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의 난민들: 끝없는 망명 생활
현재 아프리카의 대호수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본국 귀환에 대한 압력은 그 지역에 잔류하는 수많은 난민과 비호신청자들이 보호받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점차 축소시키고 있다. 안전하게 본국으로 ‘귀국’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이들과 그 가족들은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비호신청자를 대상으로 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곳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난민들과 비호신청자들을 조력하는 한편, 각국의 정부와 유엔난민기구가 자신들의 비호 의무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련하게 움직여야 한다.
한 난민의 삶
장-마르크(Jean-Marc)는 국적 상 부룬디 사람이지만 부룬디에서 산 적은 없다. 1976년, 그는 르완다로 피난 중이었던 상황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살해되고 나머지 가족들이 탄자니아로 도피해야 했던 1994년의 르완다 대학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곳에서 난민으로 살았다. 이후 20여 년의 시간 동안 그의 가족은 탄자니아에 있는 캠프 세 곳을 전전했고, 최종적으로는 음타빌라(Mtabila) 캠프에 정착하게 된다. 부룬디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되고 민주적인 선거가 실시된 후인 2009년부터의 여파로, 그들은 ‘자발적 본국 귀환’ 운동의 일환이라는 맥락에서 부룬디로 돌아가라는 압력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장-마르크에게는 돌아가길 원치 않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그는 부룬디에서 산 적이 없다. 그의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가족들이 한때 살았던 그 땅이 자신을 받아들여 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는 귀국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탈출을 둘러싼 정황들과 본국 귀환을 주저하는 자신으로 인해 부룬디 정부가 그에게 당시의 반군인 민족해방군(Forces National de Libération, FNL)을 지원했다는 혐의를 제기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장-마르크에게는 결국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수없는 경고와 협박이 있은 후 탄자니아 정부와 국제연합은 그에게는 더 이상 보호가 필요치 않다고 결정했으며, 그의 난민 지위를 박탈하고 그와 그의 가족에게 떠나라고 말했다. 2012년 11월 말, 탄자니아 군대는 음타빌라 캠프에 들이닥쳐 사람들을 트럭에 집어 넣었다. ‘우리 물건들을 챙길 시간도, 짬도, 없었어요. 모든 서류와 살림살이들을 집에 두고 나왔습니다.’ 부룬디에 도착했을 때 그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자신의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 장-마르크의 말을 빌리자면, ‘부룬디에서 갈 곳 없는 자를 위한 자리는 없는 것’이었다.
장-마르크는 정부의 비공식 민병대 겸 치안대이자 정보 부대로 부룬디 내에서 활동한다고 추정되는 임보네라쿠레(imbonerakure)의 멤버들에게 살해 협박과 위협을 받았다. 그는 민족해방군의 지지자라는 혐의를 받았고 치안 부대의 멤버로부터 ‘여기는 탄자니아와는 다르다. 니 녀석을 끝장내 주겠다!’ 라는 말을 들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는 르완다로 몸을 피했고, 이후에는 그의 가족도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불러와 우간다 동부 지역의 나키발레(Nakivale) 정착촌까지 함께 이동했다. 장-마르크는 현재 우간다 정부에 제출한 비호신청을 거절당했으며,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225명의 다른 부룬디인들과 함께 난민캠프의 한 헛간에서 살고 있는 그는 이제 37살이며 평생을 떠돌았다.
정착할 그 어딘가를 찾아서
장-마르크는 정착할 어딘가—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는 곳, 자신이 일을 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곳—를 찾아 평생을 보냈다. 오늘 날, 지역적인 차원과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난민보호 시스템은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 게다가 보호받지 못한 사람은 그만이 아니다. 장-마르크가 처한 곤경은 대호수 지역 전역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에게도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세 아이의 엄마로, 역시 나키발레 난민캠프에 거주하는 젊은 부룬디 여성은 ‘어떤 나라에서도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면에서 숙고되어야 하겠지만, 부분적으로는 대호수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보이고 있는 경향인 대규모 본국 귀환 계획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본국 귀환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이들에게까지 강요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간 분쟁이 있은 후, 이 지역은 안정기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여겨지며 국제사회와 더불어 각 국가들에서는 수십 년 동안 떠안아 온 ‘짐’인 난민을 내보내길 원하고 있다. 십여 년에 걸쳐 수많은 난민을 배출했던 국가들이 이제는 꽤나 안정적인 상황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에서 자국을 떠난 난민의 귀환을 권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본국 귀환
본국 귀환이라는 논리 자체는 이해가 된다. 실제로 많은 수의 난민이 본국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아주 작은 기미만 보이면 돌아가겠다 결정하고 있으며, 2000년 이후로 50만 명 정도의 난민들이 부룬디로 돌아갔다. 결국, 애초부터 난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으며 난민캠프에 머물 만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그곳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본국 귀환의 가능성이 몇 명에게 해당된다고 하면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권할 만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할 수 있는 개개인의 상황을 소홀히 여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대안 없이 본국 귀환을 강요하는 것은 대호수 지역의 위기를 증대시키고 있다. 현재로서는 분쟁기가 끝난 것으로 알려진 국가에서 탈출이 재개될 경우를 위한 대비책이 국가적, 지역적, 국제적인 범위의 보호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기에, 난민과 비호신청자로 남아 있는 이들은 평생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그에 상응하는 보호도 받을 수 없는—망명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장-마르크가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은 망명을 끝내기 위한 접근 방식—기본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도적인 범주의 것으로 조명하며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도구로서 지리적 이동(다시 말해 국경을 넘어서 돌아오는 것)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이 정치적인 현실에는 여전히 눈뜬 장님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그 지역의 시민권에 관한 정책들—소속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대한 배제적인 접근을 강화했고, 이에 따라 수십만의 사람들을 영구적인 배제 상태에서 살아가게 만든 정책들—이 뿌리 깊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처사다. 장-마르크의 이야기는 부룬디에서 평화 협정이 맺어졌으므로 이제는 난민을 수용하는 것에 지친 탄자니아 정부, 공정한 토지 분배 정책을 이행하는 것과 정당을 용인하는 폭넓은 정치 체제를 만드는 데 실패한 부룬디 정부, 그리고 난민 ‘부담’을 더하고 싶지 않아 이상의 비호신청자들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우간다 정부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소속되는 것에 대해 이렇듯 배타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뿌리내리고 살 것인가—국내 일부 지역의 차원에서든, 국가적인 차원에서든, 대호수 전체 지역적인 차원에서든—에 대한 경계선이 국가의 영역을 정확히 따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었지만—예를 들어, 현재 발전하고 있는 정치적 연합을 발판으로 부룬디, 르완다,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국민들은 ‘동아프리카 시민’으로 한 데 묶이며 거주와 직업 활동을 위해 서로의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소속감은 장-마르크의 힘겨운 삶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대호수 지역에서 시민권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의 해결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망명에 대한 가능성 있는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시민권의 부재가 난민들을 지속적인 망명 상태로 남겨 놓기에, 난민들이 시민권에의 효과적인 접근 건을 두고 협상에 임하는 활발한 정치적 (재)참여를 실천할 때 실향 문제의 해결만이 아닌 국가들의 변화를 조력하는 데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할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역으로, 이러한 국가들의 변화는 실향의 문제가 다시금 발생되는 것을 막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이상주의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이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지 분노하여 맞서 싸워야 하는 현실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장-마르크의 이야기는 끈질기게 이어지는 본국 귀환이라는 압력을 뒷받침하는 몇몇 구조와 가정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의 이야기는 또한 어딘가에 속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창의적이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여기서 창의적이고 유연한 접근이란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을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대호수 지역의 망명 문제는 국내의 지역적인 차원과 국가적 차원에서 소속되는 공간이 덜 배제적일 때, 다층적인 분쟁이 일어난 후 그 지역에서 정의의 수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을 공정한 자세로 대면할 때, 그리고 국제사회가 인도적인 것보다는 정치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망명 상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국가에 소속되지 못하고 배제된 채 지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사각지대로 밀려난 사람들로부터 재개된 분쟁으로 받게 되는 영향을 줄임으로써 더 강력한 정치적 조직체를 구현하는 것을 가능하게도 할 것이다.
루시 호빌(Lucy Hovil)
(국제난민인권계획(International Refugee Rights Initiative)과 사회과학연구협의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 연구/옹호 프로젝트
‘대호수 지역의 시민권과 강제 이주’ 수석 연구원)
원문출처: http://frlan.tumblr.com/post/
번역: 김아영(난민인권센터 통번역자원활동가)
감수: 김한나(난민인권센터 상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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