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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별곡> 고려 유랑민들의 절망과 꿈

살어리 살어리랏다. 靑山(쳥산)애 살어리랏다. (살거야, 살거야. 청산에 살거야.)
멀위랑 달래랑 먹고, 靑山(쳥산)애 살어리랏다. (머루랑 달래랑 먹고 청산에 살거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울어라 울어라 새야. 자고 일어나 울어라 새야)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울고 있어.)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가는 새를 본다. 가는 새를 본다. 물 아래 날아가는 새를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아래 가던 새 본다. (이끼 묻은 쟁기를 가지고 물 아래로 날아가는 새를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숀뎌, (이렇게 저렇게 해서 낮에는 지내왔지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올 이도 갈 이도 없이 밤에는 또 어떻게 하지?)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어디에 던지려던 돌인가, 누구를 맞추려던 돌인가)
므리고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 돌에 맞아 울고 있어.)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살거야, 살거야. 바다에 살거야.)
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문재와 굴, 조개를 먹고 바다에 살거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졍지 가다가 드로라. (가다가 가다가 들어와. 외딴 부엌을 지나가다가 들어와)
사스미 짐대예 올아겨 奚琴(해금)을 혀거를 드로라. (사슴이 장대에 올라가 해금 켜는 것을 듣고 있어)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거더나, 브른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 (가더니 불룩한 술독에 진한 술을 빚는구나.)
조로곳 누로기 매와 잡사와니, 내 엇디 하리잇고. (조롱박꽃 모양의 누룩 향기가 매워 나를 붙잡으니 나는 어떻게 할까?)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
 
고려는 내우외환이 끊이질 않았던 시기입니다. 거란과 몽고 등의 외침이 여러 번에 걸쳐 수십 년 동안 일어났고,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등 왕권을 두고 벌인 기득권층의 내란, 무신란 이후 격변과 민중반란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혼란한 정국이 수백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고려의 경제구조는 소수의 문벌귀족과 권문세족이 대규모 농장 단위로 경제기반을 독점하는 구조였습니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으로 대다수의 농민과 천민의 고통은 끊임없이 이어진 것입니다. <청산별곡>은 그속에서 피어난 고려의 노래입니다.

<청산별곡>은 누가 지었는지, 어떤 이유로 지어졌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무신란 이후 숨어살던 문신 지식인이라는 설, 잦은 전쟁과 반란 또는 가혹한 수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유랑민이라는 설 등으로 나뉩니다. 분명한 것은, 시대적 혼란 속에서 평범한 삶을 빼앗긴 사람들의 슬픔과 꿈이 담긴 노래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그림을 한번 그려보도록 하죠. 이끼가 잔뜩 묻은 쟁기를 손에 쥔 채 문득 저 멀리 하늘을 보니 물 아래로 새가 날고 있었습니다. 그 새를 보고 시름을 떠올리며 한숨을 쉰 사람은 어느덧 자신이 사랑할 사람도, 심지어 미워할 사람조차 남기지 못하고 홀로 세상이 던진 돌을 잔뜩 맞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상향을 꿈꿉니다.

-영화 <천년학>의 한 장면


그 이상향은 ‘청산’입니다. 평화롭게 머루와 달래를 먹으며 청산에서 살거나, 굴과 조개를 먹으며 바다에서 살거나. 큰 욕심 없이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그의 가슴 속에 꿈틀거립니다. 그러면서 장독대에서 피어나는 술 향기를 맡고 그 한 잔 술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다시 의지를 다지고자 하는 마음이 나타납니다. 

우리 문학에서 고려가요와 사설시조 등 평민층이 향유하던 노래에서는 이렇듯 시대적 상황으로 위기에 몰린 삶이 잘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의지를 불태웁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비록 오늘은 힘들지만 보다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것입니다.

<청산별곡>은 그렇듯 국가적 상황과 제도, 현실 등으로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난민은 과연 우리와 먼, 그저 아프리카 대륙 저 멀리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만의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국경을 넘었느냐, 혹은 넘지 않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역사 속에서도 국가와 사회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 살아남기 위해 용기를 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두의 꿈이 모이고 모여

<청산별곡>은 그렇게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를 상징하는 하나의 키워드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청산별곡>은 어느 한 사람이 지은 노래라기보다 세월을 넘어 구전되면서 만들어진 민중의 공동창작품이라는 주목해야 합니다. 비슷한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노래를 만들어부르며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꿈을 꾸던 과정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노래라는 이야기입니다. 유학에 의해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이 담겨진 고려가요 장르 전체의 특징이기도 할 것입니다. 

서로를 위로하며 세상의 아픔을 토로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노래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합니다. 비틀즈의 존 레넌도 고려 사람들과 똑같은 마음을 안고 <이매진(imagine)>을 작곡했을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미움과 오해, 편견을 버리면 보다 평안한 세상이 올 것이며,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끼리 어깨동무하며 서로를 위로한다면 슬픔은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무관심할 수도 있는 사람들, 하지만 저마다 절박한 꿈과 희망을 안고 한국을 찾은 그 사람들, 난민의 손을 잡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에게 한국은 이상향 ‘청산’이 될 수 있을까요? 당신은 그들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박형준 활동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