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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성소수자xHIV에이즈x난민 인권운동의 만남: 연대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무지개연대는 국경을 박살낸다

성소수자xHIV에이즈x난민 인권운동의 만남

연대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난민인권센터 고은지



※ 본 원고는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등이 개최한 제 11회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성소수자, HIV에이즈, 난민인권 운동의  연대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활동을 톺아보며 난민인권운동을 중심으로 그간의 활동이 어떠한 의미들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2015년의 어느 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의 한 활동가가 난민인권센터(이하 ‘난센’)를 찾아왔습니다. 한 성소수자 난민이 행성인을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행성인은 국내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한 구체적인 법률 지원의 고민을 이어가기 위해, 난센과 희망을 만드는 법(이하 ‘희망법’)의 만남을 이끌었습니다. 초기에는 당사자의 법률 지원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를 논의하게 되었지만, 점차 우리의 이야기는 지위 인정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난민인권운동 내부에서 벌어졌던 인권침해를 포함한, 성소수자 난민이 국내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소수자’ 난민, 성소수자 ‘난민’, ‘성소수자 난민’, 또는...


 성소수자 난민에 대한 말하기에 앞서, 성소수자 난민은 누구일까요? 성소수자 난민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하나의 정의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설명을 해보자면, 먼저 ‘성소수자’ 부분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난민 사유의 주요한 전제로 가져가 난민지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고 커밍아웃을 했던 한 난민은 오직 정치적인 사유로만 난민지위를 인정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은 스스로를 게이로 정체화 했지만, 난민지위 심사에 있어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문제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편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성소수자로 오인을 받아 심각한 박해를 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공통점은 ‘성소수자’ 사유로 난민지위를 인정받는 여부를 떠나 ‘성소수자’ 이슈를 둘러싼 차별과 박해의 경험이 누군가를 강제 이주하도록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한편 ‘난민’ 부분을 살펴본다면, 한국에 온 성소수자 난민은 난민제도를 본국에서부터 알고, 지위를 신청하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지만 난민제도를 전혀 모르고 오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이주 지위로 한국에 머물지만 아직 자신의 상황이 난민제도에 의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상황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난민제도를 알지만 자신을 난민으로 정체화하지 않거나 거부 또는 멸시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국에 송환될 수 없는 상황에서 직면한 강제 출국의 위기에서도 난민이 아닌 다른 이주지위의 방편을 강구하는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적극적으로 자신이 ‘난민’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서의 공통점은 ‘‘난민’과 관련한 지위를 가지고 있느냐’ 또는 ‘‘난민’으로 자신을 정체화 하느냐‘의 여부 보다 본국에 돌아가면 목숨과 자유를 빼앗길 수 있는 상황, 즉 ‘강제송환’이 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소수자 난민은 다양한 상황에 처한 다양한 사람들이겠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두 가지 공통점으로부터 패턴화되는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성소수자 x 난민 인권 운동


먼저 성소수자 운동이 난민 인권 운동에 미쳤던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동안 난민인권운동 내부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중단하기 위한 고민과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난민운동 내부에서 성소수자 인권침해 사례를 목격해 왔지만, 관련 사건이 ‘인권침해’로 정의되지 않는 상황들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나 2015년 한 성소수자 활동가와의 만남은 난민인권운동 내/외부로 성소수자 난민 이슈를 터트릴 수 있었던 촉발제가 되었습니다. 성소수자 활동가와 만남을 시작했기 때문에, 2016년 상반기에는 비로소 그간의 성소수자 난민 인권침해 사례를 모아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인권침해 사례를 모으는데 있어 성소수자 난민이 한국에 거주하며 받게 되는 질문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질문들은 성소수자 난민이 이곳에서 경험하는 차별을 잘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누가 봐도 문제적인 질문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주로 심사 과정에서의 질문들인데) 예를 들어 트렌스 여성 난민에 “당신의 남자친구가 성적 취향이 정상이라면(이성애자라면) 어떻게 당신을 좋아할 수 있나요?”라는 혐오성 발언이 발견된 것뿐만 아니라 “00와 주로 어디에서 성관계를 가졌나요?”, “어떤 체위를 했나요?”, “그 사람을 사랑하였나요?”, “설사 키스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레즈비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나요?” 등의 수준 이하의 질문이 줄줄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질문의 등장을 통해 한국의 성소수자 난민 심사의 현실이 얼마나 잘못 돌아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되었고, 이후 같은 심사관들이 반복적으로 일으킬 문제들을 어떻게 가로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 많은 경우 성소수자 난민은 난민 심사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선주민으로부터 “한국에서도 성소수자들은 사회적 편견 등이 두려워 성정체성을 감추고 살고 있는데, 왜 한국에 왔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대부분 이런 질문들에는 성소수자 난민이 본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복잡한 이유와 인생의 여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난민 심사관은 “왜 한국에 왔냐?”는 질문과 함께 주로 “한국은 본국보다 경제적 기회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인가요?”, “한국에서 취업 등의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나요?”, “부모는 당신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었나요?”, “부모는 당신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를 원하나요?”등의 질문을 쏟아냅니다. 전문적인 심사를 위한 성소수자가 경험한 공포와 수치심, 성정체성을 숨기려고 했던 시도들에 대한 질문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심사관은 국격과 대한민국의 경제적 손실을 수호한다는 열등감이 집약된 애국주의를 발현하며 한 인간을 쓸모 유무의 기준으로 평가해왔습니다. 더불어 성소수자 인권운동에는 하나도 관심 없으면서 난민 지위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로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에 문제가 있음’을 거론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더욱 연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2017년 이후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로 엮어갔던 연대는 난민심사과정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구체적인 인권침해를 발견하고, 이에 맞선 대항활동을 위한 관점을 다지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의 예로 성소수자 활동가들과의 만남과 대화, 공부를 통해 난민심사관은 심사의 과정에서 성소수자의 정체성 역동과 차이를 보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법무부가 한 레즈비언 난민에 대해 ‘신청자는 여성과 사귄 적이 없고, 대신 남성들과 사귄 점’을 언급하며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문제적인지 인식하고 대항하는 논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는 ‘동성애’에 천착한 질문과 난민 불인정 사유들만을 나열하여 ‘바이섹슈얼’에 대한 인식 자체를 법무부가 하지 못하는 점에 대항하여 ‘바이섹슈얼’의 개념부터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또 법무부가 서구 중심으로 명명되었던 LGBTQIA등에 대해 출신 지역이나 계급에 따라 난민 당사자의 인식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나,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인식해나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인 난민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권리상담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 주로 심사 과정에서 “한국에서 LGBT모임에 참가하거나 활동하고 있나요?”, “한국의 LGBT 유명 활동가의 이름을 아나요?”와 같은 질문들이 난민 당사자의 정체성 진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에 대한 문제인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법에서 명시하고 요구하는 완벽한 ‘난민요건’과 심사관의 성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에 자신의 삶을 편집해 전시해야하는 당사자들은 여러 딜레마를 겪어왔습니다. 이런 딜레마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성소수자인권 운동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간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남겨둔 운동의 성과를 통해 정체성의 범주와 규범, 이를 규율하려는 힘들을 문제 삼고 해체할 수 있는 저항의 지점을 발견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료시민들과 만나고 나누는 자리를 갖게 되며 인권침해를 비로소 ‘인권침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HIV/AIDS x 난민 인권 운동


 이후 2017년에는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활동을 하며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HIV에이즈 인권 활동가들을 만나고 감염인의 인권침해 상황과 활동가들의 고민을 들으며 비로소 난민인권 운동 내에 HIV이슈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HIV에이즈 사례의 경우에도 HIV에이즈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HIV감염인 의료지원 네트워크와 쉼터 등의 자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권리 보장을 위한 자원의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일 이외에도 구체적으로 감염인 상담을 위해 필요한 지속가능한 의료 권리 등의 쟁점을 파악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HIV뿐만 아니라 감염병에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배우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감염병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어떻게 HIV에이즈 감염인 당사자를 낙인하는지, 특히 난민의 경우 어떻게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HIV에이즈 인권 활동가들과의 만남 이전에 ‘인권침해’로 분류되지 못했던 사건들을 재조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난민 집단 수용 시설인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한 난민에 대해 감염 진단을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퇴거조치 등에 대해 실질적인 대항을 할 수 있었고 또 관련하여 문제적인 난민법 조항들을 살펴보고 개정 제안을 모색할 수 있었습니다. 또 거의 모든 이주민에게 자행되고 있는 입국 이후 건강검진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HIV에이즈 인권운동진영의 성과로 2010년 이후 감염인 이주민에 대한 강제출국은 중단되었음에도, 여전히 자행되는 감염병 의무 검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HIV활동가들의 고민이 호환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주예멘 이슈 당시에도 제주도청과 법무부가 예멘난민과 관련한 팩트체크 자료에 ‘제주도 예멘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입국으로 인해 전염병 등 도민 또는 ‘국민’의 보건이 위협 받을 우려는 없는지?‘ 등의 문제적 질문을 대대적으로 다룬 점에 대한 즉각적인 문제 제기와 수정 요청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난민이나 이주민에 대한 ‘안전’담론을 만드는데 있어 HIV에이즈를 소환하는 방식을 규탄하고, ‘점염병’을 ‘감염병’으로 재명명하도록 하거나 HIV에이즈, 매독 등은 초기 3회 또는 2주 또는 정기적 치료를 통해 완치, 또는 유지 되는 면역성 질환임을 다시 팩트체크 하고 알리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HIV/AIDS x 성소수자 x 난민 x ∞ ...


 그동안 누적된 만남을 통해 성소수자, HIV이슈를 넘어 난민 운동 내부의 장애나 여성, 인종 및 연령, 국적 등에 따른 다층적인 억압구조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해는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의 활동에 힘입어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을 적극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고, 차별금지 담론 안에서 난민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끄집어 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주예멘 이슈가 뜨거웠던 당시 많은 시민사회와 인권 운동 진영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 수 있었고, 다시금 난민에 대한 혐오가 어떻게 성소수자, HIV에이즈 혐오와 유사하면서도 다른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간의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HIV에이즈 인권운동은 혐오 대응에 있어, 혐오세력을 분석하거나 구체적인 활동들을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지표가 되었습니다. 지난 7월, 난민 혐오를 여과없이 방송한 KBS 엄경철의 시사토론은 10월에도 성소수자 이슈에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성소수자 운동과 난민운동의 이후 대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성소수자 및 차별금지 운동 진영에서는 KBS 토론의 문제제기를 위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 결국 제작진의 사과를 받아내고 이후 토론회에서 적극적으로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같은 상황에서의 다른 대항방식을 보면서 난민인권운동의 부족한 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많은 번쩍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난민 당사자들 또한 제주예멘 이슈 이후 성소수자와 HIV의제를 배우고 파악해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연대를 통해 서로의 이슈들을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그러나 여전히 주거지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쉼터 이용을 위해 HIV감염 사실이나 성정체성을 숨긴 채 생존해야 하거나, CCTV로 사생활을 감시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선택해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출입국에 체류연장이나 난민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아웃팅을 당하거나 본국 커뮤니티나 한국 커뮤니티에도 속할 수 없는 이중 삼중의 경계에서 자신의 ‘소속’을 계속해서 질문하고 찾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본국과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소수자나 HIV에이즈 인권 등 소수자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참여하고 싶었던 난민들이 있었지만 함께 연대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여 연대의 지속이 어려웠던 문제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 난민의 권리 투쟁을 위한 구체적인 연대가 더욱 필요합니다. 여기서 나영님의 문장을 인용해봅니다.



우리의 실천은 ‘정체성 사이의 횡단’이나 ‘정체성 그룹들 간의 연대’가 아니라 끊임없이 범주화와 규범화를 통해 정체성의 위계를 가르며 새로운 통제를 시도하는 구조-권력의 작동을 복합적으로 확인하고 인식하는 과정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양하게 교차하고 변화하는 권력의 장을 계속해서 파악하며 서로의 목소리와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함으로써 변화를 진전시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해방은 이를 통해 저항과 대안의 지점들을 역동적으로 함께 만들어내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나영, 교차성 페미니즘


끝으로, 문제가 무엇인지 보게 해줄 수 있었던 그리고 구체적인 대항의 실천을 몸소 보여주었던 성소수자와 HIV인권 운동에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성소수자인권포럼_성소수자xHIV에이즈x난민인권운동의만남_고은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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