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살펴보았다. 처음 접한 상황임에도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고 정감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기억은 회고할수록 더욱 따뜻해졌다.
이것이 난민분과의 첫 인터뷰에 대한 회고이다.
난센에서 일을 시작하고 참 많은 고민들을 만났다. 고민은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반가운 변화이지만 동시에 조금 난감하기도 하다. 특히 개인적 삶에 대한 고민, 타인의 삶과 나의 연관성에 대한 부분은 대해서는 더욱 그러했다.
처음 난민에 대해 알게되었을 때에도 국제 개발이라는 분야를 막 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옳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의분과 열정의 솟구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때는 조금 놀놀(?)해진 터라 이 의분만으로는 얼마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지 ‘일’이라는 말이 붙으면 다 재미없다는 지인의 말처럼 아무리 좋아하던 일도 어느 순간에는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중 제일 금방 싫증나는 일은 ‘사람’이 ‘일’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난민에 대한 고민은 ‘과연 난민의 어떤 포인트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인가.’ ‘그들의 어떤 점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방향이 모아졌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그들과 함께 하는 것,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가장 집중해야 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잃은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행위’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언가 부족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습관처럼 ‘실제적인 무언가’를 ‘제공’해야한다는 집착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난센에 제출할 에세이를 작성하면서 다시 난민에 대한 고민을 직면해야 했다. 당시에도 나에게는 다소 어렵고 선뜻 답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회피하고 싶고 누구나 말하는 당연한 대답을 인용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과 나 모두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당연한 결론을 깨달았다. 인용해서도 얻을 수 있는 답이었지만 고민 후에 얻은 이 간단한 전제는 정말 마음에 와 닿고 새삼스럽도록 신선했다.
저만큼의 답을 얻고 나는 난센의 가족이 되었다. 이곳의 생활 속에서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그들과 나의 삶이 ‘정말’ 비슷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결론은 새롭기는 했지만 솔직히 추상적이었다. 그런데 그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것이 조금씩 실제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만나면서 이따금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나의 과거 혹은 현재의 삶 속에도 ‘난민적인 요소’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단지 현상으로서의 어떤 사유 뿐 아니라, 그들이 삶과 개인의 역사에 대해 느끼는 그 감정을 나도 삶 속에서 동일하게 느낀다는 것이었다. 가령, 그들이 본국을 떠나야 했지만 본국 혹은 그곳에 두고올 수 밖에 없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애정은 그들 뿐 아닌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막연하기도 하다. 분명 내게 없는 경험이 존재하고, 설사 경험했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 예전의 나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인권'이나 '인간'이라는 개념을 ‘거창하게’ 끌어와 그 막연함과 부지를 가려보려 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 막연함을 견딜 수 없던 이유는 인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형상화 된 나의 모습을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첫 인터뷰를 마치고, 많진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거창하게 인용하려했던 인권이나 인간에 대한 것이 나와 그들의 삶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며 나와 다를 바 없이 느끼는 것에 대해 작은 공통점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임을 알았다.
배웠다고 모든 막연함이 해소되거나 외면하고 싶은 고민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제는 거창한 개념으로 그 공백이나 행동으로 공허함을 채우기에 급급하지 않고 조금은 미련해보이고, 느릴지라도 느끼면서 그렇게 가야겠다. 그리고 다가오는 고민과 갈등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얻는 그것으로 우리 사이의 공간이 채워진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 -찰리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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