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지
11월,
난민아동지원사업을 위해
평택, 파주, 서울 등지를 돌아다녔습니다.
집을 방문해서 요즘 사는 이야기도 듣고, 아이들도 만나고.
그러다가 첫눈을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주말에는 광장으로 주중은 사무실 등지에서
투쟁~ 투쟁~ 하며 바쁜 11월이 지나갔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도망치고 싶은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던 한 달이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산들이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분, 초를 가르며 일하는 일상이 몇 주씩 이어지다 보면,
어떤 날은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가능하면 거리 두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50분 일하고 10분 쉬기를 하려고 하는데 일이 시작되면 그러기가 쉽지 않네요 ㅠㅠ.
그래서 최근 혁신파크 4층 단체 분들과 1주일에 한 번씩 영화를 보며 점심을 먹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라도 쉼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갈수록 법무부의 심사뿐만 아니라 난민에 대한 권리 제한이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위법하게 구금되거나 강제송환(또는 시도) 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어요.
난민심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법무부 심사뿐만 아니라 법원 단계에서의 심사도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잘못된 기반이 사법 체계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허술하고 엉망인 줄은 알았지만, 참 일관되게 허술하고 엉망이구나 하며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가정에서 들리는 이야기도 더 가볍지 들리지 않네요..
사무국에는 혐오 발언과 욕설 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전화는 대화가 아닌 감정배설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화가 납니다.
여전히 재정은 많이 모자랍니다. 이리저리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데 모자란 재정이 금방 메워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11월.. 돌아보면...
그 사이사이를 다른 의미로 채워주신 얼굴들이 있었네요.
월담을 통해 오랜만에 회원님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자원활동가분들께 손편지를 쓸 기회도 있었어요.
유급연차를 쓰고, 편도 2시간 이상을 달려 운영위원회를 하러 오는
운영위원회 분들을 만나 조언을 받는 시간도 있었고...
난센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활동가들을 응원해주시는 목산 교회 선생님들도 기억납니다..
또 난민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해주신 분들도요..
12월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류은지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눈물, 또 눈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친구를 만날 때도, 노래를 배우다가도, 심지어 사무실에 방문한 손님들과 대화를 하다가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마치 눈물샘이 고장난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데, 슬퍼서인지, 답답한 건지,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마음을 돌아보지만 아직도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11월 월담이 있던 날, 난민인정을 받은 R씨가 치킨을 들고 갑자기 난센을 찾아오셨습니다. 반가웠지만 저녁에 있을 월담준비로 정신이 없던 터라, 분주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된 R씨는 제게 믿음과 신의 때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R씨의 이야기를 반쯤 흘려듣고 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전에는 제게도 하고 싶고 기대했던 것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쉬고 싶다 말했습니다. R씨는 제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시며 저를 다독여주셨고, 마지막에는 저를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며칠 간 카톡을 통해 제게 신의 축복과 평안을 빌어주셨습니다.
활동가이야기에 고민을 적을 때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답이 나온 후였고, 이러저러한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걸어가겠다는 다짐들을 나누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며칠 버티다 꼬꾸라지고,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나 걷다가 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2016년을 마무리하는 저는, 그냥 이렇습니다.
“일의 경우 대부분은 어렵습니다. 복잡해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무의미해서 어렵기도 합니다.”
난센을 소개하다보면 마치 제가 매일매일 의미가 살아서 툭툭 튀어나오는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도 있는데,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단순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들로 채워지는 날이 더 많습니다. 숨 쉬고 일만 한 것 같은데도 하루 동안 뭘 한 건지 모르게 지나가는 날이 있고, 그런 날들이 오래 이어지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살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11월에는 지원하던 난민 한 분이 갑자기 강제송환을 맞닥뜨리고, 결국 보호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 본인도 난센도 모른채로 벌어지는 일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대답해주지 않고 시간을 끄는 사람, 그냥 못알아듣는 척 하는 사람, 자기 일이 아니라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 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나는 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활동가들이 “왜 이렇게 힘들지" 하다가, “내가 너무 부족해서가 아닐까"하면서 “내가 이 일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봐"하다가 “그래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하다가, “그마저 그냥 나만을 위한 욕심이면 그만 두는 게 맞지 않을까"하는 속에 살게 되는데, 어떤 좋은 친구가 “떠나야 한다면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을 때 가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맞아요. 맞습니다. 누가 뭐라든, 내가 뭐라든 친구 손 잡고 같이 일 하다가, 언젠가 정말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날 수 있을 때 보내고 싶고, 떠나고 싶어요.
일할 수 있도록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주시는 손길들, 토닥토닥 세워주시는 격려들, 곧 헤어짐을 앞두고도 난센의 내년을 걱정하고 또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 12월 에도 저는 아마 이것들 때문에 여기에 있을거에요. 빠샤 빠샤!
사진 혹은 이름으로만 알고 지내던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아직 세상에 태어난 지 3주밖에 안 되 눈도 못 마주치는 갓난 아기 벤자민,
감기에 걸려 엄마 가슴팍에만 찰싹 달라붙어 있던 나이에 비해 체구가 컸던 코찔찔이 노부,
좋아하는 미술수업도 빼먹고 어머니를 위해 이란어-한국어로 다소곳하게 앉아 능숙하게 통역을 해주던 재능 많고 어른스러운 재클린,
4남매중 첫째로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나이에 타국에 와서 그런지 슬픔을 아는 눈동자를 지닌 아미,
하지만 태권도복을 입고 외출하기 직전엔 앞머리를 신경써서 빗는 곱슬곱슬 예쁜 긴머리를 지닌 영락없는 수줍음 많은 소녀,
그런 누나 말을 잘 듣는지 안 듣는지 딱 그 나이의 장난끼 많은 크고 반짝이는 눈으로 한국말을 곧 잘하던 둘째 바시르,
그리고 각자의 서로 다른 개성과 사랑스러움을 지녔던 모든 아이들.
부디 이 아이들이 행복해지길, 건강해지길, 편안해지길,
어디를 가든 항상 보호받길,
누구를 만나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받아들여지길,
자신의 존귀함을 잊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진부하게도, 11월 또한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12월도 빠르게 지나가는 중이지요.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는 이유를 누구는 새로운 자극 없이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그 이유와는 다르게 이 두 달은 ‘하 수상한 시절’의 새로운 사실이 끊임없이 드러났으며, 개인적으로 기다려오던 날들을 연속하여 마주쳤던 기간이었습니다.
새로움과 기다림의 시기가 몰아서 지나가다 보니 더디던 시간은 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흘러가는 듯합니다. 그렇게 저 멀어 보였던 ‘그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때’는 바로 난센에서의 마지막 날이지요. 12월을 마지막으로 저는 난센을 떠납니다. ‘그 때’를 자연스럽게 만날 거라 생각하지만, 사무국에서의 날이 손에 꼽을 만큼만 남다 보니 매 하루를 어찌 보내야 할지 고민도 해봅니다.
진부하게도, ‘하루를 잘 살자’라는 대답만 알 뿐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가들과 난민분들도 모두 하루를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잘 살자’라는 말이 매우 추상적이고 누구에게는 그 말이 배부른 오지랖으로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난민분들에게는 ‘하우아유’나 ‘헤브어나이스데이’도 쉽게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우니 그들에게 ‘잘 살자’라는 말은 어불성설임에 틀림없습니다. 말뿐인 바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하루를 잘 사는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잘 사는 건 하루를 잘 견디어 나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장된 희망을 꿈꾸게 하려고 청년에게 열정을 요구하는 의미의 견딤이 아닌, 외부의 환경에도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견딤에 가깝습니다. ‘본래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말을 개인성을 가리는 틀에 박힌 환경으로부터 ‘나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일’이라 생각해 볼 때, 개인이 회상하는 과거의 행복한 일상을 회복하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을 쟁취해가는 것이 잘 견디는 것이고, 잘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가 모두 잘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선 더불어 견뎌내는 일도 필요하겠지요. 모든 슬픔은 그것들에 관해 기록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는 한 덴마크 작가의 문장이 있습니다. 모든 슬픔 대신 모든 감정을 대입해보면 그것들을 함께 써주고 봐주며 들어줄 다른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감정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함께 잘 견뎌냈습니다. 남은 시간 그리고 새로운 하루, 나와 다른 활동가들 그리고 난민분들이 참 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달, 꼬박 두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에서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이 아이는 올해 아홉살입니다. 아이는 방과후 수업으로 예체능과목을 세 개나 들을 정도로 재주가 많고 공부도 잘하고 불어를 독학할 정도로 똑똑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지만 한국어도 곧잘 했습니다. 이날은 소통이 힘든 어머니를 대신해 통역을 하였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있고 차분한 목소리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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