 할랄 식당도 생겨나고 있다. 여러 호텔에서는 무슬림 관광객을 위한 기도용 카펫, 할랄 메뉴 등이 제공되고, 기도 방향을 표시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는 이슬람 문화가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자연스레 우리 삶에 녹고 있는 이슬람 문화,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슬람에 대해 오해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오해는 무슬림을 개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 집단 경우 이슬람이라는 속에서 개인을 인식하도록 한다. 특히 9·11 사태 이후 이슬람은 미디어에서 위험한 종교로 묘사되어 왔으며, 무슬림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이슬람공포증(Islamophobia) 혹은 이슬람 혐오의 형태로 증폭되어 왔다. 이슬람 혐오란 이슬람을 편협한 사상 체계를 가진 획일적인 종교로 보면서, 이슬람과 신도인 무슬림을 공포와 배척의 대상으로 보는 편견을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2018 제주에 입국한 예멘 난민을 배척하자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 청원에 수십만 명이 동참하면서 이슬람 혐오가 이슈된 있다. 이는 난민 배척 논리의 바탕에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민배척론자들은 5차례 집회를 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제주에서 난민이 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1].  이와 같이, 우리는 무슬림들을 알아가기도 전에 그들과 우리 사이에 장벽부터 세운다. 장벽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이라는 구실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이슬람과 신도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이슬람에 대한 오해는 비무슬림들뿐만 아니라 이슬람을 실천하지 않는 '표면상의' 이슬람 지도자 (정치가 혹은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형성되기도 한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독실한 무슬림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행위는 이슬람 신앙의 근간이 되는 쿠란(이슬람교의 경전) 하디스(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 전승) 가르침과 완전히 모순된다. 안타깝게도 많은 소위 무슬림 지도자들은 쿠란과 하디스에서 설명하는 이슬람을 따르지 않고 있으며, 이는 신성한 종교에 오해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렇듯 이슬람과 거리가 이슬람 지도자들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와 반감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람들 사이에 종교적 장벽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북한이 공식적으로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과 유사하다.

 

오해 여부를 떠나서, 무슬림 세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무슬림 집단 테러리스트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이슬람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 사실과 관계없이) 무슬림들 누가 '선하고 악한지' 구별할 없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없기 때문에, 테러리스트 혹은 반인권적인 사람들과 접촉할 위험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들을 전체적으로 혹은 완전히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러한 행위는 정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인권 문제를 야기한다. 대한민국이 안타깝게도 해마다 발생하고 있는묻지마 살인으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은 가정일 뿐이다).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소수이고 그들은 한국인을 전혀 대표하지 않지만,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은 모든 한국인을 위험 대상으로 인식할 있다. 우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차별받고 거절당하게 것이다. 누구도 한국인을 개인 자체로 보지 않고 오해와 공포로 왜곡된 렌즈를 통해 보아 결국 모든 한국인을 인류의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억울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가정일 뿐이지만 오늘날의 무슬림에게 이는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의 편협한 시각으로 인해 무슬림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하지 않도록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올바른 인식을 위해 이슬람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와 편견 5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이슬람 문화권과 아랍 지역은 동일한가? 대부분의 무슬림은 아랍인인가?

 

먼저 살펴볼 오해는, 이슬람 문화권은 아랍 국가들이고, 대부분의 무슬림은 아랍인이라는 오해다. ‘ 거기서 거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기 쉽고 이슬람 문화권과 아랍 문화권은 동일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중동 지역이 아랍 국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란이나 터키는 중동 지역에 속해있지만, 아랍 국가는 아니다. 그리고 중동 지역에 있는 국가는 무조건 이슬람 국가라고 생각하거나, 이슬람 국가가 중동 지역에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파키스탄의 경우에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중동 지역에 속하지 않고, 아랍 국가도 아니다. 아랍, 중동, 이슬람 가지의 개념은 유사해 보이지만 뚜렷하게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개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먼저, ‘아랍이라는 말은 아랍어를 쓰고, 같은 아랍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들을 일컫는다. 터키나 이란처럼 각국 나름의 언어를 갖고 있고, 아랍 문화와는 다른 본연의 문화를 가진 국가는 중동 국가로는 분류되지만, 아랍 문화권에 속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아랍 문화권의 국가들이 결성한 지역 기구를 아랍 연맹이라고 부른다. 아랍 연맹에는 2008 기준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리비아, 수단, 모로코, 튀니지, 쿠웨이트, 알제리, 바레인, 카타르, 오만, 아랍에미리트, 모리타니, 소말리아, 팔레스타인, 지부티, 코모로 22개국이 가입되어있다. 모로코나 알제리, 튀니지 같은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인종적으로는 아랍인이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다는 이유로 아랍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다음으로중동이라는 개념에 대해 살펴보자. 중동(Middle East)이라는 표현은 1900년대 영국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19세기 영국이 세계를 지배할 당시, 대영제국에 있어 최고로 중요한 식민지였던 인도를 기준으로 세계지도를 보면 서쪽 영국이 있고, 중간쯤에 아라비아반도, 이집트, 이라크 등이 있어서 지역을동쪽도 아니고 서쪽도 아니고 동쪽 중간이라고 해서 중동으로 정했다. 서구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중동이라는 표현이 쓰이고 있다. 중동 국가는 이라크, 시리아, 오만, 이란, 예멘, 키프로스, 이스라엘, 쿠웨이트,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터키, 요르단, 바레인, 팔레스타인, 레바논,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17개국이고, 때때로 아제르바이잔,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조지아가 포함되기도 한다.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에서 제안했던 G8 회의에 발표한 대중동 권역 나라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알제리, 리비아, 수단, 튀니지, 모리타니, 지부티, 모로코, 서사하라, 소말리아, 소말릴란드 12개국이다.

 

전세계 무슬림 인구 분포 (출처 : http://teachmideast.org/articles/arab-middle-eastern-and-muslim-whats-the-difference)

마지막으로이슬람 대해 살펴보자. ‘아랍이라는 개념이 민족적이고, ‘중동이라는 개념이 지역적인 개념이었다면 이슬람이라는 개념은 종교적인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이슬람 세계라고 부르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이슬람 공동체를 말한다. 이슬람 국가란, 이슬람의 신앙을 실천하는 무슬림이 사회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국가들을 말한다. 현대의 지정학적 의미에서는 합의된 포함 기준은 없지만, 이슬람이 널리 퍼져있는 국가를 가리킨다. 이슬람 세계의 역사는 1400년에 달하며, 예술, 과학, 철학, 기술의 진보 다양한 사회 정치적 발전을 포함한다.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보고, 경전은 쿠란이며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말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종파로는 전체 80~90% 차지하는 수니파와 이란이 대표하는 시아파가 있다. 시아파는 10~20% 차지하는데, 수니파와 시아파에 대해서는 다섯 번째 질문에서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2017 기준 무슬림은 15 7천만 명으로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이슬람 국가는종교라는 포괄적 개념이기에 많은 나라가 속한다.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팔레스타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중동 국가뿐만 아니라 세네갈, 기니, 부르키나파소, 시에라리온, 알바니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다양한 나라가 속해있다.

 

가지 개념의 공통점을 찾는다고 하면 대다수 국민이 이슬람을 믿으며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 주로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랍 문화권, 이슬람 국가, 중동 국가는 다른 개념이다.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모든 이슬람 국가들이 아랍 문화권도 아니고, 대부분의 무슬림이 전부 아랍인은 아니다.

 

 

2. 손에는 쿠란, 손에는 . 이슬람은 교리적으로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종교인가?

 

한국인 학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ISIS들의 신념에서 목격할 있듯이 그들이 따르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근본적으로 잔인한 법률을 따른다. 이슬람은 ISI, Al Qaeda 등과 같은 집단들을 촉진한다. 무슬림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잔인하고 비인권적인 행위를 행하도록 세뇌당했다. 무슬림들은 스스로를 죽이면서까지 테러를 저지른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무슬림은 기본적으로 지하드의 폭력성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있다.[2]그의 주장은 무슬림들의 폭력지향성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를 나타낸다.

 

쿠란을 통해 이슬람 폭력지향성에 대해 제대로 알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면 쿠란은 전체적으로 읽어야 한다. 쿠란 3:7 에는그대에게 (쿠란) 계시한 분이 하나님이시며 […] 우리는 그것(쿠란) 믿나이다 모든 /전체는 우리의 주님으로부터 왔나이다라고 적혀 있다. , 이슬람 신앙의 근본은 쿠란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쿠란에서 맥락적 이해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그만큼 성서가 부분적인 이해만으로는 잘못 이해되고 잘못 해석되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쿠란은 전체적인 의미를 왜곡하고 구절을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을비유적인 것을 따라 이설을 조성(쿠란 3:7)”하는 사람들이라 칭하면서 그들을 비난한다. 이슬람 혐오주의자들 혹은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 신앙과 거리가 원리에 입각하는 이유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용이한 구절만 선별하여 쿠란을 잘못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란에는 분명 그들을 발견한 곳에서 그들을 살해하라 (2:191)“라는 구절이 있다. 이슬람이 폭력적인 종교라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애용되는 구절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구절을 전체적인 맥락 (2:190-194) 속에서 읽는다면 의미는 달라진다.

 

190. 너희에게 도전하는 하나님의 적들에게 도전하되 그러나 먼저 공격하지 말라 하나님은 공격하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으시니라 191. 그들을 발견한 곳에서 그들을 살해하고 그들이 너희들을 추방한 곳으로부터 그들을 추방하라 박해는 살해보다 가혹하니라 그들이 하람사원에서 너희들을 살해하지 않는 그들을 살해하지 말라 그러나 그들이 그것에서 살해할 때는 살해하라 이것은 불신자들에 대한 보상이라 192. 만약 그들이 싸움을 단념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관용과 은총으로 충만케 하시니라 193. 박해가 사라질 때까지 그들에게 대항하라 이는 하나님을 위한 신앙이니라 그들이 박해를 단념한다면 우매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적대시 하지 말라 194. 살생이 금지된 살은 성스러운 달이거늘 살생을 금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공격할 때는 그들이 공격했던 것처럼 그들을 공격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공경하라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신앙인들과 함께 하시니라

 

이드 알피트르(라마단이 끝나고 열리는 축제)에서의 아이들 (출처 : https://zeenews.india.com/news/photogallery/eid-mubarak-1632090)

 

이렇듯 전체 구절을 읽으면 이슬람을 폭력적인 종교로 규탄하는 이들이 전후 구절을 제외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절만 선별했다는 것을 있다. 문제의 구절이 맥락 속에서 재검토되었을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해도 된다는 의미는 찾아볼 없다. 다만 무슬림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자위의 차원에서 투쟁이 허락된다는 뜻일 뿐이다. 구절의 배경이 시기를 살펴보면 보다 이해할 있을 것이다. 무슬림들은 메카에서 그들을 박해하는 이들을 피해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메디나로 피난했다. 유대인들은 메디나에 대거 유입한 무슬림 피난민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허락해 주었으며, 무함마드가 메디나의 헌법을 작성하면서 유대인과 무슬림이 단합된 하나의 세속국가가 건립될 있었다. 그러나 메카로부터 무슬림들을 박해했던 자들이 메디나로까지 쫓아와 무슬림들을 살해하면서 2:190-194 구절에 언급된 자위 차원의 폭력이 무슬림들에게 허락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기록된 구절이그들을 발견한 곳에서 그들을 살해하라이기 때문에 '이슬람의 이름으로 비합리적인 살해가 허락되었기 때문에 무슬림은 획일적으로 폭력적인 집단'이라는 평가가 잘못되었는지 있다.

 

하디스를 통해 이슬람 반유대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기

 

하디스에서는나의 뒤에 유대인이 있다 와서 그를 죽여라라는 부분이 있다. 이슬람이 반유대주의적인 종교임을 입증하려고 흔히 이용되는 구절이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로부터 전해내려온 구두 보고인 하디스는 매우 복잡하다. 하디스에 대한 서술은 다양하며, 하나의 버전에서 기록된 특정 서술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서술의 모든 전달 연결고리들을 세심히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유대인과 관련된 기록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관련된 모든 전달 연결고리를 검토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의 하디스에 대한 다른 버전의 서술들을 찾아보면, 부분은 예수의 부활과 예수 다짤(Dajjal; 메시아적 인물) 간의 종말론적 투쟁을 묘사하는심판의 대한 이야기 일부이다[3]. 이야기는 전쟁에 임하는 군사 집단 간의 투쟁에 대한 내용이며, 쪽은 명백히 정당하지 못한 집단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이 아닌 것으로 서술된다. 나아가 종교 간의 투쟁도 아니다. 무슬림들은 사실상 모든 의로운 기독교인, 유대인 무슬림은 모두 단합하여심판의 예수를 따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문제의 하디스 기록이 가리키는 유대인은심판의 투쟁하는 군사 집단 의롭지 못한 다짤(Dajjal) 집단의 구성원이다. 다짤 집단은 다짤을 신으로 섬기는 7만여 명의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대인들의 인구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유대인은 무슬림들 기독교인들과 함께 아브라함계의 3 신앙(Abrahamic Faiths) 이루어 다짤 집단과 투쟁하는 의로운 군사 집단에 속한다. 결국 하디스가 가리키는 사람은 무고한 민간인이 아니라 바로 다짤 집단의 병사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짤 집단의 종교적 정체성은 무슬림들을 포함한 모든 종교의 악인들이다. 하디스에서 언급된 사람이 다짤 집단의 구성원 하필 유대인인 것이며, 그는 문맥상 다짤 병사를 대표하기 때문에나의 뒤에 유대인이 있다 와서 그를 죽여라라는 부분은나의 뒤에 진리를 거역하는 자가 있다혹은나의 뒤에 다짤 병사가 있다 해석할 있다. 따라서 하디스에는 '유대인을 살해해도 된다'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의 하디스를 근거로 이슬람의 반유대주의 성격을 주장하는 이슬람 혐오주의자들 혹은 극단주의자들은 하디스의 특정 기록에 대한 문맥을 도외시하여 이슬람 신앙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해석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슬람 교리에서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 자체로 이슬람을 폭력과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모든 아브라함계의 신앙(이슬람, 기독교, 유대교)심판의 모든 악한 세력과 투쟁을 이끌 선지자에 대한 확립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같은 뿌리를 갖는 종교 모두 의로운 세력에 속하는 신자와 악한 세력 (혹은,—이슬람교에 의하면다짤 집단) 속하는 자들의 운명을 구별 짓는 종말론적 통로를 확실히 한다. 종교 모두 의인과 악인을 확실히 구별 지으며 집단 간의 투쟁을 서술한다. 이슬람이 전쟁을 허락하고 계획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슬람이 폭력적인 종교라고 평가한다면 기독교와 유대교에도 같은 평가가 이루어져야 것이다.

 

오해를 근간으로 하는 이슬람 혐오주의자들과 극단주의자들의 입장

 

이슬람을 폭력적인 종교로 규정짓는 자들은 이슬람 테러의 요인에 대하여 크게 가지의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서구의 억압 착취와 그로 인한 가난 등이 무슬림들의 테러를 부추겼다는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폭력성을 지닌 종교라는 설명으로 이슬람 내부에서 원인을 찾는다[4].

 

이슬람 혐오주의자들은 제시된 가지 요인 후자로 결론을 내린다. 요인을 살피기에 앞서, 요인의 대상인이슬람 테러 대한 이슬람 혐오주의자들의 몰이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쿠란의 살해 관련 구절과 하디스의 유대인 살해 관련 기록을 분석하면서, 소위 이슬람 테러라 불리는 행위는 쿠란과 하디스를 부분적으로 이해하여 잘못 해석된 것이고 이슬람 교리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행위라는 것을 설명했다. 이슬람 혐오주의자들은 분석대상인이슬람 테러자체를 혼동하고 있으며 따라서 요인을 살필 필요도 없이 이슬람 종교 자체가 폭력성을 지닌 종교라는 그들의 결론이 잘못된 추론이라는 것을 있다.

 

그러나 요인을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요인에 대한 설명 역시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테러의 외부적 요인을 살펴보면, 외부적 요인은 십자군 전쟁, 서구 제국주의,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전, 서구와 미국의 정치적 개입 폭압 등이다[5]. 이슬람 혐오주의자들은 이러한 요인들은 이슬람의 테러를 부추긴 측면이 있긴 하나, 핵심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슬람 테러가 십자군 또는 서구나 미국 등에 원인이 있다면 이러한 요인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슬람에 테러리즘의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났어야 하는데, 이슬람은 창시자인 무함마드 시절부터 테러리즘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슬람 혐오주의자들은 이슬람 테러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내부적 원인을 제시한다. 논리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전쟁과 폭력을 계획하고 수행했으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슬림들은 결국 비합리적이더라도 폭력을 사용하도록 세뇌된 것이다. 학자는 무함마드의 폭력지향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무함마드를 조사해 보면 그는 폭력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직접 폭력을 사용했다. 그의 생애 동안 무함마드는 스물아홉 번의 실제 전쟁을 승인했으며 서른아홉 번의 전쟁을 계획했다. 그는 또한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도 살해하도록 승인했다.[6]유대인에 관한 하디스 기록을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학자의 주장대로이슬람은 유대인 살해하는 것을 허락한다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을 있으며, 아브라함 산앙의 선지자가 전쟁을 승인하거나 계획했다는 자체로 종교를 폭력적인 종교로 단정짓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평가이다. , 이와 같은 편협한 평가는 쿠란이나 하디스를 선별하여 해석한 것처럼 종교의 역사적 사건들 역시 선별하여 해석한 결과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무슬림들의 전쟁과 폭력 행위 혹은 계획들을 맥락 속에서 이해한다면 이슬람이 교리적으로 폭력적인 종교임을 증명하는 해석은 없다.

 

결론

 

쿠란은 테러리즘과 비무슬림에 대한 폭력을 장려하지 않으며 이슬람 교리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믿음은 동일하지 않다. 복음 전도(Evangelization) 백인 남성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아프리카 사람들을 착취하고 노예제도를 창시한 유럽은 기독교 국가였다. , 노예제도는 15세기에 시작되었는데 유럽에서 국가와 종교를 분리시키기 위한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 웨스트팔렌 조약은 1648년에 체결되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 신자들은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기본권으로 인정된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라는 종교는 교리적으로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종교이며 따라서 모든 기독교인들은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사람들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기독교인의 역사와 경향은 종교 자체를 대표하는 진리라기 보다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는, 혹은 자신이 믿는 진리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극단주의 지도자들의 행위 역시 이슬람의 잘못된 해석의 표출이다. 이슬람을 올바르게 대표하지 않는 인물들을 이슬람과 일치시켜 이슬람이 그들의 선동적 언행과 잔인한 폭력 행위에 기인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인식일 수밖에 없다. 이슬람 교리를 문맥에 맞게 이해하려는 이슬람 신도들은 잊히고, 이슬람 교리를 실천하지도 않는 소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조성하는 공포감에 의존하여 내리게 되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교리와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믿음을 동일시하는 오류와 공포가 우리의 관점을 지배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1] 차승일 (2018), 예멘 난민 사태로 무슬림 혐오, 무엇이고 문제인가, 마르크스 21(27), 1.

[2] 안승오 (2016), 이슬람 테러리즘의 요인 분석, 신학과 선교 49, 149.

[3] The Hadith And The Myth Of An Antisemitic Genocide In Muslim Scripture, https://www.huffpost.com/entry/the-jew-killing-hadith-and-the-myth-of-an-antisemitic_b_58da7e56e4b0e96354656eb6, (201984)

[4]안승오 (2016), 이슬람 테러리즘의 요인 분석, 신학과 선교 49, 130.

[5] Ibid.

[6]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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