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수습 후기] 3개월, 3년을 지나 30년을 바라보다-박형준 팀장

#1. 고이 접어둔 가슴 속 기억 하나


나름대로 길었던 자취생활과 복잡다단했던 여러가지 사정들로 인한 고립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난센의 채용공고를 보고 에세이를 쓰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는, 홈페이지에서 엿보였던 훈훈해보이는 그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 '복잡다단한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나름대로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하다는 개인적인 특성도 마찬가지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내게는 가슴 속에 고이 접어둔 기억이 하나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당시 나는 블로거로서 현장취재를 했다. 밤새 전쟁과도 같던 시위현장을 두루 취재하고 시위참여자와 똑같이 물대포와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쓴 처참한 몰골로 일요일 아침 해를 보며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창문으로 바라본 세상 밖 풍경은 충격이었다. 방금 내가 본 그 처절한 현장은 분명히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이 지나 지하철 창문 밖 풍경은 평온했다. 저마다 나들이를 가기 위해 곱게 차려입은 분들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극과 극의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찔끔 나올 뻔한 눈물을 애써 집어넣었다. 같이 집에 가던 친구도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인지 말이 없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에게로 다가오셨다. 


"시위 현장에서 오셨어요? 젊은 사람들이 참 고생이 많네요."


애써 집어넣었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한줄기 흘러내렸다. 내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돌아보면 그것이 바로 '고립'이 아닌가 싶다. 내가 보고 겪은 충격적인 장면과 상관없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때, 그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까? 


당시 촛불시위 현장마다 돌아다니시면서 음식을 직접 요리해 시위참여자들에게 제공하셨던 '다인아빠'님의 말씀을 빌려오고 싶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문득 봉사활동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는길에 건물들을 보면 무섭고 두렵습니다. 무관심.. 고요함... 침묵... 그곳에서 보이는건 결코 희망이 아니었지만 마음을 굳건히 하는데 그보다 더한 자극이 없더라구요.저도 그런걸 보며 눈물을 흘릴때가 있어요.내가 가는길이 올바른 길 이란걸 알기에 오늘도 더욱 힘을 내 봅니다."


'난민'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고이 접어두었던 그 무관심과 고요함과 침묵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 그 솔직한 기분을 블로그에 쓴 이후, 그 기억을 다시 꺼낸 것은 난센에 지원할 에세이를 썼던 것이 처음이었다. 

 


#2. 인격수양을 시작하다


에세이를 내고 나서는 오히려 불안했다. 박해를 받고 먼 타국으로 건너오신 분들을 난민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민하신 분들일 것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감싸안아야 할 것이다. 과연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냐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냉정하고 직선적인 성격의 나로서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넉넉하게 감싸안는 일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자신감이 떨어졌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나서는 괜시리 두려움이 더 커졌다. 괜히 긴장돼서 그런지 정해진 면접약속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가리봉동 주변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은 3개월 수습을 마친 지금도, 국장님께서 내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채용하셨는지 아직도 모른다. 내가 파악하지 못한 나의 또다른 모습을 보신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그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씀이 없으시다.

 

합격 후 워크샵에 오라는 연락을 받기까지도 긴가민가했다. 그래서 약속장소로 갔다가 몹시 당황했다. 지금껏 나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남중-남고라는 정글을 거쳤고, 여자분들이 많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지내본 역사가 없었다. 국장님과 나만 남자였고, 여자분이 네분이나 계셨다. 


"아…내 인생의 봄날은 끝이구나."


이후 나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했다. 가끔씩 구사하던 거친 언어도 급격히 순화시켰고, 어떻게든 실수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불끈불끈 나오는 직선적인 성격은 어쩔 수 없었던 순간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깊이 반성한다. 아직 인격수양이 덜된 것이다. 그래도 난센 특유의 훈훈한 분위기 덕분에 인격수양의 속도는 내 예상보다 빠른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난민과도 그렇고, 사무국 내부도 그렇고, 그외 개인적인 인간관계도 그렇고, '관계'는 그런 것 같다. 지속적인 인연을 통해 기쁠 때 함께 웃고, 슬플 때 함께 울기 위해서는 결국 '관계'가 필요하다. '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포용력인 것 같다. 난센에 들어온 이후 가장 많이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나는 누군가를 깊이 있게 포용한 적이 있는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30년 간의 삶의 태도를 한순간에 바뀔 수 없다는 것은 내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결국 내게 남는 것은 바로 4글자, 인격수양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 한 마리가 난센에 들어와서는 잘 조련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되겠다. 

 

 


 

#3. 3년 후에는 요리책 발간?


난센에서 발견당한 잠재력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요리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인생 최대 금기였다. 자취를 하면서도 철저하게 배달음식만 먹었던 내 인생의 최대 금기였다. 그 금기가 여지없이 깨졌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 혹시나 여자친구에게 알려지면 어쩔까 싶은 두려움들이 한순간에 몰려왔다. 

 

 

 


 

하지만 만화 <타짜>에서 주인공 고니가 첫 도박판에서 판돈을 모두 털리고 나서 느꼈던 것처럼 "그러나 인생은 일장춘몽"이었다. 나의 간절한 바람들은 여지없이 깨졌다. 홈페이지에 우연히 들렀다가 내가 음식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난 여자친구는 해맑게 웃으며 늘 기대가 크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난감할 데가 있나.


이제는 서서히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도 알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침을 먹지 않아서 어릴 때부터 점심을 푸짐하게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새로운 요리를 계속 계발해 '실험'하고 있다. 아까 난감하다고 말했는데, 이제 바꾸려고 한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후후후.


이런 속도로 3년쯤 지나면 요리책을 하나 내도 될 것 같다. 자취생을 위한 간편·푸짐한 긴급 음식 매뉴얼쯤? 난센 덕분에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되면 사랑받는 남편이자 아빠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4. 3개월, 3년... 그리고 30년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본 영화 중에 루마니아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라는 영화가 있다. 차우셰스쿠 독재 말기 무렵, 삶의 자기결정권을 빼앗긴 루마니아인들의 일상의 한 단면을 묘사한 영화다. 


감독은 그 끔찍함에 대해 무미건조한 카메라를 무지막지하게 들이댄다. 리얼리즘의 극치다. 하지만 그는 휴머니스트였다. 무지막지하게 카메라를 들이댄 끝에 조용히 희망을 말한다. 스칼렛 오하라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난민의 현실도 그만큼 끔찍하다. 난민이 한국에 오기까지, 그 굳은 결심 뒤에는 그렇듯 환경과 상황으로부터 비롯된 끔찍한 박해가 있다. 그들에게 있어 어제의 끔찍함과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오늘의 암담함은 분명히 밤이다. 하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삶의 희망이 있어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난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이 힘든 일상을 버티는 원동력은 바로 내일의 태양, 곧 희망이다. 지금까지 3개월 동안 보았던 가장 소중한 두 글자인 것 같다.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능숙하게 그들을 위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은 해보고 싶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3개월 간의 발견이 3년의 기쁨, 30년의 소중한 인연으로 진화됐으면 좋겠다. 이제는 내 자신에게 모든 것이 달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난센에서 시작된 인생의 변화, 아마도 나를 좀 더 여유있고 넉넉한 사람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