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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사과 다섯 알, Scene 1 & 2

지난 6월에 이어, 최근에 또다시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불허결정이 연이어 통보되기 시작했습니다.
생사의 위협을 느끼며, 마지막 희망을 걸고 접수시킨 난민신청이 불허되면 사람들은 많은 충격을 받습니다. 특히나 한 번 불허를 받은 후에 제기한 이의신청의 기각 결정은 그 충격이 더하기 마련이지요. 이의신청이 기각될 때는 '출국권고서(Advice to Exit)'가 함께 발부되고, 5일 이후에 다시 '출국명령서(Exit Order)'가 발부되기 때문에 심리적 위축감은 더하기 마련입니다.
요즘에는 이렇게 이의신청 기각을 당한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출국권고나 명령을 받으니 당황스럽고 불안하기도 하고, 이후의 행정소송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막막하기도 하니 주로 이런 것들을 물어보고 도움을 청하려고 말이죠.


Scene #1.

그제 오후에도 한 그룹의 아프리카 분들이 저희 사무실을 찾아왔었습니다. 정신없이 상담을 해주고 다음 면담 약속을 잡고 돌려보냈는데, 한참 회의용 테이블을 정리하다보니 의자 위에 까만 비닐봉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사과 다섯 알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거 참.......

얼마나 도움이 절실했으면,

뭐라도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소송 수수료도 버거운 결코 쉽지 않은 형편에
사과 다섯 알을 사왔고,
그나마도 미안해서 말도 못하고 이렇게 슬그머니 놓고 갔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참 아르아릿 했습니다.
업무를 이유로 일체의 금품을 수수하지는 않는다지만,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 뭐, 냉큼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참 고마운 마음과 함께 말이죠.
텅~ 비어있던(아니 사실은 생수 몇 병과 꽤 오래된 핫소스와 피클이 굴러다니던) 냉장고가 간만에 든든해졌더랬죠.




Scene #2.

밀려드는 난민 상담 속에 바쁜 오후를 지내고 있던 차에, UNHCR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두 가족이 있는데, 시간은 좀 늦었지만 만나서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말이죠. 사실 그냥 별 생각 없이, 아니 꽉 짜여진 오늘 일정이 조금씩 늦어지겠다는 약간의 불평을 안고, 승낙을 했습니다.

한참 후에, 출입국사무소를 갔다가 UNHCR을 들러서 저희 사무실까지 도착한 가족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고, 다른 일 때문에 바쁜 마음에 조금은 무관심하게 몇가지 절차를 설명해주었습니다.
회의용 테이블과 책상을 오가며 일은 일대로 하고, 전화는 전화대로 받고, 이런저런 절차에 대한 설명은 설명대로 하는데, 두 눈 똥그란 쬐끄만 어린아이는 뭐라뭐라 한참을 칭얼대면서 제 신경을 자그락자그락 긁어대더군요. (사실 제가 애들 칭얼대는 걸 좀 많이 싫어해서....;;;)

한참이 지나서 좀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인터뷰를 하려고 마주 앉았습니다. 다행인지 아이는 지쳐서 엄마 품에서 잠이 들었고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참 마음이 또 아려오는 얘기들입니다. 표정은 최대한 냉정하게 유지하려 하지만, 당사자가 눈시울이 붉어지며 자기의 어려웠던 순간들을 얘기하는데 마음이 안 아플리가 없지요.
그러다가 아이 아버지의 한 마디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제 딸, (엄마 품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이 애가 오늘이 생일이었어요. 이 애는 한국에서 태어났어요. 근데 한국 정부가 생일날 무엇을 줬는지 아십니까? 한국에서 태어나서 처음 생일을 맞은 제 아이에게요.
바로 '넌 이제 자격이 없으니, 한국에서 나가라!'라는 출국권고입니다. 생일인데 말이죠."



...
생일 선물로 출국권고를 받은 이 아이의 현실이 민망스럽고
그런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아이의 부모 마음은 또 얼마나 쓰릴까하는 생각에
참 가슴이 아픈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상담을 끝내고 돌아가려는 이 가족을 잠시 붙잡고는
냉장고에서 사과 다섯 알을 주섬주섬 꺼냈습니다.
행여 값싼 동정심으로 여길까봐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가 당신들을 내치고 싶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얘기해야 했으니까요.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것 밖에 줄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 끝을..... 흐....리...면..서. 라 도  요.



                               * Gerard Rondeau, 2005, Miss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