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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후기] 한국과 미국의 시민들이 입 모아 외친다, “더 이상 가두지 마라!”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연속기획강좌

< ‘인종화된 억류’ : 미국의 이주구금 현황과 폐지운동 >  후기

 

윤성민(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

 

“이주민을 구금하는 데 쓰이는 예산을 모든 이들에게 이익이 되는 프로그램에 쓴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현재 미국에서는 건강보험이 없어서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주인권단체 Detention Watch Network(이하 ‘DWN’)의 서범선 활동가가 던진 질문이다.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는 지난 8월 두 차례에 걸쳐 서범선 활동가를 초청해 미국의 이주민 구금 현황 및 이주구금의 대안에 관한 강연을 개최하였다.

 

악어 출몰 지역에 이주구금 시설 추진... 생명까지 위협하는 트럼프의 이주정책

현 트럼프 정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주민을 구금 및 추방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들어 이민세관단속국(이하 ‘ICE’)의 예산이 13배 증가하여 총 1,500억 달러(한화 약 208조 5,254억원)로 정해졌는데 이는 한국 군대의 연간 예산(약 463억 달러)보다 3배 이상 많은 규모다. 위 ICE 예산 중 450억 달러(한화 약 62조 5576억원)가 이주구금에 쓰인다고 한다.

 

예산 증액에 따라 이주구금 시설도 확장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구금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200개가 넘는 이주구금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트럼프 정부는 이를 3배 더 확장하려고 시도 중이다. 이에 발맞춰 플로리다주 주지사는 악어와 뱀이 출몰하는 습지 위에 텐트로 된 이주구금시설 건립을 시작했다(이는 다행히 플로리다주 법원에 의해 중단되었다).

 

구금된 순간 이주민들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구금당한 이주민의 수가 폭증하자 구금시설 내 음식이 부족해졌고 아파도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침대가 부족해 바닥에서 잠을 자야 한다. 구금된 자들은 하루 중 오직 1시간 동안 샤워, 외부와의 연락 등 활동이 허용되는데, 구금된 이들의 수를 고려할 때 1시간 안에 샤워나 통화를 할 수 있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즉 구금된 이상 외부의 조력을 받을 수 없으며 오로지 강제출국이라는 선택지만이 남는다.

 

트럼프의 반(反)인권적 이주 정책은 미국 내 이주민, 그리고 정주민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주민들은 언제든 잡혀갈 수 있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일상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 내 이주인권 옹호 활동을 하던 이주민·정주민 활동가들은 상시 감시당하며 기소되기도 한다. 한편 이주구금 시설이 들어선 지역은 구금시설 위주로 지역경제가 재편되고 그에 따라 다른 산업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며, 구금시설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일터에서의 폭력을 가정에서도 행할 확률이 높아지는바 가정폭력이 더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 내 이주민 구금시설 현황. 출처 : DETENTION WATCH NETWORK

 

어느 때보다 암울한 상황이지만, DWN를 비롯한 미국의 이주단체들과 시민들은 연대의 힘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가령 ICE WATCH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조직인데, 각 지역마다 시민들이 ICE 공무원들의 활동을 모니터링하며 단속이 시작되면 이를 이주민들에게 알린다. 또한 서범선 활동가가 속한 DWN는 이주민 당사자들 및 활동가들을 조직해 이주구금 시설 폐지를 위한 캠페인(‘Communities Not Cages’)을 벌이고 있고, 그 결과 미국 정부가 쉽사리 새로운 이주구금 시설을 건립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서범선 활동가는 이주구금 제도의 폐지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이주구금 제도의 개선 운동과는 구별된다. 그에 따르면 이주구금 제도 개선 운동은 역설적으로 이주구금의 확대에 기여했다. 구금시설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마련된 예산이 오히려 ICE의 체포·단속을 위한 예산으로 전용되었고, 이주아동 등 취약한 이들의 구금을 금지하자는 운동이 확산하자 외려 결백함 내지 취약성을 입증하지 못한 이주민들의 구금이 정당화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결국 작금의 반인권적 단속·추방을 멈추기 위해선 이주구금 폐지라는 원칙만이 효과적이다.

 

워싱턴에서 열린 트럼프 반대 시위의 모습. 출처 : 연합뉴스

상상력을 제약하는 세계에 맞서 ‘이주구금 폐지’를 외치자

미국에서 연일 벌어지는 충격적인 이주민 단속·추방 행태에 전 세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4일 미국 조지아주 소재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300여 명이 ICE에 의해 체포되면서, 미국의 이주구금 실태에 관한 한국인들의 관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무분별한 이주민 체포·구금은 과연 미국만의 이야기인가? 지난 8월 29일 청주외국인보호소에서 구금된 이주민이 직원 8명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졌고, 그 이전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는 구금된 이주민이 손발이 포박된 채 일명 ‘새우꺾기’ 고문을 당했고, 그밖에 수많은 이주민이 보호소 내에서 폭행, 폭언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단속 과정 역시 반인권적이기 그지없다. 법무부의 단속은 식당, 교회, 직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단속 중 사망하거나 발목 절단 등 큰 부상을 입은 이주민들이 부지기수다.

 

누구든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꾸려 한다. 사람들은 생존 내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주를 택한다. 나 역시 나의 삶을 더욱 가꿔나가고 싶다. 이주민이 함께하는 사회는 내 삶에 다양성이란 소중한 가치를 더해준다. 그런데 이주구금과 강제추방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이주민이 ‘타자,’ ‘언젠가 떠나야 할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로 인해 다양성이란 가치가 소실될 뿐 아니라 이주민과 함께하는 사회에 대한 상상력이 제한당한다. 요컨대 이주구금 폐지는 비단 이주인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삶에 다양성, 상상력을 보장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선택지다. 상상력을 제약하는 세계에 맞서, 이주구금 폐지를 논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