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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난민인권> 5강 '국내 난민인권의 현황과 실태'참여 시민 후기
글 : 이가람(경희대평화복지대학원)
지난 4강 발리바르의 관국민적 시민성에 대한 정치철학적인 접근에 이어, 5강에서는 실제로 한국의 국민국가시스템 안에서 난민들이 어떻게 제도적으로 배제되어있는지 김연주 활동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 한 이후, 2001년 1월 최초의 난민인정자(에티오피아)가 있었다. 난민인권센터가 매년 법무부 난민과에 요청하는 정보공개청구 자료에 따르면 1994년 난민신청 접수가 시작 되던 해부터 2016년까지 총 22,792명의 난민신청자가 있었지만 인정률은 3%에 미치지 못하는 678명만이 난민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작년 2016년 한 해만 봤을 때 7,542명이 난민신청을 했고, 그 중 98명인 0.8%만이 인정을 받았다. 2013년 난민법이 재정이 된 이후, 난민신청자수와 인정자수가 늘어나는가 싶었지만, 오히려 사상 최저의 난민 인정율을 기록했으며 소송을 통해 난민인정을 받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2015년 0명, 2016년 3명)
이렇게 난민인정율을 최소화하는 법무부의 입장은 두 가지 이다. 하나는 남용적 난민 신청자가 많다는 것이었다. 물론 남용적으로 난민지위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된 사유와 박해의 경험으로 한국에 온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거짓 난민이나 남용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난민신청자의 문제가 아닌 법무부 직원의 마음에서 오는 편견과 무지일 것이다. 또 하나의 다른 법무부 입장은 2013년 난민제도가 실시됨으로써 난민유입이 더 많아지고 신청자 수 또한 급증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내 난민신청이 늘어나는 이유는 난민의 수가 국제적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재 추세에 따른 것이지 한국의 난민제도 도입과는 별개임을 김연주 활동가는 강조했다. 실제로 UNHCR 통계자료를 참고 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2010년도 보호대상자(난민을 포함한 망명자, 실향민 등)는 3390만명 이었으나 2016년도에는 약 6775만명으로 거의 두 배 이상이 늘어났다.
난민지위를 신청한 사람들에게는 기타(G-1)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G-1 비자는 주로 임금체불이 되거나 소송 중에 있거나 난민 심사 절차를 거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여가 되는 비자이다. 임시적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끔 하는 비자. 3개월(소송중인경우)에서 최장 6개월을 받을 수 있는데, 6개월 안에 소송과정이 끝나지 않기 때문에 체류 연장을 해야 한다. 난민신청자라는 지위를 갖게 되면, 이들은 생활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제도적으로도 많은 고충을 겪게 된다. 특히 3개월의 체류 기간을 받은 신청자들은 휴대폰을 개통하고 싶어도 최소 100일 이상의 체류기간이 부족해 개통이 불가능하다. 또한 제 3국에 있는 아빠를 만나러 가고 싶은 한 난민 아동도 한국에서의 체류 기간이 짧아 제 3국에 방문 할 수 있는 자격이 되지 못한다.
생활에서 겪는 불편함 이외에도, 법의 미비점으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가 힘든 점도 있다. 예를 들면 난민신청자는 심사과정에서 법적으로 전문적 조력을 받기가 힘들다. 법에는 난민신청자들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변호사 비용을 지원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따라서 시민사회에서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선변호사의 조력을 뒷받침해주는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난민면접 및 사실조사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또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서류가 없는 난민신청자들은 면접 시 자신의 진술을 증거 삼아 본인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을 주장 해야 한다. 실제로 면접 중 신청자의 진술은 난민여부의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면접 과정에서 신청자가 진술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이나 절차가 잘 갖추어 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신청자를 범죄인으로서 바라보는 면담자(법무부직원)의 자세라던가, 신청자가 위협을 느낄 만한 통역인(남성, 본국의 친정부 성향, 본국 내 타인종 등)과 면담을 진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진술을 충분히 깊이 있게 전달 할 수 없고 결국 이것이 난민 불인정의 결과로 이뤄지게 된다. 2013년 난민법이 제정된 이후 이런 통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에게 불리한 통역인일 경우 녹음 녹화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안내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루빨리 통역과 심사관의 태도에 대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녹음 녹화를 의무로 시행해야 한다. 따라서 억울하게 불인정을 받는 경우도 점차 줄어야 한다.
많은 학자들은 난민신청과정 중 신청자를 면접하고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문화적 타자’로서 인정하고 수용하는 ‘문화적 과정’이라고 주장한다.[1] 광주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욤비토나씨 또한 자신의 책 “내이름은 욤비”라는 책에 서술한다. “일단 난민들의 말을 미루어 판단하지 말고 들어주는 것 말이다. …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 문화적 제도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난민에 대해 생소한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문화적 과정이 하루아침에 이뤄지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실천에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난민인권센터를 포함한 다른 시민들이 난민 제도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또 난민을 만났을 때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바라볼 필요 없이 그저 문화적 타인을 있는 그대로 만나 만남을 가지고 서로 편하게 친구가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가까운 미래에서도 난민을 심사하는 면접관들도 문화적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정의의 방향, 법의 목적, 행정의 현장성-‘국내 난민인권의 현황과 실태’ 강의에 붙여>
글: 신일식(서울대 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외국인보호소는 냉난방이 제대로 가동되어 있지 않고 침구류가 얇은 모포가 지급되고 있는데 이 모포만으로 겨울을 나기가 쉽지 않으며, 겨울옷은 라운드 긴팔 티셔츠가 하나 지급되고 있고, 슬리퍼만 지급되고 있다. 양말은 자비로 구입해야 해서 자비가 없는 경우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겨울을 나야나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한변협 2015. 2. 발간 「외국인보호소 실태조사 보고서」)
9월 7일 ‘한국사회와 난민인권’ 강좌에서 제시된 난민 구금 현황에 관한 내용 중 일부다. 이날 강연에서 우리는 난민신청조차 거부당하는 출입국항 난민신청자, 출입국항이나 외국인보호소에서 행정청의 임의적 판단에 따라 구금되는 난민신청자, 의료·교육·노동의 권리로부터 쉽게 배제되는 난민의 현황을 공유했다. 나를 비롯해 함께 한 시민들의 첫 의문은 “어떻게 우리 국가가 이럴 수 있는가?”일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난민 문제에 있어 한국 정부, 아니 한국 사회가 갖지 못한 세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정의의 방향, 법의 목적, 행정의 현장성이 그것이다. 나는 이 기준을 적용함에 있어 정의와 법, 행정이 일정한 위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는 정의에 따라 법이 규정될지언정 법이 정의와 부정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법이 행정을 규율할지언정 행정상 편의가 법의 목적을 부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난민 문제에 적용되는 정의의 문제는 차별과 평등의 문제다. 난민 문제에 있어 국적자(이 경우 한국인)는 스스로를 정당한 자격 없이 입국한 난민과 구별되는 존재라 인식한다. 이후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오래된 원칙을 무기로 국적자와 난민은 당연히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자나 국적은 한 국가의 법률이 규정한 권한의 근거일 뿐 인간의 자격에 앞서는 조건일 수 없으며, ‘정의로운 이주’를 판단하기 위한 잣대가 될 수도 없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인류가 차별과 배제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왔음을 안다. 민주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계급의 창설과 유지를 부정했고, 인종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밝혔으며 젠더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천명했다. 반면 차별과 혐오가 유지·존속되는 사회에서는 종교와 인종, 역사적 경험 등을 이유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중심으로부터 배제돼 갔다. 현실적인 이유로 우리 사회가 현재 난민의 기본권을 제약해야만 한다면, 난민의 권리를 일시적으로 유보할 수는 있어도 인간으로서 그들이 소유한 권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여권이나 비자 없이 입국한 이들이 비록 법률적인 권한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거주, 교육, 여타 생존에 대한 권리를 제약할 당연한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국제조약을 통해 만들어진 ‘난민협약’과 한국의 ‘난민법’ 등은 이런 정의의 방향을 이미 상당부분 추구하고 있다. 일반인이든 법조인이든 법률을 처음 펼치면 까다로운 난민의 요건들을 보며 난민법이 구별과 배제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법률이 그러하듯, 난민법은 현실적인 제약 하에서도 난민이 인간으로서 타고난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법, 행정기관은 물론 우리 사회가 “너는 난민이 아니다.”, “너에 대한 구금은 정당하다.”는 이유로 쉽게 난민에 관한 법률을 들먹여선 안 된다. 산업재해법은 산재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발견하고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고, 노조법이 노동조합의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감독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듯 난민법 및 난민법 관련 출입국관련법을 적용할 때에는 어떻게 하면 난민의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할 수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행정은 정의와 법률의 원칙을 준수하되, 현장의 사정을 반영하여 전문성 있게 집행돼야 한다. 행정이 자신의 독자적인 전문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입법과 사법을 담당하는 이들이 세세한 현장의 사정을 모두 알 수 없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유동성과 전문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입국관리소 등 행정부의 직원이 거주용이 아닌 외국인 구금 시설에 수개월 넘게 난민을 구금한다든가, 난민 심사 과정에서 적절한 통역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독립적인 행정의 존재 목적을 잃는 것이다. 행정부가 난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법률의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난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갖춰야할 전문성 역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김슬기, 문화적 타자의 공동구성 과정으로서 난민인정절차: 민족지적 사례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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