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청사 단식농성장 이집트난민들과의 연대를 위해 2022년 어느새 여름 지나
가을 내내(all this time) 많은 고민을 안고 지내던 난민인권옹호자 임보라를 기억하며
작성: 경주(난센회계팀)
1. 들어가며: 글의 관점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Bourdieu)는 이론적 원숙기인 90년대초 자신의 동료 및 제자들과 함께 프랑스와 북미일대 등에 대한 ‘비참(Misère)의 지형학’을 그리는 프로젝트에 착수한다(부르디외, 2002). 비참한 세계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의 과정에서 그와 동료들이 발견한 주요현상 중 하나는, 세계의 비참이 전면/가속화되면서 동시에 발생하는 곁 1의 무너짐이었다. 부르디외와 동료들은 비참의 곁이 행하는 노동을 애초부터 ‘불가능한 임무’라 지시하면서 비참을 만들고 강화하는 국가의 이중(주권폭력/공동화) 전략을 문제 삼는다. 비참의 생산과정에 노동의 경우는 자본이, 난민의 경우는 혐오세력이 파트너가 된다. 2
한국사회의 난민인권현황과 옹호자들이 마주한 도전 및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글의 관점은 부르디외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이어받는다. 즉 이글은 난민의 비참/취약성과 그의 곁인 활동가의 어려움이 깊이 연동되어 있고, 난민의 취약성이 강화될수록 활동가의 어려움 역시 증가한다고 본다. 이것은 트라우마의 전이(2차 트라우마)에서부터 번아웃-일중독 등의 노동건강문제 모두를 포괄하는 종류의 어려움이다(박경주, 2019).
난민과 활동가 사이의 이러한 역동(의 성격과 방향)을 규정하는 힘의 중심에는 난민비호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입장과 실천의지가 놓여있다. 하지만 둘은 하나가 아니다. 정책적 입장은 표명하지만, 실천의지를 발휘하지 않는 경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난민법을 갖고 있는 한국정부는 이에 대한 하나의 전형이다. 불일치의 공간에서 국가는 출현의 선별을 통해 비호가 아닌 것으로 비호를 대체해낸다. 즉 국가는 출입국관리와 심사체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반면, 복지(처우)의 영역에서는 자취를 감춘다. 한국의 경우 이와 같은 국가의 동학은 평균1%대의 낮은 난민인정률과 난민처우에 대한 종합대책의 부재 및 난민(권리)예산의 동결이나 축소/부집행 등으로 드러난다. 한편 국가의 선별적 출현은 행정체계와 내부의 노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난민인정에 대한 부정승인을 목표로 운영되는 행정체계가 구성되는 것이다. 이때의 노동은 행정체계를 따라 부정승인의 속도를 가속화하는 기계로 전락되어버린다. 3부정이 곧 성과와 보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난민면접조작사건을 통해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관련하여 ‘곁의 노동’을 지시하는 ‘불가능한 임무’라는 표현에는 비참의 성격에 대한 그들의 2가지의 입장이 담겨있다. (1)장기-지속하는 비참 (2)현재 작동되는 곁의 노동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비참이 그것이다. 먼저 (1)은 일국적 차원에서 바꿀 수 없는 세계의 심층구조와 관련되어 있다. 반면 (2)는 일국적 차원의 노력을 통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서술이다. 부르디외와 동료들은 (1)과 (2)의 인과관계를 염두하면서도 (2)에 대해 보다 많은 문제의식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즉 시민들의 비참에 대해 마땅히 지어야 할 책임을 지지 않고 곁(활동가 혹은 말단의 사회복지사)에게 떠맡기며, 현상유지 내지는 임기응변하려는 국가의 (공동화)전략을 비판한 것이다. 물론 국가에 대한 그들의 관찰은 이것을 넘어선다. 국가는 동료시민으로서의 비참과 빈곤을 형벌화(penalization) 4하며 그들에 대해 언제든 철장갑(로익바캉)을 끼고 쓸어버릴 준비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보다 엄격한 실증이 요구되겠지만, 전 지구적으로 난민비호에 대한 3가지의 대체(replace)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책임분담의 선택화, 엄격한 출입국관리, 자립 기반 정책이 그것이다. 이러한 대체는 크게 (1)비호와 이주의 연계담론 (2)난민과 테러의 접합(안전확보패러다임) (3)난민위기의 장기화와 지원체계의 부담증가 등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먼저 (1)과 (2)는 선진국들의 책임분담에 대한 의무를 약화시키며, 엄격한 출입국관리정책의 근거가 되고 있다. (3)은 유엔난민기구(UNHCR) 및 개별 국가들이 난민개인의 책임과 능력을 강조하며 추구하는 원조의 경제(효율)학에 대한 기반으로 채택되고 있다. 한국정부의 비호레짐 역시 이러한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예상되는 결과는 다음과 같다. (1)난민들의 입국과 비호신청의 권리는 약화될 것이고, 심사제한 및 강제송환, 구금의 경향은 보다 강화될 것이다. (2)나아가 난민문제와 그들의 심사기간, 공동화 되는 처우(복지) 등에 따라 지연되거나 장벽에 가로 막히는 삶문제는 지금보다 더욱더 개인(책임)화 될 것이다. 즉 난민들은 높아지는 불확실성과 취약성에 의해 스스로 보다 많은 자구책과 개인화된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불안정한 난민들의 삶은 구조적 문제들의 산물임에도 말이다. 이에 따른 곁(활동)의 도전 또한 분명하게 관찰되는 듯하다. 곁의 자리는 국가가 이미 떠났거나, 헤집고 나간/헤집는 중에 발생되는 비참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이것을 신자유주의적 정책전환의 ‘뒤처리’라 지시하며, 비참에 대한 국가의 (권리예산의 축소를 핵심으로 포함하는) 공동화 및 주권권력의 전면화에 의해 곁의 노동강도는 높아지지만, 성과는 낮아지거나 불가능해지는 면들을 관찰한다. 다음 절들에서는 이러한 관점 하에서 한국의 사례를 설명하고자 한다.
2. 한국사회의 난민인권 현황
2절에서는 한국사회의 난민인권현황을 난민인정률과 심사체계, 난민생활지원예산, 재신청자문제를 중심으로 설명할 것이다. 이 사안들이 난민정책의 문제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난민인권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3년은 난민법 시행10주년이면서 난민법 개악안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난민정책을 성찰하고, 보다 민주화 하기 위해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간대이다. 관련하여 4월 현재 한국과 일본의 난민인권옹호자 그룹들은 거의 동시간대에 난민법 개악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쏟고 있다(일본의 시민사회는 4월 동안 간사이 지역을 중심으로 매주 개악안반대 캐러반 및 데모를 진행 중에 있다). 특별히 지시하고 싶은 부분은 두 국가 모두 비호레짐, 즉 비호신청자의 권리와 처우에 대한 제도 전반의 ‘정상’화를 확장하거나 정비하기에 앞서 효율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균 1-2%대의 낮은 난민인정률과 좁고-사사화 된 박해의 해석, 난민비호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및 정치적 의지의 부재, 비호보다 관리 중심의 정책, 여전히 (한국과 일본은 아직.. 등의) ‘난민예외주의’를 전제하는 태도 등은 두 국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공통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국가의 개악안에서 심사와 관련해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공통내용은 재신청자에 대한 심사 제한의 도입이다. 두 국가 모두 심사의 제한을 두는 것이 글로벌스탠다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진화 된 비호레짐을 구축한 국가들은 적어도 비호레짐의 정상화라는 단계를 거쳐왔거나, 혹은 여전히 정상화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심사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두 국가 내 난민인권옹호자 그룹들의 비판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5
2022년 12월 31일 기준 2022년 한 해 동안 총 11,539건의 난민 신청이 있었고,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총 175명이다. 난민인정률은 2.03%이다. 현재까지 누적 난민신청은 84,922건이고, 난민인정자는 총1,331 명이다. 난민법 시행 이후의 인정률은 다음과 같다(난민인권센터, 2023).
한국의 지난 10년 간 난민인정률은 G20 중 18위에 해당한다. 7
2) 예산: 난민생활지원 예산
난민생활지원비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생계비는 난민법 시행 이후 꾸준히 동결이며, 코로나19의 상황에서 다른 항목들에 비해 매우 낮은 집행률을 보였다. 특별히 2021년에는 난민생활지원 항목의 11.6%만이 집행된 바 있다. 즉 총예산 931,497,000 중 108,040,000만이 집행된 것이다.
난민예산 중 생계비는 최초 6개월 간 취업이 제한된 신청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처우이다. 하지만 전체 난민예산의 23.5%가 생계비로 책정되어 있음에도, 예산 규모가 적어 대부분의 신청자는 생계에 대한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해서 겪고 있다. 나아가 생계비 예산은 전체 난민신청자의 수적 증가나 난민상황의 질적 변화와는 관계없이 매년 동결된 상태로 591명에게 433,000원씩, 3개월 지급을 기준으로 책정되고 있다.
3) 심사체계
현재 한국의 난민심사체계는 제대로 된 심사를 해낼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정부의 협소한 박해해석과 엄격한 증빙주의는 낮은 난민인정률을 안정화하고, 재신청을 축적한다. (2)한국의 난민심사체계는 증가하는 비호신청에 비교될 수 없을 만큼의 적은 난민심사관을 배치하고 있다([표-4]참고). 8 (3)난민심사과정의 절차적 권리보장이 미흡하고, 법률조력을 포함한 심사를 위해 요구되는 조력들을 받을 기회 자체가 개인의 역량에 내맡겨져 있다. (4)접수과정에서 충분한 통번역이 이뤄지지 않고, 면접조서, 불인정결정사유서 등의 기본적인 서류가 여전히 한국어로만 제공되고 있다. 나아가 ‘소수언어’ 및 ‘글을 읽을 수 없는 신청자’에 대한 배려가 심사체계 내에 마련되어 있지 않다. 9
이러한 심사체계의 작동은 크게 3가지의 경향을 만든다. 정부의 신속심사제도화 및 사전심사의 필요성 강화, 난민인정의 어려움에 따른 난민신청자의 심사대기기간 10 및 불확실한 지위의 장기화,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의 업무증가 및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의 고착화이다.
4) 난민재신청자문제
한국사회 난민정책의 취약성과 폭력성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주체는 재신청자이다. 한국과 같은 난민심사체계에서 재신청은 제도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어려움은 재신청자 자신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 재신청자에 대한 법무부의 조치는 난민법 시행 이후 2014년부터 진행된 신속심사유형화 프로젝트의 연장 선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즉 법무부는 신속심사유형화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시점과 유사한 시점인 2017년 초부터 (재신청자를 핵심적인 구성요소로 포함하는) 남용적 난민신청자라는 코드에 부합하는 유형을 설정한 후 이들에 대한 체류지침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1)재신청을 하는 유형 (2)이주노동자 또는 유학생 등의 자격으로 체류를 하다가 난민신청을 하는 유형 (3)체류기간이 지난 상태에서 난민재신청을 하는 유형 등에 대해 체류연장거부, 출국 및 강제퇴거명령, 또는 보호명령을 내려 구금하는 정책을 통해 강력한 체류제한 정책을 작동 시켜온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난민법 개악안(난민법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재신청에 대한 체류자격제한(난민심사 부적격 결정제도)을 핵심 요소로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거나, 난민인정 결정이 취소된 사람 등이 재신청을 하는 경우에는 21일이내에 난민인정 재심사 적격 여부에 대한 심사를 먼저받도록 한다. 심사를 진행한 후 ‘중대한 사정의 변경’이 있는 경우 적격 결정을 내리고, 적격 결정을 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난민인정심사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는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난민신청자를 남용적 신청자로 취급하며, 권리로서의 심사기회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법안이다. 심사체계의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한국의 경우 개악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충분한 난민사유를 가진 신청자가 심사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본국으로 강제송환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난민재신청자의 처우문제 역시 매우 시급한 문제이다. 법무부는 난민재신청자의 체류연장을 거부하고, 외국인등록증을 회수한다. 또한 하나의 낙인일 수 있는 체류기한 유예를 통해 난민재신청자는 사실상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나아가 언제든 출국유예를 중지하고, 출국명령이 떨어질 수도 있고, 구금의 가능성은 항시적으로 존재한다.체류자격제한과 함께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외국인등록증 역시 압수당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핸드폰을 개설할 수도 없고, 은행출금도 불가능하다). 체류자격은 물론이고 공공기관과 사회에 자기 자신을 설명할 방법 모두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3.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의 도전
1)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을 향한 도전의 배경
한국사회의 난민들이 직면한 여러 어려움과 장벽들은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이 마주하는 도전들의 배경이 된다. 이는 앞 절의 설명과 함께 크게 5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출입국관리의 강화
(2) 낮은 인정률 경향의 장기화
(3) 비호신청의 수적 증가와 누적된 재신청에 따른 문제
(4) 난민복지(처우)에 대한 종합대책의 부재와 한국 복지체계의 난민인식(관찰) 부재
(5) 난민인식의 증가의 한 결과로서 조직된 혐오세력의 결집과 난민문제의 정치화
한국사회의 난민비호 역사에서 하나의 기점이 된 2018년 예멘 출신 난민들의 입국과 비호권 주장은 위 사안들을 사회 전반의 인권문제로서 가시화 시키는 동시에 사태를 보다 악화시키려는 양가적인 동기를 제공했다. 이 시기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에게 가해진 새로운 도전은 (5)이었다. (1)-(4)의 사안들은 옹호자 그룹에게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지만 긴 시간 대응해오던 문제들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은 아니었다. 반면 (5)는 조직적이고 집합적인 운동이라는 점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5)의 등장은 (1)-(4)의 기존 작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즉 (5)는 (1)-(4)를 보다 강화하고 촉진-고착화하는 매체가 된 것이다.
이 시기 혐오세력의 주장은 난민문제를 해석하는 지배적인 준거-틀이 되었고, 기독교와 혐오세력, 페미니스트들 중 일부 그룹 간의 ‘선택적 친화성’이 형성되었으며, 이와 동시다발적으로 국가도 난민문제를 안보문제로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한국의 우파는 난민법의 폐기 혹은 폐기에 가까운 개정안을 제출했고, 중도좌파는 난민문제에 대한 뜨거운 정동의 후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정책의 정치’로 일관하거나 ‘합리적’인 개정안을 제출해냈다(현재 옹호자 그룹이 반대하는 개악안은 중도좌파의 발의안이다). 이후에도 한국정부는 미얀마의 군부쿠데타와 아프간에서의 미군철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일으킨 전쟁 등의 사건과 연계된 난민인권문제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한국정부의 소극적인 난민정책은 2015년 시리아 출신의 난민들에게 난민인정의 회피전략으로서 인도적 체류지위를 부여한 것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고, 2018년의 집합적인 반난민흐름을 경유하면서 확실히 고착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통계적으로도 2014년 이후 인도적체류자의 증가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반면, 2018년의 흐름은 새로운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을 출현시켰다. 한국의 인권운동(특히 퀴어인권운동, 이주인권운동)이 난민인권을 보다 본격적으로 인식(관찰)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연대의 폭 역시 넓어졌다. 11또한 기존의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의 형태에서는 본격화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예: 직접행동, 예술행동 및 난민과 상동한 폭력구조에 놓인/폭력구조를 예감하는 존재들 사이의 연대 등)의 난민인권옹호 운동이 출현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난센의 회원이기도 한 심아정, 신지영, 전솔비 등이 저술한 <난민, 난민화된 삶>은 2018년 이후 등장한 새로운 연대의 이론과 현장에 대한 초기 기록으로 볼 수 있다.
2)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의 도전
(1) 업무 및 노동강도 증가의 장기화
난민신청자의 수는 ‘위드코로나19’의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다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표-5]). 또한 공항만에서의 난민신청도 크게 증가하였다([표-6]). 정상화 되지 않은 심사체계 하에서 이뤄지는 장기화 된 난민신청 증가와 낮은 인정률, 공항만에서의 높은 난민신청과 평균 40%이상의 낮은 회부률은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의 업무증가와 노동강도의 강화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더불어 난민법 개악과 미등록체류외국인 집중단속 및 불법이주민 감축 5개년 계획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한 구금의 증가 또한 이에 대한 옹호자 그룹의 대응업무를 증가시킨다.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이 조력하는 난민들은 국가의 지원 밖에 있는 대상들이거나 국가로부터 (국경 밖인 공항대기실, 외국인보호소 등으로) 추방당한 이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난민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난민에 대한 국가의 입국 최소화/축소정책과 출국확대/출국을 위한 구금정책의 의지 역시 보다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2) 노동건강문제
증상으로서의 번아웃은 소외가 적은 (자아실현이 용이한) 노동에서 보다 많이 발견된다는 보고들이 있다. 즉 번아웃은 노동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투입 대비 산출(결과)가 적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노동으로서의 난민인권옹호는 (쉽게 바뀔 수 없는) 전 지구적인 장기지속의 구조에 긴밀히 영향을 받는 노동과정을 구성한다는 점과 노동과정에 대한 활동가의 유입과 참여가 자율성 및 진정성에 기반 해 있다는 점에서 번아웃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또한 죽음/과 폭력을 예감할 만큼의 깊은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을 조력하는 과정에서 2차 트라우마(혹은 트라우마의 전이)가 발생할 가능성도 여러번 지적된 바 있다.
나아가 2018년을 지나며,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의 분화가 이뤄졌다. 즉 기존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의 형태와는 다른 동료시민의 집합행동으로서 단체 및 네트워크들이 결성된 것이다. 이 그룹들의 활동가 대부분은 종속노동(활동)이 아닌 독립노동(활동)의 형태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노동안전이다. 종속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활동 시에 산재보상이나 노동안전의 권리로부터 보호를 받는 일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3) 단체의 운영
난민에 대한 조력업무는 보다 장기화 되고 증가되고 있음에도 정부의 난민단체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 지역정부 차원에서의 난민단체 관련 지원도 사업에 대한 지원으로서 서울시의 난민인권옹호사업 전부다. 대부분의 난민단체들은 동료시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큰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다.
(4) 잠재화 된 혐오
2018년 이후 직접적인 난민혐오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최근 경북대 후문의 이슬람사원 건축을 둘러싼 과정에서 드러난 집합적인 혐오는 언제든 난민에 대한 혐오가 현세화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시한다.
4. 과제: 결론을 대신하여
1) 가장 우선적으로는 한국정부가 중장기적인 난민정책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난민심사제도의 운영인력을 확충하고, 심사과정에서의 절차적인 정의를 보장함과 동시에 난민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고 확장하는 일 등을 포함한다.
2) 인권재단이나 협동조합, 중간지원조직 등에서 운영하는 활동가 의료지원을 확대해야 하며, 이 지원에서 독립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적극적으로 포함 시킬 필요가 있다.
3) 난민인권옹호자 그룹을 한국의 비호레짐과 난민정책의 민주화를 이루어 온 정부의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이에 따른 운영비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난민법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최선의 안이라고 생각된다.
4)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통해 난민혐오세력의 근거없는 주장이 현세화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혐오세력의 해석틀은 동료시민들을 넘어 정부의 난민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5) 지역정부나 도시들을 적극적인 난민비호의 담당자로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난민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역정부, 도시의 입장 차이는 난민인권의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난민인권에 대한 각 도시의 조례를 만듦으로써 중앙정부의 난민정책에 대한 의미 있는 대안/대항과 보완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국가인권위 침해구제제2위원회. (2020). 결정18진정0572400
김연주. (2020). 난민면접 조작 (허위작성) 사건’을 통해 확인한 한국 난민심사 제도운영의 문제점과
사건 문제제기 과정의 기록. 공익과 인권, 20, 225-266.
난민인권센터, 2023, [통계] 국내 난민 현황 (2022.12.31기준)
박경주. (2019). 사회적 노동으로서의 인권운동: 난민지원활동가의 노동건강문제를 중심으로. 인권연구, 2(1), 71-108.
부르디외. (2022). 세계의 비참. 김주경 옮김. 동문선.
송영훈. (2018). 수의 정치: 난민인정률의 국제비교. 문화와 정치, 5(4), 5-31.
김영옥×엄기호×김일란 외. (2018). 인권운동(창간호). 인권저널.
이은주×박희정×홍세미. (2022). 곁을 만드는 사람들. 오월의 봄.
각주
- 곁이라는 표현은 김영옥, 엄기호, 김일란 외(2018: 73-120)과 이은주, 박희정, 홍세미(2022) 등에게서 빌려왔다. [본문으로]
- 나아가 시민적 무관심이 문화로서 자리 잡히지 않은 사회에서는 (구별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비시민적 관심을 쏟는 동료시민들과 혐오세력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다. [본문으로]
- ‘신속한 심사’의 이면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법무부는 난민심사가 진행되는 전국의 사무소에 난민신청자의 신청을 신속・집중・일반・정밀로 유형화하는 지침을 운영했고, 신속유형으로 분류된 난민신청자에 대해서는 1-2시간 이내의 간략한 면접, 사실조사의 생략, 7일 이내의 처리, 신속비율의 40% 수준의 유지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국가인권위 침해구제제2위원회, 2020). 면접조작사건을 통한 심사제도에 대한 분석은 김연주(2020)를 참고. 하지만 인권위가 공개한 결정문에는 신속심사가 실상 ‘졸속’ 처리되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법무부가 정한 신속심사 비율은 전체 신청의 40%지만 실제 거점 사무소에서의 비율은 68.6%로 절반을 훌쩍 넘었으며, 특히 이집트 국적자의 경우 838건 중 791건이 신속심사로 처리된 것이다(2016년 기준). 법무부는 신속심사 담당 공무원에게 월 40∼44건 처리를 지시하고 이를 채우지 못하면 경위서를 받기도 했다. [본문으로]
- 나아가 곁의 형벌화 역시 진행되는 중이다. 바다를 넘어 비호권 주장을 시도하는 난민을 조력하려는 곁에 대한 형벌화가 적절한 예시일 것이다. [본문으로]
- 일본의 난민지원단체들의 네트워크인 Forum for Refugees Japan(FRJ)는 입관법개악 관련 집회나 성명서를 꾸준히 아카이브 해두고 있다. http://frj.or.jp/ 입관법개악에 대한 일본시민사회의 입장문은 다음을 참고. https://nancen.org/2352 [본문으로]
- 인정률을 중심에 둔 국가 간 비교가 실질적인 난민정책의 민주성이나, 난민비호의 수준을 파악하는 데에 적절치 못하다는 주장이 존재한다(송영훈, 2020).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논의의 전제와 시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인정률이 적어도 평균 수준으로 올라온 다음에 나와도 될 논의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 유엔난민기구 통계; 임순현, 2021.08.26. “[팩트체크] 한국, 난민 지위 인정 최하위권?” 연합뉴스. www.yna.co.kr/view/AKR202108 26025300502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 난민인권센터 정보공개청구 결과. 법무부 2022-정보공개 청구 결정서(8669987) [본문으로]
- 예를 들면, 비호국 내 커뮤니티(사회/공동체)자본이나 성실한 지원(수급)노동(공무원 및 조력자들이 간혹 단체/지원쇼핑이라 부르는 난민의 행위는 사실 노동이라 지시되어야 할 것이다)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난민에게 동일국가 커뮤니티는 위험한 공간이기도 하며, 일과시간에 지원노동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있는 난민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본문으로]
- 곽진산, 2022.07.17. “공무원 1명이 333건 처리 ‘역부족’…쌓여가는 난민 이의신청 심사” 한겨레. [본문으로]
- 난민인권옹호자 그룹과 범 인권운동의 연대는 2017년에 앞서 이뤄진 성소수자(퀴어)인권운동과의 연대에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난민인권과 퀴어운동의 연대는 이후 이뤄진 난민인권과 범 인권운동 간 연대의 성격 및 지향을 어느 정도 규정한 측면이 있다(2018년 난민환영집회에 무지개와 난민인권의 연대를 상징하는 깃발은 이를 함축한다). 2017년 난민인권과 퀴어운동의 간담회를 경유한 연대는 현재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라는 단위로 정식화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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