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에서 여성의 안보: 자국 내 위협 요인들
수단이 50년 간 지속 되었던 내전으로부터 벗어남에 따라, 안전은 국가의 미래에 관한 논의에서 그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다수 여성에게 있어서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은 군부 혹은 수단과의 무장대립 등 전통적인 외부적 요인이 아닌 자국 내부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이와 같은 위협은 여성의 낮은 권한 및 경제적 자립에 기인한 것으로, 이는 문화와 관습 등에서 뿌리 깊게 고착된 것 이다.
본 소고에서는 남수단 여성(여아 포함)들이 직면한 주된 위협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특히 모성사망률을 비롯한 열악한 보건 여건을 살펴본다. 또한 보건 안보, 경제 및 식량 안보, 출산 위험, 가정 폭력과 사별을 포함한 결혼과 관련한 위험요인을 살펴본다. 본 고는 2010년과 2011년에 실시한 현장조사를 토대로 하였으며, 조사 내역은 포커스 그룹, 주요 정보원과의 인터뷰, 선행연구 등이 있다. 본 연구는 딩카(Dinka)와 누에르(Nuer) 부족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해당 국가 여성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연구내용이 상이할 수도 있다.
보건 안보
통계적으로, 임신과 출산은 남수단 거주 여성의 삶에 가장 큰 위협이다. 모성사망률은 전세계 최고치로, 100,000 명 당 2,054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수치는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 이는 많은 사망 건수가 보고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며, 여성의 90%가 비공식 의료기관에서 전문의료진의 도움 없이 아이를 출산하기 때문이다.
자녀는 남수단 사회에서 중요한 자산이며, 이로 인해 여성에게는 가능한 많은 자녀를 출산해야 하는 강한 부담이 있다. 이와 같은 의무는 혼인의 대가로 아내의 친정에 많은 돈을 지불하였을 때 더욱 가중된다. 출산 가능 연령의 기혼 여성은 폐경이 될 때까지 적어도 3년에 한 차례씩 지속적으로 임신이 가능하다. 남성이 수유 중인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것은 - 비록 흔히 일어나긴 하지만- 금기시 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습으로 그나마 연달아 임신이 이루어 지지 않고 한 번의 임신에서 다음 임신 사이의 시간적 공백이 만들어 진다.
2차 내전 동안, 여성의 출산율은 사회적 의무였을 뿐 아니라, 전쟁을 위한 지원이기도 했다. 빈번히 인용되는 연설에서, 전 수단인민자유군부당(SPLM) 수장인 존(John) 박사는 남수단 여성이 최전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가급적 많은 자녀를 출산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다자녀 출산에는 외부적 압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 스스로가 대가족을 선호한다. 본 고를 위해 인터뷰에 참여한 모든 여성들은 가능한 많은 자녀를 갖고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한 여성은, ‘제한이 없어요. 만약 제가 15명 혹은 20명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전 낳을 거예요. 하늘이 결정할 바예요’, 라고 언급했다. 북부 나일 지역에서 인터뷰에 응한 임신 중인 한 여성은 이미 네 자녀의 어머니로, 배 속의 아이는 남편의 아이가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그녀는 5년 전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지역의 추장(Payam)을 찾아가 공동체에서 다른 남성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 남성은 정자 기부자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였고, 그 외에 이 여성과 임신 중인 아이의 삶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하였다. 국제 비정부기구에서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는 이 여성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도움을 줄 만한 형제자매가 없어서, 자녀만이 그녀가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줄 유일한 버팀목이자, 행복과 위안의 근원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의 안전을 보장받고자 많은 자녀를 출산함에 따라 현재의 급박한 불안정 상태가 초래되었다. 남수단 여성의 7명 중 1명은 임신 혹은 출산 도중에 사망하는 데, 이는 감염(산욕열, 태반잔류), 과다출혈, 혹은 난산 시 보건시설로의 낮은 접근성에 상당수 기인한다. 남수단에서 여타 사회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보건 부문은 내전을 겪기 이전부터 매우 취약하였으며, 전쟁 종결 후에 더욱 악화되었다.
2005년 포괄적평화협정(CPA) 체결 후, 많은 국제 비정부기구가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한 보건부의 남수단 내 보건시스템의 구축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말라리아, 급성호흡기 감염, 설사병, 결핵은 여전히 만연하다. 성질환 또한 만연하여, 나일 북부지역의 한 병원이 출산 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임신 중인 여성을 대상으로 검사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여성의 60~70%가 매독을 앓고 있었다.
2005년 이후 , 새로운 보건 위협이 남수단에 등장하였다. HIV와 AIDS는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를 초토화시켰지만 내전으로 인한 남수단의 고립은 HIV/AIDS의 확산을 막았다. 그러나 2005년 이후, 전쟁난민, 귀향난민, 외국인 노동자들이 남수단으로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며 감염률은 높아졌다. HIV/AIDS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이해는 매우 부족하였다. 여성은 특히 위험에 더욱 취약하였는데, 이들은 남편과의 성관계 혹은 남편이 다른 여성과 맺는 성관계에서 주도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부다처제의 풍습에서는 혼인관계에 있는 한 개인의 감염은 두 명 혹은 세 명의 다른 배우자들과 그들이 낳은 자녀에게로의 전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콘돔 등 피임도구의 사용은 남수단에서 극히 드물다.
(출처: Sudan Human Security Baseline Assesment , Phil Moore)
경제적 불안정과 식량 위기
본 고에서 인터뷰한 대다수의 여성들은 배고픔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남수단 여성들은 가정에서 남성과 아이들을 우선 먹인 후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충분한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하는데, 이는 여러 명의 아내를 둔 남성들은 많은 자녀를 두고 있기에, 자녀 개개인에게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남수단에서 식량안보는 중요한 문제로, 경지의 4%만이 경작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식량과 기타 생필품들은 수입된다. ‘내전 후’ 식량 상황은 불안정해졌으며, 2011년 5월 수단이 비공식 봉쇄령을 남수단에게 내린 후 무역 경로가 다수 차단되어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이와 같은 조치로 인해, 남수단에서 식량 가격은 솟구쳤고, 이미 어려운 남수단 주민들은 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2011년 10월, 남수단 통계청은 옥수수, 수수와 같은 주된 식량의 가격이 1년 전 대비 100~250% 상승하였다고 보고했다.
전통적으로, 남수단에서 남녀는 모두 농업에 종사한다. 많은 인터뷰 대상자들은 농사를 통해 거둬들인 수확량이 풍부했던 전쟁 전의 평온한 시대를 그리워하는 듯 했다. 전쟁으로 인해 남수단에서 농사짓기가 힘들어졌고, CPA 체결 이후, 상대적으로 소수만이 농경일을 재개하였다. 비도시지역에서 농업은 일반화되어 있으나, 대부분 최저생계에 머무르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농업에 필요한 기술력을 잃었고, 농사일에 필요한 기구와 종자 등도 부족하다. 사람들은 농업에 투자하기를 꺼려하는데, 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에 기인한다. 동부 에콰토리아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내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지요? 올해 이 땅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내년에 전쟁이 터지면, 모든 것을 다시 잃게 되는 걸요.’라고 말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최근 기후가 예년에 비해 경작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2011년 9월, 유엔세계식량기구(WFP)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에 따르면 남수단의 식량 상황은 2012년 악화될 전망으로 곡물 생산은 40~60%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남수단 인구의 37%는 이미 ‘식량공급-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로 분류되며, 이와 같은 수치는 향후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식량 생산이 이와 같이 낮은 상황에서, 식량(일반적으로 더욱 값비싼, 수입품) 구매를 위한 소득 창출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러나 아직 초기 단계인 남수단의 경제는 미약한 수준이며, 정부나 비정부기구 관련 업무 이외의 일자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민간 기업이 극소수여서- 도시 중심부를 제외한 여타 지역에서의 일자리는- 극히 제한적이다. 사실, 수년 간의 내전 후, 민간 부문이라는 개념은 대부분의 남수단인들에게 낯선 것이었다. 그 대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공기관에서 종사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나일북부지역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다른 인터뷰 대상자들도 했던 말을 반복했다: ‘독립 후 여성들에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생계수단은 여전히 땔감을 모아서 내다 파는 것입니다. 정부는 건설, 학교 및 시설 건립 등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이어서, 비록 건설부문이 남성을 위한 일자리로 여겨져, 남수단여성의 고용이 쉽지는 않겠지만, 요리를 하거나, 운반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남수단 정부의 보고에 따르면, 성인 여성의 문맹률은 84%이며, 대다수 여성들의 업무는 단순 노동에 제한되어 있다.
(출처: Sudan Human Security Baseline Assesment , Jarred Ferrie)
운좋게 일자리를 찾은 여성들조차도 경제권을 갖지 못한다. 여성의 월급은 남편들이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남편은 아내에게 생활비로 일부를 배분해준다. 만약 남자가 신부값(dowry)을 다 지불하지 못했다면, 여성의 월급이 친정아버지에게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학교를 마치고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는 한 누에르 여성은: ‘제 남편은 친정에 제 신부값을 다 지불하였어요. 소 30마리 였지요, 그러나 그는 아직 제 아버지께 저의 교육비, 소 30마리를 드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매달 저는 제 월급을 아버지께 드리고 있어요. 아버지께 아직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요.’라고 설명했다.
결혼
남수단의 안전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남수단의 결혼 풍습과 혼인이 여성 및 여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수단에서, 결혼은 단순히 두 개인 간의 사안은 아니다. 이는 두 가족의 결합이다. 이에 따라 혼인과 결혼생활은 많은 공동체의 주된 관심사이다. 비록 혼인이 가능한 법적 최소연령은 18세이지만, 여아들, 특히 농촌 지역의 여아들은 이보다 이른 나이에 혼인을 한다. 이와 같은 결혼은 대체로 중매로 이루어진다. 남성의 초혼 연령은 보통 20대 초반이지만 10대 소년의 혼인도 농촌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다.
나일북부의 나시르(Nasir) 지역에서 인터뷰한 남성과 여성은 여아가 15세 혹은 16세에 혼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보다 더 어린 나이에 약혼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적합하다 여겨지는 남성은 여아가 12세 정도로 어려도 소 한 마리를 결혼의 보증금으로 지불할 수 있다. 여아가 앞으로 3~4년 동안 더 가족과 함께 살더라도, 남성은 정기적으로 남은 신부값으로 더 많은 소를 제공 할 것을 조건으로 약혼을 할 수 있다. 12세 이하의 여아 역시 약혼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경우, 남성은 여성이 초경을 시작하여 성적으로 성숙했음이 나타나면 반지 혹은 팔찌와 같은 증표를 소와 함께 제공한다. 24세의 한 여성에 따르면:
|
저는 11살 때 약혼하였어요. 남성은 저희 가족과 안면이 있었고 저희 집에 방문하곤 했지요. 그 당시 저는 아이였어요. 집에서 속옷차림으로 있었지요. 그래서 그가 방문했을 때 도망가서 숨어있곤 했어요. 저는 그와 결혼하는 게 싫었어요. 그러나 다른 선택이 없었죠. 저는 오빠가 많았고 그들은 결혼을 위해 가축이 필요했어요. 이 남성은 소를 30마리 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저희 아버지는 그와 결혼하도록 강요하였지요. |
가축을 결혼의 대가로 지불하는 것은 남수단의 뿌리 깊은 문화이다. 일부다처제가 널리 행해지고 있어서 가축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더 많은 아내를 취할 수 있다. 결혼의 대가로 가축을 주고 받는 관행에는 신랑은 물론, 삼촌, 사촌, 형제 등 많은 가족원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자금을 마련한다. 이와 유사하게, 신부 측도 신부값으로 받은 가축을 신부의 남성 친인척들이 나눠 갖게 된다. 따라서 결혼이란 궁극적으로 공동체적 사안이며, 다수의 사람들이 개입하게 된다.
(출처: Sudan Human Security Baseline Assesment , Phil Moore)
가정 폭력
남수단에서 가정 폭력은 만연해 있는 문제이다. 비록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여성이 근무하는 기관 및 관련 연구자들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가정 폭력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나 이를 결혼 생활의 정상적인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다(Juda)에 위치한 비정부기구로 약 60명의 여성에게 기술훈련과 소득창출 기회를 제공하는 뿌리찾기 프로젝트(Roots Project)의 애니스 드 아울(Anyieth D’Awol) 관장에 따르면,
|
적어도 한 달에 한번 꼴로, 여기 여성 중에 한명은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결근을 합니다. 몽둥이로 맞아 살이 찢기거나, 멍이 들지요. 그러면 다른 이들이 시간을 내서 그녀를 돌보아야 합니다. |
여성은 남편의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지 않는다. ‘경찰이 비웃으며, 집으로 돌아가세요.’라고 한다는 게 가장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대다수의 여성들은 가정 폭력을 결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남성들은 여성을 구타하는 데에 어느 정도 명분을 내세웠다. 나일북부지역에 거주하는 한 정규 교육을 받은 남성에 따르면,
| 만약 당신이 가족의 일원이었다면, 당신은 말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다른 집(tukul)에서 한 여성이 구타를 당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녀는 나의 이웃 지간이지요. 전 그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녀가 무슨 일을 했길래 그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니까요. 어찌하였든, 그녀의 남편은 제가 남의 사생활에 간섭했다는 이유로 비난할 것이고 사이가 소원해 질 것입니다. |
남수단에서 두 개인의 결합이 가족 문제이듯, 결혼 불화 또한 가족이 중재해야 한다. 폭력의 정도가 심각한 경우 피해 여성은 공공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친인척에게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요청 시, 여성의 가족은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만약 이혼을 하게 된다면 여성의 가족은 신부값으로 받은 가축을 돌려주어야 한다. 2011년 10월 나시르의 두 포커스 그룹 참여자에 따르면, 그들의 친구는 임신 4개월이었으며, 남편으로부터 복부를 발길질 당하였고, 그 전날 지역 병원에 입원하였다. 비록 그녀가 분명히 남편을 증오하고 두려워하였지만,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고 그들은 설명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가 달리 갈 곳이 어디 있겠어요?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녀는 이혼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 그걸 허락하지 않을 거에요.’라고 설명했다. 나일북부지역에서 인터뷰에 응한 한 다른 여성은; ‘남성은 첫 아이 또는 둘째를 낳을 때까지는 무척 다정하게 굴고, 뭐든 다 해 줄 거예요. 하지만 완전히 자기 것이 되었다고 깨닫는 순간, 당신을 자기 맘대로 다루게 되겠죠.’
비록 남수단에서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흔한 일은 아니다. 이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라는 가족의 압력과 아이 양육권 등의 문제에 기인한다. 대부분의 경우, 양육권법에 따르면 이혼한 가정의 자녀는 수유 중이 아닌 이상, 남편이 양육권을 지닌다. 수유 중이라면, 젖을 뗄 때까지만 어머니와 머무른다. 일부 지역에서는 법에 따라 이혼한 부모의 자녀가 6~7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녀를 잃을 수 있다는 공포는 많은 남수단 여성들로 하여금 폭력적인 결혼관계를 지속하게끔 한다.
성폭력은 혼인한 사이에서도 빈번하다. 비록 이 경우 성관계가 남성의 의무이자 특권으로 여겨지므로, 성폭력이라고 묘사되지는 않는다. 본 고에서 인터뷰한 모든 여성은 혼인 관계에서의 성관계가 남편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답했다. 여성은 성관계를 거부하거나 요구할 권리가 없다. 남수단에서 국제 비정부기구에 종사하는 한 중년 여성에 따르면, 나이가 많은 남성과 결혼한 젊은 여성과 10대 소녀들은 성관계 중의 고통 때문에 종종 병원을 찾는다. 그녀는: ‘그들은 이를 폭력이라고 표현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것이 폭력이 아니고 무엇일까요.’라고 설명했다.
(출처: Sudan Human Security Baseline Assesment , Phil Moore)
사별
남수단의 모든 여성들이 취약하지만, 미망인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남수단의 닐로틱(Nilotic)부족에서는 여성이 평생에 단 한 차례만 결혼을 하는 것이 전통적인 관습이다. 비록 남편이 세상을 떠났어도 재혼이 불가능한데, 혼인관계는 사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사별한 여성은 남편의 친척들-보통 형제들, 혹은 양아들로부터 보살핌을 받는다. 이와 같은 두 번째 결합은 결혼과는 동일하지 아니하며, 여성이 가족 안에서 자녀와 머무르고, 보다 많은 자녀를 출산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딩카 언어에서, 이러한 남성은 락(lak)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집으로 들어온 남자’라는 뜻이다. 여성은 남편의 친척들 사이에서 자녀를 낳을 수 있으나, 이때 자녀는 죽은 남편의 이름을 따른다. 남편의 가족 이외의 남성과 결혼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데, 여성은 죽은 남편과 혼인관계에 있을 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도 결혼으로 얽힌 관계이기 때문이다. 와랍(Warrap) 지역에서 온 한 딩카 여성에 따르면:
| 만약 재혼을 희망한다면, 법원에 가서 죽은 남편과 이혼을 해야 합니다. 만약 이렇게 하려면, 결혼대가로 받은 돈의 절반과 모든 자녀를 돌려주어야 해요. 이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어찌하였든, 이것은 허락되지 않아요. |
많은 여성들에게는 한편 이 역연혼이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실질적인 해결책역할을 하기도 한다. 본 고에서 인터뷰한 사회 고위급 미망인들은 역연혼으로 아내로서의 짐스러운 의무의 일부는 면제된 채 여전히 그들의 지위가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 동안, 역연혼의 관습은 흔치 않았다. 많은 이들이 전쟁터로 떠나거나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올라 공동체가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남편이 세상을 떠난다면, 여성은 수백마일 떨어진 곳에 거주하거나, 피난민촌에 있을 혹은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남편의 친척들에게 마냥 의지할 수는 없다. 서부 바랄 가자(Bahral Ghazal)의 와우(Wau) 지역에서 온 32세 애친(Achien)은 전쟁 기간 동안 수단 인민자유군부당에서 요리사와 운반대원으로 근무하며 함께 이동했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친정에 신부값 지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관계인 ‘전쟁 중 남편’과 결혼하였는데, 이러한 형태의 결합은 남수단 문화에서 비공식적인 혼인으로 볼 수 있다. 그녀는 이 남성 사이에서 세 자녀를 두었다. 그가 전쟁 도중 사망하였을 때, 그녀는 그의 가족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애친은 힘겨운 전쟁이 끝나고 그녀의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저를 다시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친정에 신부값을 가져다줄 기회를 져버렸으니까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애친의 경우가 특수한 것은 아니다. 남수단에 두루 걸쳐, 미망인의 사회적 대우는 매우 취약하다. 사회안전망의 결여는 곧 사별한 여성에 대한 지원이 없음을 의미한다. 한 국회의원인 미망인 여성에 따르면, 미망인 여성은 국가 기념일에만 언급되는 정도이다.
| 그들은 필요할 때만 미망인 여성을 기억해요. 저희의 고충에 귀 기울이려고 할까요? 그래서 그들이 무엇을 하지요? 만약 지금 우리의 처지를 알게 된다면, 당신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만약 국회의원이면서 남편과 사별한 저 같은 사람도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입장을 대변해 줄 그 누구도 없는 소외지역의 여성은 어떠하겠어요? 그들에게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누구도 없어요. 미망인들은 동물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
결론
신생국의 대다수 국민들에게 삶은 하루하루 버텨내야 하는 싸움이다. 2011년 7월 9일 이전, 많은 남수단인들은 독립이 풍요와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대다수 남수단인들은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여성에게 있어서, 보건, 식량, 신변 안전은 여전히 부족하다.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져야 할 본국에서, 여성들은 수많은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의 안전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안전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것이, 이와 같은 위협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Sudan Human Security Baseline Assement , Phil Moore)
원문출처: Sudan Human Security Baseline Assesment(HSBA)
HSBA-Woman`s Security in South Sudan-Threats in the Home.pdf
번역: 김지혜(난민인권센터 통번역자원활동가)
감수: 황은혜(난민인권센터 통번역자원활동가)
'자료 Data on Refuge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FMR] 난민캠프에서의 예술활동이 갖는 좋은 이유 10가지 (0) | 2013.07.03 |
---|---|
국내 난민 현황 (2013.05.31) (0) | 2013.06.19 |
난민, 그들은 누구일까요? (2) | 2013.06.08 |
[FMR] 성적 소수(LGBT) 강제이주민의 정신건강을 위한 도전과제 (0) | 2013.05.04 |
[FMR] 난민, 경제적 부담인가 혜택인가? (0) | 2013.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