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해 말까지 3년 여 동안, 제노사이드 상황에 처한 특정 소수민족에 속하는 신청자의 난민 신청부터 소송까지 조력했습니다. 해당 집단이 처한 박해 실상은 이미 세계적인 뉴스를 통해 널리 보도되고 있으며, 당사자 역시 본인을 둘러싼 정황을 구체적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출입국 당국은 '신빙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의신청 단계의 난민위원회조차 심사기구로서 상식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채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일반 사건보다 많은 품이 드는 소송이었지만, 결과는 상식적이었습니다.
1심 승소 이후 원고 측의 상고 포기 탄원이 수용되어 피고 측이 상고를 포기할 정도로 결과가 자명했기에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행정청과 법무부의 심사 기준이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었습니다. 사법부의 판단까지 가기 전, 행정 단계에서부터 상식에 기반한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개정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구금기간이 20개월에 이르면서 A는 보호해제 대상이 되었습니다. A가 구금되어 있는 동안 유일하게 면회를 갔다는 이유로 출입국으로부터 신원보증을 요청받았습니다. 보호소 측은 규정상 보호해제가 0시(자정)에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와 날씨가 무척 추워졌고,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간에 보호소를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출입국에 사정을 설명하며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첫차가 운행하는 시간에 나올 수 있도록 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보호소 문을 나선다고 곧바로 바깥에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A에게는 당장 갈 수 있는 집도,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난센은 긴급 생활비 예산으로 A에게 차비와 숙박비를 보냈습니다. 따뜻한 방을 구하시기를 바랐지만, A는 그 돈으로 개통되지 않은 휴대전화와 노숙을 위한 작은 텐트를 구입했습니다.
그날 새벽, 신원을 알 수 없는 외국인이 노숙을 하고 있다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끝에 A는 경찰서 한 켠에서 밤을 보내고 나오셨습니다. 바로 동료들과 함께 지역의 쉼터를 수소문하며 연락을 돌렸고, 다행히 최소한의 비용만 부담하면 머물 수 있는 이주노동자 쉼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쉼터는 이주노동자의 임시 주거지로, 낮에는 모두가 일하러 나가고 밤에 돌아와 잠만 자는 자율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체류자격이 없고 일도 할 수 없는 A는 하루 종일 방 안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쉼터에 머물 수 있는 기한이 끝나자 그는 그곳을 나와야 했고, 다시 텐트를 가지고 노숙을 시작했습니다.
A는 노숙을 하면서도 매달 정해진 날짜에 성실히 출입국사무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차비가 없어 이틀이 지난 뒤에야 출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일 A가 오지 않자 출입국은 신원보증인인 제게 연락을 했습니다. 사정을 설명하며 매달 출석을 위한 차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두 달에 한 번 출석하면 안 되겠느냐고 요청했지만, 규정상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일도 못하고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라고 항의하자, “결국 출국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조력자로서 저는 자주 양가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을 때의 안도와,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는 막막함이 교차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원을 난센이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와, 오늘은 무사하신지 확인하고 싶은 불안, 그럼에도 관계가 시작된 이상 우리가 곁에 서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제도가 비워 둔 자리를 당사자의 버팀과 민간의 긴급 지원으로 메우고 있는 현실이 분노스럽습니다. 긴 구금의 끝이 삶의 방치로 이어져도 되는 것인지, 돌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 최소한 살아갈 조건조차 제공하지 않으면서 그의 성실함만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부루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을 해보셨나요?
주사위를 던져 도시를 돌아다니며 땅을 사고, 다른 사람이 소유한 도시에 멈추면 통행료를 지불하는 게임입니다. 서울은 가장 비싼 도시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 받는 293만 원에 비하면, 한 번에 내야 하는 통행료는 200만 원으로 상당히 큰 부담입니다.
겨울방학에 가족들과 함께 이 게임을 하다가 ‘서울’에 두 번이나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대출을 받아 어떻게든 버텼지만, 두 번째로 서울에 걸려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을 때는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게임에 져서 억울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지난해 제가 만났던 난민분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본국의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왔지만 장기간 심사 지연으로 불안정한 신분으로 살아가는 분들, 외국인 보호소에서 나온 이후에도 주거와 일자리에 대한 아무런 안전망 없이 생활하는 분들, 행정 절차의 문제로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분들,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최소한의 치료만 이어가고 있는 분들.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고자 열심히 살아가려 하지만, 낮은 난민 인정률과 제한적인 제도, 그리고 법무부의 배제적 운영 기조 속에서 어려움은 반복됩니다.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구조가 계속해서 삶의 무게를 더하는 현실입니다.
부루마블 게임과 난민분들의 삶을 비유하는 것이 가볍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난민분들이 떠오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난민 문제는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구조가 달라지지 않으면, 누군가는 또다시 ‘서울’에 걸렸을 때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난민인권센터에서의 저의 활동은 단순히 지원을 넘어,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난민이 시혜의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일입니다. 저는 앞으로 난민분들이 더 이상 버티는 삶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도와 인식의 개선을 만들어가는 활동가가 되고 싶습니다.

난민 신청자가 난민 신청 후 ID카드 신청에 대한 안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건강상의 문제로 약속된 날짜에 출입국을 방문하지 못했는데 체류 기한을 며칠 넘겼다는 이유로 ID카드가 발급되지 않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어떤 사람들에게는 행정 서류의 안내 사항을 읽고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나 구두로 전달되는 행정적 정보를 다 파악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지 얼마 안 된 난민 신청자의 경우 한국의 행정 절차에 익숙하지 않고 불가피하게 출입국 방문을 하지 못하게 될 때 일어날 결과에 대해서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법무부는 그 난민 신청자가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된 확인서를 제시했고 확인서에 서명을 받았다는 사실로 과도한 행정 집행을 정당화 했습니다. 하지만 본인 과실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의 행정 집행이 당사자에게 끼칠 엄청난 영항력을 생각하면 어떠한 구제 방안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당사자는 건강상의 이유로 지정된 날짜에 출입국 방문을 못하고 며칠 뒤에 ID카드를 받으러 출입국에 가서 내야 할 벌금이 있는지도 물어봤지만,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ID카드 줄 수 없다'는 말만 듣고 나서 출국명령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체류 기한이 지난 며칠에 대한 범칙금을 부과하고 본인이 범칙금을 납부하면, ID카드를 발급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요?
아직 난민 면접도 보지 않은 상태이고 심사 과정에 처음 들어가는 시기인데, 기나긴 심사 과정을 ID카드 없이 지내야 한다는 것은 취약한 상태 그 자체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생계비 신청도 불가능하고,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일을 할 수 없으며 일상 생활 전반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ID카드 최초 신청 및 발급에 대한 부분에서 좀 더 구체적인 설명과 안내가 있어야 하지 않을지, 행정 집행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최소한 한 번이라도 구제 방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2025년은 상근 활동을 처음 시작하면서 난센에 연락을 하고 지원을 요청하는 수많은 분들에게 어떻게 응대를 하고 만나야 할지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정확하고 적절한 정보를 드리고 있는 것인지, 그런 정보를 어떻게 찾고 확인해야 할지, 케이스를 맡겠다는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조력을 하기 어렵다고 결정한 분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부분이 있을지 등등 여러 상황에서 매번 갈등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계속 겪어온 동료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회의 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서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그나마 정리해갔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늘 막막하고, 특히 소송단계에서 조력할 수 있는 분들이 너무 제한적이라 답답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갈등과 고민이 한국 정부의 행정 집행에 변화와 개선을 요구하는 바탕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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