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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화성에서 온 남자

화성에서 온 남자금(金)성인이 만났다.
화성외국인보호소에 면회 가서 몇 번 본적은 있었지만 화성 밖 세상에선 처음이었다.
화성인금성인은 마법에 걸린 듯 손을 맞잡고 한참 동안을 마냥 웃으며 기쁨을 나눴다.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풀려나기만 해도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던 분이 그 꿈이 이루어졌고 난민인정까지 받았으니 그 기분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금성인이 질문을 던졌다.

"어제 어디서 잤어요?"

“3만원 주고 모텔에서 잤어요. 따뜻한 물에 목욕도 하고 잠도 편하게 자보고 싶어서요....
..... 그런데 오늘은 어데서 자야할지 모르겠어요. 쉼터를 찾아줄 수 있나요?”

비눗방울처럼 붕 떠다니던 황홀했던 기분은 현실에 맞닿는 순간 터져버렸다. 좀 더 오랫동안 감격을 누리도록 놔둘걸,,,,,,,

화성에서 나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생각했는데 현실은 당장 잠 잘 곳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 난민을 위한 쉼터가 한국땅에 한군데도 없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쉼터 여기저기를 수소문하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노숙자를 위한 쉼터에 어렵게 연결해주고 하루 이틀만 견디어보자고, 그리고 하루빨리 일자리를 찾고 방을 구해보자고 하였다. 화성인은 일단 거기라도 가겠다며 사무실을 나섰지만 화성인을 보내는 마음은 중죄를 짓는 심정이었다.


며칠 후 화성인이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UNHCR에 난민 확인서를 받으러 가는 길에 들렀단다.
뜬금없는 소리에 이유를 물었더니 법무부가 난민으로 인정되면 취업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막상 공장 등을 찾아가면 난민인정서를 보고도 사장님들이 고용하기를 꺼린다는 것이었다. 해서 국제기구인 UNHCR을 통해 자신이 난민임을 분명하게 확인받고 싶다는 것이었고 UNHCR에서 발급한 증명서가 있으면 취업이 쉬울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UNHCR에 가도 그런 확인서가 없을뿐더러, 대한민국 법무부가 발급한 난민인정서로 충분하다고 설명하였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다.

어쩜 법무부가 난민인정서라고 A4용지에 출력해주는 달랑 한 장짜리 종이처럼 한국정부의 말은 찢어지고 지워지기 쉬운 현실성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난민신청자들이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 잡아가고, 업주들에겐 난민신청자를 취업시키지 말라고 전화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볼품없이 A4용지에 복사된 난민인정서 한 장 주면서 이걸 보이며 취업하라는 게 난민에게나 업주들에게나 설득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정부가 발행한 문서는 그 나라의 국격을 나타내는 것일 진데 요즘 흔하디흔한 칼라인쇄나 값싼 코딩도 안한 종이 쪼가리 한 장은 정부 스스로 표현하는 대한민국의 국격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화성에서 온 남자는 꿈에 그리던 화성 밖 세상, 지구의 한 귀퉁이 한국 땅에 있다. 하지만 한국은 화성인이 그리고 난민이 살아가기엔 너무도 척박한 땅이다.
난민 신청하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2년에서 5년까지도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일도 못하게 한다. 만약 생존을 위해 일을 하면 잡아간다. 그렇다고 생계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감기만 걸려도 의료보험이 없어 기본 3만 원 이상 든다. 완벽한 인권의 사각지대. 이것이 난민의 현실이다.
화성에 없는 공기만 마시며 생존하라는 게 한국정부가 유일하게 부여한 법적지위다.

한국에 난민신청자는 지금까지 총 2,410명이나 된다. 난민들은 모두 다른 별나라에서 왔다. 때문에 모든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여기에 난민들은 모두 박해라는 상처를 안고 있다. 정치적 의견, 인종,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의 희생자로 살아왔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성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박해와 폭력의 벽을 넘어 이 땅에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찾은 한국 땅에서 차별과 배제라는 또 다른 벽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다름을 인식하고 그 차이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또한 신념을 지키다 어려움에 처한 난민의 내민 손을 한국 사회가 잡아주기를 기대한다. 정부는 난민협약이 정한 법적지위를 실질적으로 보장함으로, 한국 시민들은 난민들을 동정의 시각보다는 용기 있는 우리의 이웃으로 인정함으로.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민을 향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배제의 벽은 너무 높기만 하다.

만약 난민의 법적 지위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개선과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난민은 우리와 함께 한국 땅에 살고있지만 여전히 화성인일 뿐이고 우리 모두는 금성인일 수밖에 없다.


- 김성인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