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 유난히 관심이 집중되던 한 달이었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연락이 왔고, 난민에 대한 문의와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았습니 다. 그렇지만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있는 얼굴에 관심을 쏟기엔, 우리네 하루하루가 너무 힘겹기 때문일까요.. 쏟아져나오는 기사만큼 부정적인 댓글도 줄을 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어려운 이들을 먼저 도와야 한다는 의견에서부터 무슬림들이 들어오면 사회에 혼란이 생길거라는 의견까지.. 우리를 정말로 위협하는 것은 외부에서 찾아오는 나그네들일까요, 아니면 그들을 환대할 여지조차 없게 만드는 이 사회의 무자비함일까요. 열심히 일하고도 땀흘린 만큼의 댓가를 얻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나그네들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사회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일까요. 쌀쌀한 기온보다도 차디찬 마음들로 인해 옷깃을 여미게 되는 가을입니다.
가을에는 궁서체로,
9월에는 난센에 오신 클라이언트 몇분을 제가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실의 다른 분들이 외근으로 자리를 비울 때, 무얼 묻고 말씀드려야 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국장님께 전화를 해가면서 상담을 했었습니다. 클라이언트를 만나, 지금 처한 상황을 정확히 듣고, 난센이 어떤 조력을 할 수 있는지 결정해 알리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 번은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소송을 하시는 분과 함께 서울 행정법원에 갔었는데요. 보통은 클라이언트와 동행하지 않지만, 보지 않고 소송 제기 방법을 설명하기가 어려워 따라갔습니다. 저는 어떤 절차로 소송을 제기하는 건지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그분이 한국어 없이도 효율적으로 소장 접수를 마치셨고, 저는 그것을 보고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인도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말(힌디어)을 못해도 저는 바보가 아니었어요. 똑같은 이치였어요.
10월 초의 하늘은 깊고, 혁신파크 뒷산인 북한산은 멋있습니다. 돌아오는 주말엔 은평구 지역 축제가 혁신파크 마당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10월 중순 17,18일에는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 난센이 참여하고요. 이태원축제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고가 돌아왔어요. 7월 중순 난센에 들어와 2주를 보았던 고. 2달 없어졌다가 오늘 돌아와, 저의 앞 옆자리에 있네요.
저도 편따라 진지 궁서체로,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두 달 동안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통사고 이후로 업무를 진행하는게 체력적으로 조금 어려워져서 더 쉬는 시간을 가지며 열심히 병원을 다녔어요.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하기도 하면서 그동안의 활동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그동안의 시간을 거슬러오르다 보니 우선 난센을 통해 만난 한 분, 한 분께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난센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웠던 다양한 사람들 속의 우주가 제 우주와 마구 뒤섞였고 그것은 때때로 저를 뿌리부터 흔들기도 하였던 경험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의 결과일지는 몰라도 (성격 검사를 했는데) 성격이 더 난센형(?)으로 바뀌어 있기도 했고.. 이제 난센(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제 역사의 한 축을 구성한다고 거창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ㅋㅋ) 아주 찐~한 영감, 영향력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난센에서 떨어져 그동안을 돌아보니 제가 무엇이 부족한지와 활동하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다시 분명히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이 꼭 필요했고 잘 쉬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쉬면서 여행하며 타지에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환대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환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고 이유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 그냥 그 존재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 자연의 현상, 본능 이라는 것을 확실히 그들이 전해주었고, 나도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따위를 되내였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쉼의 효과가 얼마나 갈런지는 모르겠지만..ㅋ 스스로는 이걸 잊어 버리면 난센에 남아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난센에서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화이팅하고 싶습니다.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 겨울 가리봉동에 있는 난센 상담실에서 겨울 잠바를 입은채 면접을 본 이후 난센과 함께한지도 벌써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추석 이후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꽤나 쌀쌀한 요즘, 올해 초 입었던 겨울 옷들이 생각나는걸 보니 난센과 함께 할 시간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달에는 난센을 통해 다른 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는 난민 가정에 방문을 하였습니다. 제가 방문한 지역은 동두천이었는데 각 가정마다 다양한 형태로 삶을 꾸려나가고 계시더라구요. 그렇게 집에 방문하고 사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니 한국 정부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들을 위해서 크게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보았던 것 같아요.
9월, 유럽에서 불어온 난민에 대한 관심으로 국내 언론에서도 난민에 대한 시선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한 달이었는데요. 아직도 한편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다거나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는 말들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가정방문을 하고 나면서 여전히, 아직도, 한국에서 저런 말은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난민들이 한국 정부로부터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 않거든요. 제발 국내 난민들이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을 좀 받아서, 어서빨리 저말이 유효한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어느 날인가 도망자가 되어 도망을 다니고 한국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어떤 활동가 분을 보조해서 어떠한 일을 도모하다가(?) 정부기관에 의해 쫓기는 꿈이었습니다. 내까짓게 머라고 이런 꿈을 꾸냐만.. 난센을 찾아오는 분들의 삶의 이야기에 몰입해서 그랬던 것이었던지. 무튼 너무 무서웠습니다. 한순간 한순간 불안했고, 그냥 길을 지나가는 행인이었을텐데 누군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고, 미행하는 것 같고, 한시라도 빠르게 이 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한국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고 덥석 탈출할 수 있게 해달라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조하였던 그 활동가 분과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흩어져 마치 007 작전을 수행하듯 거리를 숨어다니고 뛰어다니다가 잠에서 깼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으로 우습지만, 그 꿈을 꾸고 난민분들의 삶을 다시 되새김질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은 그들이 겪은 경험들- 미행, 도망, 감시, 협박, 고문, 감금, 강간... 너무 어마어마해서 차라리 와닿지 않았던 것 같고, 그래서 "아... 어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야" 하면서도 그 절실함이나 절박감에 다가가기도 어려웠던, 아니 다가가려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짧은 꿈이었지만, 그리고 그저 나의 상상에 기초한 허구였지만, 몸으로 느껴졌던 두려움, 절박함, 아직도 그 소름이 약간 남아있는 긴장감에 내가 하는 일, 내가 만나는 분의 경험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난센에서, 그리고 그 전에 동천에서부터 난민을 만나고 난민분야의 일을 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 1년, 2년이 지나도 여전히 머리로 일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동천에서 일할 때 처음 국장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을 때 "왜 난민인가. 그 대답을 찾지 못한다면 힘든 시기를 마주하는 등의 상황을 겪었을 때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얘기를 해주셨던 생각이 납니다. 경험만한 배움이 없다는 말에 정말 공감하는데,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가지고 있지만 먼가 안정적인 삶을 살아오고,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이라는 것도 특별히 없었던 나로서는 내가 과연 진정성 있게 이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자신있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언젠가는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올까요. 아참, 얼마전에 다른 단체 활동가 분이 페이스 북에 쓰셨던 문구가 생각이 납니다. "난민은 평범하지 않은 삶을 경험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난민을 왜 도와야 하나요?”
난센을 창립한 직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입니다.
전 이론과 통계를 제시하며 그 필요성을 설명했었습니다.
기자는 재차 물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길게 말고,
그냥 옆집 할머니가 왜 난민을 도와야 하는지 물었을 때 한마디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답변 없어요?“
“난민도 인간이잖아요”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이 보도된 후
지난 한달 동안 한국에 있는 모든 언론으로부터 한번쯤은 연락이 왔다 할 정도로 관심을 뜨거웠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은 질문을 수 없이 받았습니다.
간결하지만 뭔가 철학적인 거기에다 아직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은 기발한 현답을 말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낍니다.
지난 6년 동안 난센에서의 시간은 이 질문에 대하여
누구나 쉽게 그러나 설득력 있는 답을 찾기 위한 시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답은 6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난민도 인간이잖아요”
전 이 이상의 답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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