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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기고]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 희망 이야기 3편

대부분의 난민소송은 변호사 조력을 받지 못한 채 나홀로 소송으로 진행되고 있고, 많은 경우 충분한 주장과 증명할 기회를 놓친 채 법원에서 공정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난센은 변호사 조력 없이 나홀로 난민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을 서포트 해보고자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부룬디에서 오신 데오(가명)님의 나홀로 소송 진행 후기를 전합니다. 

*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희망이야기 1편 : https://nancen.org/2013

*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희망이야기 2편 : https://nancen.org/2023

* 민중의 소리 기사 '나홀로 소송' 나선 난민 따라가 봤더니, 한국은 그를 내쫓으려고만 했다

* Forms For Refugee Litigation (난민소송 양식) : https://nancen.org/2051

 

올해 3월 초 대한민국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가장 심각했던 나라 중 하나였다. 전국적으로 불안감이 퍼졌고 모든 가정, 회사, 그리고 개인들이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나 또한 가혹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나는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나를 고용한 측과 올해 6월까지 계약을 맺었는데, 고용주는 3일의 시간을 주고 그만둘 준비를 하라고 통보했다. 가슴이 출렁거렸다. 나는 바로 난센에 도움을 요청했다.

 

나의 일자리 문제가 채 해결되기도 전에 나는 법원으로부터 소송 결과를 받았다. 문서가 한글로 작성되어서 나는 구글 번역기를 이용했다. 잘 이해는 안 갔지만, 뭔가 불인정 판결을 받은 것 같았다. 결과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나는 바로 난센과 상담 일정을 잡았다. 난센에 계시는 변호사님이 천천히 서류 내용을 설명해주셨고 나는 그제야 서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난민으로 인정받을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기 때문에 이 결과에 무척 실망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이 깜깜했다. 내가 난센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나의 소송을 도와주었던 난센 자원활동가 나현님과 상아님은 없었다. 두 자원활동가를 지원했던 난센 변호사님만 있었다. 이 변호사님으로부터 나는 항소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항소할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 있고 그 기한이 매우 짧아서 나는 빨리 행동해야 했다. 내가 만약 난센을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항소할 기회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심판결에 나와 있는 불인정 사유는 내가 출입국사무소로부터 받은 불인정 결정 사유와 똑같다. 그것은 바로, 내가 반정부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적이 없어 정부 박해의 직접적인 표적이 아니라는 이유. 따라서 법원은 박해 우려에 대한 나의 주장이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출입국 사무소의 결정과 1심 판결을 보면서 설명이 너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민의 관점에서 불인정 사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히 설명이 되어 있었다면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이 허망함은 덜 하지 않았을까. 고작 한두 문장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불인정 판결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내가 박해를 가하는 정부의 직접적인 표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주장은 내가 부룬디에 살던 당시, 반정부 활동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근거 삼았을 것이다. 난센 자원활동가 상아님이 나홀로소송 시리즈의 첫 글에 설명했듯이 (아직 읽지 않았다면, <나홀로 난민소송 진행하기 - 희망의 이야기 1편> 읽어보기를), 반정부 활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만이 박해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부룬디에서는 정부의 박해 표적인 여부와 상관 없이 무차별적으로 박해를 당하고 있다. 그래서 부룬디 상황이 위험한 것이다. 부룬디에서는 정부로부터 반정부 성격을 가졌다고 간주되는 몇몇 지역이 있다. 내가 낳고 자라고 전 부룬디 도시이기도 한 부줌부라(Bujumbura)시는 그러한 지역 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지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정부는 이 지역 모든 거주자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박해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박해에 대한 나의 공포심은 바로 이와 같은 부룬디 정황에서 비롯된다. 법원이 나의 난민소송에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이용한 “직접적인 박해의 표적인지 아닌지”의 기준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난센의 도움으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나는 다시 법원과 분투하게 되었다. 비록 변호사 조력 없이 나홀로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난센의 변호사님과 자원활동가님들의 도움으로 큰 힘을 얻고 있다. 나는 난센과 인연이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난센을 알지 못했더라면, 나는 정말 혼자였을 것이다. 항소할 기회도 놓쳤을 것이다.

 

처음에 1심 판결을 받고 실망했지만, 아직 다행히 희망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나의 삶은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내가 항소의 기회를 알게 되었을 때, 그러지 못했을 때보다 상황이 더 괜찮게 느껴진 것처럼,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괜찮게 느껴진다.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난센의 변호사님과 두 자원할동가님을 만나기 전, 나의 한국 생활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한국에 처음 입국한 후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 한 번도 그들처럼 나를 따뜻하게 대하는 한국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한국인이랑 교류하려고 노력을 했는가? 당연히 그랬지만, 항상 잘 안 되었다. 늘 벽이 존재했다. 그 벽은 가끔 미세하거나 보이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뚜렷하게 보였고 굉장히 차가웠다. 처음 난센의 활동가들을 만나기 전, 그들이 왜 나를 환대해주고 그토록 도와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본 내가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것도 있었다. 왜 난센을 만나기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그러나 모든 만남과 경험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얻게 된 또 다른 귀중한 교훈은 절대 일반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오류로 나는 모든 한국인이 무정하고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을 싫어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난센을 통해 나는 참 많은 것을 얻고 또 배웠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친절과 사랑으로 나를 반겨준 난센 활동가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글: 데오
번역: 자원활동가 이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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