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10월 15일 난민인정자의 외국이수 학력인정 절차를 마련하고, 난민신청자의 생계비·의료지원 안내와 지급 절차를 보완하는 「난민법 시행령」 및 「난민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우리는 난민이 자신의 배움과 경험을 인정받고, 필요한 지원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번 개정안은 기존 제도의 문제를 늦게나마 개선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환영한다.
학력인정에 관한 개정안은 난민인정자가 법무부장관을 거쳐 교육부장관에게 학력인정을 신청하고, 교육부장관이 3개월 이내에 인정 여부를 결정하여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시행규칙에는 이를 위한 신청서와 외국이수학력확인서 서식을 신설한다.
난민에게는 피난 이전부터 학교에서 배우고,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익히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 온 시간이 있다. 그러나 박해와 분쟁을 피해 떠나는 과정에서 졸업증명서나 성적증명서를 챙기지 못하거나, 출신국의 학교와 행정기관으로부터 서류를 다시 발급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서류를 확보하더라도 아포스티유나 영사확인 등 필요한 인증 절차를 거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출신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 보호를 요청할 수 없는 난민에게 출신국 대사관을 통한 서류 발급과 확인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장벽이 된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학력인정 제도는 난민이 이미 이수한 교육을 인정받지 못하고 진학과 취업의 기회를 잃게 하는 장벽이 되어 왔다.
「난민법」은 2013년 시행 당시부터 난민인정자가 외국에서 이수한 학교교육에 상응하는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법이 보장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는 이제야 마련되고 있다. 그동안의 제도적 공백은 당사자의 학업 중단과 진학 지연, 직업 선택의 제약으로 이어져 왔다. 이번 개정은 오랫동안 미뤄 온 국가의 책무를 이행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신청절차를 신설한 것에서 나아가 이 절차를 통해 실질적으로 학력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증명서 제출이나 출신국 기관의 확인이 어려운 난민의 특수한 사정을 반영하여, 확보 가능한 자료와 면담, 교육 이력 및 역량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학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출하기 어려운 서류를 일률적으로 요구하여 신청이나 인정이 가로막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출신국 당국과의 접촉으로 당사자와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는 원칙도 분명히 마련해야 한다.
절차에 대한 접근성도 보장되어야 한다. 신청 방법과 심사 기준을 여러 언어로 안내하고, 통번역과 서류 준비를 지원하며, 신청인이 과도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류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신청을 반려하지 않고, 자료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야 한다. 불인정 시에는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결정을 다툴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 관계 부처와 교육기관 사이에서 당사자가 같은 설명과 서류 제출을 반복하지 않도록 책임 있는 협력체계도 갖추어야 한다.
학력인정 이후의 기회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 인정받은 학력이 실제 진학과 채용 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교육기관과 고용 현장에 충분히 안내해야 한다. 아울러 인도적체류자와 난민신청자 등 학력 증명에 유사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적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에 난민신청자의 생계비·의료지원 안내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점도 환영한다. 난민신청자가 생계비와 의료비를 받기 위해서는 별도로 신청하고 선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접수 공무원이 안내하도록 하는 것은 제도를 알지 못해 지원 기회를 놓치는 일을 줄이기 위한 조치이다. 이러한 안내가 형식적인 확인에 그치지 않도록 신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지원 요건과 신청 방법을 설명하고 서류 작성에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신청인이 이미 의료비를 납부한 경우 본인의 계좌로도 의료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신청서 안내를 보완하는 것 역시 반갑다. 당사자가 먼저 부담한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경로를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의료비를 먼저 낼 형편이 없는 사람도 필요한 진료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진료기관에 직접 지급하는 절차도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개선해야 한다.
한편 생계비를 카드포인트 방식으로 지급하기 위해 은행·카드사 등 금융기관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데 대한 동의란을 신설하는 부분은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생계비 지원이 절실한 신청인에게 동의 여부를 기재하도록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제공받는 기관과 정보 항목, 이용 목적과 보유기간, 동의 거부에 따른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명확히 안내하고, 제공하는 정보는 지급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 목적 외 이용과 불필요한 보관을 방지하고,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거나 금융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신청인을 위한 대체 지급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학력인정과 생계비·의료지원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과 지원체계를 신속히 마련하고, 그 과정에서 난민 당사자와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난민이 쌓아 온 배움과 경험을 인정받고,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한국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개정이 법에 명시된 권리를 실제 삶에서 보장하는 변화로 이어지기를 촉구한다.
난민인권네트워크,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