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짓하는 게 아니야.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스티비 스미스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죽은 이의.
그런데 그가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난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멀리 와 버렸어.
손짓하고 있는 게 아니야.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불쌍한 녀석, 늘 장난치길 좋아했는데.
이젠 저 세상에 가 버렸네.
견디기엔 너무 추웠을 거야. 그래서 심장도 멈춰 버린 거지.
그들은 말했다.
오,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어느 때고 예외없이 너무 추웠어.
(아직도 그 죽은 이는 신음하고 있다.)
난 삶의 모든 것에게서 너무 멀리 벗어나 버렸어.
손짓하고 있는 게 아니야.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Not Waving but Drowning
Stevie Smith
Nobody heard him, the dead man,
But still he lay moaning:
I was much further out than you thought
And not waving but drowning.
Poor chap, he always loved larking
And now he's dead
It must have been too cold for him his heart gave way,
They said.
Oh, no no no, it was too cold always
(Still the dead one lay moaning)
I was much too far out all my life
And not waving but drowning.
2013년 2월 20일 오후 1시 12분.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 나이 만 42세.
43세가 되는 날을 한 달여 앞두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조국 카메룬을 떠나온 지는 이제 1년하고 반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온 그 나라에 그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난민인정신청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병실에서 처음 만났던 날,
그는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무심한 표정에 경계의 눈빛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회복을 믿습니다.
기적을 믿어요.’
희망을 얘기했던 그 순간이 유일하게 온전한 미소를 띠어 준 순간입니다.
위암 4기.
간, 폐, 복막까지 전이.
기침, 가래, 구토, 오한, 발열, 호흡 곤란, 근육 통증 호소.
난민지위신청자라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한 달 사이 두 차례 병원을 옮긴 그.
구급차에 실려 세 번째 병원으로 이송된 그가 휠체어에 앉아 말합니다.
‘잠깐 창 밖을 보고 싶어요.’
커다란 로비 한 켠 통유리를 통해 바깥을 내다 보던 그는 이윽고,
‘눈이 왔네요. 바깥은 많이 춥겠죠?’
그리고 5분, 10분, 15분… 한참을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그렇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대신 출입국사무소에 다녀 왔습니다.
5월까지 3개월 체류연장을 받아 왔다는 소식에 안도합니다.
보일 듯 말 듯한 웃음까지 입가에 떠오릅니다.
마치 그 기간만큼은 보통의 날들처럼 살아낼 수 있는 것마냥, 그렇게 말입니다.
늦은 저녁,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아갔습니다.
반색을 합니다.
한참을 이 얘기 저 얘기 토막토막 풀어 놓습니다.
그러더니 손을 잡아 달라 합니다.
‘잠깐 복도를 한 바퀴 돌고 싶어요.’
손을 꼭 붙들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중간중간 만나는 환자들에게 인사도 하고,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자기는 생선 요리를 좋아한다고 한 마디 툭 던지기도 하고,
간호사들이 일하는 공간도 한번 기웃거려 보고.
다시 돌아온 병실에서 그가 내민 우유 한 팩.
거듭 괜찮다 사양하는데도 꼭 가지고 가라 합니다.
‘아픈 사람들한테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정말 기쁨을 주는 일이에요.’
언제 또 올 거냐고, 얼른 또 와 달라고 채근도 합니다.
곧 또 뵐 수 있을 거라, 그렇게 답했습니다.
며칠 사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야 했습니다.
‘너무 이른걸요(Too early).’
그에게서 들은 두 마디 답. 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만에 혼수 상태에 빠진 그.
그 곁에서 지킨 한 시간. 마지막 거두는 숨을 지켜 보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죽음은 삶을 마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란다.(Death ends a life, not a relationship.)"
타국에서 난민지위신청자의 신분으로 숨을 거둔 그의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는 가슴이 먹먹합니다.
죽음에 직면하여 더 깊이 만나게 된 그와의 인연에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고 싶은 것은,
세상과 하직한 지금 이 순간만이, 혹은 지난 한 달 여의 시간만이 아닌
실상 해를 넘기는 긴 시간 동안 춥게 살아 왔을, 그 외롭게 울리는 신음소리를 여전히 홀로 울리게 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서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난민인권센터(NANCEN) 일동
*현재 난민인권센터와 고인의 벗들은 그 동안의 치료 과정들을 마무리 하고 연이어 진행할 장례 절차 및 본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는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치료 과정에 들어간 비용과 최소한의 장례를 위한 비용, 그리고 본국으로 시신을 운구하는 과정에 필요한 비용으로 최소 1,000만 원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해당 기금 마련을 위한 여러분의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233001-04-225116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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