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난민인권강좌가 지난 7월 5일 (토), "공간 사이 多"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난센 난민인권강좌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지켜주셨던 많은 수강생 여러분이 그 시작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난민인권센터가 난민인권강좌를 매년 2회씩 마련하려는 목적은, 난민 이슈에 대한 단순한 이론과 지식만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난센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난민 분야에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투자하여, 분명 쉽지는 않지만 언제가는 만나게 될 변화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그런 사람 말입니다.
난민을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마음을 얻고 싶었습니다. 난센은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기꺼이 투자하여 머리와 마음을 맞대고 난민과의 연대를 지켜나갈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2014년 여름 난민인권강좌는 첫 발을 이렇게 또 내딛었습니다. 난센은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소박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기본 전제를 잃지 않으면서, 난민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난센 김성인 국장님이 난민관련 기본 개념과 역사에 대해 공유해주셨습니다.
이번 난센의 난민인권강좌는 난민을 발생시키는, 즉 박해의 사유가 될 수도 있고, 결국 난민인정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 다섯가지 요인(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 소속 및 정치적 견해)에 가능한 초점을 맞춰 난민문제를 이해해 보고자 했습니다.
2014 여름 난민인권강좌 그 첫 걸음인, 이복기 교수(전북대 영문과)님의 "민족/국가 문제와 난민"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100분간의 강의, 함께 공유합니다. 1
이론? 결국, 해석의 과정 선택하기
우리가 민족/국가 문제와 난민에 대해 살펴보려고 할 때, 민족이나 국가 같은 개념을 정의하는 많은 입장들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염두해야 할 것은, 모든 이론은 명과 암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이론이 등장하면, 그 이론에 대한 문제제기를 근거로 한 또 다른 이론이 나타납니다. 이론들은 쌍둥이일 가능성이 많아요. 이론은 결국 해석의 과정일 뿐이고, 절대적이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특히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한 이론을 취할 때, 그것이 절대적이거나 초월적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종교 문제도 그렇지요.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하나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펼치게 되는 것, 좋은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어떤 것 하나에 충성을 다하는 태도는 공부를 하거나, 누군가를 위한, 특히 사회를 위한 활동을 할 때 좋지 않은 태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nation'은 민족과 국민 모두를 포함한 말
한국에서 쓰이고 있는 '민족(nation)'이라는 용어는 일본을 통해 수입된 것으로, 본래 ' nation'이라는 개념에는 민족과 국민 두 가지 있습니다. 즉, 'nation'은 민족과 국민 모두를 포함한 말입니다. 민족은 혈통, 언어, 관습, 종교 등 문화적 공통성에 기초한 공동체라 할 수 있고, 국민은 이질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주민들을 동일한 법적, 정치적 의무와 권리를 나누어 갖는 시민으로 통합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민족' 개념을 더 취했습니다. 사실 민족과 국민 모두를 통합하는 개념은 우리에겐 없는 것이지요.
서양에서는 전제군주제가 사라지면서 이 사람들의 충성을 담보할 초월적인 개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민족 또는 국민과 같은, 그리고 이것을 통합한 '네이션(nat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자율적인 개인들이 계약을 통해 하나의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의미가 국민에 포함되어 있어요. 프랑스 혁명 후, 민족과 국민은 처음에는 독립적인 개인들의 공동체로 탄생했지만 점차 나폴레옹의 정복을 경험하며 각 국가들이 전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즉, 다른 국가를 대응해 자신은 게르만이라든지, 혹 앵글로 색슨이라든지 구분지으려고 했던 것이죠. 즉, 국민국가적인 프랑스혁명의 공격적인 면이 발현되면서 다른 국가들도 새롭게 정체성을 만들어가게 되는 거에요. 바로 여기서 국민이 혈연과 언어 및 문화를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즉, 프랑스 혁명 이후 민족은 개인들의 공동체가 혈연, 지연, 언어 그리고 문화 등을 공유한 공동체의 개념으로 이전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민족(nation)에 대한 서구식 이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을 바로 한국에 적용하는 데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민족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개념이고,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민족은 중요한 저항의 수단이 되기도 했지요. 서양과 한국의 민족 개념은 각각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민족의 탄생 그리고 민족주의
민족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설명들이 있습니다. 원초론, 영속론, 근대론 등이 그것입니다. 원초론은 민족이라는 것이 선험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여깁니다. 최근 유전자를 분석해 민족을 구별해내는 시도들이 이러한 설명을 입증하려는 노력이겠지요. 영속론은 민족에게는 부정할 수 없는 뿌리가 있다는 겁니다. 근대론은 시민혁명, 자본주의 등과 같은 모든 근대 현상처럼 민족이 탄생했다는 주장입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이야말로 개인이 최고의 충성을 바쳐야 하는 대상이라고 믿는 신조입니다. 이러한 민족주의가 갖는 세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첫째, 세계는 구별되는 특수한 개성을 지닌 민족들로 이루어졌다는 것. 민족주의의 철학적 성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민족의 이해관계와 가치는 다른 것들의 이해관계나 가치에 우선한다는 것. 민족주의의 배타적 성격을 볼 수 있죠. 셋째, 민족은 가능한 한 독립적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주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 민족주의의 정치적 성격인 것이죠. 또한 민족주의는 통합적, 대립적, 팽창적, 해방적인 유형으로 나눠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발칸반도의 비극, 우리에게 민족/국가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해
유고슬라비아. 저는 어릴 때 유고슬라비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유고슬라비아가 없어져버렸어요. 유고슬라비아는 현재 여러분이 알고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같은 나라들로 분리되었고, 이런 나라들이 바로 발칸반도에 있는 것이지요. 유고슬라비아 안에는 인종, 종교, 역사가 다른 그룹들이 같이 모여서 큰 문제 없이 공존을 하고 있었어요. 티토 죽음이후 각 민족의 자치 문제, 종교적, 정치적 갈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내전이 발생, 그 결과 발생한 난민의 수는 수십만 수백만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때는 함께 공존했던 공간이 많은 사상자들을 내며 분열되버리는 것. 이를 통해 민족에 대해, 국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국가라고 하는 경계 안에는 민족이나 종교처럼 여러가지 정체성을 규정하는 내용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의 경계안에 우리와 다른 민족적, 또는 국가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정의는 무책임하고, 정의 없는 힘은 무차별한 폭력
정의라고 하는 것이 정의가 실현이 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무책임한 일이 됩니다. 또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 되지요. 난민들을 위해 환대하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요. 그럼 그 정의는 무책임한 거에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읽어보셨지요? 캐서린의 아버지 안쇼가 리버풀에서 만난 고아를 데려와 히스클리프라고 이름을 짓고 아들처럼 사랑하며 키워주죠. 그렇지만 안쇼가 죽은 후, 비극은 시작되었지요. 그 아버지의 환대. 리버풀이라는 항구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아이를 받아들이고 아들의 이름을 부여하고 아들보다 더 사랑했단 말이에요. 그 환대의 정신이 대단하죠. 그런데 왜 불행이 시작되었을까요? 대를 물린 복수가 일어나게 된 원인은 뭘까요? 그것은 아버지가 환대를 했는데 환대에 뒤따르는 법적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환대를 보였지만 그 아이에게 가족 안에서의 지위나 상속 문제에 대한 법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무조건적인 환대가 세심한 역사적공간에서의 실제적인 법적 조치가 수반되지 않으면 더 불행한, 파국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이상만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현실적인 고려가 없을 때 문제는 발생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
첫째, 대립과 경쟁을 사고의 바탕으로 삼지 않기. 쉽지 않지만,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세계사와 세계에 관심갖기. 국내 뉴스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민문제 관련한 해외뉴스 등을 여러 매체를 통해 계속해서 찾아보고 공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셋째, 나만의 정체성 세우기. 자기 정체성이라는 것을 민족, 종족, 국가와 같이 태어나서 이미 가진 그것에 근거해 정체성을 세우지 말라는 거에요. 내 안에서 나오는 내가 선택하는 정체성. 그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확대시켜나갔으면 합니다. 비둘기처럼 순수수하되 뱀처럼 교활하라는 성경의 지적, 자기 순수를 위해 우리는 교활해져야 한다(영리해져야 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넷째, 법개정을 위해 활동하는 것입니다. 환대의 정신만을 갖고 아무행동도 하지 않는 것, 그 환대에 뒤따르는 법적조치를 하지 않는 것, 그것은 더 큰 비극을 낳을지도 모릅니다.
다섯 째, 힘의 흐름을 관찰하되 그 흐름이 휩싸이지 않기.
그리고 마지막, 모든 차별에 민감해 지는 것입니다. 난민에 대한 차별은 지역, 성병,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과 같은 층위를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내가 난민에 대한 운동을 하지만 성적지향이 다른 사람은 증오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되는 거지요. 우리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민감해져야 할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의 경계에서 다른 정체성(다른 민족 또는 다른 국가)을 가진 난민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 결국은 난민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일구어나가기 위해 어떤 정신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관해 고민하게 하는 강의였던 것 같습니다. 강의 중 들었던 한 문구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힘이 없는 정의는 무책임하고, 정의 없는 힘은 무차별한 폭력이다."
- 당일 강의 기록 및 녹취를 바탕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강사의 어조나 단어 및 표현 등을 편집 및 수정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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