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스케쥴표를 펼쳐본다.
9월부터 2월까지 빡빡하게 쓰여있는 스케쥴.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내가 얼마나 난센에 푹 빠져있었는지를 느낀다.
6개월이 지나고 후기를 쓰는 지금.
마음이 뭉클하게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진심이었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01. 난센에 오기까지
캐나다에서 국제학과 졸업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수많은 국제이슈들 중에 내가 쓰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사실 제일 고민이었던것은 정말 사각지대의 끝에서 서있는 분들에게 내가 거절이라는 것을 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할 수 있을까 그 죄책감을 견딜 수 있을까 였다. 내 자질에 대한 물음이 지속되니 두려움이 점점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였고, 그 중 가장 사각지대에 있다고 생각 되는 ‘난민’에 대한 이슈에 관심이 생겨 그 곳에서 일해보자 하고 벼르고 있을 찰나, 난센을 찾게 되었고 한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트위터를 통해 소식지를 챙겨보고 자원봉사도 등록하고 기다렸다가 인턴공지가 나와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나, 는 정말로 난센에서 인턴을 해야만 했기에, 한국에
도착해서 에세이를 쓰기 위해 난민관련 서적을 사러 서울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면
접날 가리봉동 내리막길을 질주하면서 우와~ 한국에 이런곳이 다있구나 생각하면서 길 끄트머리에 보였던 그 흰 건물. 그 곳에 계신 연예
인 닮은 국장님을 뵈면서 제가 세 질문을 준비했으니 그 질문을 대답하겠다라고 하고,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고 계시는 국장님을 보고 왠
지 저를 뽑으실 것 같다는 다소 당차고(?) 열의 팍팍인 엉뚱한 나를 뽑아주셨다. 그렇게 난센과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02. 난센에서의 나
나는 아프리카에서 알지 못해 도와주지 못하였던 그 무력감과 절망감을 기억한다. 아프리카 경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내가 더 나은 법
률적 제도적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 그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 하면서도 실질적으
로 삶의 악순환을 끊어주지 못하고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안을 그려주지 못하는 점. 아마 그 컴플렉스가 아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
졌는지도 모른다.
알아서 바껴지는 난민판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황전반을 이해하기 위해선 아는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나는 세미나도 자주 참석하고 한 달
에 한 번 있었던 변호사교육도 빠짐 없이 가고, 받아온 책자들은 집에와서 다시 한 번 읽고, 난센에 있던 좋은 자료는 따로 스캔해 내 메일
로 보내놓곤했다.
난센에서 나는 주로 법률 지원을 많이 맡았고, 소송 진행 명단을 관리하였다.
내가 맡은 많은 분들은 대게 정치적 이유로 난민 지위 신청을 했으며, 소송단계에 있었고
부족한 증거자료를 모으기 위해 나는 COI를 파고 또 팠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 수록 또는 하면 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너무나 낮은 난민 인정가능성, 열악한 제도적 보호 울타리, 뻔히 보이는 법률적 한계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대답을 해줄 수 밖에 없는 나 였다.
그렇게 나는 알아서 도와주지 못하는 내가 되었다.
그 쯔음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난 상담을 하면서 사람 개개인의 스토리를 듣는 내가 아니라, 분석하고 가능성을 계산하는 내가 되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 잔인하고 무서웠다. 겨울의 난센은 추웠고, 난민분들의 발길도 뜸해졌으며, 적은 인원과 많은 업무량은 분명 나를 지치게 했다.
그 때 난 처음의 나를 되돌아 보았다. 국장님께서 면접 때 힘들 수도 있다고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보셨을 때 어쩔 수 없다고 힘들면 웃고 즐
길 거라고 했다.
그랬다. 분명히 힘들어도 주위엔 사소한 행복들 그리고 잔잔한 고마움들이 있었다.
03. Thanks to
통번역 자원봉사자 교육을 진행하면서, 난민사건의 특성과 통번역자 윤리를 전달하며 함께 느꼈던 절실함, 책임감, 또 난민분들 그리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느꼈던 연결고리.
소송구조가 인용되어 난민분들께 전해 주었을 때, 세이브더칠드런 아동 지원이 모두 통과하여 전해 주었을때의 기쁨.
새생명이 태어났을 때 조그마한 아기의 손을 잡았을 때의 소중함.
난민 여성분이랑 옷가지를 고르면서 목도리를 둘러줬을 때의 뿌듯함.
나를 니코라 라고 불러주신 난민분과의 따뜻한 인사말.
이태원에 시리아 난민분이 인턴들을 불러 배터지게 아랍음식을 먹었을 때 그 포만감.
시민운동가대회에서 여러영역의 활동가들이 밤새도록 열띄게 이야기 했을 때 끊임없이 달리고 계신 그들의 모습에 대한 고마움.
이따금씩 찾아와주신 박상희 박사언니의 미소 그리고 커플 순대파카.
김연주 변호사님의 따뜻한 온기와 잔반찬.
상근활동가 혼자서 우리를 다 인도해주고 격려해준 우리 고언니의 잇몸웃음.
국장님의 재미없는 개그와 인턴 준씨께 보인 다소 격렬한 애정표현.
밖에서 산 호떡을 함께 호호 불어가며 먹던 날들에 대한 일상적인 어느 하루.
처음에는 밥솥에 냄비도 안넣고 물을 붓더니 이제 요리도 엄청 잘하는 우리 나경이.
나경이랑 구루마 끌고 내리막 걷던 날 + 포토샵 천재 나경이.
청일점으로 들어와서 옆에서 고개 숙이고 졸고 있던 준오빠.
생각해보면 힘든일은 다 맡아서 하고 있던 우리최남매 에이프릴 메이 앤 준 오빠.
아침에 푸드뱅크 연두색 엄청큰 빵봉다리를 들고 지하철 역을 누빌때 그 창피함.
다음날 요리할 소스를 찾아, 마트 세군대를 뛰어다니던 맛에 대한 진지한
열정.
일끝나고 활동가 사람들과 함께 술한잔. 캬
어느새 일의 끝마무리가 지어져 나의 책상위로 비치던 노을 빛~~
푸드뱅크 빵봉지신생아실
이 모든 것을 합치면 그 벅차오름이 힘듬을 감싸주던 에너지원이였을 것이다.
난센을 마치고 나는 내가 부끄럽지 않게 열정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난민분들과 실질적으로 같이 하는 프로젝트는 열지는 못했지만,
소중한 인연을 얻었고 그에 감사한다.
같이 일해준 10기 인턴 이나경 최준 그리고 상근활동가 고은지 언니 그리고 우리 국장님
너무너무 고맙고 또 그리울 것같다.
또 이번에 새로들어온 11기 분들도 으쌰으쌰 기를 넣어드리면서,
난센 화이팅!
'활동 Activities > 활동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센 워크샵 후기 (1) | 2014.03.04 |
---|---|
난센 새식구의 하루 [행정법원,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탐방 후기] (0) | 2014.03.04 |
국가폭력·고문생존자 재활과 국가의 의무에 관한 국제심포지엄 참석 후기 (0) | 2014.01.02 |
2014년, 모두의 사랑과 소망을 담아! (0) | 2014.01.02 |
난센배 마스터 디저트의 우승자는?? (0) | 2013.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