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인 오늘은 일요일로, 저희가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보낼 수 있는 휴일입니다. 특별한 휴일이니 이 날만큼은 일 얘기를 꺼내지 않겠다는 최원근 팀장의 선언 하에 모두들 심신이 풀어지려는 찰나, 먼 메솟까지 와서 하루를 그냥 보내도 아깝지 않겠냐는 장민정 팀장의 꼬드김에 4기 인턴들은 슬슬 넘어가버리고 맙니다.ㅠ 결국 오전은 자유롭게 보내고 오후에는 자원자에 한해 함께 메솟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러비쉬 덤프(rubbishdump; 이하쓰레기 산)와 카렌족 마을을 후보로 놓고 정보를 모아본 결과, 쓰레기 산을 먼저 방문하기로 합니다. 쓰레기 산은 메솟 지역에서 배출되는 쓰레기가 모이는 매립지인데, 버마에서 넘어온 사람들 중 일부가 이 쓰레기 산에서 돈이 될만한 것들을 골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지에서 체류중인 한 한국인의 말을 빌리면 지난 3월말에 102가구가 이 쓰레기 산 주변에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찾아가 본 쓰레기 산은 말로만 듣던 것보다 훨씬 놀라웠습니다. 쓰레기는 정말 언덕처럼 높게 쌓여 있었고, 쓰레기를 싣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덤프트럭은 흙먼지와 함께 소음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방금 떠난 트럭이 남긴 쓰레기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왔고 파리 떼는 붕붕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희들의 다리에 달라붙었습니다. 파리가 앉았던 다리는 근질거리기 시작했고요. 쓰레기 산 바로 옆에는 꽤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는데, 바로 옆에는 침출수를 받는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는데다 저수지의 물은 짙은 녹색으로 변해서 쓰레기 산으로 인한 오염을 의심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짙은 녹색의 저수지 물에 설거지를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산에서 불과 2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는 한 아이가 우물의 물을 퍼서 샤워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식수는 따로 받아서 쓰고 그 우물은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쓰레기 산 바로 옆에 지어진 집. 온갖 악취가 진동하고 파리가 들끓습니다 쓸만한 것을 찾는 엄마 옆에서 아기가 쓰레기를 장난감 삼아 놀고 있습니다
쓰레기 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스카이 블루 스쿨 교사가 서 있었습니다. 원래는 쓰레기산에 더 가까이 있었는데 익명의 기부자의 도움으로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새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외부에 알려지면서 이처럼 이들을 도우려는 손길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에 희망을 느끼면서 저희들은 다음 장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사무터 학교입니다. 지난번 기부품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태국의 명절인 이 날 학교 선생님들께서 저희를 초대해 주신 거죠. 학교 식당에서 준비한 소박하지만 맛깔난 현지 음식을 먹고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남아있는 기숙사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에 띄울 등을 준비하는 사무터 학교 학생. 여기에 초를 꽂고 물에 띄우고 부처님께 기도를 드린다
태국의 명절이었던 이 날, 사무터 학교 근처의 공원에서는 퍼레이드와 축제가 열렸습니다. 식사를 마치자 사무터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저희들에게 축제에 함께 갈 것을 권하셨죠. 장민정 팀장과 인턴들은 학생들과 손에 손을 잡고 걸어서 10분정도 거리의 축제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수많은 차량과 사람이 참가한 퍼레이드와 축제는 이 도시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처음 이도시에 대해 공부하면서 가졌던, 난민이 많이 사는 곳이라 침체되고 우울한 도시일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깨뜨려 주는 자리였습니다. 실제로 메솟은 곳곳에 건물이 신축되고 깔끔한 새 차가 눈에 띄는 등 경제적으로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퍼레이드 차량
----------------------------------------------------------------- 그리고
뚜둥~ 드디어 메솟에서의 다섯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휴일답지 않게 피곤한 하루를 보냈던 난센. 하지만 힘들다고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 안 되겠죠?
이날 처음 방문한 단체는 백팩(Backpack;이하백팩)입니다. 난센을 태운 차량은 메타오 클리닉 방향으로 달리더니, 그 맞은편 골목에 멈추었습니다. 왜 이렇게 메타오 클리닉과 가까운 곳에 백팩 사무실이 위치한걸까요?
백팩의 허름한 반지하 사무실로 향하는 난센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게 정답일까요? :^) 1998년, 백팩이 설립되었을 당시, 운영위원 대부분이 메타오 클리닉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인적, 재정적 지원과 운영, 펀드레이징 등의 실무 기술도 메타오 클리닉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아 시작하였으며, 신시아 여사가 현재까지 대표를 맡고 있고 항상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백팩은 버마 동부와 서부의 국경지대의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단체입니다. 군부정권의 오랜 차별과 무관심, 그리고 계속되는 내전으로 인해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국경지대의 마을들에 의약품과 긴급한 일차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자의 백팩에 의약품을 가득 담고 버마의 산악과 정글 지대로 발걸음을 내딛는다고 합니다.
백팩은 85개의 팀을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으며 현재는 81개의 팀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버마 동부와 서부를 20개의 지역(area)으로 나누어 한 지역당 3~7팀이 커버하고 있고, 한팀당 3~5명의 팀원과 10명의 산파(TBA; Traditional Birth Assistance), 10명의 마을 건강 자원자(VHV; Village Health Volunteer) 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6개월에 한 번씩 각 지역의 책임자들이 이 곳 헤드쿼터에 모여 그간의 활동 보고와 앞으로의 계획을 비롯한 회의를 열고 필요한 약품 등을 수령해 간다고 합니다.
각 팀들은 지역 내의 마을들을 옮겨다니며 1년 내내 버마 사람들에게 의료와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팩팀이 SPDC를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떻게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사상자없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이나 훈련을 제공하지 못하고, 현지의 커뮤니티에만 의존하고 있어 백팩 팀의 안전한 활동을 우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7명의 백패커들이 총격과 지뢰 등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ㅠ.ㅠ)
활동에 필요한 장비와 의약품만 약 10kg, 팀원 자신의 것까지 합쳐 15kg에 이르는 짐을 지고 SPDC와 부딪히는 불안한 상황을 조심스레 피해가며 백팩 팀들은 이 순간에도 버마의 마을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팔라웅 여성 단체(Palaung Women’s Oranization; 이하 PWO)입니다. 팔라웅 여성들은 치앙마이나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 많은 수가 분포하고 있지만, 다른 NGO들과의 접근성과 교류때문에 이곳 메솟에 사무실을 두고 있습니다. PWO는 팔라웅 여성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서 옷가지나 차를 팔아 기금을 마련하고, 팔라웅 여성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제고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른 여성단체들과 활발히 협력하고 있었습니다.
PWO가 신경쓰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버마-중국 국경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팔라웅 여성 매매(trafficking) 문제입니다. 팔라웅 여성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하여 버마를 떠나 태국이나 중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숫자가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결혼을 하지 못한 나이든 중국인들이나 한자녀 정책에 반대하여 여러 자녀를 갖고싶어하는 중국인들이 이러한 팔라웅 여성을 데려다가 결혼을 하거나 아기를 얻은 후 여성을 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겪은 여성들이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PWO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정 내의 여성폭력문제도 PWO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죠. 팔라웅 여성이 겪는 여러 형태의 폭력 중 가장 큰 것은 가정폭력입니다. 팔라웅 지역에는 가정폭력이 매우 폭넓게 행해지고 있는데, 이러한 가정폭력이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문제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마약, 알콜, 문화와 같은 이유가 원인이 되고 있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버마 정부가 가정폭력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하네요. 2008년에 버마 정부는 버마에 가정폭력이 없다고 발표했는데,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나라에도 여전히 가정폭력이 일어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어불성설이지만, 버마정부는 가정폭력이 전통이나 일상이라는 등의 이유로 이를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인권이나 여권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버마 정부를 비판하고 가정폭력에 시달린 여성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쉬웠던 것은 원래 예정되어 있던 한 소수민족 단체의 방문이 갑작스럽게 취소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최근 언론에도 크게 보도가 되었지만, 매솟 건너편의 버마 지역 내에서 군부정권의 지원을 받은 일부 소수민족 단체와 이에 반대하는 단체 사이에 격렬한 전투로 인해 많은 난민들이 태국지역으로 탈출했는데, 이 사태가 다시 격화되면서 긴급한 사정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조금은 편안한 오후를 보낸 난센. 이제 메솟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방콕을 향해 떠납니다. 글 속의 메솟과 현장의 메솟을 모두 만나 보았으니 이제 버마 난민들에 대해서 전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겠죠? 메솟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콕에서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버마를 바라보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마음 한켠엔 메솟과 메솟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여섯 명의 난센 멤버들은 야간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메솟 버스 터미널 방콕행 버스 앞에서
방콕에서는 어떤 만남이 난센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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