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에 대하여
선입견 [先入見] 【명사】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주의나 주장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마음속에 굳어진 견해.
언어는 기본적으로 약속이다. 국어학에서는 이를 '언어의 사회성'이라고 한다. 언어의 의미는 처음부터 그 말소리와 글자 모양과 연결된 것이 아니다. 언어를 쓰는 사회 안에서 약속함으로써 연결되어 결정된다. 그래서 시대가 변해 그 약속의 의미가 변하면 언어의 의미도 변한다. 언어는 그래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인다.
물론, 사람은 절대적으로 옳은 판단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다. 잘못된 연결을 할 수도 있으며, 타인에 대한 모욕과 공격을 약속으로 정해놓거나 비속어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 또한 약속이라면 약속이라고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 숨쉬고 언어가 살아 움직이는 한, 이런 현상 또한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고쳐나갈 수 있는 이성과 비판적 사고능력을 가졌다는 것 역시 사람의 특성이다. 욕설을 금기시하고, 비속어를 부정적으로 보는 현상은 사람이 이성을 가졌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나온다.
여배우의 마른 팔뚝은 '난민팔뚝'?
난민인권센터는 왜 선입견과 언어의 사회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까? 잘못된 선입견과 언어의 사회성이 만나 잘못된 표현이 하나의 언어로 굳어질 때, 그것이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최근 연예전문 인터넷매체들을 중심으로 '난민팔뚝'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날씬한 몸매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여성 연예인의 몸매에 대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기사를 작성하면서 마른 팔뚝을 강조해 '난민팔뚝'이라는 말을 양산해낸 것이다. 인터넷매체가 우후준순으로 만들어지고 기사양산 속도 경쟁을 하는 가운데 누리꾼들을 향해 매체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형적인 표현이다.
우려되는 것은 일부 언론이 만들어낸 이 기형적인 표현을 다수의 누리꾼과 블로거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감성이 취약한 우리 사회의 인터넷 문화 풍토가 드러난다.
'난민팔뚝'이라는 말은 아마도 난민에 대한 단편적인 선입견으로부터 파생된 표현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난민'이라는 말은,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보인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대륙의 어린이들의 이미지로부터 느껴지는 불쌍함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앙상하게 뼈만 남은 어린이들의 모습으로부터 비롯됐을 것이다. 바로 이런 모습 말이다.
이 어린이는 난민이 맞다. 하지만 난민은 그렇게 좁은 의미로만 활용되지 않는다.
'난민'이란 무엇인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러한 근거로 인하여 보호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
이 조항은 UN의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1조에 따른 난민의 정의다. 말이 다소 어렵지만, 꼼꼼이 따져보면 어렵지 않다. 반드시 기아와 가난 때문이 아니더라도 ①인종 ②종교 ③국적 ④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예를 들면 특정사회에서 탄압받을 가능성이 있는 소수 그룹) ⑤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 때문에 자신이 사는 나라나 집단에서 부당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난민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내전에 따른 가난과 기아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종교적 문제로 탄압받아 난민이 되며, 누군가는 정치적인 이유로 박해받아 난민이 된다. 난민으로 인정하는 이유에 있어 큰 틀을 구성하는 5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다른 사람도 납득할 수 있거나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같은 공포를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이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난민이다.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떠났던, 아인슈타인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저서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씨 등이 난민이었던 유명인사들이다.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가서 부당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가 조국의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난민은 무조건 불쌍한가? 그렇지 않다. 난민이 되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양하다. 한국을 찾아오는 난민도 많다. 단시간에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로 바뀐 한국, 그리고 독재자를 쫓아내고 간담을 서늘하게 한 민주혁명의 경험을 가진 한국에 대해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난민에 대해 제대로 알고 보다 폭넓게 포용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선배로서, 과거에 겪었던 경험을 현재 겪고 있는 후배를 이끌어줄 수 있는 위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 송재희의 용기있는 발언, 고맙다
'난민팔뚝'이라는 신조어가 가진 무딘 감수성에 대해 배우 송재희씨가 트위터를 통해 따끔한 지적을 남긴 적이 있다. 난민인권센터로서는 고마운 지적이었다.
송재희씨가 언급한 난민의 의미는 국립국어원에서 인정한 국어사전의 사전적 의미였다. 그것만으로도 난민은 여배우의 다이어트를 부각시키기 위한 파생어로 사용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전쟁과 재난은 소수의 기득권층의 권력욕이나 비극적인 민족 감정이나 사상과 종교의 갈등, 혹은 천재지변으로부터 비롯된다. 6.25 전쟁을 겪어본 우리로서는 쉽사리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난의 의미로 봐도 마찬가지다. 가난은 함부로 놀려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교양 쯤은 우리 모두 갖추고 있다.
영향력을 가진 연예인이 이에 대해 환기시켜줌으로써 다시 언론에 보도되고 잘못된 표현에 대한 잠깐동안의 논쟁일지라도 그 계기를 만든 것 자체에 반가움을 느낀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과민반응'이라는 평가도 했다. 하지만 원래 언어는 그렇다. 사용되는 맥락 속에 그 사회의 상식과 기준이 담기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만들어낸 기준에 따르면, '시장의 우상'이다. 배우 송재희씨의 지적은 잠깐동안의 주위 환기에 머물렀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일부 인터넷매체들은 여전히 '난민팔뚝'이라는 표현을 활용하면서 소모적인 단발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난민, 나아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배인 언어표현을 기대하며
'난민팔뚝' 말고도 약자에 대한 조롱이나 경멸, 멸시의 의미가 담긴 표현은 인터넷 상에 무수히 많다. 이런 표현은 우리말의 품위까지 훼손시킬 것이다. 이런 현상에 앞장서는 이들이 접근성을 무기로 하는 일부 인터넷매체들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난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모욕적인 지역감정 조장에 나서는 일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까지 더불어 생각해본다면, 인터넷 공간 속 언어표현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인터넷은 전파력에 있어서 오프라인의 서적이나 대자보 등과는 눈에 띄게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난민, 나아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폭력적인 언어 표현이 당사자에게는 생각보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난민팔뚝'이라는 표현이 서글펐던 이유다. 성공적인 다이어트로 아름다운 몸매를 가꾼 여배우들에게 다른 찬사의 표현도 있을텐데 굳이 왜 그런 표현을 써야 했을까?
난민은 일방적인 동정의 대상도, 그렇다고 경멸이나 멸시의 대상도 아니다. 나아가 소수의 취향이나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적인 힘이나 재력이 약한 것 역시 경멸이나 멸시의 대상이 아니다. 잘못된 선입견과 섣부른 인상을 바탕으로 한 언어표현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6월 20일, 오늘은 1951년 난민협약의 존중, 그리고 난민에 대한 존중과 그 존중의 강화를 함께 생각해보는 세계 난민의 날이다.
'활동 Activit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민신청 철회 사유로 돌아보는 난민신청 과정의 문제점 (0) | 2012.07.16 |
---|---|
심각한 수준의 난민 심사 적체, 난민의 고통은 누가 책임지나 (8) | 2012.06.27 |
[성명서] 세계 난민의 날 기념 4대강 사진전을 한다고? (0) | 2012.06.18 |
우간다 난민, 티라야 씨와 함께 한 제1회 월담을 소개합니다. (0) | 2012.05.29 |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0) | 2012.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