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 20주년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성명
존재를 판정하지 말고 박해의 공포에 집중하라
- 성소수자 난민지위인정 심사의 전면 개선을 촉구한다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는 난민 가운데는 성소수자도 있다. 규범에 어긋나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별표현 등을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다 어쩔 수 없이 도망친다. 성소수자를 말살하려는 자들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숨죽여 살다 견디지 못하고 탈출한다. 즉각적인 위험 때문에 달아나기도 하지만 박해가 너무나 명백히 예상되어 길을 떠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한 이동이고, 더욱 자유롭기 위한 피신이다.
대한민국에도 성소수자 난민이 도착하여 비호를 구한다. 난민협약 및 난민의정서 가입국이자 난민법 시행국으로서 대한민국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의무를 진다. 정부는 과연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가.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지난 몇 달간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성소수자 난민지위인정 심사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상황은 처참했다.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성소수자 난민에게 적대적이고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성소수자 정체성을 박해 사유로 난민지위인정을 받은 난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세계 난민의 날 20주년을 맞이하여, 성소수자 난민에 대한 부당한 심사 경향과 심사 과정상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며 다음과 같이 성소수자 난민지위인정 심사 절차의 개선을 촉구한다.
첫째, 성소수자 난민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라.
이제까지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난민 심사는 성소수자 난민 당사자에게 정체성과 박해 공포를 입증하라는 책임을 과도하게 부여해왔다. 심사관은 성소수자 난민에게 정형화된 정체성 범주나 정체화 각본에 들어맞는 서사와 오류 없는 완벽한 진술을 요구했다. 표준적 가이드라인 없이 심사관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난민의 성소수자 정체성의 신빙성을 가늠했다.
성소수자 난민이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왔다는 사실이야말로 박해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다. 그러나 심사관은 숨기고 살면 되니 박해가 아니라는 식으로 단정지었다. 난민이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차별적 맥락은 배제한 채 거짓말한다는 의심부터 했다. 이제까지 노골적인 박해가 없었다는 사실만을 피상적으로 해석하여 난민 당사자가 박해 가능성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을 경시했다. 나아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성적인 문란함과 등치시켜 불필요하고 모욕적인 질문을 던져 난민 당사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이는 난민을 의심하고 범죄화해온 부정적 인식과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난민지위인정 심사를 다루는 여러 국제 규범은 난민이 “박해받을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가 있는 두려움”을 가졌는지 입증할 책임을 난민과 심사주체가 공유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성소수자 난민의 경우에도 당연히 해당한다. 또한 국제 규범은 난민 신청자가 박해 공포를 입증하는 과정에 반드시 “선의의 해석”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더라도, 사소한 사항에 대한 기억이 불분명하더라도, 진술이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다면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박해 증거 확보가 불가능하다시피 한 상황 자체를 이해할 필요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되도록 신청자가 난민지위 인정을 받는 데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하라는 지침이다.
대한민국도 종교나 정치적 의견에 의한 박해 등 여타 난민 사유에 관해서는 이미 “선의의 해석” 원칙에 따라 난민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왔다. 유독 성소수자 난민 사례에만 해당 원칙이 적용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는 묻는다. 성소수자 난민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진술 신빙성을 더 의심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다.
심사관은 성소수자의 삶에 대한 폭넓은 학습을 통해 성소수자 난민의 진술이 내부 모순 없이 완벽하기 어려운 특수성을 (난민 당사자의 자기혐오, 언어 부족, 기억의 혼선 등) 충분히 이해하고, 난민이 떠나온 국가의 정황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해 난민 진술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도모함으로써 난민 당사자와 박해 사실 입증 책임을 실질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성소수자 난민의 정체성을 자기만의 잣대로 판정하려 하지 말고 당사자가 느낄 박해의 공포를 소상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 성소수자 난민의 특수성에 따라 적절한 통역인을 보장하라.
능숙한 통역인의 제공은 공정하고 전문적인 난민 심사를 위한 최소 요건의 하나다. 난민지위인정 심사 절차에서 통역은 심사관과 난민의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유일한 수단이기에 통역에 문제가 생길 경우 난민은 불리한 상황에 부닥친다.
난민 통역의 질적 문제는 비단 성소수자 난민 심사 사례에서만이 아니라 난민 심사 통역 전반에 걸쳐 두루 지적되고 있는 만큼, 역량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등의 발본적인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통역 수행 시 객관성을 견지하고 업무 내용에 대한 비밀을 유지한다는 윤리원칙의 숙지 역시 모든 난민 통역인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규범이다.
성소수자 난민의 심사에 통역인을 배정할 때는 추가로 고려할 사항이 있다.
성소수자 난민은 대개 같은 출신국 사람을 통역자로 두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통역인을 통해 자신의 상황이 본국에 알려져 자신과 본국에 두고 온 가족, 동료, 친구, 연인 등이 모두 위험에 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통역인이 성소수자 혐오적인 입장의 소유자일 경우에는 통역 서비스를 제공받는 과정 자체가 트라우마로 경험될 위험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본국의 언어가 혐오적인 표현 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자 하는 성소수자 난민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심사주체는 성소수자 난민이 가장 편안하게 진술하고 그 과정에서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를 기울여 통역인을 배정해야 한다. 안전과 보호를 구하러 온 성소수자 난민이 편의적으로 배정된 통역인으로 인해 또다시 혐오에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거듭 확인해야 한다. 심사관과 난민이 정확한 내용으로 소통하지 못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난민이 입는다.
셋째, 심사주체와 통역인이 성소수자 난민 면접 시 업무의 준거로 삼을 체계화된 지침을 마련하라.
성소수자 인권 보장과 난민 보호라는 대원칙에 기반한 심사를 위해 성소수자 난민지위인정 심사에 관한 별도의 지침이 필요하다. 심사주체나 통역인이 성소수자나 난민에 대해 가진 개인적인 견해를 개입시킬 여지가 없도록, 국제 인권 규범에 근거한 명확한 반차별 심사 지침을 마련하여 교육하고 현장에서 활용해야 한다. 이미 유엔난민기구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 단체, 그리고 개별 국가에서 성소수자 난민 심사 관련 지침을 수립해두었다. 이를 참고하여 자체 지침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국내 성소수자-난민 단체와도 적극적으로 접촉하기를 요청한다. 기본 교육 및 보수 교육을 정례화하여 국내외 성소수자 관련 의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꾸준히 업데이트하라.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출범부터 지금까지 성소수자 난민과 HIV감염인 난민의 곁을 자처하며 심사과정을 조력하고 긴급한 상황을 지원해왔다. 소수자 난민이 심사과정에서 겪는 차별과 인권 침해에 문제제기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며, 생계비 지원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난민이자, 성소수자이자, 감염인이자, 유색인종으로 위태롭게 생존해 나가고 있다. 한국에 도착한 이들이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고 공동체의 존중과 사랑 속에서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온 사회가 연대해 주기를 요청한다. 난민은 지금-여기를 함께 바꿔나갈 동료 시민이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퀴어 당사자들에게 특히 힘주어 청한다. 난민 동료를 환대하고 이들과 연대하며 국민과 비국민의 분할에 저항하자. 정상 규범 너머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자. 난민 운동의 동지들에게도 뜨겁게 요청한다. 성소수자 난민이 바로 이곳에서 난민이자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숨기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더욱 힘을 합치자. 난민 혐오 성소수자 혐오 없는 사회로 같이 나아가자.
우리는 언제나 성소수자 난민이 처한 긴급한 생존의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겠다. 퀴어의 연대, 퀴어한 연대는 온갖 경계를 부순다.
2020년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연대체(가나다순, 7개)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러브포,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레드리본 사회적 협동조합,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장애여성공감,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PL모임 ‘가진사람들’,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 커뮤니티 ‘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난민인권네트워크 [TFC(The First Contact for Refugee)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공익사단법인 정,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센터 드림(DREAM),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 글로벌호프, 난민인권센터, 동두천난민공동체, 동작FM, 사단법인 두루,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수원글로벌드림센터, 순천이주민지원센터, 아시아의 친구들,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이주여성을위한문화경제공동체 에코팜므,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의정부 EXODUS, 이주민지원센터친구,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 재단법인 동천, 재단법인 화우 공익재단,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파주 EXODUS, 한국이주인권센터]
단속추방반대! 노동비자 쟁취! 경기지역 이주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노동자연대경기지회, 녹색당 경기도당,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경기도본부, 사회변혁노동자당경기도당, 수원이주민센터, 아시아의 친구들,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이주노조, 지구인의 정류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화성이주노동자쉼터)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노동당 성정치위원회, 녹색당 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다움: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대구퀴어문화축제,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레주파, 무지개예수, 무지개인권연대, 민중당 인권위원회, 부산 성소수자 인권모임 QIP,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 30대 이상 레즈비언 친목모임 그루터기, 서울인권영화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성공회 용산나눔의집(사회적소수자 생활인권센터),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성소수자부모모임, 성소수자알권리보장지원 노스웨스트 호,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사)신나는센터, 언니네트워크, 이화 성소수자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 전라북도 성소수자 모임 열린문,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준),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트랜스해방전선,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부천이주노동복지센터, (사)지구촌사랑나눔, (사)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순천이주민지원센터,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 원불교서울외국인센터, 의정부EXODUS,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성공회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 포천나눔의집, 함께하는공동체)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경기이주공대위, 김포이웃살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노동자연대, 녹색당,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대한성공회 용산나눔의집,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진보연대,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사)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민방송(MWTV), 이주민센터 친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철거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정의당, 지구인의정류장, 천주교인권위원회, 필리핀공동체카사마코, (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인권위원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 위원회 (기독교장로회 제주노회 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제주교구이주사목센터 나오미, 제주불교청년회,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주지역본부, 정의당 제주도당, 녹색당 제주도당, 노동당 제주도당, 민중당 제주도당, 4·3연구소, 강정국제팀,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강정친구들, 개척자들, 글로벌이너피스, 기억공간re:born,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제주생태관광협회,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생태예술치유여행 오롯, 바라연구소-평화꽃섬,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제주다크투어, 제주민권연대, 제주민예총, 제주장애인연맹DPI,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제주주민자치연대, 제주차롱사회적협동조합,제주참여환경연대,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주평화인권센터, 주)제주착한여행, 진실과 정의를 위한 교수 네트워크, 지구마을평화센터, 핫핑크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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