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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단편소설] 난민 A씨의 일일

#1. 새벽 3시 50분의 반복


"탕!"


A씨는 눈을 뜬다. 오늘도 역시 식은땀을 흘린다. 그 꿈이다. 오늘도 그 꿈을 꾸었다. 습관처럼 불편한 포즈로 몸을 구석구석 매만진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꿈에 이은 반복되는 행동이다. A씨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 50분이다. 


문 틈이 살짝 열린 화장실의 불은 커져 있다. 아내가 곧 일하러 갈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새벽에 몰래 하는 일이지만 아내는 늘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A씨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낀다. 무엇을 위해 한국에 왔는지, 그 굳은 결심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일어났어?"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A씨를 바라본다. 아내의 미소는 슬프다. A씨가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악몽을 꾸고 일어났더니 아내가 자신을 부여잡고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매일밤 지긋지긋할 만도 하지만, 아내는 그러지 않았다. 그 서러운 울음 이후 아내는 애써 더더욱 웃으며 A씨의 아침을 맞이해준다. A씨는 불편한 몸을 일으키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이제 일 가는거야?"


"응. 그래야지. 벌써 4시 다 돼가. 당신 허리는 좀 어때?"


"뭐, 그렇지 뭐. 아침은 먹었고?"


"아니, 금방 다녀올텐데 뭐. 아이들 깨고 다 같이 먹자."


부실한 아침이 될텐데, A씨는 다시 마음이 씁쓸해진다. A씨의 조국 B에서 큰 위험을 겪은 이후, 제대로 된 밥을 먹은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할 수 없었다. A씨는 물끄러미 낡은 식탁을 바라본다. 며칠 전에 산 빵들이 아직 식탁에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이마저도 귀하디 귀한 식사다. 아내의 수입은 한국 돈으로 40만원 안팎. 오로지 이 돈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쪽방의 집세와 아이들을 위한 분유를 구입하고 나면 A씨 부부는 빵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 식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아내는 아내대로 A씨가 안쓰럽다. 불편한 몸으로 힘겨운 일상을 버텨가는 남편은 오히려 자신을 더욱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고향의 삶이 한순간에 멈춘 뒤로, 이들의 삶은 몹시 팍팍해졌다. 하지만 삶이 팍팍하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향한 마음까지 팍팍해질 수는 없었다. 사랑은 서서히 식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반드시 사랑만이 한 부부의 일평생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연민과 존중이 어느 순간 마음에 자리잡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팍팍한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새벽 3시 50분이었다. 아내는 신문을 배달하러 간다. 운동화를 주섬주섬 챙겨신은 아내는 A씨의 얼굴을 한번 더 바라본다. 복잡한 표정이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했지만, 운이 나빠 한국 정부에 발각될 때를 생각하면 아이들까지 추방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국의 높은 아파트와 갖가지 건물이 너무 낯설어 실수투성이라 늘 매니저인 중년 한국인 남성에게 크게 혼이 났던 아내는 이제 제법 익숙하게 어둠을 헤치고 신문을 배달한다고 한다. 다친 허리만 아니었다면….


"당신 아침에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출입국관리사무소) 가지?"


"응. 그래서 잠이 더 안오네."


"잘 될거야. 걱정하지 마. 늘 함께 기도하자. 그럼 다녀올께."


허름한 문을 밀고 나간 아내가 지하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희미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소리도 잠깐 들렸다. 아내를 배웅한 A씨는 아이들의 방으로 간다. 어린 천사들의 꿈나라는 여전한가보다. 불편한 몸을 조심스레 움직인 A씨는 아이들의 곁으로 다가가 눕는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온다. 아내를 보내고 아이들의 천사같은 모습을 보면 A씨는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 무엇이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갔는가?


 #2. 악몽


A씨는 아프리카 대륙의 B국에서 변호사였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어렵게 변호사까지 됐지만, B국에서는 두 종족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었다. 급기야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총을 들고 칼을 들었다. 사소한 충돌로 몇 사람이 죽는 사건 정도는 언론에 보도도 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UN이 이웃나라에 세운 난민캠프로 향했다. 하지만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 먼 길을 가면서 운나쁘게 충돌상황과 마주친다면 애써 몸을 피하는 보람도 없이 죽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두 종족은 번갈아가면서 정부를 차지했다. 한쪽이 정부를 차지하면, 다른 한쪽은 반군이 된다. 정부군과 반군이라는 이름을 번갈아가면서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폭력의 희생양은 양쪽 모두가 된다. A씨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렵게 변호사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그때도 A씨의 생각을 존중해줬다. A씨의 고향은 B국의 어느 해안가 작은 마을이었다. 가진 것이 많지는 않아도 평화롭고 행복했던 그 시절을 생각했다. A씨 부부는 세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로부터 잠시동안은 평화로웠던 것 같다. B국의 혼란상황과는 별개로 A씨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정과 여유는 여전히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고향에 오길 잘했다며 행복을 느낄 것 같던 찰나였지만, 그 꿈은 곧 무너졌다.


A씨는 정치란 끊임없는 탐욕임을 그때 알게 됐다. 정부군이 되든, 반군이 되든, 정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실체들은 소수의 군 실력자와 정치인임을 A씨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감정의 괴물을 가슴 속에 담고 이유없는 전쟁을 치루는 것이 바로 내전의 실체였다. 그 내전의 여파는 A씨가 그토록 꿈꿨던 고향 마을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한밤중이었다. 평화로운 꿈나라로 향했던 A씨 부부는 섬찟한 쇠의 촉감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얼굴에 복면을 둘러쓴 사내들이 마을을 휘젓고 있었고, A씨 부부의 집에도 쳐들어와 총을 겨누고 있었다. 복면을 썼지만 A씨는 알아볼 수 있었다. D종족 군대의 마크를 어깨에 달고 있었다는 사실을. 군복 너머로 힐끗 보이는 D종족 고유의 문신도. A씨 부부는 C종족이었다.


"이봐. 당신 변호사야?"


"네. 그렇습니다만."


"긴 말하지 않겠어. 더러운 벌레같은 C종족은 모두 죽여야 하지만, 우리는 능력있는 사람이 아쉬워. 우릴 위해 일해줘야겠어."


"죄송합니다만 저는 변호사 일을 그만둔지 오래입니다.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돈이라면 원하시는대로…"


퍽!


총기의 개머리판이 A씨의 턱을 가격한다. A씨의 뺨에 붉은 피가 흘려내렸다. 아내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이 새끼가 누굴 거지로 알아? 건방진 새끼!"


이윽고 사내들이 모두 A씨를 발로 짓밟고 있었다. A씨를 아예 죽이려 들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A씨의 눈동자에는 아내의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과 사내들의 총구가 이마 가까이에 다가오는 모습만이 박힌 채 서서히 눈이 감기고 있었다. 



- <호텔 르완다>의 한 장면


잠시 후 A씨는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소스라치게 일어서려다가 가격당한 늑골뼈의 통증을 느끼며 신음했다. 그의 신음소리를 듣고 아내가 다가왔다. 옷과 머리는 모두 헝클어져 있었다.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 아내를 보며 A씨는 기절해있는 사이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말없이 같이 눈물을 흘리며 아내를 안아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안전했다. 하지만, 하지만 B국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비록 C종족이었지만, A씨는 C종족이든 D종족이든 살상이 벌어지는 자체가 끔찍했다. 


A씨는 편지가 한 통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네놈은 변호사라서 살려둔다. 2일 후 다시 오겠다. 그때도 이런 식이면 네놈과 가족들도 모두 죽이겠다."


A씨는 분노가 치밀어 편지를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이 궁금해 힘겹게 아내와 함께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그들은 A씨 가족만 살려두었던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갑게 인사했던 소중한 이웃들이 모두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어린 아이들까지 남김없이 다 죽인 것이다. 


절망에 빠져 눈물이 얼굴에 범벅이 된 가운데 그의 뇌리에 스치는 곳이 있었다. 법대생 시절 강의에서 들은 적 있는 나라 '한국'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제도를 거쳐 짧은 시간 만에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나라였고, 여러 번의 민주혁명을 통해 독재자를 쫓아내고 굴복시켰다는 민주주의의 나라였다. 그래, 가자 한국으로. 다행히 달러가 조금 있었다. 비자든 여권이든 받아서 한국으로 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3. 지하철


따사로운 햇살이 A씨를 감돌고 있었다. 언젠가 저 따사로운 햇살이 가족 모두에게 축복처럼 다가올 것이라고 믿으며 신을 향해 마음속으로 기도드리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A씨가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한국의 아침 풍경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군대 수송열차를 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괜히 겁이 났던 A씨는 영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이에게 물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돼서 궁금한건데, 이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디로 가는건가요? 한국에 혹시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건가요?"


"아니에요. 일하러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에요."


A씨는 다시 한번 놀랐다. 조국 B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상황들이었기 때문이다. 매너있는 질문이 기분좋았던지 젊은이는 친절하게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해줬다. 


"한국은 나라는 좁은데 사람이 많아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살기가 힘들어요. 이렇게 아침일찍 가서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놀라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 젊은이의 답변이 고마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억을 떠올린 A씨는 힘겹게 몸을 움직이며 지하철에 탔다. 오늘도 지하철에는 군대 수송열차처럼 사람으로 가득차 있었다. 숨이 막혔다. 허리가 조여왔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A씨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와의 면담은 오후 2시였다. 하지만 굳이 아침에 가는 이유는 조급하기 때문이었다. A씨 부부에게 있어 고향 마을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 꿈을 꾸며 찾아온 한국이었고, 난민으로 인정해달라는 신청을 했지만 몇 달째 답변이 없더니 겨우 찾아온 기회였다. 


난민으로 인정되기 전까지는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없다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A씨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정착하다가 언젠가 조국 B를 위해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을 감수했다. 하지만 힘겨웠다.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 면담에서 내가 조국에서 겪은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니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이 그들에게 뭔가 불쾌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봤다. 차라리 한국 욕이라도 날아왔다면 궁금하지라도 않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A씨를 노려보면서 코를 막고 있었다. 


#4. 인터뷰


점심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할 수 없을만큼 점심을 건너뛰는 일은 A씨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A씨는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의 벤치에서 오후 2시가 되기를 마냥 기다렸다. 


A씨가 아까부터 희망을 갖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B국의 공용어는 영어와 고유어 E였다. 힘없는 나라의 고유언어 E는 한국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란 생각은 애초부터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영어로 말할 준비를 했다가 반가운 정보를 알게 됐다. A씨와의 면담에는 E언어를 말할 수 있는 통역자가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내 나라 내 민족의 언어로 먼 타국에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기대에 부풀어올랐다. A씨가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고 싶은 이유는 가족의 안전 문제 뿐만이 아니었다. A씨에게 한국은 꿈의 나라였다. 한국이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동시에 성숙한 민주주의의 나라가 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배워 언젠가는 조국 B로 돌아가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후 2시가 되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에 들어선 A씨는 면담실 밖 대기의자로 찾아가 깍지를 끼고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그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 면담을 잘 하느냐에 따라 A씨와 남은 가족의 삶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A씨가 잘 해야 나중에 아내도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와의 면담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B국에 두고 온 큰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또다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겸연쩍었다. 한국에 오고 난 이후, A씨의 눈물샘은 자주 젖곤 했다.


"A씨, 들어오세요."


무미건조한 영어가 들려왔다. 이제 시작이다. 면담실에 들어선 A씨는 의자에 앉았다. 심호흡을 한다. 이윽고 무표정한 얼굴의 한국인 남성과 흑인 남성이 들어섰다. 그가 통역자인가 보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나의 이야기를 전해줄 사람이며 같은 조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A씨는 그에게 눈인사를 전한다. 하지만 흑인 남성 또한 무표정했다. A씨의 눈인사를 가볍게 외면해버렸다.


"이번 면담은 1951년 난민협약에 따른 난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료를 얻는데 있습니다."


한국인 남성은 자리에 앉자마자 사무적인 말을 했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단어들이 무척 어려웠다. 흑인 남성이 무표정하게 그 말들을 A씨에게 전했다. 눈짓으로 대답을 강요한다.


"예."


엉겁결에 A씨는 대답했다. 한국어와 통역자의 말이 다시 A씨의 귀로 매섭게 찾아온다.


"면담 중 충분히 진술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며 신청인은 자신의 진술을 입증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여야 합니다."


"예."


"진술한 내용은 외부에 비밀로 유지되며, 면담 종료 후 통역인을 통하여 진술을 다시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됩니다. 면담 중에 질문할 수 있으며 휴식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예."


"신청인이 사용 가능한 언어를 말하시오."


"E언어, 영어를 할 줄 압니다."


"통역인이 통역하는데 동의합니까?"


"예."


통역 이야기가 나오면서 A씨의 대답은 약간 커졌다. 희망을 가졌기 때문일까? 그러면서 통역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A씨의 희망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통역자의 팔을 스치듯 바라보면서였다. 반팔 와이셔츠를 통해 언뜻 보았던 그의 팔에는 작은 문신의 일부가 노출됐다. 그것은 상징이었다. 바로 A씨와 다른 종족이었던 D종족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문신이었다. 끔찍했던 그날 A씨의 눈에 충격적으로 꽂혔던 그 문신이었다. 이런, 한국 정부는 종족 갈등을 겪는 타종족 출신자를 같은 국적이라는 이유로 통역자로 배치한 것이다.


한국인 관리와 흑인 남성의 목소리가 A씨의 귀를 날카롭게 후벼파기 시작했다. A씨는 현기증을 느꼈다.


#5. 모욕


면담은 오후 5시 넘어 끝났다. 현기증과의 싸움 때문에 A씨는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도무지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한줄기 빛에 의지해 출구를 찾다가 빛이 사라졌을 때의 당혹감과도 같았다. 허리 때문에 불편한 걸음을 걸으면서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절뚝절뚝, A씨는 그렇게 걷고 있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천천히 움직이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한국에 온 이후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A씨는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와 집을 오갈 수 있는 교통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버스가 오고 있었다. A씨의 엉성한 걸음걸이가 빨라진다. 버스가 냉정하게 지나치려 하자 A씨의 몸짓은 기괴해질 수 밖에 없었다. 버스가 출발한다. A씨가 고함을 지른다. 헤이 헤이, 다행히 버스가 다시 멈췄다. 


"그냥 다음 차를 타지 뭘 그렇게 서둘러? 엉?"


운전사가 버럭 화를 냈다. A씨는 운전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버스를 멈춰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그에게 땡큐, 땡큐를 연발했다. 버스는 한가했다. 서둘러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희망이 무너지면서 찾아온 스트레스가 A씨를 더욱 힘들게 했다. 몸에 힘이 풀린다. 버스가 영원히 멈추지 않고 어디론가 계속 가 주길 바람마저도 A씨의 머릿속을 채웠다.


"이 깜둥이 새끼는 뭐야?"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린다. A씨가 한국어를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알아듣는 한국어는 있었다. 바로 '깜둥이 새끼'라는 표현이었다. 흑인에 대한 비하의 욕설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A씨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국인 중년 남성이었다.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A씨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지치고 힘든 그는 그 남성을 피할 수 없었다. 


"이 깜둥이 새끼들 왜 자꾸 한국에 기어오는거야? 엉? 이 새끼들 말야. 엉?"


그가 팔을 번쩍 들더니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킨다. 비틀거리면서도 A씨를 노려보는 그 눈빛만은 뚜렷했다. 


"Hey, Negro fuck you!!"


술에 취한게 맞나 갑작스러운 의심이 들 정도로 뚜렷한 목소리로 A씨를 향해 영어 욕설을 내뱉었다. A씨는 울컥 뭔가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억눌렀다. 기력도 없었고, 현실적으로 그를 제지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A씨는 눈을 감아버린다.


"이 새끼들 자꾸 한국에 기어들어오는 이유가 뭐야? 애새끼들은 마구 낳고 말야. 엉? 이 새끼야, 나랑 한번 붙어볼래? 깜둥이 주먹 맛 좀 보자. 엉? 헤이, 니그로?"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A씨도 그러려니 했다. 가끔은 신이 원망스럽다. 왜 그를 가난한 눈물의 대륙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B국에서 태어나게 했는지 말이다. 그의 고성이 귓전을 계속 때려왔지만, A씨는 스르르 잠이 들으려고 했다. 귓전을 어지럽히는 한국 욕설과 혼란스러운 머릿속, A씨를 잠으로 이끌려는 자석이 동시에 A씨를 뒤흔들었다. 스르르 눈을 감는 A씨의 눈동자의 마지막 잔영으로 중년 남성을 제지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 힘이 드는구나.



- <크래쉬>의 한 장면


#6. 행복한 천변풍경


깊이 잠이 들어 하마터면 버스에서 제대로 내리지 못할 뻔 했다. 갑자기 잠에서 깬 A씨는 소스라치게 놀라 내리는 문을 닫으려던 기사에게 손짓으로 싹싹 빌어가며 "오픈 더 도어 플리즈"를 연발했다. 기사는 짜증을 내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도 그 기사가 고마웠다. 짜증을 내면서도 그의 부탁을 들어줬기는 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집에서 A씨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이대로 집에 갈 수 없었다. 분노와 실망감, 무기력감이 모두 뒤엉킨 A씨의 가슴 속은 얼굴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이 얼굴로 집에 간다면, 한 줄기 희망만으로 힘든 일상을 버티고 있는 아내는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이 분명했다. 평생에 남을 상처를 가슴에 담고 남편을 생각해 묵묵히 참아온 아내였기 때문에 늘 안쓰러웠다. A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떼었다.


힘겹게 발을 내딛으며 음료수 자판기 앞에 선 A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있는 동전을 모두 털어 700원을 맞췄다. 겨우 캔커피 하나를 뽑아선 그는 벤치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공원이었다. 혹시라도 한국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이상한 눈빛을 보낼까봐 가장자리 끄트머리에 있는 벤치로 향한다. 


벤치 앞에선 작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호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지나간다. 누군가는 가족과 소풍을 나왔는지 풀밭 위에서 간단한 간식을 즐긴다. 누군가는 책을 엎고 누워 있다. 


의자에 앉으면서 허리가 시큰해지는 것을 느낀다. 처음 한국에 와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얼마 없는 돈으로 겨우겨우 버티다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막일을 하게 됐다. 대학 시절 파트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비를 번 이후 처음으로 파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트럭에 타고 건설현장으로 갔다. 


하지만 서툴게 돌을 나르고 지게가 헝클어지면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고층이라는 것을 잊고 지게를 바로 잡으려다가 다리를 헛디뎌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A씨의 허리는 그 이후 망가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한국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비싼 병원비를 낼 수 없어 응급치료만 받고 그 상태로 계속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아무래도 괜찮다. 아내와 아이들이 아프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늘 눈앞이 캄캄했다. 특히 자신이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A씨는 혹시라도 가족이 아플까봐 늘 가슴을 졸이고 살았다. 


저녁해가 저물어가면서 여전한 햇살이 따갑게 피부를 때리고 있지만, 그래도 잠깐의 여유를 방해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행복해보인다. Be Happy, A씨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저 일상의 행복을 즐길 여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조국의 위험을 피해 한국으로 어렵게 왔을 뿐인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 <호텔 르완다>의 한 장면


차가운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A씨의 초조한 목을 적셔주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A씨는 그 행복한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고개를 떨구었다. B국에 두고 온 큰 아이가 생각나서였다. 끔찍했던 그날 이후, 서둘러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던 찰나에 큰 아이는 홍역에 걸려 앓아눕게 되었다. 


급하게 찾아간 병원에서는 아이의 상태가 심각해 도저히 비행을 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급한대로 아내의 가족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중에 다시 찾으러 오겠다는 말만 남겨놓았다. 고개를 떨군 A씨의 눈에 작은 이슬이 맺혀 있다. 행복한 풍경 속 복잡한 실타래에 얽힌 한 남자의 마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큰 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과연 한국에 들어올 수는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오늘 면담 이후 A씨의 기대가 산산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노을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노을을 배경으로 산책을 즐기고 대화를 나누는 저 사람들은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행복한 평일 저녁의 천변풍경이었다. 저녁해가 아스라이 멀어지면서 행복한 천변풍경 속 A씨의 서글픈 뒷모습에도 그림자가 업혀지기 시작했다. 


#7. D-7


아내는 이미 빵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A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당신 오늘 고생 많았지?"


"고생은 무슨…, 늘 미안해. 내가 허리만 다치지 않았어도…."


"별 이야기를 다 한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좋은 날이 올거야."


아내는 빵을 내놓는다. 한 입 베어문 A씨를 향해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 당신 이야기 잘 들어주는 것 같아?"


"뭐 그렇지, 당신도 곧 연락이 올 것 같은데?"


"응.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무섭기도 하고."


"걱정하지 마. 잘 될거야."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반드시 이야기해야 했지만, 어떻게 이야기할 지 몰랐다. B국의 C언어는 소수국가 언어였기 때문에 아내가 면담을 할 때도, 그 통역자가 나올 것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아내가 당했던 그 폭력을 남성 면담관과 남성 통역자에게 가감없이 이야기하는 장면까지 떠올랐다. 분명히 말을 이야기줘야 하는데, 목구멍에서 그 이야기를 자꾸만 막는다. 아내가 느낄 실망감과 공포가 벌써부터 예상된다. 


"분유가 떨어져 가네."


아이를 안은 아내가 말을 걸어왔다. A씨도 아침부터 걱정하던 일 중 하나였다.


"응, 아침에 먹이고 나니까 바닥이 보이더라고."


"내 아르바이트 월급날이 한 일주일 정도 남았는데…."


"지금 가진 돈 다 털면 분유 한 통 사올 돈은 될거야. 내가 내일 사올께. 미안해. 오늘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분유를 사고 나면 A씨와 아내가 먹을 빵을 살 돈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그 이야기를 피했다.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은 굶겨서는 안되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말이다. 


#8. Over the rainbow


아내는 잠이 들었다. 분유를 먹고 한참을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놀던 두 아이도 잠이 들었다. A씨도 아내의 옆에 누웠다. 하지만 한참동안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내일 새벽 3시 50분이면 다시 같은 꿈을 꾸다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려웠다. 그 싸늘한 총구의 촉감은 평생 잊지 못할 공포로 마음 속에 남았다. 


큰 아이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큰 아이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A씨는 혼란스러웠다. 아프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같이 한국에 왔어야 했을까? 아니, 지금 이렇게 식사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아이까지 무리해서 데려오는 것은 분명히 무리였을거야. 아냐, 아내의 가족에게 맡기고 오길 그나마 잘한거야. 그런데 거기에도 정부군과 반군이 뒤엉켜 찾아오면 어떡하지? 


큰 아이와는 한달에 1번씩 통화한다. 국제전화요금이 비싸 큰 맘 먹고 전화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르바이트 월급날이 일주일 남았다"고 말한 또다른 의미를 A씨도 잘 알고 있다. 바로 그 날이 큰 아이와 단 1~2분이라도 통화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어렵고 힘들더라도 공부는 계속 하고 있을까? 누가 해코지는 하지 않을까? 1~2분은 그것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A씨 부부에게 그 1~2분은 가장 귀중한 시간이었다.


A씨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닫히면서 마치 연극의 막이 새로 시작되듯 고향의 풍경이 떠올랐다. 잔잔하고 맑고 투명한 바다, 그 위에 뛰노는 아이들과 순박한 고향의 이웃들, 무성한 야자 열매와 저녁이면 마을 전체에 퍼지는 생선 굽는 냄새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단지 소박한 삶을 꿈꾸었을 뿐인데 그조차도 신은 들어주지 않았다. 신에게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아니면 신은 우리를 버린 것일까? A씨의 상념은 멈추지 않는다.


아내는 옆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A씨를 대신해 새벽같이 일어나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이들까지 기르고 있는 아내에게 무척이나 미안했다.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 하나의 꿈만 가지고 버텨왔다.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허리도 치료하고 큰 아이도 데려오고 소박하나마 일자리도 어서 구해야 하고, 이제 아이들도 자랄텐데 유모차도 구입해야 할 것이고, A씨의 생각은 끝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그 가슴졸임과 시간의 흐름은 무한정 이어진다. 통역자의 그 팔뚝 문신이 눈 앞에 갑자기 나타나며 큰 아이의 얼굴을 치워버렸다. A씨는 흠칫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방의 천장이 보였다. 다행히 의식을 모아 그 문신을 치워버리고 다른 것을 불러오려 애썼다. 흐릿한 눈가로 고향마을의 잔잔한 파도가 다시 펼쳐졌다.



- <호텔 르완다>의 한 장면


A씨는 <Over the rainbow>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온 노래다. 마법이라도 부려 소박한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노래는 A씨의 소박한 꿈이 담긴 꿈의 결정체였다. 


A씨의 눈가에 잔잔한 파도가 치는 고향마을의 바다가 보이는 사이, 귓가에는 <Over the rainbow>가 스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A씨는 미소를 지으며 무거운 눈꺼풀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새벽 3시 50분이면 총구와 문신이 찾아와 자신을 깨우겠지만, 잠들기 전만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고 싶었다. Over the rainbow, 무지개빛 봄날은 언젠가 A씨 가족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무지개 저 너머 행복한 세상으로, A씨는 겨우 잠이 들었다. 큰 아이를 만나고 싶다. 큰 아이를….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 

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 

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 


One(some) day I'll wish upon a star 

And wake up where the clouds are far behind me. 

Where troubles melt like lemon drops 

Away above the chimney tops 

That's where you'll find me. 


Somewhere over the rainbow, blue birds fly,

Birds fly over the rainbow,

Why, oh why can't I?


if happy little blue birds fly

beyond the rainbow

why, oh why can't I?



저기 어딘가에, 무지개 너머에, 저 높은 곳에

자장가에 가끔 나오는 나라가 있다고 들었어

저기 어딘가에, 무지개 너머에, 푸른 하늘에

네가 감히 꿈꿔왔던 일들이 정말 현실이 되는 나라.


어느날 나는 별에게 소원을 빌었어

그리고 구름 저 건너에 일어났지

걱정은 마치 레몬즙처럼 녹아버리고

굴뚝 저 높이에

그곳이 바로 네가 나를 찾을 곳이야.


무지개 저 너머 어딘가에, 파랑새는 날아다니고,

새들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데

왜.. 왜 나는 날아갈 수 없을까?


행복한 작은 파랑새는

무지개 너머로 날아갈 수 있는데 

왜, 왜 나는 날아갈 수 없을까?



- 출처 : 위키백과



 


(박형준 활동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