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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Times] 미얀마 소수 무슬림들, 폭력으로부터의 탈출구가 없다

미얀마 소수 무슬림들, 폭력으로부터의 탈출구가 없다


The New York Times, 2014년 3월 14일 기사 







   태 핫야(Hat Yai)에서 – 혹독했던 벵갈(Bengal) 항의 여정에서부터, 꽉 찬 고기잡이배에 끼어 타듯 지냈던 날들, 그리고 트럭에 구겨 넣어진 채 태국 남부 해안으로 달리던 순간까지, 이 모든 시련을 견딘 끝에 그가 도착한 곳은 미얀마로부터 허무할 정도로 가까운 나라, 말레이시아다.


   고무나무 농장의 높은 나무 밑에서, 30세의 미얀마 로힝야 무슬림 압둘 무시드(Abdul Musid)를 밀항시켜 줬던 밀수업자는 “돈을 더 내든가 아니면 남던가.”라며 말레이시아까지 남은 밀항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낼 것을 요구했다. 무일푼이었던 무시드는 그 밀수업자에게 빌며 사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밀수업자는 무시드의 사타구니를 걷어찼고, 그를 죽음의 땅에 남겨둔 채 떠나버렸다. 의사들의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한 주민이 무시드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미얀마의 로힝야 남자들과 다른 포로들, 그리고 그들의 간수들 모두 태국 당국의 단속이 있기 전에 밀수창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극단적 불교도들인 라킨족(Rakhine, 미얀마 서안의 위치한 州 -역주)의 폭력으로 인해 지난 18개월 동안 수만 명의 로힝야족은 말레시아로 도망쳤다. 말레이시아는 무슬림 국가이고,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이주자들을 잘 받아주기 때문이다.  

   

   태국은, 미얀마에서 국법에 의해 시민권이 거부된 로힝야족이 고기잡이배를 타고 말레이시아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나라이다. 만약 로힝야족이 무자비한 밀수업 브로커들에게 지불할 돈을 가졌다면, 그들은 바로 이웃국가인 말레이시아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돈을 가지지 못한 로힝야인은 태국 남부 정글의 밀수창이나 태국 당국의 열악한 구금시설에 꼼짝없이 갇혀 살아야 한다.

   태국은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와 같은 주변 분쟁국이나 미얀마 등과 같은 인종적 갈등을 겪는 나라로부터 많은 난민을 수용했던 역사가 있음에도, 로힝야족을 위한 임시수용소 및 기본 서비스 등의 지원을 축소해왔다. 인권단체들의 말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로힝야족의 비호 요청을 거절한 데 이어, 그들을 무자비하게 잡아 가둬버리는 바람에 몇몇 사람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태국 정부는 태국이 로힝야족을 다른 난민과 같은 수준으로 대해야 한다는 유엔난민기구(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의 권고도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대신에, 태국 정부는 로힝야족에 대한 이른바 “온건한” 강제추방을 허락했다. 태국 정부는 그들을 구치소로부터 꺼내어, 남부지역의 라농(Ranong) 항구에서 나무배에 태운 후, 안다만 해(Andaman Sea)로 내보내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그렇게 추방당한 로힝야족은 다시 밀수업자들에 의해 건져지며, 그 밀수업자 중엔 태국 당국의 관계자도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신의 몸값을 치르지 못하는 로힝야족은 결국 태국의 농장이나 고기잡이배에서 강제노역하게 된다고 한다.

수많은 난민을 구류 중인 태국 남부의 송클라(Songkhla) 이주국의 책임자 탓차이 삐따넬라봇(Thatchai Pitaneelaboot)은 태국 정부는 미얀마가 로힝야족을 시민권자로 인정해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덧붙여 “로힝야족은 허가도 없이 불법으로 이곳에 왔으며, 우리는 그들을 추방할 수밖에 없다.”라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목숨을 건 탈출


   폭력에 의해 삶을 잃어버린 많은 로힝야족은 옛 버마였던 미얀마를 떠나는 것 외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태국 및 말레이시아 밀수업자들에게는 희생양이 되기 쉽다. 심지어 로힝야족 중 그들 자신이 130만 명의 다른 로힝야족이 살고 있는 북부지역 라킨의 마을이나 이주촌에서 인간 밀수를 시작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로힝야를 지원하는 인권단체 “아라칸 프로젝트(Arakan Project)”의 코디네이터인 크리스 르와(Chris Lewa)는 지난 2012년 6월 라킨에서 로힝야족을 향한 폭력사태가 발생한 이래로 바다에서 길을 잃고 수장돼버렸을 로힝야족이 2천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한다. 그는 약 8만 명의 로힝야족이 미얀마를 떠나 바다로 내몰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국 이주 당국의 관계자는 밀수창에서 죽은 사람의 대부분이 브로커가 요구하는 2천 달러(약 200만 원 - 역주)를 내지 못해 말레이시아로 떠나지 못한다고 전했다.

   너무나도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로힝야족에게 미얀마로부터의 탈출은 불가피한 듯 보이지만, 그들이 탈출하며 겪어야 할 험난한 여정 또한 절망적이긴 마찬가지이다. 쿠알라룸푸르(Kualal Lumpur)에 있는 유엔난민기구 말레이시아 대표부에 의하면, 태국에서의 긴 감금생활 동안 생긴 만성 영양실조와 신체적 학대로 인해 마비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말레이시아에 많이 오고 있다고 한다.


   무시드는 그가 입원 중인 병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라킨족 불교도들이 그의 농장을 강탈했고, 그는 살아남기 위해 어부로 일했다고 말했다. 이후 두 명의 로힝야족 브로커가 말레이시아에서의 삶이 더 나을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고, 6백 달러(약 60만 원, 역주)에 그곳에 데려다 주겠노라 말했다고 한다.  

무시드는 그 정도로 많은 돈을 마련해낼 재간이 없었다. 때문에 그는 일단 35달러에 말레이시아로 데려다 주면 남은 금액은 그곳에서 일해 갚는 것으로 합의했다.

   얼마 후, 그는 같은 처지의 다른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작은 나무배에 올라 방글라데시 공해에서 기다리던 어선으로 승선할 수 있었다.

   약간의 물과 음식으로 바다에서 닷새를 버티자, 배는 태국의 남부 연안 어딘가에 정박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정글에 만든 임시 거처에서 이틀을 보냈다. 이후 무시드는 약 20명의 남자들과 함께 트럭 짐칸에 쑤셔 넣어졌다.

약 10시간 정도가 지나서 트럭은 말레이시아 국경지대에 멈추었다. 함께 출발했던 남자들 중 다섯 명이 지난 몇 주간의 고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숨졌다.

   

   말레이시아로 가는 마지막 단계에서 받아야 할 돈 때문에 브로커는 무시드와 다른 로힝야족을 창고에 가두었다. 애초에 무시드가 합의했던 계약은 무시됐다. 그는 브로커들에게 자신은 무일푼이며 돈을 보내줄 친척도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밀수창이 갑자기 없어지려고 하는 동안, 브로커는 무시드에게 다시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휴대전화를 건네며 말레이시아에서 돈을 보내줄 사람에게 전화하라고 강요했다.

   무시드가 전화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하자, 그 브로커는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의 주치의인 반차 팁띠라뽕(Bancha Thiptirapong)은 무시드의 사타구니에 생긴 상처는 너무 깊었고, 정글 바닥에 남겨진 이후 심각한 감염 증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다른 이들은 그 호된 시련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이곳(태국 핫야이 - 역주)에서 가까운 찰룽(Chalung)에서 다섯 명의 남자가 묘비에 이름도 새기지 못한 채 묻어졌다. 정글에 버려진 채 구조됐을 때 병원 측은 그들에게 패혈증이란 진단명을 내렸다. 그 다섯 명은 밀수창에 갇혔던 로힝야족 중에서도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잘못된 선택

 

   밀수창에서의 안타까운 죽음과 태국 당국 관계자들이 로힝야족을 밀매한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태국 이주 당국은 이미 단속을 끝낸 밀수창에 기자들을 초대해 직접 확인토록 했다. 태국 정부가 인간 밀수에 대항한다는 입장을 보여주고자 계획된 것이었다.





   말레이시아 국경지대 송클라 근처 농장 사이의 경사진 땅에서 531명의 로힝야족이 우리 안에 짐승처럼 가둬져 있었다. 대나무 막대로 만들어진 우리는 자전거 체인으로 고정돼있었으며, 비바람을 막아주지도 못하는 형편없는 모양새였다. 무슬림이 쓰는 모자, 찢어진 방수모, 망가진 전등, 그리고 다 타버린 재 주위에 흩뿌려진 쌀알이 이곳 밀수창에서 로힝야족이 겪었을 참상을 보여줬다. 대충 세워놓은 나무 플랫폼이 감시탑 역할을 했을 것이며, 이곳에서 밀수업자는 수감자들을 감시했을 것이다. 로힝야족은 이런 상황 속에서 수천 달러에 이르는 자신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의 몸이 되든가, 아니면 노예계약을 맺는 수밖에 없었다.


   태국 남부에도 이와 비슷한 밀수창이 존재한다. 미얀마의 인종 분쟁을 연구하는 인권기관인 “포티파이 라잇츠(Fortify Rights, 이하 Fortify Rights)”는 그곳에서부터 한 밀수업자와 두 명의 로힝야족 수감자, 그리고 미얀마에 거주하는 로힝야인 간에 오간 대화를 녹취했다. 그중 미얀마에 거주 중인 로힝야인은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인 양곤(Yangon)에서 사업을 했으며, 구금된 그의 조카들을 구해내려던 사람이었다.

   그 사업가는 킨 마웅 윈(Khin Maung Win)이란 가명을 사용했으며, 인간 밀수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지난 12월, Fortify Rights에 의해 대화가 녹취되는 것에 동의했다.

    

   녹취된 첫 번째 대화에서는 그가 그의 조카들을 꾸짖는다. “내가 그만두라고 몇 번이고 말했잖니. 이런 식으로 떠나선 절대 안 돼. 바다에 가라앉아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야. 90%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도망치다 바다에서 죽는다고.”

그러고 나서 그는 조카 울라 미아(Ula Mya)와 포야스(Foyas)의 석방을 위한 13,000링기트(말레이시아 화폐단위, 약400만원 - 역주)를 10,000링기트로(약 300만 원 - 역주) 깎아 달라 흥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밀수업자는 “우리 태국인 사장이 태국 출입국 관리소에서 당신 조카들을 사온 돈은 어떻게 할 건데?”라며 거절했다.


   이후, Fortify Rights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킨 마웅 윈은 결국 말레이시아 은행 계좌로 13,000 링기트를 송금했다고 전했다. 그의 조카 울라 미아는 현재 말레이시아에 있으며, 포야스도 말레이시아의 한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포야스는 말레이시아에서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가 삼촌이 구해주었던 밀수창에 넘겨질 때까지 6개월 동안 국경지대의 출입국 관리소 구금시설에 갇혀있었다고 전했다. 그가 말하길, 밀수창에서의 삶은 끔찍했고 하루에 두 끼만 제공됐다고 한다. 게다가 밀수업자들은 그곳을 달아나려던 한 남자를 잡아 오른손의 네 손가락을 잘라버렸다고 한다.


   5개월 전, 송클라 지역 출입국 사무소의 새 책임자로 부임된 탓차이는 포야스와 울라 미야의 인신매매 사건에 대한 태국 이주 당국의 책임을 묻는 자리에서, “만약 우리 측 관계자가 이번 인신매매에 관련됐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분명 조사를 통해 그를 처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충분한 근거가 없는 소문일 뿐이다.”라고 일축했다.



온건한 강제추방


   탓차이는 이번 달 라농 항에서 태국 정부의 로힝야족 추방정책에 힘을 실어 줄 방편으로 “온건한” 강제추방을 실행한 바 있다. 태국 당국은 로힝야족을 적어도 그들이 박해받던 고향 땅 미얀마로 되돌려 보내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

   

   태국 당국이 지급한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은 70명의 로힝야족은 미얀마로부터 3마일 떨어진 부두에서 세 척의 작은 나무배에 실렸다.

   그중 한 남자는 배에 오르며 눈물을 훔쳤다. 그의 손에는 태국인들이 이별 선물로 준 비닐 포장된 국수 몇 개와 팜 슈거, 그리고 미화 7달러 정도 되는 태국 돈이 쥐어져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가 내뱉은 말이다.


   배는 오후에 출항했다. 카메라가 멀어지자 배위의 로힝야인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가는 대로 배가 간다면, 로힝야인들은 미얀마 정부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어촌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대신에 그곳은 인간 밀수업자들의 영향권 안에 있다. 탓차이는 “그들은 또다시 희생양이 되었다. 그들 중 약 20% 정도는 다시 인신매매의 표적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뉴스 기관인 푸껫완(Phuketwan)에서 종종 로힝야족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는 태국인 기자 추띠마 시다스티안(Chutima Sidasthian)은 “약 80%가 다시 밀수업자에게 되돌아간다.”라고 말했다.

    태국 로힝야족 협회장 압둘 칼람(Abdul Kalam)에 의하면, 라농 항에서 추방된 지 닷새 후, 배에 탔던 다섯 명의 남자가 핫야이의 밀수업자에게 되돌아왔다.


   무시드의 미래는 특히나 더 혹독해 보인다. 입원 아흐레 후, 출입국 사무소 관계자가 사람들도 붐비는 송클라의 구류 시설로 그를 데려갔다. 송클라는 탓차이가 관리하는 구역이다. 칼람은 “무시드는 말레이시아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그를 위해 돈을 보내줄 사람이 없으므로 그가 말레이시아로 갈 방법이 없다는 의미 -역주)


   Fortify Rights의 이사 매튜 스미스(Matthew Smith)는 무시드가 구류시설에서 꺼내져 “온건한” 국외추방의 희생자가 될 것 같다며 현재 상황을 염려했다. 만일 그렇다면, 무시드는 그를 발견했던 밀수업자들의 거미줄에 다시 걸리게 될 것이다. 스미스는 “돈이 없는 사람들은 싼값에 태국 만(灣)의 생선 잡이 노예로 팔려간다. 그들에게 ‘말레이시안 드림’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라고 말했다.






제인 펄레즈(Jane Perlez)





원문 기사 : http://www.nytimes.com/2014/03/15/world/asia/trapped-between-home-and-refuge-burmese-muslims-are-brutalized.html?_r=1

번역 : 한형종 (난민인권센터 통번역 자원활동가)

감수 : 안은애 (난민인권센터 상근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