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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난민인권> 3강 '난민아동인권 : 대답해줘 상영과 GV' 참여 시민 후기
글 : 이가람(경희대 국제복지대학원) / 사진 : 신일식(서울대 인권센터 자원봉사자)
여기 아주 평범한 한국의 일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여느 아이들처럼 축구를 좋아하고, 태권도장에 다니고 과자를 좋아한다. 또 형제와 다투기도 하고, 의인화된 자동차가 나오는 만화를 좋아한다. 영화 주인공 요요(가명), 베브(가명), 앤(가명)은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스스로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어도, 타인과의 만남과 관계 속에서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사회’는 이들을 낯설게 대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이들의 부모는 콩고 출신의 난민 내지 난민신청자이다. 불안정한 정권과 내전이 한창 진행될 시기에 정부로부터의 위협을 받고 한국으로 탈출해왔다. 당시 요요 엄마는 급히 브로커를 통해 비행기 티켓을 건네받고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서야 자신이 한국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약 자신에게 갈 수 있는 나라의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한국으로 오지 않았을 거라 한다. 이렇게 한 워크숍을 통해 한국관객에게 요요엄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장면과 함께 세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며 놀고 있는 장면이 번갈아 나오는 부분에서 기분이 참 묘했다. 요요 엄마가 자신의 삶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유가 어찌하였건 한국에서 태어나 오늘 날 축구공을 차며 놀고 있다. 만약 요요엄마가 정부의 위협과 박해로부터 탈출하지 못했다면, 선택권이 없다한들 한국으로 오지 못했다면, 요요엄마도 아이들도 오늘날 존재하고 있을까? 요요엄마 뿐만 아니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죽을 수도 있었을 세 아이들의 부모들은 기적처럼 살아남아 한국으로 왔고, 때문에 새 생명(요요, 베브, 앤)이 탄생할 수 있었다. 병원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갓 태어난 아기들을 화면에서 봤을 때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이 새 생명들 앞에 국적이라는 큰 장벽이 놓여있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염연히 국민국가 시스템으로 따지고 보면 이들은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 국민으로서 보호나 복지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다만 난민 내지 인도주의적 체류자로서 한국에 머물 수 있는 비자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베브와 앤의 가족은 난민 신청을 한지 11년 만에 법무부로부터 난민인정을 받았다. 난민인권센터 이슬 활동가에 의하면 한국인이 되기 위해 귀화를 하려면 최소 5년 이상을 한국에서 거주해야 하며 관련된 자격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베브 가족의 경우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에 5년 이상을 살았어도 귀화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안 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국적은 부모의 국적을 따라 ‘콩고인’이 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다큐에 나오는 아이들의 경우 콩고 국적을 취득할 수 없는 실정이다. 콩고 국적을 취득하려면 대사관에서 출생신고를 해야 하지만, 아이들의 부모에게 박해를 가한 주체가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를 대변하는 대사관에 방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한국인도 아니고, 콩고인도 아닌 무국적자가 된다. 아이들이 속해있는 국가는 사실상 없다, 때문에 그 어떤 국가로부터도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는 아이들의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아이들은 지하철을 탈 때면 사람들로부터 어디서 왔냐는 질문 자주 듣곤 한다. 한 청년이 앤에게 묻는다. “어느나라에서 왔어?” 앤은 망설이다가 대답한다. “콩고.” 청년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을 해준 건지 아니면 설명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런 건지, 는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고 정확하게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정작 다른 한국인들은 아이들을 외국인처럼 대한다. 국적이야 무국적이라 치더라도, 아이들을 그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고 포용하기엔 그저 낯설기만 한 걸까?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보다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 학교 친구들은 이런 베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에 서투르다. 때문에 종종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한다. 하루는 베브 앞에 학교 친구들 3명이 나란히 서서 베브의 머리카락을 만져보더니 말한다. “아 이상해!” 또 100m 달리기 기록이 좋은 베브에게 말한다, “아 흑인이어서 좋겠다.” 흑인의 머리카락은 별로이고, 오로지 뛰어난 달리기 능력만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이런 흑인을 대하는 태도를 아이들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탓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어른들 또한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편견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지하철에서, 학교에서 앤과 같은 아이들에게 ‘평범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들도 한국 사회의 동등한 동료 시민으로서 인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흑인 인종에 대한 인식 개선과 이해도 필요하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난민과 무국적자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사회와 난민인권 시민강좌]에 참여하는 우리들부터 주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는 것 자체가 큰 발걸음을 떼는 중요한 행동실천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난민인권센터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이미 한국에는 누적 25,000여명의 난민신청자들이 있다(2017년 4월 기준). 요요, 베브, 앤의 가정처럼 많은 이들이 평균 5년 이상의 난민소송절차를 거치고 있으며 그 사이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한다. 이들을 한국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면, 요요, 베브, 앤 같은 아이들이 적어도 ‘평범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이상하다고 판단하기 전에 브라이언이 누구인지 ‘평범하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는 그런 한국 사회가 올 수 있을까? 굳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지 않아도, 실상에서 아이들의 평범함을 목격할 인식을 기르고, 우리 또한 그들을 평범하게 대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난민인권센터의 이슬활동가도 아이들이 자신은 어디에 속해있는지,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며 3강을 마무리 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4강에서는 이러한 난민을 발생시킨 국민국가 시스템의 한계, 그리고 난민과 이주민을 포용하는 관-국민적 시민권의 가능성에 대해 공부 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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