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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법무부장관님께] 18. 안녕하세요, 편세정입니다.

 

 

 

박상기 법무부장관께

 

안녕하세요? 저는 편세정입니다. 농장에서 염소, 양, 닭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난민법을 개정할 예정이라 하는데, 저는 개정되는 내용에 반대하기 때문에 이 편지를 씁니다.

 

반대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이번 난민법 개정의 내용이 기존의 법 질서를 위배할 위험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법을 전문으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고요~ 고등학교 때 사회과 과목 선생님과 함께 헌법 전문을 읽고 또 읽었던 것이, 우리나라 국민으로 사는 저의 법 지식의 토대입니다. 간소하지요?)

 

헌법 제 6조에서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하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난민에 대한 다자 조약인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으니까, 그에 의해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가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난민 협약 제 5장 행정적 조치 중 32조 추방, 33조 추방 또는 송환의 금지를 읽고, 예정된 난민법 개정이 이 조항을 위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난민협약 체약국으로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 집단의 구성원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그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난민을 추방하거나 송환해서는 안되’는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난민 사전심사 제도를 전면으로 도입한다고 합니다. 사전 심사에서 걸러진 사람에게는 난민 심사도 없이, 이에 대한 이의신청의 기회도 없이 출국조치가 가능하게 된다고 합니다. 난민 신청을 한 이유의 뚜껑도 열지 않은 채 난민을 추방, 송환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난민법 개정으로 인해, 난민협약을 위배하고, 그래서 헌법 제 6조도 위배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법 질서가 원칙에 맞게 잘 운용되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은 경우를 경계하는 시민으로서, 큰 원칙을 어기는 이번 난민법 개정을 반대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번 난민법 개정이 우리 사회의 치안과 안정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난민의 권리를 가능한대로 제한하고, 난민심사 절차가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그래서 난민신청인을 추방하고 구금하는 식으로 법 질서가 시행되면, 우리 사회가 더 안정될까요? 불안이 줄어들까요?

 

헌법으로 체결한 조약의 큰 원칙을 무너뜨리고 난민의 권리를 위법적으로 제한하더라도 그것이 정말로 사회 불안을 낮출 방법이라면, 이번 난민법 개정안은 ‘아쉽지만 어쩔수 없는 선택’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불안을 더 키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억울하고 절망할 사람들의 분노가 터지면 어떡하지, 그게 더 무서워요. 기본적인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당할 이들이 화를 내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난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래서 우리 나라로 오는 난민도 늘어나는 거라는데,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에 대한 숙의가 이번 개정안에 담겼나요? 사회 안전망을 구성하는 데 실패한 정치의 책임을 시민들이 묻고 있어요. 난민협약에서 탈퇴하자는 청와대 청원의 요지는 결국,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난민법 개정안은 그저 입막음에 급급한 섣부른 조처로 보입니다.

 

이번 난민법 개정에 반대하는 마지막 이유는, 언제나 저의 권리를 지키며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권리를 ‘난민이라는 이유’로 제한할 수 있는 사회는, 다른 누군가의 권리도 어떠한 다른 이유로 제한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난민신청인에게 비인간적인 조처를 가할 수 있는 사회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난민이라서, 편의점 알바생이라서, 주야 맞교대 근무자라서, 대학 시간강사라서, 변호사 시험에 5번이나 떨어졌으니까, 특수고용노동자인 야쿠르트 아줌마와 화물차 기사니까, 포괄임금제 계약을 했으니까, 중증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아니, 중증이 아니라도 어쨌거나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어쩔 수 없거나, 관행이거나, 당연하기까지 한 사회는 도무지 원하지 않아서 이번 난민법 개정안에 반대합니다.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나에게 있는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서, 난민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이번 난민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편지를 씁니다.

 

법무부의 재고를 바랍니다.(이게 법무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지만요)

 

2019년 4월 26일
편세정 드림

 


 

최근 법무부장관은 난민제도 '악용을 막는' 난민법 개정을 발표했고 입법예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난센은 난민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설정 없이 난민신청자들의 권리만을 제한하는 법무부의 개정안에 반대합니다. '난민에게도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난민법의 애초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시민분들과 <법무부장관에게 편지쓰기>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약 한달간 시민분들의 편지가 법무부장관께 도착합니다. 매일매일 보내지는 편지를 난센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 이 캠페인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은refucenter@gmail.com으로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