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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Oxford 난민연구소에서 온 박균희 회원님의 편지~

난센이 창립되기 직전, 국제앰네스티에서 진행되었던 <난민연구 프로젝트>의 수강생으로 시작해서 난민을 알아가고, 난센의 초창기부터 회원으로 참여하고 계신 박균희 회원님영국의 Oxford에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박균희 회원님은 지난 봄부터 Oxford의 난민연구소(Refugee Studies Centre)에서 인턴으로 생활을 하고 계신데요. 멀리 영국에서부터 날아온 편지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난센 가족 여러분!!

더운 날씨에 잘 지내고 계신가요??  난센 회원 박균희라고 합니다.
난센과는 작년 겨울, 난민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했어요.
성실한 회원이라기 보다는 뒷풀이 자리(?)에 얼굴을 비추며 활동한 것 같은데 어느 새 1년이 후울쩍 넘었네요~
           
저는 현재 영국의 Refugee Studies Centre(RSC) 에서 인턴을 하고 있어요. 그 얘기를 하기 위해 편지를 쓰게 되었네요^^
저는 2009년 초의 난민연구프로젝트 이후 이 쪽 관련 일을 하고 싶다며 막연히 꿈꾸던 중 RSC에 대해 알게 됐어요. RSC는 옥스포드 대학교 개발학과(Queen Elizabeth House) 의 연구 기관이고 강제 이주가 발생되는 원인과 그 과정에 대해 다학문적으로 접근, 연구하고 있습니다. 난민 분야뿐만 아니라 이주 분야를 모두 다루고 있어요. RSC에 인턴쉽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무조건 하자라고 마음 먹었어요.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 그에 따른 다양한 연구, 출판, 강의,, 그 명성답게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역시 그렇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문제는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하냐? .... 집에서 좀 멀고…  월급은 주는 건가? .... 음…. 빨리 졸업하고 취업해야지? ㅠㅠ”

이거였어요. 사실 제 주변인들의 걱정이었고, 저는

‘내가 언제 또 이렇게 해 보겠나’

식으로 지원했습니다. 이건 기회다라고 생각했거든요. 어쨌든 다량의 이메일과 전화, 팩스, 소포가 오가면서 담당자를 괴롭힌 후 결정이 났네요^^ 5월 초에 왔으니 여기 온 지 3달 째 접어 들었군요.

그럼 제가 하는 일을 간략하게 소개 할께요.
저는 Forced Migration Online(FMO)에서 일하고 있어요. RSC의 온라인 자료창고라고 말하면 될까요. 인터넷상으로 문서, 영상, 사진 등 모든 소장자료를 보실 수 있어요. 저는 기관정리, 리서치 등을 주로 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한국 난민관련 섹션을 만들었어요. 북한 탈북민 내용도 포함하여 곧 올릴 예정입니다. 지금은 사하라의 난민 캠프 사진을 정리해서 소개할 준비를 하고 있구요.

7월 중에는 여름학교가 시작되는데 3주간 현직에서 활동 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세미나, 강의 등이 진행되요. 센터의 큰 행사라 할 수 있어요. 이번 여름학교에는 UNHCR, NGO 에 근무하시는 분, 변호사, 학생, 연구원 등 전 세계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매일 활발하게 진행되는 일정에 센터가 무척 바빴답니다. 이주정책, 강제이주의 개념과 세계화, 국제법 등을 주제로 다양하고 빡빡한(?) 일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참가자들의 구체적인 관심분야는 다들 조금씩 다르지만 이주와 난민이라는 공통주제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서로에게 좋은 만남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스텝으로 오가며 흘깃흘깃 훔쳐보고 있는데 그 분들의 모습을 통해 자극도 받고 배우는 것 같아요^^ 참, 한국 분도 한 분 오셔서 무척 반가웠어요.

여러 자료들을 접하며, 또 다양한 분들을 만나며 느낀 점은 이 분야가 아주 광대하다라는 거에요. 그래서 더 재밌어요. 공부할 것은 더 많아졌지만요. 어쩜 이렇게 많은 단체와 많은 분들이 일하고 계셨을까 하는 점에 놀랐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힘을 마구마구 솟는 것 같아요^^

연구소라고 해서 딱딱할 것만 같았는데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 속에 일하고 있어요. 거기에 맥심 인스턴트 커피가 이 곳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한 몫 했죠. 부드럽고 맛있어!! 라며 좋아하시는데 한 때 옥스포드에서의 자판기 사업을 생각하기도 했답니다^^

센터 활동 이외에 개인적으로 난민관련 NGO 에 방문 한 적이 있어요. 그 곳은 상근자가 있긴 하지만 주로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으로 센터가 운영이 되요. 열정 가득한 봉사자 분들이 한 기관을 이끌어 나가시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기적으로 푸드뱅크가 운영된다는 점입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약 25가구가 찾는다고 하는데 음식, 생필품 등이 제공되요. 난센을 통해 기본적인 생필품과 음식이 없어 힘드신 분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갖던 것 같아요. (특히 아기 분유를 보구요)넉넉하지는 않아도 최소한의 생필품이 제공된다면 타지에서의 생활이 미약하나마 덜 힘들테니까요.

어떤 난민분이 말씀하시길 자신들은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떠난 것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최원근 팀장님이 강의 때마다 말씀하시듯 난민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죠. 저는 제가 난민이 아닌 한 그 상황을 100% 이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궁극적인 그들의 목적은 그들 스스로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분들도 스스로 자립하길 원할테구요. 지난 봄 난민 스터디 친구들은 기억하겠지만 영상(God grew tired of us, 2004)을 통해 만났던 수단친구들이 그랬죠. 그리고 그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게 앞으로 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막 이 쪽에 대해 알기 시작한 거라 아는 건 없지만 앞으로의 제가 알아갈 과정에 대해 무척 기대되요. 한편으로 앞으로 어떻게, 어떤 자세로 참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도 하구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무척 행복하고 남은 기간 동안 더 열심히 하고 갈 생각입니다. 많은 도움을 주신 난센의 김성인 국장님과 원근팀장님께 매우 감사합니다.
그럼 다들 건강히 잘 지내시구요, 난센에서 뵈요^^



* Oxford RSC 홈페이지 : http://www.rsc.ox.ac.uk/

* Forced Migration Review 홈페이지 : http://www.fmreview.org/




여기서 뽀너스 하나!!!
편지만 쓰기 아쉬웠다며, 함께 일하고 있는 RSC의 연구진 가운데 Gil Loescher 교수와의 짧막한 인터뷰를 덧붙여 보내주셨네요. Loescher 교수님은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난민연구를 주도하고 계신 저명한 학자이시고, 현장의 경험과 학문적 이론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는 분입니다. 2003년 바그다드 현지에서 UNHCR 직원들이 폭탄테러 공격을 당했을 때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로이기도 하셔서 유명하시구요.


            * 오른쪽이 박균희 회원님, 왼쪽은 Oxford RSC의 Gil Loescher 교수입니다. 


이제부터는 Gil Loescher 교수와의 인터뷰입니다~ 지난 봄 난센 사무국과 함께 '장기화된 난민현상(Protracted Refuee Situation)'에 대한 스터디를 하신 분들에게 이 이름은 낯설지 않을 것 같아요. 바로 우리가 교재로 했던 책, Protracted Refugee Situation의 저자이시죠.

어느 날 같이 일하시는 분이 저에게 어떤 교수님의 프로젝트를 도와줄 생각 없냐고 물어봤습니다.그 전부터 여러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터라 저는 꼭 하고 싶다며 고맙다고 엄청 좋아했었어요. 성함이 길(Gil)이라고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름을 끝까지 듣고 보니 얼마 전까지 스터디에서 영어 때문에 씨름하던 그 책의 저자인거에요!!. 세상에 이런 일이ㅋㅋㅋ
어쨌든 FMO에서 일하면서 교수님의 자료 찾는 일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앞서 제 이야기를 쓰면서 생각한 게 교수님 인터뷰였어요. 그러면 난센 회원 분들도 그렇고 같이 스터디 했던 친구들이 무척 반가워 할 것 같았거든요.(물론 저만의 생각입니다만... ^^;) 어쨌든 교수님이 바쁘셔서 준비한 질문을 다 하진 못 했지만 매우 의미있는 인터뷰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난민 이슈 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난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난민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원래 아시아 지역, 특히 베트남 지역이 나의 연구 분야였다. 논문도 베트남에 관한 것이다. 대학원 다닐 당시 엠네스티에서 일을 하는 등 인권관련 일에 관심이 많았던  차에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났고 많은 베트남 보트 피플(난민)이 발생했다. 그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난민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2. 그 당시 연구 트렌드와 현재를 비교하면, 학문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내가 연구를 시작할 1970년 대 당시 필드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있었지만 매우 소수였고 난민 연구자는 거의 없었다.
(아카데믹 분야) 세계 2차 대전 때 유럽에서 발생한 난민 연구 이후로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던 상태였다. 공백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연구가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을 시작하기에 이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첫 번째 책은 미국의 난민 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아주 많은 전문가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시작할 당시와 비교해 보면 그 만큼 경쟁적 (competitive)일 것이며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3. 이 쪽 분야 일을 하시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와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난민을 연구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봤지만 한 인간으로서 난민을 존경(respect)한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난민들의 용기, 능력(ability),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많이 배우기 때문이다.
7년 전 나는 이라크에서 폭발사고 때문에 두 다리를 잃었다. 그 사건은 내 인생에 있어 굉장히 큰 사건이며 회복하는 과정과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앞서 말한 점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점은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 할 수 있다.

 

4. 앞서 드린 질문과 비슷할 것 같은데 일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맞다. 비슷한 대답이 될 것 같다.
그 사고 이후 4~5군데의 버마 난민캠프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나의 상황은 그 전에 캠프를 방문했을 때와 너무 달랐다. 나는 장애를 가진 난민, 특히 나처럼 다리가 없는 난민을 만나고 싶었다.

캠프는 산 속에 있었고 그 사무실을 가려고 할 때였다. 보니까 사무실은 가파른 산 위에 있었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 때 저 높이 사무실에서 다리가 없는 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분들은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내가 있는 곳까지 내려와서 나의 휠체어를 사방에서 들고 올라갔다. 특히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들의 의족이었다. 그 의족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의학적으로 잘 만들어진 그런 게 아니었다. 나무로 만들어져 있거나 아니면 고철을 이용해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 몸에 맞춰진 자기만의 의족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수 많은 캠프를 다녀봤지만 그 전에는 장애를 가진 난민에 대해 초점을 둔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또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5. 교수님의 관심 분야는 장기화된 난민이잖아요. 여기에는 인권, 정치, 안보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데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떤 것인가요?

인권이 가장 큰 문제점일 것이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서비스를 받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는 도시에 거주하는 난민(urban refugee)들도 마찬가지이다. 


6. 난민들의 고향이 평화적인 상황이 되도 트라우마로 인하여 돌아가지 않는 난민들이 많다고 읽은 적이 있어요. 또 캠프 내에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심리적인 문제가 심할 것 같은데 (트라우마, 우울증) 그런 것에 대한 조금이나마 지원이 있나요?

정신적 치료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고 받기 힘들다. 이 외에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게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7. 장기화된 난민의 경우 어쩌면 그들의 사회화는 난민캠프 안에서 이루어 졌을 것입니다. 또 사춘기도 캠프 안에서 겪었을 것이구요. 어린이들의 교육 상황은 어떠한가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캠프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의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가족들의 생활은 매우 힘들다. 전통적인 여성과 남성의 역할은 다른데 캠프 안에서는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 하는 남성들은 술에 의존하기도 하며 여성들은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 또 그런 환경 속의 어린이들은 전통적인 롤 모델이 없다. 그들을 교육시켜 줄 중등교육이 없는 것도 문제이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쉬워진다.

장기화된 난민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만약 어떤 이가 난민캠프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그 새로 태어난 아이들의 교육은 어떻게 될 것인가?
 

8.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나라 중 난민을 수용할 능력이 안 되는 경우 국제 사회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요? (매우 뻔한 질문이지만 여쭤 봤습니다)

국제사회는 그 난민들을 보호해줘야 하고 법적 지위를 줘야 한다. 난민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재 정착할 때까지 지원을 해야 한다. 난민 수용국가의 정부에게도 역시 지원이 필요하다.


9. 제가 보는 우리의 역할은 난민의 서포터이며 궁극적으로는 난민 스스로 그들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주된 역할자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맞다. 난민들은 의존하기보다는 독립적(self reliance)이어야 한다.
그러나 장기화된 난민의 경우는 그게 너무 힘들다. 이 경우 난민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자유가 없는 게 문제이다.


10. 난민 분야를 공부하고 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competency)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학생들이 난민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유엔, NGO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우선 적절한 교육이 필요한데 많은 분야가 있다. 특히 사회과학, 정치, 국제 개발학, 인류학, 법 등등..

또한 많은 경험을 해 보길 바란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봉사를 하는 등의 폭 넓은 경험이 중요하다.




이상이 온갖 우여곡절과 끈질긴 노력 끝에 Oxford RSC에 가서 좋은 경험을 쌓고 있는 박균희 회원님의 편지였습니다.
너무나 오랫만에 소식을 전해주셔서 사무국원들이 매우 반가워했는데, 갖은 노력만큼 좋은 경험들을 하고 계시고 많은 결실들이 느껴지는 소식이라 더더욱 뿌듯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인턴 기간이지만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시길 바래요~ :)

다른 회원님들도 난센의 식구들과 나누고 싶은일상 생활 속에서 만나셨던 난민들과의 이야기나 또는 특별했던 경험들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연락을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