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착 난민, 충분한 준비를 먼저 갖춰야
법무부가 미얀마 출신 난민들을 대상으로 ‘재정착난민제도’를 시행할 것이라는 해묵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대두되었습니다. 현재 법무부는 유엔난민기구로부터 추천받은 재정착 대상자에 대해 서류심사를 진행 중이며, 다음달 태국 난민캠프를 방문해 30명을 선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선발된 이들은 12월에 한국으로 입국하게 됩니다.
제3국에서 난민들을 보호하는 재정착 난민제도
난민들의 삶을 재건하기 위한 영구적 해결책에는 3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본국의 상황이 나아져 자발적으로 돌아가거나(자발적 본국귀환), 비호를 구한 국가에 정착하거나(현지동화), 제 3국에 정착(재정착)하는 것입니다.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고, 비호를 요청한 곳에서도 필요를 채울 수 없는 난민들에게는 제3국으로의 재정착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재정착을 “난민들이 비호를 요청했던 국가로부터,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종국엔 영구적인 정착을 제공하는데 동의한 다른 국가로 이동시키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정착국은 자국민이 누리는 것과 유사한 수준의 시민, 정치, 경제, 사회 및 법적 보호를 난민에게 제공합니다.
2014년 말 세계 난민의 수는 1,950만 명에 달하며, 여기에 비호신청자와 국내실향민을 합하면 5,950만 명에 이릅니다. UNHCR은 국제사회의 책임분담의 일환으로 재정착난민제도를 추진해왔습니다. 현재 미국, 호주 캐나다 등 28개국에서 재정착난민을 수용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15만 명이 넘는 난민이 제3국에 재정착했습니다.
한국에서 도입될 재정착난민제도
난민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5. "재정착희망난민"이란 대한민국 밖에 있는 난민 중 대한민국에서 정착을 희망하는 외국인을 말한다. |
제24조(재정착희망난민의 수용) ① 법무부장관은 재정착희망난민의 수용 여부와 규모 및 출신지역 등 주요 사항에 관하여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제8조에 따른 외국인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재정착희망난민의 국내 정착을 허가할 수 있다. 이 경우 정착허가는 제18조제1항에 따른 난민인정으로 본다.
② 제1항에 따른 국내정착 허가의 요건과 절차 등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
2013. 7. 1. 시행된 난민법에 재정착희망난민의 정의 및 도입에 관한 근거규정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난민법에서는 “재정착희망난민”을 대한민국 밖에 있는 난민 중 대한민국에서 정착을 희망하는 외국인으로 정의합니다. 주요사항은 외국인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며 구체적인 사항은 같은법 시행령 12조에 위임하였습니다.
[표1] 재정착희망난민 선발절차
계획수립 | ∙재정착 희망난민의 수용에 관한 계획 수립 - UNHCR의 재정착난민 수요예상 보고서 검토 |
심의 | ∙외국인정책위원회에서 수용 국적, 대상, 규모 등 주요 사항에 관해 심의 |
선발 | ∙심의 결과에 따라 ATCR 등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요구사항 등 협의 ∙재정착희망난민선발(UNHCR과 유기적 협조) ① UNHCR로부터 재정착 희망난민 명단 접수, ②서류심사, ③면접심사(선발직원파견) |
사전교육 등 출발준비 및 입국 | ∙건강검진 - 국제이주기구(IOM)등 외부기관 의뢰 또는 자체 실시(전염병 유입 방지 및 질병치료 목적의 재정적 부담 경감) ∙사전교육 - 시청각자료, 팜플렛 등을 통한 예비교육(문화, 기후환경, 정착지원프로그램 등) ∙출발준비(여행증명서 발급, 항공료 등 여행경비 해결) |
정착지원 | ∙주거, 교육, 의료, 생계비 등 지원(난민인정자와 동일) ∙한국어 교육, 한국사회 적응 교육, 취업교육 등 실시 등 |
출처: 법무부, 재정착희망난민 도입 공청회 (2014)
법무부에서는 올해부터 3년간 ‘재정착희망난민’제도를 시범 시행할 예정이며 첫 대상으로 미얀마 난민을 3년동안 최대 90명까지 데려올 것이라 밝혔습니다.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 소수민족 중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친족·카렌족 난민 등이 우선 선발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인 로힝야족은 제외될 것이라 합니다.
선발 및 사전 교육과정을 거쳐 입국한 재정착난민들은 영종도의 출입국 지원센터에서 6~12개월 간 머물며 초기 정착지원을 받게 됩니다. 센터의 프로그램을 이수한 재정착희망난민은 본인의 선호도에 따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로 배치됩니다. 이들은 난민인정자와 동일한 거주자격(F-2)을 부여받습니다.
재정착 난민제도의 문제점: ①선발기준
재정착난민의 선발기준에는 일반적으로 인권보호 필요성과 정착가능성이 고려됩니다. 난민법에는 재정착난민 선정에 대한 기준이 명시되어있지 않습니다. 외국인정책위원회에서 재정착 난민을 선정할 때에는 외교‧안보적인 다양한 요소가 고려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가장 보호가 필요한 이들은 바로 시리아 난민입니다. 유엔난민기구에서는 전 세계에 시리아 난민의 재정착을 촉구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일 의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시급한 국제사회의 책임을 분담한다는 측면에서는 한국도 재정착 대상으로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미얀마의 카렌족 및 친족이 정착대상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미얀마 내에서 가장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소수민족은 로힝야족입니다. 로힝야족은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있으며, 사실상 무국적의 상태로 수십년 간 미얀마에서 도피 중입니다. 최근 3년 간 12만 명 이상의 로힝야족이 미얀마를 탈출하기 위해 선박에 탑승했으며 올해 1사분기에만 2만 5천여 명이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를 떠났습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이며 이들 중 대다수가 인신매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인 로힝야족은 선발대상에서 제외되고,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친족·카렌족 난민 등이 우선 선발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재정착난민 선발과정에서 인권보호의 필요성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UN세계인권선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아야 합니다. 인권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재정착 난민 선발과정에서 종교에 의한 차별이라는 인권침해가 자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정 기준에는 무엇보다도 보호 필요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재정착난민제도가 그저 생색내기에 그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재정착 난민제도의 문제점: ②국내난민과의 형평성
현재 국내 난민신청자 중 7%만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으며, 주거지원·교육·직업 훈련 등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입니다.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인정자들조차 한국어 교육을 비롯하여 어떤 사회적응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정착 난민들에게는 6~12개월 간 집중적인 한국어 교육 및 적응 교육이 지원되며, 장기적인 정착 프로그램이 제공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있는 난민들도 방치하면서, 재정착 제도를 통해 한국의 난민제도가 선진화되었다고 생색을 내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국내에서 인정을 받은 난민인정자와 재정착난민은 모두 동일한 난민법상의 ‘난민’입니다. 재정착 난민들만을 위한 독립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해서는 안 됩니다. 국내난민들에게도 재정착 난민과 동일한 수준의 처우를 보장해야 합니다.
재정착 난민제도의 문제점: ③ 정착 지원 체계 미비
난민재정착은 이주민의 사회통합이라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에는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법무부는 난민의 사회통합을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데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김포시의회에서 추진하던 난민지원조례가 폐기되었습니다. 중앙정부인 법무부가 정착 지원책을 마련하는 막중한 책임을 방기할 때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나서서 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지원을 해도 모자랄 판에 법무부는 어떠한 협조도 하지 않았고, 조례는 결국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난민처우협의회는 난민과 관련된 정부부처들이 모여 난민의 처우에 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협의회입니다. 난민인권센터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9월 초에 확인한 결과 올해 한 번도 난민처우협의회가 개최된 적이 없었습니다. 성공적인 재정착을 위해서는 교육, 주거 등을 제공할 여타 행정부처와의 협력이 필수적임에도 법무부에서는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장기적인 로드맵과 정착에 관한 세부사항 등이 전혀 준비되고 있지 않음을 법무부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작정 난민들을 데려오고 보겠다는 법무부의 배짱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심히 우려됩니다.
‘제도’를 위한 제도가 아닌 ‘난민’을 위한 제도가 돼야
난민에 대한 국제적보호의 필요성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재정착을 희망하는 난민들을 한국에 데려온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한국에 찾아 온 난민들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외에 있는 난민들을 데려와 보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이 진정 선진국답게 국제적 책임을 분담하려 한다면 배경을 가리지 않고 가장 보호가 필요한 이들에게 체계적인 정착지원을 제공해야 합니다. 지자체, 관계 부처 그리고 NGO와의 유기적인 협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재정착 난민들은 보호를 누리기는 커녕 한국의 재정착제도를 선전하는 홍보수단으로만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출처: www.flickr.com/photos/jackol/440523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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