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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2019 인종차별철폐의 날 참가 후기-'전달된 말과 지워진 말' 퍼포먼스를 함께 하며

2019년 3월 17일에 열렸던 인종차별철폐의 날 공동행동 '모두의 목소리! 모두를 Respect' 행사에 자원활동으로 함께해 주신 이민혜님의 후기를 공유해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직 쌀쌀한 3월의 일요일, 저는 <인종차별 철폐의 날> 공동행동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행사에서 맡은 역할은 부스 진행과 전달된 말과 지워진 말이라는 퍼포먼스에 공연자로 참여하는 것이었는데요. 도착해보니 보신각엔 이미 여러 여러 부스가 늘어서 있었고, 앞 무대에서는 공연팀이 리허설을 진행하는 중이었습니다. 난센 활동가님을 만나 퍼포먼스에 참여할 다른 자원활동가분들과 함께 안무가분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퍼포먼스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듣자 곧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대를 채우는 게 쉽지 않은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퍼포먼스는 우선 진행되는 7분 가량의 무언극 뒤에 봉사자들이 합류해 자유로운 동선으로 정해진 안무 루틴을 반복하는 구성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안무가님이 강조하는 자유롭게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 없었답니다.^^ 앞에서 공연하는 메인 댄서 뒤에서 움직이는 수많은 몸 중에 하나로 묻히고 싶었는데현대무용식 안무와 공연에 참여하는 봉사자의 수를 생각하면 뒤에 묻히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울 듯 싶었어요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된 안무 연습이었지만, 안무가님의 구령에 따라 팔과 다리를 마구 풀면서 몸도 마음도 조금씩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롱패딩을 입고 올 정도로 살짝 쌀쌀한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을 한 두 분은 어색하게 굳어 있는 우리를 알고 있다는 듯 쉴새없이 말을 걸고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어주셨고, 곧 편안한 분위기에 그냥 한 번 해보지 뭐하는 가벼운 마음마저 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도 공연이 점점 가까워지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리고, 바람도 점점 쌀쌀하게 변해 갔습니다. 벗어뒀던 패딩을 챙겨입고 음악에 안무를 맞춰보는데, 안무 순서가 갑자기 가물가물 하더니 음악도 영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무대 옆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안무 연습을 하다가, 순서가 가까워져 무대 앞 객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요. 먼저 무언극이 진행되고, 그 이후 음악이 시작되면 객석에 앉아있던 공연자들이 무대로 뛰어나가 안무를 반복한 후 뒤에는 객석에 앉은 관객들과 함께 춤추며 공연을 마무리하는 순서였습니다. 앞에서 난민 심사 과정을 표현한 무언극이 진행되는데, 난민 역할을 맡은 공연자의 몸에 거침없이 칠해지는 까만 물감에 객석이 술렁이는 게 느껴졌습니다. 옆에 앉은 가족이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공연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관객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는데요, 무대 위 목각인형처럼 움직여지고 온몸에 물감칠을 한 난민 역할의 공연자는 심사자에 의해 종이로 둘둘 감싸지고 포장되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무대 위 아래 모두에 적막이 감돌고, 곧 나비가 번데기 밖으로 나오듯 종이를 찢고 나오는 움직임과 함께 음악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안내에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갔고, 곧 음악에 맞춰 안무가 시작되었어요.

 

 

저에게 무대는 예상대로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안무가 변하는 지점을 살짝 놓치기도 했고, 안무를 모두 멈추고 무대 위를 그저 달려다녀야 하는 순서에서는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순서가 끝을 향하면서 무대에 합류해주신 분들과 함께 아무렇게나 춤을 추면서 어깨의 무게가 점차 덜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무대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가족도, 옆에서 바라만 보시던 분들도 모두 무대로 나와 함께 손뼉을 치고 흥대로 몸을 움직였습니다. 채워지는 무대와 객석의 열띤 반응에 추위도 점점 사라져갔어요 .

 

어색함을 이기고 함께 무대에 올라와준 관객분들과, 온 몸에 까만 물감칠을 하고서도 수고했다며 환하게 웃으시던 안무가분들, 그리고 관객석 뒤에 자리한 색색의 깃발들.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와 행사장을 보자 새삼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난민 뿐 아니라 이주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목표 아래 소수자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에 마음이 든든해졌구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울려퍼지는 반대 집회의 구호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관심 역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부스마다 관심을 가지고 서명에 참여하거나 굿즈를 구매하려는 분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아 기뻤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행사에 참여하면서 가장 크게 마음에 남았던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존재였습니다. 무대에 함께해 준 관객들, 피켓과 깃발을 든 채 구호를 외치며 같이 행진하던 사람들, 길거리에서 응원하던 시민들 덕에 따뜻한 마음으로 행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지요. 이날응 저에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답니다.  

 

 

자원활동가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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