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인권센터 이현주
타국에서 난민신청 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 일까요?
모국어로도 어렵게 들리는 법적인 절차를,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로 설명 들을 수 밖에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 까요? 본국에서 자신이 겪은 일과 앞으로 겪게 될 상황을 서투른 외국어로 온전히 설명해야하는 건, 과연 가능할까요? 난민신청자는 자신이 어느 단계의 절차를 밟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해 줄, 그리고 자신의 말을 ‘제대로’ 전달해 줄, 전문 통번역인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난민법과 난민협약도 그 조력을 권리로서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 통번역을 통한 상세한 안내는 한국에 있는 난민신청자들에게 항시 보장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백에 가까운 시스템의 미흡으로 피해사례가 끊임 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통번역 조력을 보장받지 못한 신청자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난센이 법률조력을 해온 해나(가명)씨의 사례를 통해 들여다보겠습니다.
해나씨의 첫 번째 난민신청, 영어로 진행한 첫 면접.
해나씨의 모국어는 친어입니다. 첫 번째 난민신청에서 해나씨는 “영어로 면접해도 괜찮냐”는 조사관의 물음에 모국어 통역을 요청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난민신청을 한 해나씨는 면접조사를 위해 모국어 통역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 아니라, 혹시나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출입국 공무원의 질문에 감히 ‘아니오’ 라고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제 3국에서 머물며 몇 개월 동안 배운 영어는 제한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정도일 뿐, 당연히 과거의 사건을 세세하게 묻는 질문에 답할 수준에는 못 미쳤습니다. 그러니 사건들의 정황을 일관성 있게 진술하지 못하였고, 자연스럽게 불인정이 결정되었습니다. 잇따른 이의신청 역시 같은 이유로 기각결정이 났고, 다행히 소송에서는 모국어 통역을 지원받았지만 진술내용이 처음 면접과 다르다며 그 진실성을 의심받고 패소판결을 받았습니다.
해나씨의 두 번째 난민신청,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통지서들
소송절차까지 끝났지만 본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해나씨는 자신과 같은 국적, 같은 사유로 난민 신청했던 유진(가명)씨가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사망했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사망원인은 자살이었지만 타살로 보이는 정황과 증거가 있었습니다. 해나씨는 두려움에 다시 한번 난민신청을 했습니다. 본국의 가족들도 ‘경찰과 군인들이 때마다 찾아와 해나씨의 소재를 묻고 있으니, 절대 돌아오지 말 것’을 당부하는 상황이었으나, 법무부는 이번에도 ‘귀국 시 박해 받을 위험이 없어 보인다’며 불인정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의신청에서도 같은 결과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이 또한 영어와 한국어로만 설명되었다는 점입니다. 출입국외국인청에는 난민신청 접수, 결과통지 발행 및 기타 문의 응대를 위해 상주하는 영어 통역이나 소수 언어 통역이 없습니다. 해나씨는 그 내용도 명확하게 설명받지 못한 채 ‘결과통지서를 수령했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했습니다. 서명을 하라는 요구도 한국어로만 받았습니다. 이후 절차에 대한 안내는 없었습니다.
많은 난민신청자들이 이런 과정을 겪습니다. 불인정통지서를 받으러 갔다가 아무런 설명없이 “서명하라”고 요구하여 서명했더니, 그게 이의신청을 접수한 것이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수도 없습니다.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서명하는 난민신청자들 잘못이 아닙니다. 조금만 밉보이는 행동을 하면 바로 고성과 욕설이 날아드는 출입국외국인청에서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신청자들은 담당 공무원들을 믿고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주 놓입니다. 해나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거품이 된 두 번째 난민신청, 기본적인 안내와 통역만 있었더라도!
이날 해나씨가 받았던 ‘이의신청기각결정통지서’에는 결정안내와 더불어 이후 소송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소제기기간, 즉, 행정처분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결정 통지를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의신청기각결정통지서에는 한국어와 영어로 된 한문장의 안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공무원에게 물어보았지만, 공무원은 손가락 3개를 들어 보이며 “three months”라고 하고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해나씨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난센을 통해 변호사를 구했지만, 소제기 기간을 단순히 3개월로 생각하고 있던 터라 90일에서 이틀을 넘겼습니다. 난센과 변호인단은 해나씨가 영어와 한국어가 미숙한 상황에서 이의신청기각결정서를 통번역 없이 받으면서 행정소송기간을 놓친 것에 대해 정상 참작을 요청하며 그러한 실수로 해나씨의 난민사유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을 때 예견되는 신변의 위협이 얼마나 위중한지 증거자료와 본국정황조사자료를 제출하며 호소했지만 법원의 잣대는 기계적인 중립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해나씨는 세 번 째 난민신청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고 다행히 인도적체류를 허가 받았습니다. 해나씨는 늘 불안한 마음으로 이 결정이 나기까지 지난 수 년간 미래에 대한 꿈 꾸기를 포기해야했습니다.
기본도 안된 한국의 난민인정절차,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난민인권센터의 법률지원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의 안내와 통번역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한국의 난민신청절차에 대한 안내, 그리고 한국어로만 발급되는 불인정사유서와 영문만 병기된 수많은 결정통지서, 소송서류들의 통번역…. 기본적인 안내와 통번역만 있었더라도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안타까운 일들이 수두룩 합니다. 체류와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명령들(예를 들면 출국명령)을 받아도 당사자가 출입국외국인청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바뀌지 않아온 현장 공무원들의 고압적인 태도 역시 신청자들을 위축시키고 있음이 빈번하게 접수됩니다.
난민신청절차는 신청자 대부분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상세한 안내, 본인이 충분히 이해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정확한 통번역이 제공되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특히 난민면접은 난민신청자가 자신의 난민사유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어야 함은 물론, 당사자의 모든 진술이 왜곡 없이 정확하게 기록되어야 합니다. 유일한 난민심사인데다가, 면접 결과가 난민인정 여부 결정의 핵심이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모국어 통역이 필수적입니다. 또 심사와 관련한 모든 결정들은 당연히 그 근거와 이유가 제시되어야 하는데, 그래야 당사자가 그 이후의 단계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과 이후 절차에 대한 안내는 명확한 설명을 위해 모국어 통번역 제공이 필수입니다. 그 당사자인 난민신청자가 소통한 내용을 이해했음을 확인하는 절차 역시 철저한 검증으로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남용적 재신청자를 막기위해 선별적으로 재신청을 허락할 계획을 내비치는 법무부는, 난민법에 명시된 제대로 된 통번역 제공을 보장하고 재신청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의 오류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습니다.
난민면접 과정에서 난민신청자에게 모국어 통역을 보장하고
난민 불인정 결정 통지 과정에서 난민신청자에게 모국어 통역을 보장하며
난민 불인정 결정 통지서에 난민신청자의 모국어 병기를 보장할 것을
법무부에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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