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예능 중 여자 연예인들이 못다이룬 꿈을 함께 이뤄가는 '언니들의 슬램덩크'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첫번째 꿈계주였던 김숙은 대형버스면허를 따고 싶다는 꿈을 이뤘고, 두번째 꿈계주였던 민효린은 걸그룹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이뤘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복싱을 하고 싶다는 제시의 꿈에 따라 복싱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훈련을 진행하던 중 복면을 쓴 복싱코치의 얼굴이 공개되었는데, 그 순간 제시는 울음을 터트리며 링밖으로 뛰쳐나가버렸습니다. 복면을 쓰고 있던 복싱코치는 데뷔 이후 십여년 간 제대로 만날 수 없었던 제시의 아빠였습니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던 말을 기억한 제작진은 제시의 진짜 꿈인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휴가를 깜짝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울음을 터트린 제시, 그리고 함께 우는 멤버들과 제작진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실은 그 울음보다도, 목표를 설정하고 무언가를 달성하는 것만이 꿈을 이루는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의 시간을 꿈이라고 지칭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지지해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꿈은 난민들이 권리를 되찾고 행복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제가,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활동가들은 활동에서 오는 보람이 활동가에게 가장 큰 보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보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잠을 줄여가며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날 시간을 아껴 교육을 받습니다. 퇴근 후와 주말을 모두 활동을 위해 쏟아 부으며, 활동이 자신의 보람이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활동가는 한명의 평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인이기도 하면서 누군가의 자식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부모이자 친구기도 합니다. 퇴근 후에 자기계발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TV를 보거나 취미생활을 누리는 이들도 있고, 주말에는 데이트를 하거나 종교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좋은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걸까요. 아니,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걸까요. 삶이란 직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할, 관계, 삶의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통합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자료를 조사하는 것과 한시간 동안 여유롭게 밥을 먹으며 쉼을 누리는 것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시간을 의미있게 보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주말에도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과 친구를 만나 삶을 나누는 사람 중 누가 더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는 것인지, 각자의 삶의 맥락과 가치에 따라 좋은 삶의 기준이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인지, 일상은 공적인 활동만큼이나 가치있게 여겨질 수는 없는 것인지, 이러한 것들을 제게 속시원히 설명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습니다.
발을 다치면서
다니던 운동을
중단한지
어언 네 달째.
더운 날씨에
몸도 마음도 쉬이
지치는 것을
느낍니다.
시간이 지나
얼른 완..쾌 하길
바라지만
고단한 순간이
많은 요즈음,
청춘인데 전혀
푸른 봄 같지 않은
나는
'누구일까'
하는 사춘기 고민을
합니다.
과연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의 선곡 우효(OOHYO)_청춘(DAY)
7월 어느 날, 난민 분께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난센에 처음 전화문의를 주신 분으로 본인을 난민인정자라고 소개하며 현재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최근 몇 달간 몸이 좋지 않아 일을 못하였고 돈이 없어 사는 곳에서도 쫓겨날 형편이라고 했다. 난센에서는 관련하여 직접적인 지원은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난민지원단체에 문의해보라고 소개해 드렸다. 그 분은 이미 그 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모두 알아본 상태라고 했다.
우리는 생계비 지원을 하지 않아요,
직접 일을 소개해주는 것도 쉽지 않구요,
일은 많이 알아 보셨어요?
지역에 있는 공기관 방문은 해보셨어요?
나는 생각나는 대로 답변을 드리고 그에 연관된 질문을 하였지만 그것들이 그에게는 잔소리 혹은 그 이상의 모독으로 들렸던 것 같다. 내일 하루도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는 그의 한 숨 섞인 말에 나는 정말 충분이 알아 본 것이 맞느냐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러자 그는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stop it, stop it”, 이 두 마디를 외치고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든 체, 동시에 어벙벙함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불과 1분 남짓의 통화였지만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같은 번호로 문자를 보내 보았지만 다시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분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어떠한 일을 해오셨는지,
현재 일은 왜 못하시는지,
왜 먼저 묻지 못했을까?
그 분의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정보들을 먼저 받아보았어야 했다. 듣는 이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에 뒤늦게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그 분에게 남은 것은 좌절감이겠고 나에게 남은 것은 죄책감과 부끄러움이었다. 무력해진 삶에 큰 좌절감을 더한 것 같아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이 후 말과 관련하여 중요한 원칙이라 생각 했던 ‘세 황금 문’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려는 말을 세 가지의 문에 통과시켜보면 말 실수를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첫 번째 문은 그 것은 참인가(사실인가)?
두 번째 문은 그 것은 상대방에게 필요한 말인가?
세 번째 문은 그 것은 상대방에게 따듯하고 친절한 말인가?
아무리 필요한 사실을 말하더라도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정도가 다르다. 말의 폭력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할때의 나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나의 이러한 미숙한 모습이 반복되질 않기를 바래본다.
8월초까지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서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라는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전시와 더불어 7월에는 난민이슈를 다루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포럼도 있었는데, 각각의 포럼이 저에게 참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 실제로 프랑스에서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홍세화 선생님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의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이 한국어로 이야기해주니, 다른 언어로 듣던 이야기들 보다 더 절절히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가지고 있었던 3년짜리 비자 만료를 코앞에 앞두고 난민 신청했었다는 말을 들으면서는, 그제서야 그 말에 공감했습니다.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아직 있으니까, 나 같아도 그랬겠네..’
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던 난민신청자들은 자연스럽게 남용적 난민신청자라는 오명을 씁니다. 얼마 전 만난 난민 분께도 한번 여쭤봤습니다. 왜 비자만료 며칠 전에 난민신청 하셨냐고요. 들려주신 대답은 당연한 대답이었고, 저는 부끄럽게도 처음으로, 진정으로 그 말을 이해한 것 같습니다.
난센에서 일하지만 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을 긋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지… 포럼에서 김성인 국장님이 하신 “공감되지 않으면 연대의 대상으로 여겨질 수도 없다.”는 말을 생각해보면서 “나부터”라는 진부하지만 또 새로운 말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지난 한 달간은 세대전환 과정에서
난센 사무국의 내규를 만드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다만 난센이,
다양한 삶의 주기와 색깔을 가진 활동가의 삶을 잘 아우를 수 있었으면 한다.
난센이 지향하는 가치만큼이나 과정에서 사람들이 우선되는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일하고 싶은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속가능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활동의 범주와 연대를 확장해갈 수 있는 조직이 되었으면 한다.'
라는 바람들을 가지고서..
어떤 규칙과 기준을 난센 안에 세우고 정립해나가야 할지
여러 가지 논의와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활동가들이 어떻게 하면 소진되지 않고
자신의 꿈과 난센의 가치를 잘 버무리며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이를 위한 상상력과 조언들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속에서 공명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사무국 규칙으로 정립시켜나가는 과정에서
같이 활동해나간다는 것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한참을 읊조렸던 문장이었는데
다시 끄집어내 되새겨 보게 됩니다.
'나는 비정상, 너도 비정상
비정상들이 만들어가는
더디지만 함께 가는 세상'
난센에서의 활동기한이 이제 끝을 향해 다가간다는 사실에 새삼 기쁜 마음이 듭니다. 왜냐하면 한켠으로는 맡은 케이스의 끝을 보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 있지만 최소한 제가 소통해온 난민들이 최종 난민인정을 받지 못하는 모습은 보지 않고 떠날 수 있으니까요. 참 많이 이기적이고 부끄럽게도 그 전에 떠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채 5%가 되지 않으니 제가 담당하고 있는 난민 중 난민인정을 받을 사람은 통계적으로 겨우 1명을 웃돈다는 점을 생각하면 웃고 떠들고 잘 있다가도 갑자기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물론 난민 인정이 난민들의 삶의 여정의 최종 목적지이자 유일한 목표는 아니지만 또 다른 기약 없는 땅에 떨어져 또 한 번의 막막함과 두려움, 불안함을 안고 새로운 불안정한 여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한 상황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을 어떻게 이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함께 준비한 1심에서 패하고 2심에 막 들어선 한 난민에게서 며칠 전 연락이 왔습니다. 너무 걱정이 된다고. 그런데 걱정하지 말라고 해야 할 지, 좋지 않을 결과가 예상되니 걱정하고 있으라고 이야기해야 할 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한 마디를 쥐어짜내 놓고는 나는 참으로 말주변이 없고, 이 상황에서 너무나 무력하고, 이런 말밖에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보잘것없는 한마디에도 고맙다고, 오늘 밤은 잠을 잘 잘 수 있겠다고, 나는 참 행복하다고 말해주는 이렇게 예쁜 사람을, 난센 문을 두드리는 이런 수많은 예쁜 사람들에게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점점 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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