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난민소송은 변호사 조력을 받지 못한 채 나홀로 소송으로 진행되고 있고, 많은 경우 충분한 주장과 증명할 기회를 놓친 채 법원에서 공정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난센은 변호사 조력 없이 나홀로 난민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을 충실히 서포트 해보고자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이상아 자원활동가님과 한나현 자원활동가님이 당사자 분의 난민소송을 동행하며 경험하고 느낀 점을 후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후기는 순차적으로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어려운 과정을 협력하여 진행하고 계신 데오(가명)님과 두 자원활동가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희망이야기 1편 : https://nancen.org/2013 *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희망이야기 1편(영문) : https://nancen.org/2014 *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희망이야기 2편(영문) : https://nancen.org/2024 |
한국에서 변호사 없이 진행하는 난민 본인소송이 얼마만큼 성공적일 수 있을까? 상아님과 나 두 난센 자원활동가는 걱정을 안고서 부룬디에서 온 데오의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을 도왔다. 1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 상아님의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 희망 이야기 1편 에 이어서 소송을 도우며 내가 느낀 바와 변론기일 당시의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상아님이 쓰신 전편에서는 데오가 부룬디에서 겪은 박해상황과 난민심사에 대해 기록되어 있으니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그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다.
데오와의 첫 상담은 지난했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기에 오랜 시간동안 묻고 또 되물었다. 그에게 왜 당신의 나라에서 도망쳐야 했는지, 그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지, 그들은 왜 당신을 적으로 삼았는지, 당신에게 적으로 삼을만한 근거가 있었는지, 그런 증거는 있는지, 와 같은 질문들을 했다. 계속되는 질문에 데오도 아마 지쳤었을 것이다. 사실 삶의 경험에 대해 논리적인 정합성을 가지도록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것, 그리고 이를 증명할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하지만 난민심사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고, 이 과정 속에 있는 그를 도우려면 이 폭력적인 언어를 따라 사고하고 말해야 했다. 처음엔 그게 힘들었던 것 같다.
데오와의 상담을 마치고 나서 나는 맨 먼저 구글에 ‘부룬디’라고 검색했다. 검색결과를 보면서 내가 부룬디에서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돕겠다고 뛰어들어도 되나? ’하고 겁이 났다. 난센의 선생님과 상아님이 없었다면 부룬디를 한 번 검색해보곤 못하겠다고 포기했을 것이다. 이후 몇 주간 부룬디에 대한 기사와 보고서를 찾아 읽으며 리서치를 했다. 그러면서 데오의 말들이 문득문득 다시 떠올랐다. 아,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데오는 그렇게 생각하고 느낀 것이구나, 하고 상담에서 들은 말을 뒤늦게 이해를 했다. 데오의 나라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실종되고, 삶을 위협받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만 살아왔던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위험과 공포를 일상적으로 겪어왔기 때문에 그가 설명하려 했던 그곳에서의 삶을 나는 바로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몰랐던 건 부룬디만은 아니었다. 나는 데오가 겪은 한국도 몰랐다. 난민인 데오의 한국은 이곳의 시민권자인 나의 한국과 달랐다. 난민신청제도는 마치 이 제도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듯 거짓 제스처를 취한다. 데오의 케이스만 봐도 접수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안내는 없었고, 증거물은 번역이 안되고, 통지서는 무심하게 한국어로 날아왔다. 그리고는 그냥 버려둔다. 알아서 재주껏 해보라고 둔다. 커뮤니케이션을 할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가혹하게 대해서 이 땅을 떠나도록 하고 싶은 것일까? 데오의 한국은 거대한 암호이고, 또다른 전쟁터이다. 나는 데오를 통해서 부룬디를 알게 됐고 한국도 알게 됐다.
이후 몇 주간 상아님과 나는 상담을 통해 나온 말의 조각들을 이어붙여서 ‘진술서’의 형태로 만들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증거물 중 하나인 ‘국가정황정보’를 조사해서 정리했다. 아프리카 거주경험이 있고 뛰어난 대화능력을 가진 상아님께서 데오와 계속 소통하고 자료들을 영어로 번역해주셨다. 세 차례의 상담 끝에 9페이지 가량의 진술서가 나왔을 때 데오는 자신이 겪은 일들과 전달하고 싶었던 말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 있으니 이제 희망이 있다며 기뻐했다. 데오가 출입국에 홀로 난민신청을 할 때 썼던 신청서에는 고작 몇 줄의 진술이 전부였었으니까. 한국에서 난민인정이 되는 일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지 보아왔던 나로서는 데오처럼 마냥 희망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그의 기쁨이 무엇인지는 알 것도 같았다. 데오는 자신이 한국에 온 이래로 한국인과 10분 이상 대화해본 적이 없었다고도 했다. 이제껏 한국에서는 자신의 삶을 설명하기가 번번이 어려웠고 또 이해받을 수 없다는 막막함을 느껴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민심사는 대체 무엇인 것일까?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에 따라 내리는 판단을 어떻게 ‘공정’한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난민심사제도가 장벽이 아니고, ‘진짜난민’ ‘가짜난민’을 걸러내는 거름망도 아니고, 난민으로 온 사람들의 삶을 듣고 이해하고 돕는 과정일 수는 없을까? 이런 조력이 필요한 것도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준비서면 제출을 마치고 이틀 뒤, 두 자원활동가는 데오의 변론기일에 동행했다. 15분 가량의 짧은재판이었다. 그간의 긴긴 이야기들과 복잡한 사정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시간이었지만 데오는 그 중 마지막의 답변 기회를 난센에 감사인사를 보내는 데에 썼다. 나는 그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을지를 생각하면 내가 했던 일에 비해 분에 넘치는 감사를 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재판이 끝나고 법원을 나서며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와 격려를 나눴다.
그리고 동시에 이나마의 조력조차 받지 못한 채 같은 재판장에 있었던 한 난민 분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데오 다음 차례의 재판이었는데, 한국어로 쓰여있고 외쳐지는 안내를 이해하지 못해서 지나가던 나에게 자신의 순서가 언제인지 물었다. 그의 차례에 대한 안내가 끝난 직후여서 나는 지금 바로 들어가셔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재판장에 들어 온 뒤에 그는 접수증인지 뭔지 모를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해서 또 재판 직전에 부리나케 접수처에 다녀왔다. 나에게는 숨쉬듯 자연스럽게 진행될 일도 그에게는 분초마다 넘어야할 산이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기회를 놓치고 좌절하는 일들이 벌어질까. 목숨을 걸고 다른 나라로 넘어온 난민들이 자신의 난민사유를 소명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받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권리이다. 그리고 ‘공정’한 제도라는 것은 난민 개인에게 조력이 있든 없든 이 권리를 보장받으며 난민심사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데오처럼 변호사 없이 재판을 받고자 하는 난민이나, 시민단체의 도움 없이 홀로 재판장에 서야 하는 난민도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데오와 난센은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출입국은 항소할 가능성이 크다. 이 긴긴 싸움은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남길까. 그것이 희망이길 간절히 바란다.
글: 자원활동가 한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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